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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42화 (142/470)

제142화

142화

아진이 검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하는 것을 보고 앞에 있던 이들이 비죽 웃었다.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곧 죽을 놈이기도 하고 우리를 위해 기특한 짓을 한 놈이기도 하니 특별히 말을 해 주지. 우리는 사혈독문이다. 우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겠지.”

“…….”

아진은 그런 독문에 대해 처음 들었다.

혹시 린린은 아는 게 있을까 했지만 린린에게까지 물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독문의 독공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것을 예측해서 공격할 방법을 떠올리는 게 나았다.

사천당문의 당채운과는 여러 번 검을 섞기도 했지만 그는 대련할 때 독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독공을 하는 자가 동시에 독공 외의 다른 무공까지 잘하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일이었고 사천당문에 속한 사람들도 어려서부터 독공을 익힐 것인지, 일반적인 무공을 익힐 것인지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서 수련을 해 나갔다.

당채운은 독공은 도외시한 채 무공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사람이라서 당채운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독공에 대한 견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독은 그 효과가 대단하지만 해독을 할 수 있으면 효과에 한계가 있어서 사천당문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무공의 비중을 늘린 듯했다.

아진은 눈앞의 자객들을 노려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피부가 조금 검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독공을 연마한 영향 때문인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독공을 익히는 사람들은 몸 안에 어느 정도 독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일 가능성이 컸다.

“지나치게 신중하군. 겁을 먹은 모양이야.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나.”

눈앞의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너는 무령독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우리는 그걸 모르지. 찾으면 되기는 하겠지만 찾는 건 귀찮은 일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힘을 보여주겠다. 그걸 보고 너는 무령독화를 순순히 내놓는 거야. 공정하지?”

“응.”

아진이 순순히 말하자 그가 웃었다.

“머리가 제법 잘 굴러가는 건가?”

그러면서 무시하는 웃음을 짓더니 손을 썼다.

손을 쓴 것은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움직인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은 내공이 움직여 스스로 보호하려 하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그러지 못하게 했다.

독공에도 관심이 생겼고 그 공격을 몸으로 겪어 보면 오랫동안 수련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 이치를 터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오……?’

아진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오라버니!”

린린이 벌떡 일어나서 아진의 앞으로 달려 나와 그를 막았는데 아진은 자신의 온몸에 있는 모든 모공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엄청나다!’

순간적으로 그런 일을 일으키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한 독일까 하면서 아진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신기했다.

마나는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듯이 몸 안 구석구석을 돌며 아진의 몸을 회복해 나갔다.

이제 놀라움은 아진에게서 옮겨 가 눈앞의 남자 몫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몸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온몸에서 검붉은 피가 나온 것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라 그는 아직 아진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완전히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진이 죽었어야 할 시점이 지나고도 죽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놀랐던 것이다.

“사람 좀 작작 좀 놀라게 해!”

린린은 아진이 괜찮은 것을 알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자객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독이던가.

사혈독문의 사혈십독.

조사 때부터 비밀리에 내려오던 하독술이었다.

독 자체의 위력도 강하지만 그것의 독성을 유지하며 순식간에 사람을 향해 날리는 기술은 아무나 갖고 있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사형 청월은 독문의 극독을 다루는 하독술을 완전히 섭렵한 몇 안 되는 고수였음에도 독문의 대사형답지 않은 청순한 별호를 고집하고 있었다.

‘하독술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분명히 피가 쏟아졌다. 그런데 어떻게 저자는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혹시 이미 무령독화를 먹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령독화에 자기가 알지 못하던 피독의 효과까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무령독화를 반드시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서 무령독화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네 누이는 죽는다.”

청월은 공격의 대상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서 독기를 막아주는 장갑이 녹아들고 있었고 청월은 재빠르게 그것을 교체했다.

독공으로 아무리 숙련된다고 하더라도 사람 몸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특히나 극독을 다루기 위해서는 피독의 기능이 있는 여러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아진에게 사용한 독은 그 독성이 아주 강했고 순간적으로 사람의 내장을 전부 녹이고 온몸의 모공으로 검붉은 피를 쏟으며 죽게 하는 것으로, 만약 그가 맨손으로 하독을 했다면 청월의 손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진은 그가 장갑을 바꿔 끼는 것을 보았다.

‘저런 장갑도 값이 많이 나가겠는데?’

이미 그 독의 위력을 경험한 아진이었다.

그랬기에 그 독을 견뎌 내는 장갑에 탐이 났다.

“그 독과 그 장갑이 있으면 좀 전에 한 그것을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아진은 솔직히 그게 궁금했고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 말을 들은 청월은 기함했다.

어떻게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피독 장갑을 꼈다고는 하지만 하독을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데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청월은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도대체 어떤 괴물인가 하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재수 좋게 무령독화를 손에 넣은 자인 줄만 알았다.

사실 아직도 그는 아진이 무령독화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객잔 주인은 아진과 린린이 산에서 내려온 것 같고 지나치게 들뜬 것 같은 데다 옷에 묻은 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객잔의 움직임을 늘 주시하고 있었고 독문에서 배분이 높은 청월이 가까운 곳에 대기하며 지키고 있을 만큼 이곳에서 나오는 정보를 중요하게 취급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그 정도의 말은 그냥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청월은 그 이야기만큼은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평소에 믿을 수 있던 사제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온 것이다.

무령독화.

어쩌면 오늘 그것의 고고한 정체를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황홀감에 떨며 객잔에 투숙한 자들을 죽이고 이곳에 이르렀는데 눈앞에 있는 자가 심상치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곳에서 무령독화의 주인을 죽이고 그것을 뺏어 가는 것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았다.

청월은 뒤로 물러서며 아진을 향해 독장을 날렸다.

그것은 전면에서 날리는 것보다 상대가 방심했을 때 후미에서 공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호오……!’

아진은 이번에도 내공의 움직임을 일부러 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내공에 의해 보호됐을 것이고 지금처럼 이렇게 회색 먼지를 쌓아 만든 인형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오라버니!”

린린은 그날 몇 번이나 놀라고 있는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진의 모습이 아주 강렬한 화기에 타서 재만 남은 것 같은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린린이 아진을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진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청월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는 멍하니 아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독장을 정통으로 맞고 몸이 재로 화하기까지 했으면서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진은 독공이라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는 것인지도 알겠고 독공에 맞는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내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는 말고 방어 위주로 하는 게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상대가 너무 많은 의외성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잘못 건드리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폭발물을 주의해서 다룬다는 심정으로 대하기로 한 것이다.

청월은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독장을 날렸고 아진은 딱 그것을 막을 정도의 장력을 내보냈다.

허공에서 부딪친 두 힘은 그대로 소멸했다.

“……!”

청월은 자신의 독장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상대가 딱 그 정도의 힘만을 가한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충분히 더 강한 장력을 방출할 수 있으면서도 정확한 크기를 계산한 것이다.

거기에서 더 선을 넘었다면 상대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위험해졌을 터였다.

‘저자는 대체 어디까지 생각을 하는 것인가.’

청월은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의 공격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그동안 숙련되지 않았던 것까지 꺼내 보였는데 청월의 손에서 녹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그의 사제들이 기겁하며 청월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아진은 그들이 청월을 돕지 않는 것을 희한하게 여겼는데 그것도 독공의 특성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독공을 하는 사람들은 연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합격을 가하는 것보다 혼자서 싸우는 게 편한가 보다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듯한 것이, 자기가 생각한 공격과 사용하려는 독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순간 서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독은 저 사람 몸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진은 그 공격이 이전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전의 공격이 독을 가지고 있다가 뿌리는 거였다면 이번에는 몸 안에 들어 있던 독을 사용해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독사처럼.

이번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한 아진이 두 손을 공중으로 휘둘렀다.

저 정도의 장력을 막아내려면 검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청월은 이번에야말로 끝을 본다는 생각으로 아진을 노렸다.

‘녹여 버린다. 형체도 남기지 않고 죽여 버린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무령독화를 스스로 찾는 것이 귀찮기는 하겠지만 눈앞의 상대는 여유를 두고 데리고 놀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실이 점점 명확해져 갔다.

청월이 그렇게 나올수록 아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면서 당황했지만 그동안 당해 보지 않았던 공격을 당하면서 아진은 자기가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기술들을 꺼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였어? 하는 신기함으로 아진은 여러 가지를 새롭게 시험해 보는 중이었다.

청월은 자신의 독장을 상대하면서 아진이 웃는 것을 보며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미친놈도 저런 미친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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