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145화
처음에 무령독화를 찾아 나설 때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내공을 늘리자는 생각이 아니었지만 일은 이미 이렇게 되었고 그렇게 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자기들이 먹는 대신 그것을 북리의천이나 소청을 위해 남겨둘 수도 있었겠지만 아진과 린린은 마침내 결심하고 스스로 복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영약을 복용하기에 여기처럼 좋은 곳은 없을 거네. 죽어 가는 문주만 홀로 남겨진 곳이라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네. 그래도 내가 특별히 밖에서 지켜 주지.”
문주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것은 절대 운에 맡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진이 린린을 기다려 주었고 린린이 먼저 영약을 복용했다.
린린은 역천마의가 준 영약을 여러 차례 먹어 왔고 그의 대법도 많이 받았었기에 기혈이 타통하는 느낌은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령독화로 만든 영약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세맥까지 가서 그것까지 뚫고 돌아다니며 혈맥을 확장하는데 린린은 지금이라도 멈추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혈맥이 이렇게 넓어지고 그것을 채우지 못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위험한 게 아닌가 하고 있는데 그런 걱정을 하면 섭섭하다는 듯이 기운이 혈맥을 차고 넘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진은 시간이 흐르며 린린이 환골탈태를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예쁘던 만두가 이제는 참기름에 한 번 굴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예뻐지기만 한 것은 아니고 무공을 하기에 더 적합한 신체로 거듭나고 있었는데 어깨도 원래보다 조금 더 벌어지고 팔에도 근육이 붙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울퉁불퉁해지지는 않는 것은 무령독화의 특별한 심미안의 영향인 듯했다.
영약의 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린린의 몸이 가부좌를 튼 상태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내려앉았다.
마침내 린린이 눈을 떴을 때 아진은 놀라움과 뿌듯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린린을 보았다.
“어때?”
“…….”
린린은 어리둥절해 보였고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그럼 이제 나도 해?”
“응. 오라버니.”
이번에는 린린이 기다려 주고 아진이 영약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린린도 혀를 쑥 빼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런 표정을 했으면 아진이 영약을 먹지 않겠다고 할까 봐 그때까지 억지로 참았던 것처럼.
너무 써서 혀를 뽑아서 던져 버리고 싶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아진은 억지로 그 순간을 견뎠다.
전신의 세맥이 열리는 느낌.
기혈이 타통하고 내공이 늘며 마나도 같이 날뛰는 현상이 아진의 몸에서 벌어졌다.
마나는 마치 전학생이 와서 신이 난 것처럼 같이 날뛰었고 내공과 어우러졌다.
아진의 변화는 린린보다 조금 더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근육이 붙고 뼈가 굵어지며 어깨가 다부지게 벌어지고 팔과 다리가 조금씩 더 길어졌다.
아진이 입고 있던 옷이 형체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툭툭 소리를 내며 찢어졌지만 그 후에도 한동안 변화가 계속 이루어졌다.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감돌았고, 이건 별로 필요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머리카락에 검은 기운도 더해졌다.
원래 숱이 풍성해서 숱까지 급격히 늘었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훨씬 훤칠해졌다.
“와아…….”
린린마저도 그 모습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고 아진은 영약의 기운이 몸을 다 돌고 잠잠해진 후에야 눈을 떴다.
“잘 한 건가 모르겠다.”
무령독화가 이제는 두 사람의 공력으로 변해 있었다.
아깝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문주는 이미 그곳을 떠날 채비를 전부 다 해 두고 있었다.
보자기를 가져다가 이것저것 싸서 짐이 엄청났는데 대부분이 약재들이었다.
“이건 절대 두고 가면 안 된다. 나를 보면 반가워하려니? 그래도 신의의 인품에 화를 내지는 않겠지? 혼수를 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으허허허.”
문주는 새롭게 펼쳐질 삶에 심하게 기대를 하면서 꿈에 부푼 것 같았다.
“저희가 모셔다드려야 되는 건 아니죠. 문주님? 갈 곳이 있는데요.”
아진이 말하자 문주가 혀를 찼다.
“실컷 영약을 만들어서 먹여 놓으니까 이제 와서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러다 내가 산본의가에 도착도 하지 못하고 북궁세가 놈들이나 아니면 내 제자 놈들한테 당해서 죽어 버리면 어떡할래. 어?!”
문주는 두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렀는데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터라 아진은 웃음을 지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저희가 가서 설명을 드려야지, 안 그러면 본가 분들이 놀라십니다.”
“그…… 그렇지. 많이들 놀랄게다. 말을 잘해 줘야 한다.”
문주는 기대와 우려가 섞인 얼굴로 말했고 반 시진이 지난 후, 그들 모두는 제선문의 산문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문주가 그곳을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산본의가는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아진과 린린의 모습이 변했다는 것에서 우선 놀랐고 그들과 함께 온 사람이 제선문주라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산본의가의 사람 중 몇몇은 제선문주가 왜 여기에 나타난 거냐면서 분노를 감추지 않았는데 그래도 세월이 오래 지나고 제선문이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해서인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가주와 가모는 무덤덤한 쪽이었다.
그동안 좋은 인연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제선문주를 보면서 두 발 벗고 나와서 반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진과 린린이 그와 함께 왔다면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산본의가의 수뇌부가 모인 곳에서 제선문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들은 제선문주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그가 만약 북궁세가 공자의 말에 넘어갔다면 산본의가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배신하고 북궁세가와 손을 잡았다면 앞으로 그 일이 다시 진행될 거라는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걱정이 된다고 해도 전처럼 막막하거나 앞이 캄캄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귀찮은 일이 조금 생기겠다는 정도로만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제선문이 우리를 뒤에서 잡아채서 넘어뜨리려고 해도 넘어가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아진이 말하자 모두 그 말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말없이 있던 천이재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과 아가씨께는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무슨 기연이라도 얻으셨습니까?”
그 말에 아진이 웃음을 지었다.
“무령독화를 찾았습니다.”
“예에? 정말입니까? 세상에!”
순간적으로 주위가 떠들썩해졌고 아진과 린린은 그것을 영약으로 만들어 복용한 이야기까지 일사천리로 해 주었다.
무령독화가 자기들의 차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서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가문의 전력이 높아진 것에 좋아했다.
“제선문주가 그런 일까지 해 줬다면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겠다.”
그가 무령독화로 영약을 만들어 주었다는 말에 도종이 한 말이었다.
“앞으로 제선문주는 아버지와 함께 의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어 합니다. 저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수님께서 다리가 되어 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진이 말하자 북리소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선문에서 배우다 산본의가로 온 그녀였다.
북리소은은 두 곳에서 모두 배웠기에 두 의문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어떠세요?”
도종이 묻자 가주가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나는 왠지 기대가 되는구나. 그동안은 혼자서 답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그 답을 같이 찾을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말이다.”
아진과 도종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초기부터 함께 해 왔던 의원 하명준과 허우천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가주가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가져왔던 의문을 전부 다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도종이나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선문주라면 가주가 느끼는 여러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알 것 같았고 거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주가 산본의가의 수장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보일 수 없었던 연약함.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자신이 내린 판단이 틀릴까 봐서 느끼는 염려.
그런 것들을 제선문주도 같이 겪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가주는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후에 그는 접객당에서 제선문주와 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없이 오랫동안 함께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가주의 곁에서 그를 존경하며 지켜봐 왔던 수많은 사람은 가주가 제선문주의 옆에서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좌절도 느꼈다.
가주가 그렇게까지 편안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마다 다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지금껏 가주가 혼자서 져 왔던 부담감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다는 상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가주가 그렇게 밝아진 것을 보며 사람들은 가주가 그동안 얼마나 부담감에 힘들게 짓눌려 있었던가를 깨달았다.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가의 수장.
그 첩첩의 압박감을 견뎌온 가주가 새삼스레 더욱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뒤늦게 나타나 준 제선문주가 고맙기도 했다.
“무령독화보다 제선문주가 더 좋은 선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진아. 아버지가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드셨던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도종의 말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무령독화가 만든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 * *
아진은 벽예월을 찾아갔다.
그녀는 그사이에 더 바빠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손발이 엉키는 것 없이 사람들 틈을 다니면서 지시를 내리고 확인하고 장부를 기록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벽 소저.”
“공자님.”
아진이 다가가자 벽예월이 환하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후에 다시 보자고 말한 다음 다가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공자님?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공자님과 아가씨가 전부 변했다고요. 무슨 약을 먹으면 그렇게 되냐고 하던데요? 공자님. 우리 약 팔아요. 우리가 전부 그 약을 먹고 이렇게 됐다고 하면 되잖아요.”
벽예월의 말에 아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말을 걸지도 못하던 그 벽예월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달해져 있었다.
“잠깐 시간이 있으면 얘기를 좀 했으면 합니다. 본가의 상황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사이에 일이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
“그건 그래요. 표행을 의뢰했던 곳들이 자주 찾아왔어요. 돈을 내놓으라고요. 가부간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기는 해요. 우리는 잘못한 게 없잖아요. 표물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가주님은 공자님이 생각이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 우선은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아진은 사람들이 와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전부 다 말을 하게 했고 벽예월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