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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65화 (165/470)

제165화

165화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쫓아오는 것 같아 그는 잠시도 쉬지 못했다.

“사, 사람…… 사람 살려! 창가 철방이……! 창가 철방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오랜 침묵 끝에 괴물이 되살아났다.

* * *

이번에는 향화문이 조금 느렸다.

아진이 황제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하기까지 향화문은 제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매일 수천 건의 제보가 들어오고 그중에는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도 허다했다.

그중에서 쓸만한 정보를 찾아내 거기에 집중하게 하는 것.

그거야말로 정보문의 가장 큰 역할일 수도 있었다.

아진에게 제서의 기사(奇事)에 대해 들은 짱돌은 크게 놀라며 제서 지역에서 올라온 정보를 모조리 다시 살폈다.

그리고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며 폐기하려고 했던 정보 중 아진이 말한 것과 부합하는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짱돌이 느낀 죄책감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자님…… 제가…… 제가 이걸 잘못 다루는 바람에…….”

“아닙니다. 아저씨. 누구라고 해도 알아차리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이제부터 잘하시면 돼요.”

아진은 짱돌을 격려했다.

“공격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목표하는 곳까지 완주하려면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빨리 잊는 게 좋아요. 자꾸 그걸 생각하고 자책하다 보면 앞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대비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 공자님.”

짱돌은 정보문을 본격적으로 가동했고 아진은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들을 토대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이제는 산본의가가 커지고 그곳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진은 다른 일에 앞서 혈천방과 비룡채를 찾아갔다.

“방주님. 잠시 산본을 떠나있게 될 것 같습니다. 사도련주의 흔적이 나타났어요. 제서로 갈 겁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폐하께서는 이번에야말로 그 일을 끝맺으라고 하셨어요. 제가 없는 동안 본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방주 송효원은 아진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한가하게 놀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진은 채주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고 비룡채도 그때부터는 산본의가의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약초를 파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 줄 수 있고 다른 약방들도 있어서 그들은 기꺼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각자 그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리해 왔던 무기를 꺼냈다.

산본의가가 있는 마을에는 왈패들도 일류 고수들이 사용하는 진검을 갖고 있다는 말이 헛소문처럼 무림에 퍼져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헛소문이 아니었다.

하나에 금자 수십 냥에 이르는 검들이 주인의 손에 딱 들려 있었다.

그들이 먹은 영약에도 그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돈은 부족하지 않게 벌렸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강하게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었는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아진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전부터 벌써 몇 번이나 산본의가를 위해서, 아진의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만큼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무재가 없더라도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나간 후에도 산본의가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질 그들을 키우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있어서 지금도 아진은 산본의가를 두고 제서로 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린린과 천이재가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가주와 가모, 도종은 사도련주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충격에 빠질 겨를도 없이 산본의가에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아진이 사도련 잔당 토벌에 집중하는 동안 산본의가가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진으로 대변되는 산본의가는 그동안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적이 많아지는 동안 산본의가가 그 자리에 멈춰 있던 것은 아니었다.

“무사해야 한다. 아진아. 린린도 잘 챙기고.”

“린린이 저를 챙겨야 할 거예요. 어머니.”

아진의 말에 가모가 웃음을 짓더니 아진과 린린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인사가 얼추 끝난 후 벽예월이 아진에게 다가왔다.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공자님.”

“천기를 읽었습니까?”

“아뇨. 그런데 어느 때는 천기보다 제 감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아진은 벽예월이 안 좋은 흉한 미래를 알게 될까 봐 일부러 하늘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진도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벽예월은 표정을 감추는 데 능숙하지 못했고 벽예월을 보면 어떤 미래가 정해져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일단 그런 모습을 보면 신경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게 됐다.

아진은 떠나려다가 랑랑을 보고 나왔다.

랑랑은 아진을 잘 따랐고 아진이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만지곤 했다.

랑랑과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아진은 그런 랑랑을 보며 약속을 해 주었다.

“금방 돌아와서 놀아줄게. 그때까지 잘 있어야 한다. 무럭무럭 자라고.”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인사보다 오히려 랑랑과 나눈 인사가 더 길어졌다.

그래도 랑랑과 인사가 끝난 후에는 바로 산본을 떠날 수 있었다.

북리의천은 정의맹의 무력단을 이끌고 바로 제서로 오기로 했다.

정의맹 소속의 무력단 외에도 정의맹에 소속된 각 문파와 무가마다 최정예 무력단을 대거 보내기로 한 상태였다.

제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향화문에서 빠르게 수집해 소식을 전파하자 이번 기회에 사도련을 괴멸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랜만이네. 오라버니랑 이렇게 가는 거.”

경공을 펼치며 하는 린린의 말에 아진이 린린을 바라보았다.

자기는 별로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해서였다.

“충독을 다시 만들었을까? 그랬겠지, 린린?”

“그랬을 거야. 이번 일. 들켰다기보다 일부러 과시하고 싸움을 걸려고 한 것 같잖아.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련주는 한 단계 올라섰을 거야. 련주도 그렇고 충독도 그렇고.”

“충독이 그런 건 상관이 없는데 충독의 번식 방법은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충독이 낳을 수 있는 알이 하나로 줄어들었거나.”

말을 하는 아진 자신도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전에 역천마의에 대해서 말했던 거 생각나. 오라버니?”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마의도 이런 걸 한 적이 있었어. 어느 날 신교의 전사들이 고독(蠱毒)을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그 고독을 번식시키고 섭혼대법을 같이 섞었거든. 그런데 결과가 너무 끔찍해서 역천마의가 도중에 그만뒀지. 실험 결과와 고독을 같이 폐기하기 전에 역천마의가 나를 찾아왔었어. 만약에 그 실험을 끝까지 하고 대법을 완성하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너는 왜 그만두라고 했어? 그게 있었으면 정말 쉽게 네가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아진이 말했지만 린린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진을 바라보았다.

굳이 자기가 대답하지 않아도 아진이라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진 역시 괜히 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건 스스로 얻을 수 있을 텐데 벌레니 섭혼대법이니 하는 사술까지 쓰면서 억지로 복종시키고 싶지는 않았을 듯했다.

“그런데 고독을 이용해서 역천마의가 전혀 다른 벌레를 만들어 냈어. 고독 두 마리를 이용해서 처음에 고독을 계속 번식시키고 그것들을 항아리에 넣고 놔뒀거든. 항아리 속에서 벌레들은 번식하고 죽이면서 그 수가 수시로 변했어.”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심하게 불쾌해서 아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강한 개체가 나올 거라는 게 역천마의의 생각이었어. 역천마의는 술법으로 그 안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도록 만들어 뒀어. 그래서 원래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번식이 이루어졌지.”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전 세대보다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듯했다.

“계속해서 번식이 같이 이루어져서 한동안은 개체 수가 유지가 됐어. 알을 낳을 고독은 다른 놈들이 공격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알도 공격하지 않고. 그런데 어느 날 항아리 속에 고독이 한 마리만 남아 있는 거야.”

“…….”

아진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 고독은 알을 품은 고독도 전부 죽이고, 알까지 전부 죽여 버린 후에 살아남은 것이다.

“고독의 독성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는데 다음에 태어난 건 이전에 부모 세대보다 독성이 더 강해졌어. 그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역천마의는 정말 엄청난 독을 얻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왜 멈췄어?”

“끔찍하잖아. 사람들이 천마신교에 대해서 멋대로 생각하고 떠들어대는 건 아는데 우리는 괴물이 아니거든. 강하다고 괴물을 동료로 삼지도 않아.”

아진은 그 말이 정말 잘 이해됐다.

“다행이네. 그런데 그 얘기가 갑자기 왜 생각났어? 충독도 그런 식으로 키워냈을 거라고 생각해서?”

린린에게 물으면서 아진은 자기도 대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고독과 섭혼대법을 함께 시행해서 역천마의가 하려고 했던 일을 사도련주는 실제로 해낸 것일 수도 있었다.

충독이라고 불리는 것의 실체도 고독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고독은 스스로 강한 독성을 갖고 그것으로 숙주를 공격하지만 충독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일시적으로 괴력을 내게 해준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일시적으로 괴력을 내게 해 준다.

자기가 낼 수 없는 힘을 끌어 내준다…….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영약을 이용해 내공을 증폭시키는 것처럼 어떤 것의 도움을 받아 전에 없던 힘을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역천마의를 만나 보는 게 더 급하려나?”

고독을 이용해 사도련주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던 역천마의라면 사도련주를 막을 방법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하자 린린도 아직 확신이 서지는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린은 일단 제서의 상황을 보고 역천마의의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볼 생각인 듯했다.

“하긴. 네가 간다고 역천마의가 바로 너를 알아보는 것도 아니겠구나.”

“그게 문제야. 나한테만 잘 했지 성격이 진짜 이상했거든. 나한테 잘한 것도 처음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내 동생이 고생이 많았네.”

아진은 고독과 섭혼대법에 대해 생각을 하다 린린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섭혼대법 말이야. 거기에 걸리면 완전히 이지를 잃어? 이지를 잃은 채로 술자의 명령에만 따르게 돼?”

“왜? 무서워?”

린린이 보고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는 걱정 안 해도 돼. 술자보다 공력이 강한 사람한테는 그게 안 통하거든.”

“역천마의가 공력 자체는 약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오라버니보다는 약할 거니까. 내가 역천마의 공력을 키워 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중복이 안 되도록 영약을 구해다 주느라고. 나중에는 사갑자가 넘었지?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 아…… 말하니까 보고 싶기는 하네. 나 없으면 아마 살아남기가 힘들었을 텐데.”

“왜? 그 정도면 서로들 탐냈을 것 같은데?”

“탐은 냈겠지. 협조하라고 했을 거고. 그런데 협조할 사람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죽었겠지.”

그랬는데 협조해서 잘살고 있으면 린린이 배신감을 느낄까 하면서 아진은 역천마의에 대해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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