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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62화 (162/470)

제162화

162화

-할 말이 있거든 빨리하거라. 조금 있으면 전음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왜인지요. 폐하?

-내가 아직 내공이 많지 않아서 이 각 이상 전음을 하면 내공이 소진돼서 그때부터는 선천진기를 끌어다 쓰게 되고 그러면 짐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

아진은 선이남의 꿍꿍이를 알 것 같았다.

-이각이 지나면 제가 기막을 두르겠습니다. 폐하.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그런데 무슨 책을 그리 보시는지요? 전에는 상소를 보시는 듯하더니요.

-사도련주가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 나도 신경이 쓰여서 그런다. 련주는 충독을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아이의 신선한 생장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모여서 충독을 사용한 살인은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충독의 알은 계속 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진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황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충독은 제가 다…….

없앴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차피 처음 련주가 충독을 발견했을 때도 련주는 없던 것에서 시작한 거였다.

-어린아이들이 잡혀간다는 상소는 없다. 그런 일이 있는지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확실히 그런 것은 없어. 나는 그 방법을 우회하는 것이 어떤 게 있을지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때는 왜 어린아이의 생장기였을지. 지금은 더 이상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뭘 사용할지.

아진은 황제가 그 문제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고 있는 것이 고마웠다.

그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왠지 황제라면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잘 지내느냐. 아진아. 사도련 산하의 방파에 잡혔다가 구출되었던 아이들 말이다.

-예. 폐하. 마을이 그 아이들로 연일 활기에 넘칩니다. 대부분이 입양돼서 새 가정을 찾았습니다. 아이를 다 키우고 적적해하던 어른들은 다시 아이를 키우며 즐거워하고 있지요.

-산본의가는 너에게 어떤 의미이냐. 아진.

문득 황제가 물었다.

그가 그것을 물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바였다.

그러다가 황제가 그곳에 꽤 흥미를 품은 모양이라고 여겼다.

-모르겠습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곳…… 아니. 그런 다짐을 할 필요가 없이 제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준 곳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곳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된 곳이기도 하고…… 그 의지가 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진솔하게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강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 힘을 가진 것이 즐겁지 않았다.

SSS급.

그다음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 위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던전이 생겨나는 것이 위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세상이 멸망을 향해 치닫는다고 해도 그 말에 전혀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남들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같이 느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자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의 서도진은 영원히,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더욱 괴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본의가에서 그는 전혀 새로운 감정을 가졌다.

뜨거워질 수 있었고 다짐할 수 있었다.

다짐.

그랬다. 다짐할 수 있었다.

아진은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황제는 아진의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을 거듭하면서 내면의 자신과 조우하는 것 같아 아진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진은 처음에 그가 봤을 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키가 자란 것이 아니라 그가 품은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았다.

황제는 진심으로 아진이 좋았다.

아진이 좋은 것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였다.

저를 곤란하게 만들려던 하월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철저히 좌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아진을 보면 적어도 자기가 아진보다는 더 선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도덕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인간이 옆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참. 곧 내 탄신연인 것은 알고 있겠지? 선물은 준비가 잘돼 가고 있나?

-이렇게 자주 와서 얼굴을 보여드리는 게 선물을 미리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폐하.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미워서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아진과 있을 때처럼 유쾌한 때가 없는 것도 사실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저는 탄신연에도 갈 수 없지 않습니까. 정말 가고 싶은데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믿도록 하마.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지만 실제로 지나간 시간은 이각이 되지 않았다.

* * *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북궁세가로 급히 들어갔다.

그 중심에는 하월이 있었다.

그동안 북궁세가의 중심으로 빠르게 부각하면서 힘과 권력의 중심이 되었던 그는 탄신연을 앞두고 연일 황제의 요구가 바뀌는 것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어졌다.

설상가상 예부시랑은 이제 모든 일을 하월에게 밀어 두다시피 했다.

어차피 답례품은 하월이 준비하기로 한 것이니 자기가 그 일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며 방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례품을 만드는 일은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고 완성품이 나왔다.

황제가 그것을 미리 보고 싶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하월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본 황제가 크게 흡족해하는 것을 본다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일에 황금 이천 관이 들었지만 황상이 삼천 관으로 갚을 수도 있음이다.’

하월의 머릿속에는 그런 계산이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답례품을 미리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침내 하월은 완성된 답례품을 가지고 황제를 찾았다.

황금 반 관이 들어간 기념주화는 그 가치가 커서 나중에는 그 가격이 훨씬 더 오른 채로 거래될 수도 있을 거였다.

하월은 미리 그런 계산까지 한 상태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념주화를 본 황제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제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더니 한참 만에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은 태도였다.

하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기가 지금껏 왜 이 고생을 했다는 것인가 했다.

그보다 마음에 안 들 구석이 없는데 왜 그러는 건지 그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폐하……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지요…….”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며 하월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조금 심심하기는 하구나. 이 주위에 유색의 보석을 몇 가지 달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회에 초대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들이라서 나는 그들에게 성의 표시를 충분히 하고 싶구나.”

“…….”

하월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색 보석이라니.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유색 보석이라 하시면…….”

“홍옥이 좋지 않겠느냐.”

하월의 표정은 그야말로 썩어들어 가는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네 귀퉁이에 하나씩 꽃잎처럼 매달면 참 예쁠 것 같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월.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네가 가진 재주가 대단하구나.”

황제는 하월에게 절망은 안긴 후에 칭찬을 하면서 하월을 더욱 고뇌하게 했다.

더 이상은 어렵겠다고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그 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홍옥을 이어 붙이지 않으면 그것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기에 하월은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돌아왔다.

그리고 세가의 사람들을 시켜 홍옥을 사들이게 했다.

탄신연에 맞춰 그만한 물량을 구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갑자기 대량의 홍옥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났는데 그 바람에 갑자기 홍옥의 값이 뛰기도 했다.

그 전에 한 상단에서 홍옥을 모조리 사들였다가 경로만 바꿔서 북궁세가에 파는 것을 하월은 알지 못했다.

그 상단의 실제 소유자가 아진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월은 설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날개가 다 젖어 버린 파리처럼 허우적거렸다.

원하기만 하면 그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의 날개는 전부 젖어 버린 후였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하월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탄신연을 이틀 앞두고 하월은 아슬아슬하게 답례품을 모두 완성했다.

황제에게 가져가자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어졌다.

“참으로 곱구나. 참으로 곱다. 짐을 생각하는 너의 충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지금껏 이렇게 마음에 드는 선물은 받은 적이 없다. 짐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하객에게 주는 답례품에 이리도 정성을 쏟다니. 홍옥도 짐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품질도 좋구나. 이것 하나를 만드는데 모두 얼마가 들었느냐. 하월.”

“황금 한 관이 채 안 되옵니다. 폐하.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마음 쓰지 말라니. 어찌 내가 너의 노력을 모른 척할 수가 있겠느냐.”

황제는 흡족한 표정으로 오래오래 기념주화를 구경했다.

그것으로 하월은 자신의 모든 노고가 보상받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고 실질적인 대가를 받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탄신연이 끝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될 일이었다.

예부시랑은 하월을 영웅 대하듯이 했고 탄신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념주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자기들도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황금 반 관을 훨씬 넘어서는 돈.

그것이 낮은 관리들에게도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일반 백성들도 초대될 텐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표국을 잡아먹으며 공으로 얻은 돈이라고 너무 마구 써 버린 감이 뒤늦게 들었지만 그래도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황상을 믿자. 염치가 있으면 받기만 하고 모른 척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멀스멀 불안한 기분이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면서 하월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황제는 하월을 자주 불렀다.

그러면서 탄신연이 준비되어 가는 것을 같이 구경시켰다.

하월은 자기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대신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일을 황제가 자기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하월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황제의 탄신일이 밝아왔다.

* * *

“하월아. 함께 입궁하도록 하자.”

하월을 불러들인 가주가 말했다.

전 같았다면 그 말이 감격스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황제의 측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양부의 그런 제의도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저는 따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준비할 것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아버님이라는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가주와 북궁천영은 그 사실을 느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러라고 하며 자기들끼리 입궁을 서둘렀다.

하월은 그날의 주인공이 자기가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예부시랑에게 들은 이야기도 어느 정도 있었다.

폐하께 선물을 올리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폐하께서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내리게 하실 것인데 그때 사람들의 앞에서 하월을 불러 크게 칭찬을 할 것이고 상과 관직도 내릴 거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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