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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7화 (157/470)
  • 제157화

    157화

    “정말 그렇구나.”

    “폐하는 확실히 늦게 시작하셔서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혈도가 막히지 않은 상태로 일갑자의 내공을 얻게 되면 나무 꼭대기까지는 아니어도 삼분지 일 정도는 올라갈 것입니다. 그때는 벽에도 몇 번 몸이 처박힐 텐데 폐하께는 잘된 일입니다. 안 그러면 폐하께서 내공을 가지신 걸 다른 이들이 눈치챘을 것입니다.”

    아진은 잘된 거라고 말했지만 황제는 서운했다.

    “제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몸이 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무게가 나가는 추를 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어디에서 구한다는 말이냐?”

    그러자 선이남이 그것은 자기에게 있다고 말해 주었다.

    “돌아가면 드리겠습니다. 폐하.”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여기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 시작해 보도록 해라.”

    “예, 폐하.”

    선이남은 품에서 암기들을 꺼냈다.

    평소에는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지만 이번에는 황제를 위해 특별히 챙겨 나온 터였다.

    황제는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만천화우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진이 묻자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짐의 앞에서 날붙이를 가지고 그런 것을 펼쳐보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들으니 그도 그럴듯했다.

    왜 그랬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황제가 선이남과 아진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던 황제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만천화우를 할 수 있느냐.”

    그러다가 황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사천당문에서도 아무나 만천화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주와 그 후계에게만 전수가 된다는 것인데 아진에게 그것을 물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듯 손까지 흔들었던 것이다.

    “아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여라.”

    무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까 봐 황제는 더욱 확실하게 말했다.

    아진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는 만천화우를 할 줄 알았다.

    린린이 천마신공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는 것처럼 만천화우 역시 한 번 견식한 후에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 자기만의 무공으로 변형을 시켜둔 차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그것을 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 만천화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기존의 만천화우를 더 이상 만천화우라 부르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아진은 자신의 만천화우가 훨씬 더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선이남이 하는 것과 그것을 비교하자며 황제가 자신에게 그것을 시킬까 봐 뒤늦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것은 선이남도 마찬가지였다.

    선이남은 침통에서 여러 개의 침까지 꺼내 놓았다.

    그가 꺼내 놓은 침들은 허공에 선 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부터가 선이남의 무공이었는데 황제는 그때부터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이남은 주변의 대기를 내공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서서히 그 반경이 넓어지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서서히 주위를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나뭇잎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것들이 힘없이 떨어지며 느슨하게 형성된 회오리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그다음은 바닥에 있던 작은 흙먼지였고 그 후에는 그보다 조금 큰 돌멩이였다.

    꾸준하게 주변의 것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허공에 서 있던 침도 어느덧 그사이에 섞여들었다.

    황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제도 선이남이 뭘 하려고 그런 준비를 하는 건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범위에 대해서만큼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저게 전부 날아간다면?’

    그때까지 황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적었다.

    그런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견식은 미천했다.

    황제는 이제 저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하면서 선이남을 계속 바라보았다.

    괜히 황제의 손에 땀이 쥐어졌다.

    그러나 선이남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가 일으킨 바람이 거세졌고 나중에는 더 많은 돌멩이가 솟구쳤다.

    황제가 완전히 몰입해있을 때 아진이 황제의 두 팔을 잡더니 솟구쳐 이동했다.

    그에게 미리 경고할 틈도 없었지만 황제는 감히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고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황제와 아진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여나가고 그 밑에 있던 땅에 금이 갔던 것이다.

    땅이 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그것이 허공으로 급격히 떠올랐다.

    “헙……!”

    황제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땅은 그 후로도 무섭게 흔들리며 갈라졌고 더 많은 조각이 공중을로 떠올랐다.

    황제는 저것 좀 보라는 듯이 아진을 보며 앞을 가리켰다.

    아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을 상상하시건 그 이상을 보실 것입니다. 폐하.”

    황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 앞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것은 그냥 그 자체로 공중에 떠오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지금 엄청난 강기를 두르고 있습니다. 저기에 떠오른 작은 돌멩이 하나가 이마에 와서 박히면 죽음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삼 백 명의 군사가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일각이 지나면 살아 숨 쉬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자기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그 순간에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았던 것이다.

    선이남은 아진이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땅을 더욱 조각내며 끌어올렸다.

    황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광경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 말이 그의 입에서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나왔다.

    황제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공중을 가득, 엉뚱한 것들이 채우고 있었다.

    흙과 돌멩이. 낙엽과 새로 떨어져 나온 제법 신선한 이파리.

    그리고 그중에서 위풍당당하게 빛나고 있는 가지각색의 침들.

    그 어두운 곳에서 가느다란 침이 선명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제는 저도 모르게 아진의 손을 꽉 잡았다.

    설마하니 그것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저절로 겁이 났던 것이다.

    “…….”

    선이남이 황제를 한 번 바라보았다.

    황제가 있는 위치를 알아두려고 그런 거였지만 황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떠오른 것들이 공중으로 좀 더 높이 올라갔다.

    떠오른 만큼 아랫부분에 공간이 생겨났는데 그곳에는 새로운 땅 조각이 채워졌다.

    새카맣게 허공이 채워졌다.

    메뚜기떼들이 날아 이동하는 것처럼.

    재앙이 따로 없었다.

    압도적인 광경에 황제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선이남의 몸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것들이 일제히 선이남을 따라 그만큼 떠올랐고 선이남의 손이 움직이자 폭우가 내리꽂히는 것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삼 장여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황제는 그 구덩이가 발밑까지 오는 것을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구덩이는 정확히 황제가 처음 서 있던 자리에서 멈췄다.

    아진은 황제가 움직이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암기로 변한 것들이 떨어지는 동안 조금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떨어지는 것들의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다 끝난 건가 했지만 아직도 공중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 아래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듯, 강기로 덧씌워진 침들이 떨어져 내렸다.

    죽음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

    황제는 그 순간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선이남이 자신의 적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황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선이남은 서서히 두 손을 거둬들였다.

    “…….”

    황제는 이제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쳐서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선이남은 차분하게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는 주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선이남을 보았다.

    “흑천암우.”

    황제가 말했을 때 선이남은 처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다.

    “흑천암우. 이 무공의 이름이다. 이것은 흑천암우다.”

    황제의 말에 선이남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허리를 숙였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선이남. 짐의 눈을 열어 주어서 고맙다. 그동안 짐이 알고 있던 세상은 얼마나 터무니없이 좁았단 말이냐.”

    황제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고 선이남은 황제가 그렇게까지 말해 주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진은 선이남이 홀로 황도로 온 이후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의 선이남이라면 혼자서 넉넉히 황제를 지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거기에도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는 했다.

    그가 내공을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제약.

    산공독 같은 것에 당해서 내공을 모을 수가 없다거나 흑천암우를 사용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이남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고 그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미룰 것이 없겠구나. 앞으로 짐의 곁에서 떠나지 말도록 하라. 그리고 짐도 꼭 전음만 배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떠냐. 아진. 짐도 이것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아진은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하고 선이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선이남은 그 어려운 질문의 답을 자기가 하고 싶지는 않은 듯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아진. 잘 생각해 보아라.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아도 막상 시켜보면 잘 는 아이도 있고 그러지 않더냐.”

    “제 경우에는 없었습니다. 폐하.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비교적 정확합니다.”

    “…….”

    황제는 아진에게 말을 해 봐야 얻을 게 없겠다고 생각한 듯 이번에는 선이남을 직접 공략했다.

    “선이남. 흑천암우에 대해서만큼은 네가 아진보다 더욱 큰 권위자가 아니더냐.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소인의 생각으로는 폐하께서 전음을 익히는 것에 열중하시는 게 더 이로울 것 같습니다.”

    어째 산본의가 놈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소신이 넘쳐났다.

    황제는 기분이 나빠져서 고개를 흔들어댔다.

    평소 같으면 자기 주위에 자신의 비위를 맞추고 온갖 감언이설을 하려는 사람들만 가득하다고 한탄을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 감언이설을 하던 사람들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돌아가시지요. 폐하.”

    아진이 말하자 결국 황제도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이 이곳을 보면 놀라겠구나. 어제 여기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밤사이에 큰 변고가 생겼다고 생각하겠다.”

    그러자 아진이 선이남을 바라보았다.

    “폐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시십시오. 형님.”

    “그래.”

    황제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동안 선이남이 황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뒤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폐하.”

    “왜 그러느냐.”

    “아진이 이곳을 메우려고 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곳을 아진이 혼자서 언제 다 메운다는 말이냐.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것까지 할 시간은 없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선이남의 말에 황제는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별수 없다고 여기며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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