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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63화 (163/470)

제163화

163화

그런 말은 진작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했지만 충분히 기뻤다.

하월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모인 곳에서 그런 것을 받게 될 것을 대비하며 치장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느지막이 입궁했다.

궁에 들어가기 위한 행렬이 끝도 없었는데 하월의 마차를 알아본 사람이 그를 먼저 들어가게 했다.

특별한 대우는 언제 받아도 기분이 좋았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의 틈에서 그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자 기분이 더욱 유쾌했다.

하월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는 탄신연의 주인공답게 화려하게 치장을 한 채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하월을 발견하고 그를 불러 그의 특별한 노고를 위로했다.

그리고 내내 하월을 가까운 곳에 두었다.

황제와 가까운 곳.

그곳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였다.

심지어 제 형과 아버지가 있는 자리보다도 높았다.

하월은 그 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예부시랑이 말한 대로 절차가 흘러갔다.

황제에게 바치는 선물들은 하월의 눈을 돌아가게 했다.

황금 수백 관에 해당하는 선물을 바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하월만큼 큰 선물을 한 사람은 없었다.

선물 증정이 끝나고 황제가 하월을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의 앞에서 하월이 만든 기념주화를 보여 주며 그것을 자랑했다.

황제에게 큰 선물을 준 몇몇 사람이 호명되고 그들에게 답례품이 주어졌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태감과 궁녀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작은 목함 같은 것을 비단 방석 위에 올려 날랐다.

하월은 그게 무언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3,500명의 하객 인원수에 맞게 답례품을 만들어 바쳤기에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만들어 준 것을 주지 않는가 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것이기는 했다.

일반 백성이나 낮은 관리는 연회에 초청받아 한 끼 식사를 같이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에 답례품으로 주어진 것은 지팡이였다.

하월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왜 자기가 준 답례품을 전부 주지 않고 다른 것을 주었냐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월은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게 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색색으로 보기 좋게 만든 떡이라는 것을 알았다.

“…….”

깊은 혼란이 그를 덮쳤다.

황제가 실제로 하객들에게 준 기념주화는 이백 개도 채 되지 않았다.

받은 선물이 워낙 커서 떡으로 퉁 칠 수 없는 경우에만 그것을 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이미 나는 성의를 보였고 폐하께서는 그것을 보셨으니까.’

하월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황제는 계속 하월을 가까이 두고 사람들에게 그의 노고를 위로했다.

고관대작들이 하월을 칭찬했고 하월에게 말을 걸었다.

탄신연은 성공적이었다.

황제는 얼마쯤 연회에 머물다가 먼저 들어갔고 그 후에도 연회는 길게 이어졌다.

하월은 왠지 자기가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는데 왠지 자신의 발밑이 자꾸만 꺼져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날부터였다.

황제는 더 이상 하월을 찾지 않았다.

연회의 끝이라 피곤하셔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곧 저를 부를 거라고 믿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며칠에 한 번씩은 자신을 찾아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달라고 말하던 황제였기에 나중에는 스스로 입궁을 해서 황제를 알현하려 했다.

그러나 정문에서 위사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하월은 그들의 태도 변화에 깜짝 놀라 기겁을 한 채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요? 나는 북궁세가 삼공자요.”

“알고 있습니다. 북궁하월 공자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북궁하월 공자님을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것이 지엄하신 황명입니다.”

“폐하…… 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는 말이오?”

하월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이 그때는 더욱 핏기를 잃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 왜 그러신다는 말이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런 하월의 뒤로 마차 한 대가 왔고 위사들은 하월을 무시한 채 마차 안을 검사했다.

그렇게 조금씩 하월은 사람들에게 떠밀렸다.

위사들도 하월을 심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귀찮아하기는 했다.

하월은 고개를 저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순전히 황제의 단순한 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 방법은 없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생기를 잃은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앓아누웠다.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답례품을 만들었던 장인들에게 공임비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

산본의가 의원들 옆에서 무료 의방을 열고 무료로 진료를 해 준 제선문 의원들에게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이야기.

우선 융통해서 쓰느라고 사용한 전장의 돈을 이제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런 것들은 사소한 축에 속했다.

아직은 금전적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월은 그런 문제를 일일이 자기에게 말하지 말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그것을 지불할 돈이 없습니다. 공자님. 가주님께라도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하월은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왜 돈이 없어?”

“기념주화를 만든다고 돈의 대부분이 들어갔고 위약금을 받아냈던 표국 몇 곳에서 관에 고발을 했는데 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공자님. 그 돈이 우선 급하게 세가 상단의 자금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 판결이 난 후로 표국들마다 관에 고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월은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그것은 폐하께서…….”

하월은 그러고 있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하라고 시킨 일인데 그것이 무효가 될 수는 없었다.

거기에서 받은 돈이 있어서 답례품을 만들어 올린 건데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폐하를…… 폐하를 뵈어야겠다. 폐하를 뵈어야 한다…….”

하월이 서둘렀고 그 모습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북궁천영과 가주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돌아가는 사정을 뒤늦게 파악했다.

두 사람은 경악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황상이…… 황상이 하월을 이용해 본가를 함정에 빠뜨린 것인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쉽게 들어왔던 돈이 날개가 돋친 듯이 날아가 버렸다.

한 번 선례가 생겨나자 다른 곳에서 판결을 내리기가 점점 쉬워졌다.

다 죽어가던 표국들이 기사회생했고 그들은 엄한 판결에 따라, 자기들이 죽게 한 표사와 쟁자수들의 죽음을 보상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은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표국 자체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북궁세가였지만 자기들이 운영하는 전장의 돈을 다 털어도 갑자기 황금 이천 관이 넘는 돈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그 돈은 하월이 부당하게 위약금을 수령한 날을 기점으로 무섭게 이자가 붙어서 불어나 있었다.

이자만 해도 황금으로 오백 관이 거뜬히 넘어섰다.

불법으로 가로챈 돈이라 더 높은 이자가 적용되었다.

북궁세가가 실질적으로 관리하던 사업장들이 폐쇄되었고 조직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다.

황제의 마음이 북궁세가를 떠났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고 구문제독부 내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괜히 구문제독을 감싸려고 하다가 황상의 노여움을 받느니 그와 거리를 두고 자기들이라도 살길을 도모하기로 마음을 먹는 이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 * *

아진은 다시 황제의 침전에 나타났고 황제는 서탁 위에 상소 두루마리를 수북하게 쌓아놓은 채 그것을 읽고 있었다.

몇 가지가 특별히 선택된 듯 옆에서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폐하.

기척도 없이 나타난 아진이 전음을 보냈다.

이 시간이면 밀영들도 쉬고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요행을 바라며 방심하지 않았다.

-갈 때 챙기도록 하거라. 내 탄신연에 오지 않은 불충한 신하더라도 답례품은 챙겨야지.

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궤짝 하나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진이 그와 궤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을 봐도 되는지요?

-상관없다. 무거울 것이다.

황제는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궤짝 안을 보고 아진이 놀라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아진을 바라보았다.

궤짝을 연 아진이 놀라며 황제를 보았다.

-이게 다 뭔가요. 폐하?

-답례품이니라. 3,000개가 훨씬 넘는다. 그것은 앞으로도 짐이 지루하지 않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오라고 미리 내리는 상이다.

-그러면. 저도 답례로 폐하께 내공을 좀 더 불어넣어 드리겠습니다.

황제는 기쁜 표정이 얼굴에 너무 솔직히 드러나는 바람에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황제가 급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그거다만 근래 올라온 상소 중에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네가 조만간 오지 않으면 전서구라도 보낼 생각이었다.

아진은 황제가 내공 얻는 것을 뒤로 미룰 정도로 급하게 여기는 일이 뭘까 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황제는 한쪽에 따로 쌓아두었던 두루마리를 아진에게 건넸다.

-제서 지역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지. 그런데 다른 곳에 비해 발생 빈도가 스무 배가 넘더구나.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진아.

-어린아이들은 돌연사하는 가능성이 크니 아이들이 죽었다고 하면 의심이 덜 할 수는 있겠습니다. 혹시 사도련주의 소행이라고 보시는지요. 폐하?

-나는 너에게 묻고 싶구나.

상소를 읽는 아진의 눈빛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서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다. 기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게 있으면 규모의 대소를 구분하지 말고 전부 올리라고 했고 그 결과 올라온 것이 여기에 있는 것들이다. 가서 직접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는 게 여기에 있는데 특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것이다. 권문세가 일가의 가솔이 전부 죽었는데 안주인의 시신만큼은 불에 탔다고 한다.

-……안주인이 벌레의 숙주였을 거라고 보시는지요. 폐하. 그래서 시신의 모습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리 처리한 거라고 보시는 거군요.

-가서 알아보도록 해라. 이번에는 반드시 그자를 잡아서 이 일을 완전히 끝맺도록 하여라.

-예.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떠나려는 아진에게 황제가 급히 전음을 보냈다.

-내공을 넣어 주고 가거라. 내가 내공과 선이남을 믿고 저지른 일이 많아서 이제 나를 노리는 자들이 많아질 것 같다.

아진이 웃음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가의 무인 중에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폐하.

-소청이는 어떠냐. 아진아.

-소청이는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지금 소청이를 데려온다면 스승님께서 저를 다시는 안 보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 십 년 후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병기가 될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폐하께서 양보하시지요.

-별수 없겠구나. 알았다.

황제는 그때부터 내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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