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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3화 (153/470)

제153화

153화

“소은이는 어찌 지냈느냐.”

북리의천이 그 자리에 함께 한 질녀에게 묻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북리의천은 혹시나 하면서 도종을 바라보았다.

“조카사위. 드디어 해낸 것인가! 드디어 아이가 생긴 것인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도종은 부끄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소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언제쯤이면 아이를 볼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런데 가만. 어째 시기가…….”

북리의천이 말하자 도종과 북리소은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지더니 북리소은은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허허허. 잘 하였네. 잘 하였어. 그런 건 괜히 세상 사람들 눈을 신경쓰지 말고 그렇게 후다닥 해치우는 것이 좋아. 우리 소영도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야.”

북리의천이 연신 웃으며 말을 하더니 아진을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 아진이는 아직 좋아하는 소저가 없는 것이냐.”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스승님.”

아진이 소신껏 말했지만 북리의천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그러지 말고 잘 둘러 보아라. 주위에 좋은 처자가 많지 않으냐. 나도 혼자 사는 게 괜찮다고 생각했다만 소영을 만나고는 하루하루가 정말 다르다. 나는 내 제자가 그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그러자 서종욱이 나서서 북리의천을 말렸다.

“그런 문제는 아진이가 잘 알아서 할 것입니다. 형님. 아진이도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아직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뿐일 테니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때가 되면 잘 만나서 잘 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지. 그 말이 맞네. 나도 그 문제로 어른들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군.”

그러면서 북리의천이 큰 소리로 웃고 다시 북리소은을 바라보았다.

“소은아. 이 백부에게 받고 싶은 게 있으면 말을 해 보아라. 이 백부가 돈이 좀 많구나. 내 제자가 일을 크게 터뜨려서 그 뒷수습을 하려고 돈을 모아뒀는데 쓸 일이 없게 돼서 말이다.”

“그걸 전부 저에게 주시려고요?”

북리소은이 화들짝 놀라며 말하자 북리의천이 웃었다.

“어차피 너에게 주면 그게 다 산본의가로 갈 것이 아니냐. 그러면 내 제자에게 갈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말이 나온 김에 혈판장을 쓰면 어떨까요. 백부님?”

북리의천은 북리소은이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시집가면 남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이 녀석. 알았다. 이미 내 자식을 갖기는 그른 것 같고 나도 아진이에게 모든 걸 남겨 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하자꾸나. 아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북리의천의 말에 아진은 난감해졌다.

산본의가는 북리세가와 처지가 달랐다.

산본의가는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익을 만들어 내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리세가에는 수많은 무인이 있었고 무가를 유지하는 데는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무가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의 운영비가 들어가는가 따지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고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법이었고 돈이 많으면 더 실력이 좋은 고수로 키울 수 있었다.

명문세가들은 영약을 비축해 두고 무재를 가진 사람들에게 영약을 먹여 가며 키워냈는데 그 영약의 값이 황금 몇 관은 간단히 넘어갔으니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앓는 소리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랬기에 산본의가 보다는 북리세가가 돈이 더 필요할 텐데 북리의천은 기회만 보이면 그 돈을 아진에게 주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이다.

“스승님. 정말 전혀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가주와 가모도 덩달아 북리의천을 말렸다.

“형님. 그것은 아진의 말이 맞습니다. 그 돈으로 북리세가의 무인들을 더욱 강해지게 하시는 게 저희를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나는 아진이를 위해서 쓰고 싶다는 말이네. 북리세가에도 그럴 돈은 충분히 있고.”

북리의천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진 역시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령독화를 가지고 벌어 놓은 돈이 아직 많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제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한 건데 저는 마음만 먹으면 돈을 정말 잘 벌 것 같습니다. 무령독화만 해도 그렇지만 아직 찾지 않은 영초도 있는데 그것도 저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북리의천도 그 말을 들으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실 아직도 그 일이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영초를 얻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얻는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다만 어찌 그게 말처럼 쉽겠느냐.”

서로 돈을 안 받아서 섭섭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북리소은은 그냥 자기에게 주면 될 걸 백부가 왜 그렇게 일을 어렵게 하시는 건가 하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도종이 북리소은에게 미리 말했다.

“혹시라도 돈을 받을 생각 하면 안 돼.”

“…….”

북리소은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도종이 몇 번 더 말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의맹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요. 스승님?”

아진이 묻자 북리의천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다. 왜 진작 무림맹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그렇지. 그동안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던 사람들이 빠지고 나니 분위기도 좋다.”

“다행입니다. 정말 잘 됐어요.”

“아직 사도련주를 찾지 못해서 그 점은 조금 신경이 쓰인다만 계속 추적조를 가동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좋겠구나. 외부적으로 볼 때는 평화로운 시기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라 수련도 강화하고 있다.”

“믿고 있습니다. 스승님.”

“그래.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만 나는 언제나 아진이 네가 그립구나. 무공 수련은 소홀히 하지 말도록 하거라.”

“예. 스승님.”

그들은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고 아진은 소청과 따로 시간을 가졌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자랐구나. 소청아. 한 뼘이 넘게 자란 것 같다.”

“예. 스승님.”

소청은 키가 자란 것이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무공은 어느 정도나 늘었어. 소청아? 그보다 심법을 바꾼 것 같은데?”

“예. 스승님. 사조님께서 낭왕 사숙조님의 심법을 가르쳐주셨어요. 사숙조님은 아직 구성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십성이에요. 헤.”

소청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아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심법은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 듯, 자기에 이어 소청에게도 낭왕의 심법을 가르친 스승 때문에 웃음이 나와서였다.

그러나 아진은 정작 소청의 성취가 낭왕을 뛰어넘었다는 부분에서는 전혀 놀라지도 않았고 칭찬을 해 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소청이라면 그럴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소청도 그 사실을 알았던 듯, 축하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는 듯했다.

“낭왕 사숙조님을 직접 뵈었어?”

“예. 스승님. 정의맹에서 요직을 맡으시고 사조님과 자주 함께 계세요. 그런데 제 배분이 엄청 높아요. 스승님의 배분은 훨씬 더 높대요. 스승님 같은 분들이 저에게 존대하시고 먼저 인사를 하시고 그러세요.”

소청은 안 그래도 말을 해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가 잊어버린 듯 그때부터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맞다. 그렇지. 그렇게 될 거라고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는 했었는데 그분들을 직접 뵌 적이 없어서 나는 실감을 못 했다.”

아진은 북리의천이 그 일을 계획하던 것을 떠올렸다.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던 북리의천이 병을 떨치고 일어나면서 세운 여러 계획 중에 자신의 친한 벗들을 찾아가 아진을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 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잘 안 되는 것은 없고?”

“네. 스승님. 이제는 마기를 감추려고 노력을 안 해도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혹시 그게 드러나서 사조님이 곤란해지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그게 조절돼서 가장 좋아요. 사조님도 저 때문에 여러 무공을 새로 만들어 보실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고요.”

“그래. 정말 그럴 거다.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지.”

소청은 그 말이 감격스러운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아진은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지는 않고?”

“많이 보고 싶죠. 하지만 제가 더 이름을 알리고 의젓해지는 게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참고 있어요.”

“그래. 어머니는 여기에서 정말 잘 지내고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청도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어머니의 표정만 봐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대하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산본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스승님. 제가 알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 정말 많이 달라졌지.”

“그런데 제선문주님은 어떠세요?”

아진은 소청이 조심스럽게 묻는 것을 보고 소청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성질이 아주 못되셨다.”

“그래요? 큰일이네요.”

소청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다른 의원분들이랑은 잘 지내시는 것 같아.”

“그럼 됐죠. 스승님은 그냥 부딪치지 말고 피하세요.”

이제는 제법 그런 충고까지 하는 소청을 보고 아진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와서 그는 그런 복들을 아낌없이 받은 것 같았다.

좋은 가족에 스승에 제자까지.

아진은 자기를 이곳에 보낸 게 누구건 간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누구도 자기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북궁세가에서는 돈을 받으셨어요. 스승님?”

“아직. 슬슬 그것도 터뜨려야지. 그동안은 마음이 타들어 가게 하려고 놔뒀는데 지금쯤은 터뜨려도 될 것 같다.”

“저도 기대돼요. 스승님.”

소청이 눈을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아진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가모와 벽예월이 아진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도에 새로 연 전장 지부를 방문하면서 북궁세가에도 들를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함께 갈 무인들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평소에는 잘 타지 않는 화려한 마차에 타면서 가모는 가주에게 몸 조심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주는 가모가 그렇게 오랜 일정으로 산본의가를 떠나는 일이 없었기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린린. 그동안 의가를 잘 지키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오라버니.”

전장의 지부를 내는 것 외에 북궁세가에 가서 위약금을 받아내는 일까지 계획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아진의 책임이 막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곳을 나설 필요도 없었다.

아주 조금만 서둘렀다면 하월과 그들은 어긋나버렸을지도 몰랐다.

산본의가 앞에 선 마차에서 하월이 내렸고 그의 주위로 북궁세가의 호위들이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아진은 전보다 하월에 대한 대우가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진해졌다는 것이 맞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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