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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5화 (155/470)

제155화

155화

“하월을 보았는가.”

“예. 폐하.”

“지금 이곳에 기막을 둘렀느냐. 아진.”

“물론입니다. 폐하의 밀영들도 제가 온 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황제는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신기해했다.

아진을 보면서 지금까지 숱하게 놀랐지만 그 놀라움에는 끝이 없을 듯했다.

“선이남 의원을 보고 싶다는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시다면 지금 폐하를 그곳으로 모셨으면 합니다만.”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기막을 유지하는 일도 공력이 소모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잠시만 기다리도록 하거라.”

황제는 그 자리에서 말하고 일어나 변복을 했다.

평소에는 절대 입을 일이 없고 입어서도 안 되는 평범한 백성의 옷을 입고 아진의 앞에 서자 아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에게 업히십시오.”

“이거 정말 설레는군. 내가 하늘을 날게 된다니.”

“밤공기가 찹니다만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감기에 걸려도 자기가 고쳐주면 그만이었다.

황제를 업고 아진이 경공을 펼쳤다.

황제는 아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속으로 가늠을 해 보고 있었다.

하월을 보고 왔다고 했으니 산본에서 오늘 출발을 한 것이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경공을 펼친 듯한데 그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했던 것이다.

황제는 자기가 아진의 등에 업힌 채 날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선이남의 의방에 도착해 버리는 바람에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곳이옵니다. 폐하.”

황제가 선이남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은 전에 전했지만 오늘 밤 찾아올 거라는 말은 할 시간이 없었기에 아진은 먼저 의방 문을 두드렸다.

이내 안에서 불이 밝혀지고 선이남이 나왔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급한 환자가 찾아온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북궁세가에서 의방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아내와 아이는 산본의가에 보내놓고 혼자서 의방을 지키고 있었다.

“형님. 아진입니다.”

“아진이구나. 어서 오너라. 나는 또 환자인 줄 알고 놀랐구나. 그런데…….”

이남이 아진의 뒤에 함께 온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환자분이시냐?”

“아닙니다. 형님.”

그리고 아진이 뒤를 돌아보며 황제를 불렀다.

“황상 폐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이곳은 의방이라 밤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이남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황제가 안으로 들어갔고 아진이 문을 닫았다.

“일어나거라. 아진에게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남은 아직도 황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없는 것 없이 잘 차려놓고 있구나. 아진이 칭찬이 아주 대단하였다. 아진이 누군가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아주 많이 궁금해지던데 특히나 너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고 싶더구나.”

“그것은…… 어째서인지…….”

이남이 슬쩍 고개를 들고 묻자 황제가 웃었다.

“다른 건 못 하고 침을 사용한 무공만 잘 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다.”

“……예? 아진이가…….”

그러면서 이남의 눈이 아진을 향하자 아진이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형님. 아닙니다. 의술도 뛰어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황상 폐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게 아니라…… 형님이 오해하셨다는 말입니다. 형님은 제가 정말 딱 그것만 잘했다고 말을 했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형님.”

아진이 땀을 흘리면서 해명을 하는 것을 보고 황제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천하의 아진도 이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구나. 그래. 아진의 말이 맞다. 무공에 대해서 그렇다는 얘기였다. 의술의 길에 정진하기 위해서 무공은 깊이 익히려 하지 않았다는 말도 흥미로웠다.”

“그것은…… 사실 제 재주가 미천해서…….”

“그 말을 듣자고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진이 돌아가고 나서 그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너는 무인도 아니고 내공을 꾸준히 모아온 것도 아니지. 무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침을 이용한 무공이 당문의 만천화우를 뛰어넘는다고 했지.”

“그것은…… 그렇습니다. 폐하.”

이남은 황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편히 앉도록 하거라.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으니 말이다.”

“그러면 차라도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이남은 두 사람에게 편안한 자리를 안내한 후에 분주하게 움직여 먹을 것을 내왔다.

황제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 순간에 차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던 아진은 무엄하게도 차를 뿜었다.

그러나 그것을 아진의 잘못이라고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황제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폐, 폐하…….”

이남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해서 불러 놓기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황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아진은 자기가 뿜은 차를 닦기에 바빴다.

“혹시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지요. 폐하?”

“나도 선이남처럼 한 가지를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다. 그대가 그렇게 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떤 것을…… 배우고 싶으신지요?”

아진이 묻자 황제가 당당히 말했다.

“전음이다.”

“아…….”

“기막을 두르면 너의 공력이 너무 많이 소진되고 외부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될 것 같다. 자연스럽지가 않겠지. 오랫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전음으로 나눈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아진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폐하.”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내공이 없다. 전음도 일종의 무공이고 그걸 할 수 있게 되려면 단전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아진은 황제가 왜 이남을 보려고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이남도 마찬가지였고 환하게 웃으면서 황제를 보았다.

“폐하. 그것은 아진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단전을 만들어 주고 내공을 불어넣어 준 사람은 아진이었습니다. 그 후에 북리의천 대협께서 저에게 영약을 주시고 공력을 더 불어넣어 주셨지만 폐하께는 그것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군. 역시 그랬어. 어쩐지 나도 그렇게 된 일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진. 나에게 단전을 만들어 주도록 해라.”

“예. 폐하.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음을 하실 수 있게 된다면 확실히 안전이 도모될 거라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작 이 생각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진이 연거푸 칭찬하자 황제도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그런데 재미있군. 이런 건 원래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 아진에게 묻기 전에 나는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알아보려고 황궁비고에서 무공서들을 읽어 보았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구나. 그래도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겠던데.”

“예. 폐하. 다른 사람에게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아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선이남도 아진을 믿어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전이 만들어진다고 바로 전음을 하실 수 있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폐하. 구결을 알려드리고 방법을 알려드릴 것입니다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도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황제의 말을 들으며 아진도 기대가 됐다.

처음에는 황궁의 일에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리의천의 말이 있었다.

사도련주를 잡는데 정의맹의 힘만으로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아진은 그런 상황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북리의천은 계속해서 사도련의 잔당을 색출해 내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었고 충독에 대해 아진이 알지 못하던 것까지 알고 있었다.

충독이 낳는 알의 개수가 세 개.

처음에 충독을 가졌던 사람이 열세 명, 그래서 십삼대제.

련주가 십삼대제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후로 사람들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독을 가지고 마음을 사려 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충독의 알에서 깨어난 벌레를 사용하면 단시간에 숙주의 몸이 강해진다는 것도 알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련주가 그중 몇 개의 알을 대제에게 사사로이 허락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북리의천에게 전한 사람은 련주가 무상도에게 그 말을 할 때 함께 있던 사람이었다.

련주가 대제들과 만나는 자리에 언제나 함께 있으면서 련주를 지키던 사람이 북리의천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대제가 알에서 깨어난 벌레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냐고 북리의천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사도련주는 일관되게 정파의 무가를 무너뜨리는 데 그 힘을 썼지. 그것은 그자가 꿈꾸는 사파천하와 관계가 있을 거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사파천하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지.

사파천하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

그런 자들의 손에 알이 들어간다면. 그 벌레를 키워 단시간에 괴력을 가진 사람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거기에 잘 세워진 계획이 함께 하기만 한다면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진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알을 갖게 되면 그 벌레를 어떻게 쓰고 싶은지 물었다.

린린은 그걸 하월이나 구문제독의 몸속에 넣을 거라고 말했다.

아니면 구문제독과 북궁세가주의 몸에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 그들이 날뛴다고 해도 북궁세가의 무인들이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건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 이유였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그 시간 동안 구문제독과 북궁세가주가 검을 휘두른다면 북궁세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져내릴 거라는 말에 아진은 충독의 알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벽예월의 생각은 조금 달랐는데 자기라면 황제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걸 넣을 거라고 했고 그렇게 되면 황제를 시해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벽예월은 황제 시해를 바란 것이 아니었지만 황제의 죽음 이후에 불가피하게 찾아올 혼돈 상황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런 벽예월을 보며 린린은 정말 은근 성격이 못된 것 같다고 했고 벽예월은 그냥 생각만 한 거라며 진땀을 흘렸다.

그 후에는 도종과 소은에게 물었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고도 딱히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을 보면서 아진은 충독의 알이 퍼진다면 자기도 속수무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들이 벌레를 누구에게 넣고 싶어 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 그것을 소청의 몸에 넣는 것에 성공한다거나 선이남의 아이에게, 혹은 장차 태어날 도종의 아이에게 집어넣는다면 아진은 결코 그들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었던 자도 살릴 능력이 있는 아진이었지만 유독 벌레의 숙주들에게만큼은 그 능력이 통하지 않았었다.

다른 아이들이야 벌레의 영향으로 아무리 괴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무서울 것이 없겠지만 소청은 달랐다.

게다가 소청이 벌레에 잠식되어 아진을 공격한다면 언제나 아진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던 사람들도 소청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북리의천도, 독고소영도.

린린이나 천이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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