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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67화 (167/470)
  • 제167화

    167화

    나중까지도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눈을 하고 아진을 쏘아보았다.

    그중에는 당채운도 있었다.

    “제 검을 받아주십시오. 소협.”

    당채운이 말하며 검을 앞으로 향한 채 달려갔다.

    전에는 아진이 시킨 대로 꼬박꼬박 의원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소협이라고 했다.

    함께 전투를 하게 될 아진에게 그 호칭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진은 당채운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당채운은 아진이 제법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라면 자신과 검격을 나누며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가늠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당채운의 검을 그대로 받아냈다.

    줄기줄기 검으로 파고들어 가던 내공의 흐름이 갑자기 턱 막히자 갈 곳을 잃은 것이 급히 역류했다.

    당채운은 돌아오는 내공에 무방비로 당했다.

    패배한 내공은 당채운의 몸으로 돌아와 진탕으로 만들어 버렸고 당채운은 짙은 검붉은 피와 함께 내장 조각을 토해냈다.

    아진이 당채운의 모습을 보고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때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며 다가온 자가 있었다.

    아진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검을 그어 그의 손목을 잘랐다.

    “그래도 그건 좋은 시도였습니다.”

    아진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으아아악!”

    비명은 손목이 잘린 것보다 조금 늦게 나왔다.

    통증이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 듯했다.

    아진은 당채운에게 다가가 그를 도와주었다.

    역류해서 날뛰던 내공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제가 나댈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 아진에게서 제 존재를 감추고 싶은 것처럼 흐름이 서서히 진정되었던 것이다.

    당채운은 기가 막혔다.

    아진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괴물인가.’

    멍한 눈으로 아진을 보며 당채운은 생각했다.

    “그래도 상당히 단호해졌습니다. 당 소협. 빨라졌고 강맹해졌고 말입니다.”

    이미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후에 그런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했지만 당채운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거치적거릴 것 같은 분들은 빠지는 것이 돕는 것입니다.”

    “…….”

    아진의 말이 서운했겠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았다.

    아진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친 곳을 치료해 주었다.

    잘려나간 손목까지 붙이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진에 대해 지금껏 숱한 소문을 들어왔으면서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이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아진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공통의 적이 나타나면 함께 뜻을 합치기도 하지만 전력의 희생을 최소로 해서 가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명예롭게 싸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한 실력을 보여 주고 사람들의 뇌리에 가문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키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지만 솔직한 말로 그들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이대로라면 구 할은 죽을 거다.’

    아직 련주를 직접 본 것이 아니었는데도 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소협. 아직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변명은 아닙니다만 소협을 상대로 검을 드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진이 웃자 당채운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았고 실전에 임해 본 적도 없는 듯했다.

    지금껏 그렇게 처절하게 삶에 임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행운임과 동시에 불운이었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무공의 기본도 지금껏 부단히 수련해 왔을 테고 말입니다. 자세와 태도의 문제입니다. 그건 여러분의 의지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적을 쌓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것. 그것도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런데 능력도 없이 그런 생각을 품으면 탐욕스러워 보이고 거리를 두고 싶어지게 되죠.”

    아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들에게는 전부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웠지만 반박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해 가도 됐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도련주는 정의맹과 무림맹의 모든 무인이 전부 다 힘을 합쳐서 공격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자가 만든 충독 벌레 한 마리면 절정 고수 한 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도 모릅니다.”

    “절정…….”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에 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막연히, 정의맹의 수뇌부가 나서면 일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고 자기들은 그 뒤를 따라가며 힘을 조금만 얹은 채 공적만 나누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진조차도 어렵게 생각할 거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분은 천 명의 나를 만나서 싸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여러분을 고쳐주지 않을 거고 말입니다.”

    “……!!”

    천 명의 서도진.

    그 말은 사람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게나 버거운데 천 명이라니.

    “서…… 소협. 혹시 소협은 지금 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게 아닙니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초절정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에 절정에 발을 들인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 천 명이 동시에 덤빈다고 해도 나는 여러분을 모두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살아남으십시오. 거기에만 목표를 두십시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전부 저절로 이루어질 겁니다.”

    그제야 그들은 살아남으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얼굴을 붉힐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협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귀찮기는 하겠지만 내가 하는 걸 전부 따라 한다고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열심히 하겠다는데 좀 상냥하게 말을 해 주면 안 되나 하면서도 그들은 그게 아진이라는 걸 차차 알아 갔다.

    “당 소협은 나를 좀 보십시오.”

    아진은 당채운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를 불렀다.

    당채운은 그가 전략에 대해 논의를 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하며 다가갔지만 아진은 당채운이 저질렀던 실수를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것들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진은 무리의 우두머리 같은 사람이었고 나이와 상관없이 당채운이 존경하던 이였다.

    그러나 그런 아진에게 지적을 받는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당채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실수를 고칠 기회가 지금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진은 검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와 싸우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해 주었다.

    그들 역시 당채운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만 바꾼다면 아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때부터는 땀을 흘리며 수련에 임했다.

    분타에 마련된 여러 개의 연무장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수련에 몰두했다.

    그래서 정작 북리의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반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승님.”

    “그래. 아진아.”

    아진이 다가가자 북리의천이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들어오다가 활짝 웃어 보였다.

    “스승님.”

    소청이 그 옆에 있다가 아진에게 바짝 다가왔다.

    아진은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후로 미룰까 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제자가 너무 반갑고 사랑스러워서 소청을 안아 주었다.

    “많이 컸구나. 소청아. 두 뼘도 더 큰 것 같다. 마지막에 보고 나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녀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우선은 북리의천과 함께 온 사람들과 먼저 얘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았다.

    “하북팽가의 벽력십팔도에 대해서는 너도 들어 봤을 거다. 아진아. 이분들을 모시고 오느라고 늦었다. 다른 분들도 속속 오실 거다. 이번에는 모두 뜻을 같이해서 사도련주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뜻을 같이했다.”

    북리의천의 말만으로는 힘든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황제의 명이었다.

    황제의 명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이상 그들 중 북리의천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북리의천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진은 북리의천이 말하지 않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그가 말한 것만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로 했다.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대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벽력십팔도의 어르신들이 오셨다는 것을 안다면 후기지수들도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벽력십팔도는 절정 이상의 고수들로 구성된 하북팽가 전력의 핵심이었다.

    자존심은 누구에게도 질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눈앞의 아진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상대가 자기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갓 이십 대 초입에 들어선 아진에게서 그런 기운이 풍긴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어차피 그것은 곧 알아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시작으로 시간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무림의 명숙들이 속속 도착했다.

    회의는 자주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령은 간단했고 이제부터는 실적이 필요한 참이었다.

    사도련주가 더 이상 숨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들은 그 지역의 경계를 강화하며 사도련주와 관련된 자들을 색출하기로 했다.

    이미 향화문을 통해 얻어 낸 흑도 조직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겁니다.”

    북리의천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 * *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확실치 않더라도 우선은 단서를 잡아야 했다.

    흑도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황제의 명령과도 부합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단죄해 나갈 수 있었다.

    저항하는 자는 죽이고 가능하면 산 채로 잡아들여 그들과 사도련주와의 관계를 알아낸다.

    그것이 그곳에 모인 정의맹과 무림맹 무인들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련주와 대제들은 아직 그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 성주를 공격할 계획을 갖고 성으로 향했던 것이다.

    여러 사람이 잡혀 오고 쓸모있는 정보가 모였다.

    대제와 련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눈앞에서 검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자기들의 목숨이 아까워져서, 절대 말하면 안 될 것들을 털어놓고 말았다.

    설마설마했던 것이 실제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욱 서둘렀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정확한 정보들이 쌓여 나갔다.

    충독은 전보다 더 강해졌고 대제들이 새로 생겨났으며 대제들마다 알을 보관하고 있다가 그것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전에는 아이들의 몸에서 알이 부화하다가 거기에서 벌레가 나올 때에 맞춰 작전을 실행에 옮겨야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알에서 나온 벌레를 항아리에 담아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경우에 벌레를 사람의 몸속에 집어넣어 무기로 사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이 밝혀진 사실들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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