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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48화 (148/470)

제148화

148화

“왜들 표정이 그러신지. 기한이 빨라서 그렇습니까?”

“아니오. 공자. 신경 쓰지 마시오. 그렇게 빨리 돈이 구해질지 몰라서 그런 것뿐이오.”

그들로서는 변제기한이 빠르게 돌아와서 산본표국이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했기에 긴말을 하지는 않았다.

척가상방의 사람들에게는 아진이 이런 쪽에 경험이 없어 일을 망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건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척가상방에서 청산금을 바로 주지 못하면 연 육 할의 이자가 적용된다는 내용을 추가했으면 합니다.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그런 것은 처음에 확실히 정해 두고 가는 것이 좋으니 말입니다.”

방주는 무령독화의 판로를 확보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합시다. 이런 거래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꽤 꼼꼼하시구려. 그러는 편이 나도 좋습니다.”

“그리고 척가상방에 담보를 제공했다는 말을 다른 곳에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이곳만 특별 대우를 했다는 말이 나오면 곤란해서 말입니다.”

“알겠소. 그것도 어렵지 않소.”

아진은 사람들이 자기 뒤에서 자기를 비웃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을 나섰다.

그렇게 그의 행보는 계속되었고 그는 모두 다섯 장의 혈판장을 받아 냈다.

산본표국에 표행을 맡겼다가 표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무령독화를 담보로 받았다는 소식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질 만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아진이 부탁하기도 했지만 아진이 부탁해서라기보다는 그 사실이 북궁세가의 귀에 들어가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모두 쉬쉬했던 탓이었다.

북궁세가에서는 산본표국의 돈줄을 틀어쥐고 산본의가 사람들을 길들이려 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그 숨통을 틔워 주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아진의 방문을 받았던 이들은 아진에게 무령독화를 담보로 받았다는 말은 숨긴 채 하월에게 줄 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각자 자기들이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 무령독화의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는데 한 곳에서 부담하기에는 많은 돈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가문이나 문파라면 꼭 어렵기만 할 것은 아니었다.

* * *

“정말 귀방에서 무령독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대협. 경로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령독화를 확보하느라고 지금 자금 사정이 일시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하여 저희 방주님께서는 무령독화를 몇몇 가문에게 미리 보여드리려 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전해져오 던 무령독화의 효능이 사실이기만 하다면 천금이라고 아깝겠소?”

“그렇습니다. 대협.”

대상을 수소문하는 것에도 돈이 들어갔다.

독문의 고수 중에, 공력이 부족해서 독공을 대성하지 못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느라 하오문에 상당한 돈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은 그 가치를 했다.

대성하기만 하면 당장 십천에 오를 수도 있을 거라고 거론되던 독수 패열청만 해도 그랬다.

패열청이 속한 흑진문은 원래 정사지간으로 분류되던 곳으로 사파의 성향이 강했는데 정파로 돌아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단 정파로 돌아선 흑진문은 무림맹과 정의맹 사이에서 간을 보다가 무림맹에 남는 것으로 결정을 했고 그 후에는 나름대로 세력을 야무지게 키워가고 있었다.

패씨 성을 가진 이들의 직계와 방계가 대부분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 일곱 가문이 있었는데 패열청이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질서를 세우는 일이 종종 있어 모두가 패열청을 두려워했다.

“황금 서른 관이면 어떠십니까. 지금까지 어떤 영약을 먹고 내공을 증진했는지와 상관없이 일갑자의 내공을 증진해 주고 독공을 대성하게 해 준다고 알려진 무령독화입니다.”

“하나로는 30년 치의 내공이 오른다던데 그걸 무려 두 개를 주겠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대협.”

“하나에는 황금 열다섯 관이오?”

“하나면 황금 열여섯 관은 받아야 합니다.”

“황금 한 관이 누구 집 애 이름인 줄 아는가.”

독수가 표정을 사납게 했지만 척가상방에서 나온 이도 만만치 않았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협. 두 개를 한 번에 살 때 자그마치 황금 한 관이나 깎아 주는 것입니다. 수량이 많지 않은 것은 대협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이게 언제 세상에 나오기나 하던 물건이었습니까.”

“그렇지. 그것은 그렇소.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저도 오래 기다려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기다리시는 분도 많습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독수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황금 서른 관을 당장 구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흑진문에 속한 가문에 할당량을 내려주면 될 듯했다.

‘십천. 내가 드디어 십천이 되는 것이다. 십천이 있는 흑진문을 두고 누가 정사지간이라며 비웃을 것인가. 십성에 이르기만 하면 십천 중에서도 단번에 서열이 오를 것이다.’

독수는 그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결국 황금 서른 관 마련 때문에 흑진문에 속한 가문과 사업체마다 잔인할 정도로 자금 압박을 받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도 독수가 드디어 십천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열광했고 흑진문에서 십천이 나온다면 무림맹에서 고위직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말까지 퍼져 나갔던 것이다.

세상에 나온 무령독화는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서히, 아진이 약속했던 변제기일이 다가왔다.

* * *

아진은 척가상방을 가장 먼저 찾았다.

아진의 곁에는 산본의가의 총관 자격으로 벽예월이 함께 하고 있었다.

벽예월은 침통한 얼굴을 한 채 아진의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진 역시 낙심한 얼굴을 했다.

“공자님이 작성하신 혈판장에 의거해 무령독화의 소유권이 척가상방에 넘어가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벽예월은 미리 준비했던 말을 했고 척가상방의 방주는 저절로 나오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돈은 여기에 있소. 위약금과 이자를 뺀 나머지 금액이오.”

아진이 말한 변제기일은 절묘해서 무령독화를 사려는 사람은 구했지만 돈은 아직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황금 서른 관을 한 번에 준비해서 바로 줄 수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며칠 후면 여기저기에서 돈이 들어올 거였기에 방주는 그것을 믿고 돈을 끌어모았다.

아진이 말한 육 할이라는 이자를 자기가 직접 낼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워서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렸다.

그러면서도 만전에만큼은 손을 내밀지 않았는데 이제는 하월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크게 두려워할 건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무령독화를 팔아서 받기로 한 돈이면 빚을 다 갚고 순식간에 황금 수십 관을 챙길 수 있을 터였기에 북궁세가가 두렵지 않았다.

아진은 돈을 받고 그곳을 나왔다.

같은 일이 그날 하루에만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아진이 그 일로 남긴 돈은 고작 황금 한 관 정도였다.

작정을 하기만 했다면 산본표국에 수작질을 한 놈들을 상대로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싸움을 산본표국의 싸움으로 끌어올 생각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이익은 거의 포기한 채로 일을 벌였다.

이제부터는 악인들의 악몽이 시작될 차례였다.

* * *

하월은 산본표국에서 받았다는 위약금을 전부 챙기고도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척가상방의 방주를 필두로 그에게 위약금을 전달한 사람들의 태도가 전과 묘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각자가 가져온 거의 마흔 관에 달하는 황금은 물론 큰돈이었지만 그동안 아진이 느끼는 압박감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컸기에 아쉽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하월은 무령독화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황실의 사정이 갑자기 급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북궁세가주가 그를 불러들였고 구문제독도 하월을 곁에 두고 싶어 해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탓이었다.

그동안 구문제독부가 맡던 황도 수호의 임무를 금의위와 나누도록 황명이 내려오며 구문제독은 황제의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하월은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동원해 관련자들에게서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모은 정보를 어떻게 배열하고 해석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황상의 생각이 바뀐 것이 하루 이틀 일인가. 황상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내가 어떻게 안다는 말이야?’

그래서 황금 이백 관이 생겼는데 그것을 기뻐할 틈도, 자랑할 틈도 없었다.

그 일의 배후에 아진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른 채 하월은 뜨거워진 돌 위에서 폴짝거리듯 뛰어오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 * *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네 주위에서는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짐의 황실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아진이 너도 여기에 와서 이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지는 않으냐.”

황제는 아진이 한 말을 듣고 한참이나 놀라워하며 말했다.

아진은 그런 황제를 보고 웃었다.

“괜찮습니다. 폐하.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다. 이곳의 생활도 살아보면 재미도 있고 그렇다.”

“저는 아무래도 적성에 안 맞을 것 같습니다.”

아진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황제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참 희한하구나. 짐이 만약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일에 연루된 자들을 당장 찾아가서 목을 베어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는 짐을 모욕하거나 그런 건방진 일을 도모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폐하. 오랫동안 숨이 멎어 가는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죽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느낀 고통이 너무 컸기에 그자들은 수백 배의 고통을 당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통을 느끼는데 그자들은 먼저 숨이 끊어지고 그 고통에서 자유롭게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났습니다.”

“그렇구나. 너는 참…… 집요하고 많이 악랄한 것 같다.”

황제가 그런 말을 상냥하게도 한다고 생각하며 아진도 웃었다.

“한 번씩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으니 앞으로는 짐에게 오는 횟수를 더 늘리도록 하여라.”

“하오나 폐하. 그러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만들어질 틈이 없어질 것입니다.”

황제는 무엇 하나 그냥 그러겠다며 넘어가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고개를 저어댔다.

“너는 짐이 귀찮은 모양이다.”

“……송구합니다.”

그걸 느꼈다고 해도 황제가 직접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면서 아진은 사과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사과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달았고 황제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진아. 다른 놈이 그랬으면 나는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당장 목을 치라고 했을 텐데 왜 네놈이 그러면 그냥 웃음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화가 나서 죽을 것 같다.”

“폐하. 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지금 알고 있는 얘기보다 더 많은 재미있는 일을 만들 자신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들으시려면 제 목은 그냥 놔둬 주시는 게 어떠실지요.”

황제는 도저히 못 이기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아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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