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143화
“으으으윽!”
청월은 서서히 평정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연기 말이야. 그게 너에게 돌아가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너에게서 나온 독연이면 너는 해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아진은 그것을 직접 알아볼 요량으로 강한 장풍을 쏘아 냈다.
아진을 향해 날아가던 녹연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고 아진은 이제 그만 싸움을 끝낼 생각으로 검기를 더했다.
청월은 상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흔들렸고 강한 검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나하나 자신의 절기를 풀어내도록 지켜봐 주는 것 같아서 어느덧 거기에 맞추고 있던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었다.
“대사형!”
사제들은 그를 부르며 급하게 독공을 준비했지만 아진은 더욱 강력한 장력을 발했다.
독에 바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공격의 방향이 의도와 다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아무리 독공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온전히 드러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객잔 안이었고 여러 가지 공간의 제약이 따랐다.
“이제 지겹네. 계속 보고 있으면 뭔가 대단한 게 나올 줄 알았더니.”
아진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가 말한 것의 의미를 보였다.
여러 줄기로 날아간 검기가 각자의 목을 꿰뚫으려 했다.
아무렇지 않게 투숙객들을 죽인 자들을 쉽게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뒤에서 또 다른 검기가 날아와 아진이 날린 검기의 방향을 바꿨다.
‘아차! 내가 죽이면 흑주가 진기를 못 빨지?’
아진은 그게 린린이 날린 것임을 깨달았고 흑주가 그들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여기는 흑주에게 맡기고 오라버니는 객잔에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지 가 봐.”
린린은 어느새 무령독화가 들어 있는 목함을 끌어안은 채 말했다.
아진이 방을 나서며 보니 목함의 뚜껑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령독화가 너무 오랫동안 목함에 갇혀 있었던 듯했다.
아진은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몇 사람은 살아났고 몇 사람은 그러지 못했지만 아진은 이제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살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자기가 살리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오래 자책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가 살리지 못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을 텐데 그때마다 매번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아진은 미리 준비를 해 나가기로 했다.
“이,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를 구해 주신 겁니까, 무사님…….”
“나는 의원입니다. 하지만 옆에 계신 분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으으윽. 사제. 사제!”
오열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진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다.
“다른 곳으로 갈까?”
아진의 말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계속 누워 있어 봤자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무령독화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린린이었다.
“너구리 머리에 달린 건 다음에 찾아야겠다. 린린.”
“그러게. 나도 그게 더 궁금했는데. 그런데 남겨 두는 것도 좋을 것 같기는 해. 나중에 같이 할 게 있는 거니까.”
무령독화를 손에 넣고 나니 자신감이 넘쳐나서 린린은 큰 포부를 밝혔다.
“아! 제선문주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
무령독화에 대해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던 아진은 객잔을 나선 후에 갑자기 말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네. 욕심이 많고 머리를 다른 곳에 많이 써서 그렇지 제선문주라면 확실히 아버지에 버금갈만한 의원이니까. 약초에 대해서도 많이 알 거고 영초에 대해서도 그럴 거고. 남궁세가랑 오랫동안 손을 잡았으니까 그 사람이 딱일 수도 있겠네. 남궁세가에서 그런 쪽으로 자주 요구를 했을 테니까.”
린린은 아진의 생각이 괜찮을 것 같다고 여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야 그를 만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 길로 제선문주를 찾아 나섰다.
* * *
산문을 지나면서 아진은 제선문이 이렇게 조용한가 생각했다.
봉문한 후에도 제선문에는 상당히 많은 의원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의문스러웠다.
“음산한데? 의문이 뭐가 이렇게 귀기가 가득해?”
“그러게. 제선문이 아니라 모산파를 찾아온 것 같다.”
아진은 말을 하다 말고 신형을 날렸다.
아진과 린린의 신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내를 빠르게 누볐다.
그리고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건가 싶은 전각으로 향하자 서탁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제선문주였다.
치료를 받지 못한 듯, 검붉은 피딱지가 옷을 적시고 있었다.
고개를 든 남자의 눈이 텅 비어 있었다.
눈알이 없었다.
책을 보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듯했다.
“…….”
아진은 빠르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혹시, 자기가 보낸 지급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문주님. 산본의가의 이공자 서도진입니다.”
“서…… 이린입니다.”
린린도 눈이 보이지 않을 문주를 향해 말했다.
“그걸 내가 모를까.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공자뿐일 거라고 생각했네. 짙은 약재의 냄새와 함께 이런 살기라니. 와 주었군. 혹시나 공자라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네. 죽기 전에 공자를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누가 이런 것입니까. 문주님. 혹시 북궁세가입니까?”
아진은 말을 하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대답을 듣는 것이야 급한 게 아니었다.
아진은 자기가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랐다.
평생 의술을 행해 오던 사람이었다.
산본의가와 대척점에 서서 좋지 않은 인연으로 얽혀 버리기는 했지만 누가 이런 자의 두 팔을 뽑아 버린 건지 아진은 분노가 일었다.
오래된 상처였다.
그러나 아진은 다른 어느 때보다 그를 고치고 싶었고 마나는 아진의 의지에 순응했다.
처연한 듯하던 노인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 꼴이 되어 다시는 침을 들 수도 없고 사람을 진맥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어느 정도 모든 것을 포기해 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지 못한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고 기력은 쇠해 갔다.
그는 서서히 죽음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증오하고 질투하고 원망하던 녀석이 나타나 자신을 고치고 있었다.
녀석의 치료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바라지 않는 마음이 공존했다.
치료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옹졸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몸이 낫지 못할 텐데도 한편으로 그것을 바라는 것을 깨달으며 문주는 자신의 악한 마음의 근원이 얼마나 깊은지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문주님이 좋아서 고쳐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번, 몸을 바르작거렸더니 그런 소리가 나왔다.
문주는 웃어 버렸다.
기가 막혔다.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원수나 다름없던 의원의 손에 의해서.
그래도……
몸을 낫게 하는 것과, 빠져나간 눈알을 찾아 시력을 돌이키는 것은 별개였다.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팔이 고쳐진 것을 알게 됐을 때 문주는 어느덧 거기에까지 소망을 품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던 것들.
비로소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던 것이 있었다.
진료할 수 있고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고침을 받는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고치고 치료하는 자신에게도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누려왔던 것들이 실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북궁세가는 아니었네. 제자들이었지…….”
그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자들이 이랬다는 말씀입니까?”
“사주를 받기는 했을 거네. 그래도 결정을 내린 것은 그 아이들이었지. 북궁세가의 삼공자가 와서 나를 회유하려 했네. 그런데 듣지 않았더니 그냥 내려가는 것 같았는데 내 아이들이 달라지더군.”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했다는 말입니까.”
아진은 넌더리가 나서 말했다.
그의 손은 어느덧 문주의 눈에 닿아 있었다.
눈알이 사라진 자리에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치유력이 이번에도 기적을 베풀어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 아이들은 새로운 제선문을 원했네. 영화로운 제선문을. 그런데 내가 남아 있으면 나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에게 향하겠지. 죽이지 않은 것이 배려였을지 저주였을지 그건 모르겠네.”
문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마칠 즈음에는 그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저주일 수가 없었다는 것을.
자신의 몸을 그렇게 만든 제자는 저주를 내리고 싶었겠지만 그 저주는 서도진에 의해서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이윽고 아진의 손이 내려갔다.
문주는 아진의 손길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자 자기가 잠깐 사이에 거기에 얼마나 의지했는지를 깨달았다.
“눈을 떠보십시오.”
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웃으려고 했다.
눈을 뜰 수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었겠냐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어느새 눈을 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눈이 생겼고, 그 눈으로 울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를 오열하게 했다.
“으흐으으으윽!”
그는 어깨를 떨고 들썩이며 울었다.
“나는…… 내 삶은 전부 다 잘못되었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아진은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애증의 관계였다.
정말 미웠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에게서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 힘이 들어서 속상해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 일로 인해 대가를 치룬 채 혼자 죽어가고 있었다.
만약 우연히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문주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을 터였다.
그는 노인의 울음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제선문주는 마침내 울음을 그쳤다.
자신도 민망한 듯했다.
며 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 순간에는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은 완전한 상태에 가까웠다.
잘 쉬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령독화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는지 여쭈려고 왔습니다.”
“무령독화?”
문주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이제는 뭘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등의 의문과 고민이 속속 자리할 때쯤 그에게 들려온 질문은 문주를 다시 문주답게 만들었다.
“운이 좋군. 잘 찾아왔어. 무령독화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네. 정말 지겨울 정도로 알지. 그 남궁세가주 때문에 말이야. 무령독화를 구해오라고 얼마나 닦달을 해댔는지. 무령독화를 찾지는 못했지만 무령독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는 정말 잘 아네. 세상의 어떤 약재보다도, 내가 매일 쓰는 약재보다도 그 녀석을 더 잘 알지.”
아진은 린린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들에게는 무령독화가 있었고 그들의 앞에는 무령독화에 대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세상이 아진과 린린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다 있을 수가 있는 건가 하면서 아진이 문주를 보자 문주는 아주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