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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70화 (170/470)
  • 제170화

    170화

    몸에 벌레가 든 사람이 어떤 식으로 조종을 받는지, 그들이 갖게 되는 순간적인 위력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알아볼 기회.

    소청도 아진의 생각이 뭔지 알아차린 듯 조용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에서 이글이글 불꽃이 일어날 것 같은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린린은 아진과 소청이 어쩌기로 한 건지 눈치채고 그때부터는 세 괴물을 상대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오래 걸려도 이각. 이각은 넘으면 안 돼. 그러면 오라버니가 두고두고 놀릴 거야.’

    린린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양옆으로 툭툭 꺾고 셋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돼서 미안하지만 나한테 동정 같은 건 구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너희한테 짜증 나거든. 너희가 멍청하게 거기에 서서 구경하지 않고 그냥 도망쳤으면 나는 이놈만 상대하면 되는 거였거든.”

    그래도 석화연린은 설마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정파 무인이 아닌가.

    그 위선적인 정파.

    일반 백성에게는 절대 피해를 주지 않고 그들이 고통당하는 건 절대로 못 볼 것처럼 구는 인간들.

    그의 생각대로라면 린린은 당연히 그들에게서 벌레를 빼내고 어떻게든 구하려고 해야 했다.

    그가 알지 못한 것은 린린이 겉모습만 정파 무림인일 뿐 속은 천마라는 사실이었다.

    석화연린이 겉으로는 미소년이지만 속은 변태 노인인 것과 다를 것도 없었다.

    아진도 가망 없는 일에 미련을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린린이 넉넉하게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린린이 확실하게 이길 거라고도 믿지 않았다.

    그건 자기가 가세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거기에 스스로 족쇄까지 차고 싸울 마음은 전혀 없었다.

    벌레로 조종되는 자들에게는 무기가 없었지만 석화연린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분의 검을 쥐여 주었다.

    그들은 그것을 들고 수도 없이 린린을 노렸다.

    그러나 린린은 매번 그들보다 조금 더 빨랐다.

    그들의 공격에 앞서 움직이고 몸을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벌레에 잠식당한 숙주들의 몸은 너덜너덜해졌고 피투성이가 됐지만 그러면서도 죽지는 않았다.

    일을 마칠 때까지는 죽지도 못하는 운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는 편이 나은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린린은 검을 휘둘러 두 사람의 몸을 양단냈다.

    그랬으면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그건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절단된 몸뚱어리가 기어이 붙어 버렸다.

    ‘벌레가 안 보이네?’

    린린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일 초도 안 되는 동안 검이 수십 번이나 움직였다.

    그리고 몸이 수십 조각이 났는데 린린은 그러는 동안 절단된 면에 벌레가 보이지 않는지 살폈다.

    ‘저기 있다!’

    그것은 숙주를 죽이는 의미도 있었지만 동시에 대제가 조종하는 벌레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몸이 수십 조각이 나면서 벌레도 양단된 것을 보고 린린은 이번에야말로 자기가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벌레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다시 숙주를 이어붙였다.

    “와……!”

    린린은 억울해하면서 이번에는 광포한 검풍을 날려 수천 조각을 내버렸다.

    숙주의 몸과 함께 벌레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그때에야 몸이 재생을 멈췄다.

    “……!”

    당황하는 석화연린의 모습을 보고 린린은 자신의 생각이 맞은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때까지 확실히 하는 게 좋을 듯했다.

    린린이 아예 하나만 노리고 공격을 퍼붓는 동안 다른 숙주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도망쳤다.

    그러나 그것은 숙주의 의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석화연린이 조종을 한 것에 불과했다.

    린린이 둘을 다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는 멀리 떼어 둔 것이다.

    하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지자 석화연린은 이제 남은 숙주를 조종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지나가지는 않는지 두리번거리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숙주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년을 죽여라!”

    석화연린이 외치자 숙주가 땅을 박차고 린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린린은 숙주의 몸이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검을 들었다.

    그러나 허공에서 내려오던 숙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닥을 박차듯이 그대로 뛰어올랐다.

    “와…… 이건 좀 놀랍네.”

    린린은 진심으로 충격을 받고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무위가 가능하다면 초절정을 넘어서서 절대의 경지에는 올라야 가능한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아진 역시 그 광경을 보고 놀랐다.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말로 그들의 무위를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가 들어간 후에 숙주가 어느 정도로 강해질지는 알 수 없다고 해 두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린린은 숙주가 날아오른 것과 높이를 맞춰 자신도 같이 날아올라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리고 숙주의 몸이 베어졌다.

    양단된 몸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툭 튀어 오르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붙어 버렸다.

    린린은 짜증을 내면서 계속 이어 붙는 숙주의 목을 베다가 강기를 날려 몸을 터뜨렸다.

    수천 조각으로 찢어진 시신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석화연린은 경악에 찬 눈으로 린린을 바라보았다.

    그가 정말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벌레를 가진 숙주의 몸은 일시적으로 금강불괴와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니 린린이 평범한 인간을 상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검으로 벤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석화연린은 기겁을 했지만 그래도 린린의 내공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럴 게 아니었어. 벌레를 아끼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다 석화연린의 시선이 소청을 향했다.

    석화연린은 린린과 아진이 소청을 신경 쓴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한눈에 봐도 셋 중에 소청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의 몸에 벌레를 집어넣기만 하면 재미있어지겠군.’

    그는 클클거리며 노인네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전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그가 짓는 웃음은 상대를 소름 끼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그 모습에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석화연린이 뭘 노리는지 전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해 봐도 돼요. 스승님?”

    심지어 소청은 그런 말까지 했다.

    석화연린은 기가 막혔다.

    자기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그런 말을 할까 해서였다.

    “그래. 린린. 이제 소청에게 맡겨라.”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 내고 어깨에 걸쳤다.

    소청은 오랜만에 스승님과 사고님의 앞에서 자기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 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흥분이 된 듯했다.

    소청이 검을 빼 들기도 전에 석화연린의 몸이 소청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석화연린은 다른 자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검을 휘두를 정신도 없어 무쇠 덩어리 같은 주먹으로 일격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소청의 가슴팍에 정통으로 꽂혔다.

    석화연린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석화연린의 주먹에 맞은 아이는 쓰러지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아아. 많이 아프지는 않네요. 호신강기면 되겠는데요? 이게 대제인 거죠? 련주는 대제보다 조금 더 강하겠죠?”

    소청이 하는 말에 석화연린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모르지 않았으면서 그 순간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바본가?”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공격해 봐도 되나?”

    석화연린은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급히 검을 빼 들었다.

    도대체 이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을 해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성으로 가던 사람들이 자기를 떠올리고 도와주러 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니지. 그놈들이 나를 돕겠어? 내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충독을 빼 가기나 하겠지.’

    그 생각을 하자 자기는 충독을 몸에 가진 대제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나는 대제야. 쉽게 죽지 않아. 충독이 내 몸을 지키고 있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들었다는 표정을 짓고 바닥을 박차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면서 소청이 그를 바라보았다.

    뭘 하려는지 알고 대응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듯했다.

    석화연린은 항아리에 있던 두 마리의 벌레를 모두 꺼냈다.

    그리고 검으로 제 옆구리를 긋고 그것을 그곳에 넣었다.

    벌레까지 집어넣으면 그 힘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느덧 린린도 아진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충독을 가진 대제가 벌레까지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충독이 저 벌레들의 엄마인 거지? 상봉했다고 좋아하면서 울려나?”

    린린이 말하자 아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겠냐?”

    “또 모르잖아.”

    “어떻게 할까요. 스승님? 지금 공격해도 될까요?”

    소청은 아까운 기회를 날리는 게 아쉬운 듯했다.

    “그래. 그래도 될 것 같아. 변화가 생기면 그때 멈추고 알아봐도 되는 거고.”

    아진이 말하자 소청은 다행이라고 말하며 몸을 날렸다.

    “제가 권각술을 배웠는데 실전에서는 써먹어 보질 못했어요.”

    린린이 기가 찬다는 듯이 소청을 보았다.

    소청을 보는 사람들마다 소청을 탐내는 이유가 린린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저러니 어떻게 탐을 내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거 뇌전 아니야?”

    아진이 린린에게 묻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방금 오라버니한테 그거 물어 보려고 했는데.”

    뇌전이 일렁이는 주먹이 석화연린에게 날아가 꽂혔다.

    처음에는 그의 안면을 노리더니 그다음에는 가슴팍이었다.

    석화연린이 덩치 작은 어린 소년의 몸을 하고 있어서 소청이 목표를 노리면서 높이 뛰어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소청은 그냥 단순히 팔만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할 때마다 옆구리를 돌리고 상체 전부를 회전시켰다.

    보고만 있어도 거기에 직격으로 맞으면 어떨지 알 것 같았는데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은 석화연린의 턱이 부서져 나가더니 몸이 몇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이상한데?”

    아진이 말하며 석화연린에게 다가갔다.

    린린 역시 몸을 날려 그곳에 있었다.

    석화연린은 소청의 공격을 막을 정신이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소청이 공격할 때마다 석화연린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이게 뭐야?”

    석화연린의 전신모공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소청이었다.

    “계속 해 봐도 돼요?”

    “응? 어. 아니. 잠깐만 있어 봐. 충독이랑 벌레가 싸우는 것 같아.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럼 한 번만요. 정말로 해 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간절한 눈빛을 하고 바라보는 소청을 보면서 아진은 이 자식은 정말 딱 내 제자다 싶었다.

    “죽이면 안 된다. 죽이면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닐 거야.”

    대답은 린린에게서 나왔다.

    “네. 사고님!”

    그리고 소청은 자신의 내공을 주먹에 전부 다 밀어 넣는 듯했다.

    그의 주먹에 강기가 맺히는 것이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거기에 다시 뇌전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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