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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9화 (159/470)

제159화

159화

“그래. 그러면 되었다. 그럼 선이남에게 장원과 경비 무사들을 내리신 것도 선이남에 대한 개인적인 총애 때문으로 생각하면 되겠구나.”

“예. 아버님. 혹여라도 선이남에게 살수를 보낸다거나 하지는 마십시오. 폐하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누가 그랬는지 아시게 된다면 그것을 빌미로 누구든 찍어 내려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월은 단정적으로 말했고 북궁천영과 가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의뢰하는 사람의 비밀은 철저히 비밀에 감춰 둔 채 이미 살행을 의뢰했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황제가 장난감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그 장난감을 자기들도 같이 아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산본의가는 이상한 충성심과 결속력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 더욱 신경 쓰였다.

산본의가 의학당에서 의술을 배웠다고 해도 그곳을 떠나서 황도에서 의방을 한 지 시간이 지났으면 이제 산본의가의 이름은 버릴 때도 됐으련만 선이남이 굳이 산본의가의 이름을 계속 쓰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황제가 그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데도 그러는 것을 보면 선이남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황제 폐하의 마음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충심을 다 하도록 하거라. 활동하는 데 부족한 것은 없느냐.”

“예.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습니다. 추가로 들어올 돈이 황금 이천 관 정도가 되는데 그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쓸 곳이 있습니다.”

가주와 북궁천영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입이 떡 벌어지려는 것을 참느라고 애를 써야 했다.

황금 이천 관이라니.

그거라면 구문제독부를 몇 년 동안 걱정 없이 운영하고도 남을만한 돈이었기에 두 사람은 가슴이 벌렁거리기까지 했다.

“그게 다 가문의 명성 때문임을 잊지 말도록 하고 경거망동하지 마라. 사람들이 너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북궁세가를 두려워해서 위약금을 내놓으라는 말에도 따르는 것이다.”

가주가 말하자 하월이 피식 웃었다.

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북궁천영은 놀란 기색을 감추며 하월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하월이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하신 말씀이라면 아버님은 당분간 공적인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삼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시류를 판단하시는 눈이 어두워서야 어찌하시려고 그러는지 원.”

“……!”

가주는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했다.

어지간한 말을 들었어야 반박을 했을 텐데 하도 기가 막히다 보니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형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마 아버님을 두둔하시려고 한 것은 아니시겠지요. 혹시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하월은 가주를 바라보던 시선을 그대로 옆으로 돌려 북궁천영을 보며 말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하월. 네놈이 지금 황상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인데 그래 봤자 네놈에게는 세력이 없다. 개인의 무위도 없는 데다 세력도 없는 놈이 지금 황상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그것만 믿고 까불다가 어찌 될지 앞날이 훤하구나.”

“악담을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형님은 이 아우가 폐하의 총애를 잃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야 아버님이나 형님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같은 것은 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렇지 않은지요?”

“하월. 내가 지금껏 너의 총명함과 재능을 아껴 왔다만 정도껏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리 해서는 결국 파멸을 할 뿐이다.”

가주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감정이 끓어오르는 그 순간에도 여러 가지를 함께 생각한 탓이었다.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님.”

하월은 탁자 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듣기에 따라서 꽤 거슬리는 행동이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확실히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주와 북궁천영 모두 하월에게 그 행동을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기들이 말을 한다고 해도 하월이 듣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위신이 크게 떨어지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처참한 신세.

그들은 어느새 자기들이 그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선이남의 일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두 분이 신경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질 않습니까. 선이남이 있는 게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폐하께서 더 밝아지셨고 선이남은 공정한 사람인 것 같으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가주와 북궁천영은 하월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저에게 듣고 싶은 것은 그 말이었을 텐데. 황제 폐하의 총애는 여전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 많은 돈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냐.”

북궁천영은 하월이 일어서기 전에 그것을 물었다.

하월에게 그런 구차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구문제독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검은돈이 필요했는데 요즘 북궁세가에서 은밀히 운영하는 사업장에서의 수익이 눈에 띄게 줄어 버린 탓이었다.

“곧 다가올 폐하의 탄신연에 맞춰 기념주화를 만들까 합니다. 금원보보다 황금이 더 많이 들어간 주화를 만들어 탄신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주시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폐하께서 연회 때마다 참석자들에게 내리실 선물을 두고 고민이 많으시다 해서 말입니다.”

북궁천영과 가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전에 열린 황제의 탄신연에는 대신과 일 반백성, 외교 사신을 포함해 3,000명 안팎이 초대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규모가 조금 더 축소된다고 하더라도 하객들의 선물을 한 가문에서 맡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게다가 하월이 생각하는 것은 황금 일이천 관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더욱 걱정이 컸다.

아무리 황상의 탄신연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답례품을 그렇게 비싼 것으로 한다는 말인가.

답례품 하나에 은자 한두 냥이나 들어가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주가 하월을 설득하려 나섰다.

“하월아. 이건 아무래도 신중해야 할 문제인 듯하다.”

“아버님. 저도 여러 번 생각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폐하께 받은 하해와 같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것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가주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런 입에 발린 말을 이런 자리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이곳은 지극히 사적인 자리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하월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월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순간 가주는 이 자리의 이야기가 황제에게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북궁천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월은 마치 황제가 앞에 있는 것처럼 말을 했고 두 사람은 동시에 긴장했다.

“제가 만약 장성하여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그 아이가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걸 안다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는 제 미천한 선물이 그런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가주와 북궁천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바에야 자기들이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하월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번 것을 전부 다 바치려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좋겠군.’

북궁천영은 어느덧 그런 생각을 하며 포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월이 스스로 그런 마음을 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황제가 하월에게 은밀하게 주입을 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짐은 연회가 다가오는 것이 참으로 귀찮다. 매번 연회의 하객들은 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려고 값나가는 선물들을 바치곤 하지. 그게 그들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그들이 빈손으로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연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될는지요, 폐하?

-나는 받기만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주는 것에서 오히려 더 큰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다. 내가 내린 상을 받고 기뻐하고 감격하는 신하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그게 어버이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폐하의 어진 마음이 하해와 같으십니다.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번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는 게 좋을지 생각하느라고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다. 이번에는 또 뭘 줘야 할까 해서 말이다. 마음에 차지 않는 답례품을 주었다고 감히 원망을 품는 자들이야 없겠지.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말을 들은 하월의 머릿속에 계획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황제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폐하. 그것을 제가 준비하면 어떻겠는지요?

하월은 황제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황제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아진이라는 것은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월. 영특하고 지혜로운 너이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구나.

황제는 하월의 얼굴에 금칠을 해 주었고 하월은 자기가 황제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이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반드시 폐하께서 흡족해하실만한 답례품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쓰다니. 어찌 이리 기특한 짓만 한다는 말이냐. 네 뜻이 그렇다면 짐도 한시름 덜겠구나. 그 일은 예부시랑과 논의를 하도록 하거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예부시랑이 도와줄 것이다.

-아닙니다. 폐하. 제가 알아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월은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그렇게 말했지만 황제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궁중의 답례품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량과 품격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예부시랑에게 배우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한껏 귀여움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던 하월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 폐하.

-그래. 모르는 것은 배워가면 되는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앞으로 예부시랑과 종종 시간을 함께하며 많이 배우도록 하거라. 너라면 짐이 근심을 덜 수도 있을 것 같구나.

그 말이 참 모호했다.

처음에 말을 한 것은 당연히 이번 연회에 쓸 답례품에 대한 것뿐이었는데 황제는 어느덧 그것을 연례 행사로 만들어 하월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듯했던 것이다.

그런데 감히 황제에게 그건 이번뿐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게 일정 금액을 넘어가면 황제가 선물이나 상을 내리는 식으로 해서 보상을 해 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어쨌건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니 우선은 이번에 황제를 감동하게 하자는 것이 하월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제 발 앞에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맹수의 아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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