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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0화 (150/470)
  • 제150화

    150화

    총관은 그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고 독수는 산본의가가 척가상방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된 이유를 새롭게 알게 됐다.

    북리의천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면 그도 벌써 그런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북리의천이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벽에 막힌 독공을 십성으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에 혈안이 돼서 바깥 일에는 통 무신경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얄궂게 되었군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도 있고.”

    “하지만 그것은 관행입니다. 대협. 표물의 값이 비싸서 표행비도 처음부터 비싸게 책정을 했습니다. 산본표국에서는 표행이 어려울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거기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자기들이 이문을 더 남기려고 표사를 넉넉하게 고용하지 않았다가 일이 이렇게 되니 저희를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독수는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요. 그러면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 겁니까. 총관. 내각대학사를 지내신 대인의 생신 선물로 보내는 선물이 위조품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아진은 독수에게 따로 설명하는 대신 총관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

    총관은 깜짝 놀라며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저 그것을 표사들이 가지고 도망쳤다고만 알았고 그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척가상방이 그런 짓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서 무령독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바로 그 일이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공자는…… 그게 위조품이라는 것을 알고도 위약금을 배상하기로 한 것입니까?”

    독수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아진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게 위조품이라는 사실은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표행에 실패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처음의 약정대로 위약금을 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아진은 위조된 표물을 자기가 확보하고 있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총관의 마음은 널을 뛰었다.

    아진이 무엇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서였다.

    “공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니 나는 진심으로 부끄럽소. 산본의가가 중원에 널리 알려진 의가라고는 하지만 표행 실패로 인한 위약금을 마련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오.”

    “아닙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대협에게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척가상방이 처음 저희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을 때 산본표국이 바로 나섰다면 대협이 이런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공자. 나는 진심으로 공자의 말에 감명을 받았소. 나는 지금까지 헛살았다는 생각이 드오. 만약 표행에 대해 이 자들이 계속 트집을 잡고 위약금을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 일을 반드시 공론화하겠소.”

    “감사합니다. 대협. 대협께서도 손해를 보셨는데 저희의 일을 먼저 신경 써 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그리고 나는 척가상방에서 내 손해를 보상받을 것이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하지만 내 손해를 배상받기 전에 산본표국이 받은 손해를 먼저 보상받게 할 것이니 그 점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독수는 척가상방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꼼짝없이 관에 끌려갈 판이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서였다.

    게다가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모두 명성이 높고 믿을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더욱 위안이 됐다.

    옆에 서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린린과 천이재는 무섭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언제부터 한 것일까 했던 것이다.

    “총관. 여기에 대해서 척가상방을 대표해 할 말이 있는가.”

    “대…… 대협. 그것은. 하지만…… 무, 무령독화는…… 무령독화는 분명히…….”

    총관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가짜 표물을 맡겼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무령독화가 진짜였다는 것은 믿어 줬으면 해서 말을 더듬다 보니 엉성하게 나왔다.

    “그렇군. 그런데 이제는 화도 나지 않네. 서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말이야. 서 공자의 산본표국까지 속일 수 있는 자네들인데 내가 좀 속았다고 이렇게 열을 낼 일이 아니었어. 자. 그러면 이제 돈을 내게.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 그렇지. 일단은 물건을 전부 압류하면 되겠군. 여기가 상방이라서 좋군. 방주가 죽어도 당장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말이네.”

    “대협…… 그건 안 됩니다. 저 물건들은 바로 상행을 떠나야 하는 것들입니다.”

    “상관없네. 관심도 없고 말일세. 서 공자가 한 얘기를 못 들었는가. 척가상방이 어떤 곳인지 미리 말을 했으면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하시지 않는가. 저기에 있는 물건들이 진짜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독수는 지금껏 척가상방과 거래한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이 속아왔겠느냐고도 했다.

    상방에는 상방 사람들만 오가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거래처 사람들도 그곳에 있다가 독수가 나타나 방주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것을 보았고 그들 중에는 도망치지 않은 채 계속 구경하고 있던 이들도 많았다.

    하나의 조직이 몰락한 곳은 곧 다른 곳이 채우기 마련이었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행운이 자기들의 조직에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총관은 독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람들을 모아들여 회의실로 급히 향했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해 나가는 것은 한계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위에 모여든 사람 중에는 방주의 친인척이 많이 있었다.

    방주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친인척을 상방의 요직에 앉히고 일을 시켜오고 있었다.

    “이걸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총관.”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까? 표물이 가짜라니요?”

    그런 일은 최소한의 인원만 아는 것이 좋았기에 그들 중에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총관은 거기에 대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북궁세가의 하월 공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될 것 같아서였는데 여기에서 북궁세가하고까지 척을 지게 된다면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입단속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었다.

    총관은 그 자리에서 꼭 결정해야 하는 것들만 논의하기를 바랐다.

    “빨리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방주님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독수가 해 놓은 일을 알고 있었고 돈을 주지 않으면 남아 있는 전각도 성치 않을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

    피해를 가장 줄이는 방법은 독수가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뿐이었다.

    “전장에 가면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본방과 거래를 해 온 전장이 몇 군데 있으니 그곳에 가면 적당한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을 겁니다.”

    죽은 방주의 동생이 말하자 총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당장 그 일을 맡아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며칠 내에 황금 스무 관이라도 마련하고 독수 대협을 달래면 독수 대협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독수 대협도 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분명 지금쯤 독수 대협도 겁을 먹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산본의가에는 정말 우리가 위약금을 돌려줘야 하는 겁니까? 돌려준다고 해도 우리가 받았던 것을 다시 주는 거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없기는 하겠습니다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돈은 이미 북궁세가의 삼공자에게 넘어 가버렸는데 그 이야기까지 한다면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총관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들켰다고 말하고 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북궁 공자가 그 돈을 돌려줄까?’

    그 생각을 해 봤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월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고 총관을 옥에 가두려고 하거나 사람을 시켜 살인멸구를 해 버리려 할지도 몰랐다.

    일단은 오늘이 무사히 지나기만을 바라며 그는 회의를 끝냈다.

    그리고 일단 돈이 될만한 것들의 목록을 추렸다.

    잠시 후에 독수의 앞에 섰을 때 그는 변제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독수는 자기가 했던 말을 총관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다고 생각한 듯 웃었다.

    “총관. 네놈이 끝내 나를 업신여기는 모양이구나. 나는 네놈에게 분명히 말했다. 산본표국이 먼저 받은 후에 받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산본표국에 어떻게 갚을 것인지 그것을 먼저 논의하고 나서 말을 하도록 해라.”

    총관은 머릿속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그 말을 들었다.

    “예. 대협. 그러면 먼저 산본표국에 돈을 주고 그 후에 최대한 빨리 돈을 마련하겠습니다.”

    독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아진도 거기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총관의 숨통을 틀어쥐기 위해 다른 이들이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태양이 천공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을 때 황실 고수 한 사람이 무시무시한 경공을 전개해 그곳에 나타났다.

    그를 본 총관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 역시 무령독화를 산 사람이었고 그의 표정이 그 전날 독수가 나타나면서 지었던 표정과 똑같았던 것이다.

    * * *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진 무령독화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그 후에도, 별로 배짱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무림 고수들을 상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려고 한 것인지 의아해했다.

    그리고 산본표국의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졌다.

    표물을 훔친 표사들은 도망치지 않았고 산본의가 이공자 서도진에게 잡혀 있었으며 서도진은 표물이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약금을 전부 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위약금을 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폭증했고, 표행을 의뢰한 곳의 배후에 황도의 실세가 있다는 소문이 은밀히 퍼져나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막강한 집단에 뒤에서 버티고 있는 바람에 그 일이 모두 조작된 것을 알고도 산본표국이 황금 이백 관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했는데 다행히 무령독화를 구해서 그 돈을 갚을 수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일을 벌인 황도의 실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궁세가와 황실에서는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 * *

    구문제독 북궁천영은 혼자 기루에 들어섰다.

    그를 따르던 이들은 밖까지 같이 왔다가 돌아간 후였다.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다고는 해도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구문제독에 올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시끌하던 곳이 저절로 조용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북궁천영은 주위를 쏘아보며 걸었고 이내 한 사람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인.”

    북궁천영은 답지 않게 긴장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되어 간 곳에는 한 남자가 느긋하게 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 곳이 익숙하지는 않은 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였다.

    “어어. 어서 오시게. 바쁜 사람을 불러내서 미안하군.”

    “일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신지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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