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56화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서로 깊이 이야기를 나눴고 사도련주가 충독을 다시 만들어 낼 때를 대비해 관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진은 그때를 위해서 황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황제도 아진이 목적을 가지고 자기에게 접근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목적이 뭔지 아진이 미리 얘기했기에 수긍했다.
그의 곁에는 황제에게 총애를 받는 것을 빌미로 다른 이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전부였는데 아진은 황제에게 익숙한 유형이 아니었다.
다른 누구 못지않게 황제의 힘을 탐욕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고 싶어 했지만 그 힘을 사용하려는 곳이 달랐던 것이다.
“우선은 제가 폐하의 옥체에 손을 대야 합니다.”
“그런 소리는 할 필요도 없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무공서를 많이 봐 왔으니까.”
황제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 좀 웃기기는 했다.
아진이 생각하기에 황제가 무공서를 읽는다는 것은 러시아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러시아어로 적힌 문학 서적을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무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무공서를 보고 구결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해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듯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도중에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입을 벌리시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저를 온전히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을 것 같다는 고비가 몇 번 찾아올 테지만 그래도 믿으셔야 합니다.”
“……알았다.”
황제는 아진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자 슬그머니 겁이 나는 듯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도와줘야 한다는 듯이 선이남을 바라보았다.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럽지만 실제로 죽지는 않습니다. 폐하. 그러니 믿으셔도 됩니다.”
선이남은 걱정할 것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참을 만할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정말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가 보다는 생각이 들며 낙심이 됐다.
“이런 건 바로 시작하고 끝내 버리는 게 낫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폐하.”
아진이 말하더니 황제를 앞에 앉히고 그 뒤에 앉아 그의 명문혈에 장심을 붙였다.
“자, 잠깐만 기다리거라.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아진아.”
“입을 다무셔야 합니다. 폐하.”
“으으으……!”
황제가 몸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아진의 손에서 뭔가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기분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선이남은 그 일이 시작된 것을 깨닫고 아무도 그곳에 오지 못하도록 지켰다.
환자가 찾아온다고 해도 그때는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환자는 오지 않았다.
황제는 자신의 몸에 희한한 기운이 들어와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진은 황제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과정을 전부 스스로 해야 했다.
린린이었다면 그가 기운을 어느 정도 불어 넣어 주기만 하면 스스로 그것을 움직여 기혈을 타통해 나갔을 테지만 황제는 그러지 못했다.
하나하나를 전부 다 떠먹여 줘야 했던 것이다.
시간은 오래 걸렸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도 황제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동안 그런 기운의 흐름을 겪어볼 일이 없던 기혈이 생으로 타통이 되어야 했고 그것을 참아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진에게서 조금 다른 성질의 기운이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조용히 황제의 몸을 다독였다.
그러면 조금 더 견딜 만해졌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이르렀다.
황제는 오로지 아진의 입에서 이제 다 됐다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자기가 지금 얼마나 편안하게 아진으로부터 공력을 얻는 것인지 황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생애 처음으로 공력을 얻은 것이 그런 식이었으니 남들도 다 이렇게 하나보다고 생각하며 우습게 여기는 마음마저 들었다.
아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갈무리를 했다.
“됐습니다. 폐하.”
“후아아아아!!”
황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입을 벌렸다.
입을 다물고 있다고 숨이 막힐 것도 아니고 답답할 것도 없었지만 절대 입을 벌리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그때까지 얼마나 입을 벌리고 싶었는지 몰랐다.
“다 된 건가? 그럼 이제 나한테도 단전이 생겼나?”
아진이 그렇다고 말을 했지만 황제는 자신의 몸에 단전이 생긴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 만지면 만져지나?”
그러면서 자신의 복부를 어루만지는 황제를 보며 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황제의 앞에서 그런 식으로 웃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너무 속성으로 가르치며 전부 입안에 떠먹여 주다 보니 자신의 단전도 감지하지 못하는 황제를 보며 웃겼던 것이다.
“저는 산본으로 가야 합니다만 이남 형님은 여기에 있을 테니 이남 형님을 궁으로 부르시면 어떠신지요. 폐하? 그러면 이남 형님에게 그런 것들을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폐하께는 지금 일갑자의 내공이 쌓여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거나 폐하께 일갑자의 내공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면.”
아진은 말을 하다 멈췄다.
‘다들 폐하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은 차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황제도 느낀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마냥 동경만 하고 있던 황제도 일갑자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알고 있었다.
이남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군. 산본의가 출신이면 의술도 뛰어날 거고 무공도 뛰어나니 적격이군. 좋아. 나를 전담하도록 하면 되겠어. 무공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마음에 드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예?”
선이남은 지금 자기가 황의로 전격 발탁된 건가 하면서 멍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운기조식을 하는 법도 형님이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단전에 일갑자의 내공이 쌓여있지만 폐하께서 잘 다스리지 못하신다면 그건 전부 사라질 것입니다. 이남 형님도 다른 건 못해도 운기조식은 할 수 있으니 폐하도 하셔야 합니다. 심법은 가장 안정적이고 쉬운 것으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나도 그…… 낭왕의 심법을 배우고 싶다. 아진아. 나라면 왠지 빠르게 십 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황제는 언젠가 아진이 해 주었던 얘기를 잊지 않고 있다가 그 말을 했고 아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치솟는 때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만큼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폐하께는 그런 자질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선이남은 지금이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알았다. 어쩔 수 없지. 아진도 그런 건 모르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그렇게 말을 하다니. 괘씸하기는 하지만 짐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진보다 확실히 지혜가 부족하니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아닙니다. 폐하.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부분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아주 잘 압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포기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잘된 일입니다. 폐하께 무공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아시게 됐다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폐하는 황제신데 무공으로도 대성하실 그릇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말입니다.”
“닥쳐라. 아진.”
황제는 어째 위로를 받을수록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아 손을 휘저었다.
선이남은 자기가 정말 황제의 의원이 되는 건가 하면서 궁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결정될 일도 아닌 듯했던 것이다.
“형님은 전음의 구결을 폐하께 알려 주십시오. 폐하의 곁에는 항상 사람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폐하의 밀영이 있을 것이니 늘 주위에 스무 명 정도가 귀를 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하십시오.”
“그래. 알았다. 아진아.”
“형님이 형님의 무공만 익혔던 것처럼 폐하도 전음만 익히시면 되니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형님이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그래. 그러겠다.”
그러자 황제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었다.
“매번 그렇게, 형님의 무공이라고 말을 하느니 나 같으면 그 무공의 이름을 새로 짓겠다. 만천화우랑 비슷하게 지으면 되겠는데 이름 짓는 게 귀찮아서 매번 길게 설명을 한다는 말이냐.”
황제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는데 황제는 그 자리에서 선이남을 보며 말했다.
“짐이 특별히 그 무공의 이름을 지어줄 테니 짐의 앞에서 그 무공을 펼쳐보도록 하거라.”
황제가 말하자 선이남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로나 보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펼치자면 이 자리로는 부족했다.
“근처에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까, 형님?”
“어떤 것을 보고자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끝을 보고 싶으신 거라면 숲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황도의 경비 무사들이 보지 않을까 하는데.”
“그러면 숲으로 가시지요. 폐하께서는 끝을 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황제도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황제는 아진이 업히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는 듯 자연스럽게 아진에게 가서 업혔고 선이남도 곧 그 뒤를 따라 경공을 전개했다.
아진은 이미 다른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괴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이남까지 상당한 수준의 경공을 펼치는 것을 보고 황제는 은근히 경계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황제는 아진에게서 선이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몰래 선이남을 자신의 경쟁상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선이남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선이남 정도만 하자는 식으로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가 굉장히 소소해 보였다.
그러다가 선이남이 경공을 펼치는 것을 보고 혼자 긴장을 하던 황제는 자기도 조금만 연습을 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그들은 황도를 품듯이 둘러싼 산속으로 들어갔고 황제는 아무리 달이 뜨기는 했다지만 한밤중의 산속이 그리 어둡지 않은 것을 희한하게 여겼다.
“횃불을 켜지 않으면 보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간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은 듯하구나.”
황제가 말하자 아진이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폐하의 내공 때문입니다. 내공을 가지면 모든 감각이 월등해집니다.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보는 것도 훨씬 쉬워지고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들을 수 없던 소리가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구나. 내공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것이 있다. 내공을 가지고 있으면 추위도 잘 안 탄다지.”
“예. 폐하. 내공을 움직여 공격을 막으면 통증을 이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 심법은 꼭 익히셔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아진아.”
“처음에 영약을 복용하고 공력이 늘면 움직임이 가벼워져서 걷다가 여기저기에 몸이 부딪치기도 합니다. 가볍게 뛰어올랐는데 생각지도 않은 높이로 몸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황제는 시험 삼아 해 보려는 듯 바닥을 굴렀고 그의 몸이 아진의 머리 정도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