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168화 (168/470)

제168화

168화

-벌레를 집어넣으면 단전을 갖고 있건 없건 상관없이 초절정 이상의 무위를 발휘하게 된대요.

향화문주 짱돌이 최종적으로 발표한 내용이었다.

-련주에게는 5대제가 있고 지금까지 제서에서 일어난 유아 사망 사건을 종합해 보면 현재 5대제들마다 각자 열다섯 개 안팎의 벌레들을 갖고 있다는 답이 나와요. 그것들은 한 번 사용했다고 전처럼 죽는 게 아니에요. 주인이 곁에 있다가 항아리에 넣어 주기만 하면 계속 살 수 있대요. 그렇다고 대제의 몸속에 있는 충독은 가만히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몸속의 충독은 충독대로 주기적으로 계속 알을 낳고 그 알을 깨고 나온 벌레는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무엇 하나 희망적인 이야기가 없었다.

지금은 5대제라고 하지만 벌레를 보관하는 방법이 생겼다면 충독을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없을 것 같지도 않았다.

5대제를 전부 죽인 후에 숨겨두었던 충독을 이용해 사도련주가 새로운 대제들을 만든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리고 그럴 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 * *

“여러분은 나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에요. 나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도련주를 죽이고 사파를 괴멸하라는 것은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그 명을 지키기 위해 죽는 사람들은 내가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무공 중 하나를 전수해 주죠.”

“…….”

아진이 분타 장원에 사람들을 전부 모아 놓고 한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그들이 그 자리에 모이면서 기대한 것은 기껏 용기를 고취하는 독려 정도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이어진 약속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정의맹의 무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안 좋은 선택을 해서 계속 빌빌거리며 앞서가는 사람들의 등이나 보고 있어야 하던 무림맹의 패배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들에게 아진의 말은 꿈만 같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무공 중 하나를 전수해 준다니…….

“그거……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건가요. 서 소협?”

누군가 물었다.

어떤 무공을 전수해 줄지 결정하는 게 아진이라면 그건 그렇게 끌리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구결과 초식을 가르쳐주고 묘리도 전부 다 설명해 줄 겁니다. 십년 치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 삼갑자 이상의 내공을 갖고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상승무공을 원한다고 해도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런다고 그 무공을 바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문제는 여러분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겠죠.”

이거다!

사람들의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런 제안을 받고도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여러분에게만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대제는 내가 먼저 해치우겠습니다. 저기에 있는 내 동생과 함께요. 이틀 안에 두 대제를 죽일 테니 남은 분들이 세 대제를 처리해 주십시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이틀 안에 두 대제를 죽이겠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두 대제를 죽인다면 자기들이 힘을 합쳐서 세 대제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리의천은 아직 사도련주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시작으로 하나둘 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애써 자신감을 끌어 올렸는데 분위기를 다시 어둡게 만들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모두 대제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아진이 린린에게 다가가 린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 얘기 할 때는 앞으로 나한테도 미리 얘기 좀 해 줘, 오라버니.”

“에이. 그러면 네가 놀라서 안 돼. 이 오라버니가 네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잊었냐?”

린린은 기가 찬다는 듯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얼굴이었다.

“준비됐지. 린린?”

“안 됐다고 하면 기다릴 거야?”

“무슨 소리야? 그냥 물어본 거지. 가자.”

그때 소청이 급히 달려왔다.

“스승님. 사고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저는 사고님의 호위가 돼야 할 사람이잖아요.”

그러면서 소청은 먼저 경공을 펼쳤다.

아진에게 조르고 있는 거면서도 목소리가 앞에서 들리고 있었다.

“소청아. 우리는 그쪽으로 안 갈 건데?”

“오라버니는 그래? 나는 저쪽으로 갈 건데.”

린린은 오랜만에 소청과 함께 가게 되는 게 좋은 듯 소청을 향해 달려갔고 아진도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었기에 부리나케 두 사람을 쫓아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저 겁내기만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럴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수련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젊은 무인들이 한 두 마디를 하면서 연무장으로 향하자 북리의천이 독고소영을 바라보았다.

“소영. 오늘은 혼자 놀도록 해. 나는 후기지수들의 무공을 옆에서 좀 봐줘야겠어.”

“의천. 의천은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부정을 할 거야? 무공은 내가 의천보다 낫다는 거 아직도 인정 못 하는 거야?”

연무장으로 향하던 젊은 무인들은 자기들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면서 토끼 눈이 되었다.

정의맹의 맹주, 강호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그 검신대협과 빙소검후가 자기들의 무공을 봐주겠다는 말이 사실인 건가 하면서 잽싸게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몸을 풀어 놔야 그들이 왔을 때 조금이나마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이거. 그냥 대충 서 있는 거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이구려. 하북팽가도 전투에 함께 참여했다는 정도로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벽력십팔도 중 한 명인 하북팽가의 호법에게서 그 말이 나오자 다른 무림 명숙들 역시 연무장으로 걸음을 했다.

연무장이 곳곳에 떨어져 있어서 어차피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젊은 무인들의 무공을 전부 다 지도해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림맹에서 온 명숙들은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의맹의 수뇌부들이 훨훨 날아오르는 동안 그들은 패배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록 자기들이 오판을 내린 실수가 있기는 했어도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정의맹을 비난하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곳에서 보면서 정의맹의 수뇌부가 무엇이 다른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무공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아진이 한 말만 해도 그랬다.

사도련을 괴멸하라는 것이 황상의 명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정도로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의무가 없는 일까지 하겠다고 나서며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도 웃기기는 했다.

대제를 죽인 사람에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아진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 명을 위해 죽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그 일을 위해서 함께 나서달라고 부탁했고 그 말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서 소협이 대단한 재주를 가진 것 같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필 줄을 알아.”

하북팽가의 호법이 말을 하고 연무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자기들도 시간을 허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무장에서 연습하던 젊은 무인들은 무림 명숙들이 다가와 그들의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것을 보며 감격했다.

평시와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문파의 어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수한 상황이었고 명숙들은 젊은 무인들의 심법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지도를 해 주고 있었다.

이것까지도 가르쳐 주어야 하나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이들이 아낌없이 묘리를 설명해 주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아끼지 않고 그것들을 풀어 놓기도 했다.

희한한 것은, 희생이자 양보라고 생각하면서 젊은 무인들을 가르치는 동안 그들이 얻은 깨달음도 결코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아…… 나는 왜 이것을 잊고 있었던가. 이들에게는 이렇게 호통을 치면서 왜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말인가.’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고 해서 여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런 것들이 그들의 안에서 빛을 잃고 있다가 서서히 힘을 발휘했다.

가르치는 말이 그들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가르쳐 주다가 자기들도 그 옆에 서서 연습에 돌입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알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버렸던 모양이군. 이 상태로 절정 수준의 상대를 만났다면 나는 이길 수 있었을 것인가.’

연무장 곳곳에 횃불이 밝혀졌고 밤이 늦도록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없었다.

* * *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아. 오라버니?”

경공을 펼친지 이각 가량 지났을 때 린린이 물었다.

사도련주와 대제들이 성주에게 갔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린린은 그들이 꼭꼭 숨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는데 일단은 감에 의지해서 가는 거야.”

처음에는 자신 없이 한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조금 확신이 생겼다.

린린은 왜냐고 묻지 않았다.

아진이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맞는 일이 많았다.

소청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아진이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대제가 있을 거라고 확실히 믿었고 대제가 갑자기 나타난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고 싸우기 위해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소청아. 그동안 수련은 많이 했어?”

린린이 묻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은 아진과 린린만큼 괴물은 아니었고 공력을 끌어 쓰면서 그 정도로 경공을 하며 동시에 말까지 하는 것은 아직 버거웠다.

린린은 소청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는 듯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있어. 가까이에.”

아진이 말하자 린린과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에 손을 올렸다.

린린은 아직 그 정도로는 하지 않았지만 대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시작하려고 준비를 끝내두고 있었다.

5대제 중 하나인 석화연린은 매우 특이한 체질로 인해 열 서너 살의 모습에서 성장을 멈췄다.

성장과 함께 노화도 멈춰서 그는 계속 그 순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 서너 살의 소년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는 육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가 무리에서 혼자 뒤처진 것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해서였다.

그 나이를 먹는 동안 그는 백 명이 넘는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다.

사도련주의 밑에 들어와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전적이 있었는데 누구의 죄가 많이 드러났느냐, 비밀이 유지되고 있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석화연린은 젊고 성숙한 여인을 좋아했는데 겉모습이 십 대 초반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가 연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미소년의 용모는 젊은 여자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데 유리했다.

마침 석화연린은 그런 여자에게 길을 물으면서 도움을 받고 있었다.

“여기는 처음이거든요. 어려서 사부님을 따라 무공을 배우러 갔는데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갈 곳이 없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이 길로 가면 더 빠르다고 해서 이 길로 가는 중인데 오히려 길을 몰라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아요. 약도 좀 같이 봐 주실 수 있어요? 저는 제가 제대로 온 건지 모르겠어요.”

아진 일행이 그가 있는 곳 근처에 이를 즈음 석화연린은 그런 말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 줘 볼래?”

여자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약도를 받아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