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141화
“제가 생각하기엔 소협도 이 산에 무령독화 때문에 오신 것 같은데. 혹시 아닌가요?”
“예? 아닙니다. 산에서 굴러서 이 모양이 된 겁니다.”
“그렇군요. 제가 본 분들도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무령독화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고 헛된 꿈을 꾸며 한탕을 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령독화를 잡으러 오시는 분들은 정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오시거든요.”
“아…… 그렇군요.”
“예. 특히나 무령독화는 독공을 익히는 문파에는 아주 중요해서 말입니다. 무령독화가 없으면 대성을 하지 못하는 독공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만약 운 좋게 무령독화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정말 엄청난 거죠. 독공을 하는 문파에 팔 수도 있고 내공 증진을 원하는 무인들에게도 팔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독기가 너무 강한 것은 아닌가요? 그러면 아무나 복용을 하지 못할 텐데요.”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만 아직 무령독화를 직접 손에 넣은 분이 없으니 그 걱정보다는 무령독화를 손에 넣을 생각부터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무령독화의 복용 방법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걱정을 해야 한다면 정말 좋겠죠. 그건 무령독화를 갖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객잔 주인은 그런 사람이 정말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도 무령독화를 찾으러 가는 분들을 보면 나도 진작 무공을 배워서 그런 영초 같은 거나 찾으러 다닐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령독화가 아무 사람 앞에나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그건 천운이잖아요. 제 앞에 나타날 수도 있는 거고요. 그거만 있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 필요도 없는 건데.”
무령독화는 무림계의 로또와 같은 존재인 듯했다.
비단 무령독화 뿐만 아니라 영초나 영약들이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내공을 얼마나 증진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무령독화 정도면 확실히 로또라고 봐도 좋을 듯했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봅니다. 어서 올라가시지요. 물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혹시 새 옷이 필요하시면 그것도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돈은 따로 내셔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도 부탁하겠습니다.”
“예. 소협. 입고 있으시던 옷은 세탁을 할까요?”
그것도 따로 돈이 들어가지만 그러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가 먼저 린린을 씻게 하고 자기도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자 온몸이 노곤해지며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내공이 있고 거기다 마나까지 중첩적으로 갖고 있어서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식으로 피로를 풀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맛 난다는 생각.
이제야 피로가 풀린다는 생각.
‘무령독화…….’
아진은 무령독화에 대해 생각하며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로또도 제각각 급이 다르다.
일등이 많이 나와버리거나 하면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돈이 그리 많지 않은데 무령독화는 혼자서 먹는 로또나 다름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뿌리가 얼마나 길었느냐 이 말이지.’
무령독화의 뿌리를 봤던 아진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목함 속에 든 무령독화를 떠올렸는데 지금은 그 뿌리가 다 사라졌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됐다.
어떤 조건에서 무령독화가 뿌리를 뻗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직 알아야 할 게 많네.’
약초제서에도 무령독화에 대한 얘기는 다 나와 있지 않았다.
무령독화에 대한 내용이 적힌 고서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그걸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움직이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큰 탓도 있었다.
아진이 오랫동안 물에 몸을 불리고 있다가 나갔더니 무슨 목욕을 그렇게 오래 하냐면서 린린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오. 여동생이랑 너무 오래 있었나 봐.’
아진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그래도 린린 때문에 지루한 건 모르고 지낸다고 생각했다.
“린린. 무령독화에 대한 게 적혀 있는 책을 찾아야겠어.”
그러면서 그는 객잔 주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린린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만한 뿌리로 내공이 삼십 년 치나 는다고? 그게 두 번이나 중복이 되고?”
린린은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약의 효력이 중복돼서 나타난다는 건 정말 엄청난 얘기잖아, 오라버니.”
“나도 알아. 잘만 하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겠어. 그런데 일단은 무령독화의 복용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그다음에는 뿌리가 다시 나오게 해야 해.”
“뿌리가 나오게 하려면…….”
린린은 무령독화가 들어 있는 목함을 보며 제 턱을 문질렀다.
“산에 가서 던져놓기만 하면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러면 다시 숨으려고 하면서 뿌리를 내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는 무령독화를 다시 놓칠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이 따르지.”
“그렇겠네.”
“그때 뿌리를 바로 자르는 게 낫겠어. 일단 뿌리가 다 잘리면 무령독화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잘린 뿌리는 무령독화에게 돌아가지 못할 거야.”
“그럴 것 같긴 하다.”
그러면서도 아진은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린린은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는 무한테도 동정심을 느끼는 모양이야.”
“이건 무가 아니잖아. 살아서 움직이잖아.”
“살아서 움직이면 전부 다 동정심이 생겨? 다 불쌍해?”
“그건 아니지만 이건 귀엽잖아.”
아진은 린린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들어도 그런 싸늘한 눈길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와. 어쨌든 무령독화만 있으면 일이 한 번에 해결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무령독화에 대한 기록이 나온 책을 어디에서 찾지? 그건 네가 찾고 나는 다른 영초를 찾는 걸로 하고 그럴까. 린린? 어차피 너는 혼자서도 잘 다닐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나는 지금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린린은 아진과 함께 다니면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하는 지금이 좋았다.
수련만을 위해서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있었기에 솔직히 린린은 아진이 말하는 것들을 꼭 전부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그런 것들을 목표로 두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새로운 일이 닥친다는 것을 린린은 잘 알고 있었다.
아진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린린은 자기가 겪었던 삶이 더 혹독했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매번 던전에 가서 레이드를 하면서 성과라도 있었지, 자기는 무공의 성취를 위해서 끝도 없이 그것을 탐구하고 정진해야 했기에 더 외롭고 고통스러웠다고 여겼던 것이다.
“같이 다니면 안 돼. 오라버니?”
린린이 그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아진도 왜 그러는 건지 대충 이유가 짐작돼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가 외로워서 그런다는데.
그런 부탁을 SSS급 헌터가 아니고 누가 들어 주겠는가.
어차피 린린의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은, 거기다가 그 고충까지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서 아진은 그냥 린린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천마신공 중에 하나 내놔.”
“알았어. 배우고 싶은 건 아무거나 다 말해.”
“나는 천마신공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 그러니까 네가 알려 줘야지.”
“불구덩이를 만들어서 던지는 것도 있는데. 구결이 다 기억이 안 나기는 하는데…… 아. 그것도 문제네.”
린린은 구결을 잊어버린 무공이 많다면서 아쉬워했다.
처음에는 구결도 열심히 외우고 여러 번 반복했지만 꼭 사용할 일이 없는 것은 점점 안 쓰게 됐고 나중에는 다 잊어버렸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사용하게 되는 건 별 것 없거든. 그렇잖아?”
그 말을 들으며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공이 무궁무진하다면야 허공섭물 같은 걸 마구 사용해서 손을 안 움직이고 물건을 움직이겠지만 그게 다 내공 소모로 이어지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귀찮아도 그냥 몸을 움직여서 물건을 옮기는 게 나았던 것이다.
흑주에서 은은한 빛이 나와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두 사람은 각자 침상에 누웠다.
지치는 하루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 같았다.
무령독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목함을 열어볼까?”
“그래도 될까, 오라버니? 갑자기 확 튀어나와서 도망치지는 않겠지?”
린린이 말하고 있을 때였다.
아진은 그대로 일어나 검을 집어 들고 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때를 맞춰서 문이 부서지고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이게 독공인 건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아진이 침입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몸에는 이미 피가 튀어 있었는데 그들의 것은 아닌 듯했다.
‘설마. 객잔 주인의 연락을 받은 건가? 살인멸구를 하려고 방에 든 사람들을 전부 죽인 거고?’
무령독화를 노린 자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아진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린린에게는 따로 전음을 보낼 필요도 없었다.
린린이 만약 무령독화가 든 목함을 챙기려 했거나 그게 있는 곳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그들은 거기에 무령독화가 있다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무령독화를 지키기는 해야 하지만 눈에 띄게 하지는 말아야 했는데 그들은 린린과 아진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두 사람에게서 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무령독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 순순히 내놓으면 편히 죽을 수 있게 해 주겠다.”
“우리가 무령독화를 가지고 있다고 누가 그러지?”
“누가 그러겠나? 뻔한 걸 묻는군. 그래도 궁금하다면 알려주겠다. 객잔의 주인은 우리 문파의 문도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을 위해서 여기에 심어 두었지. 그리고 무령독화를 구한 사람이 오면 우리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머리는 잘 쓴 것 같았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영초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남이 찾아온 걸 뺏는 게 더 쉽고 편했을 테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한테는 그게 없다. 하지만 여기에 함부로 들어온 이상 나는 너희를 살려 줄 생각이 없다.”
“크크크큭. 그렇군.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드는군. 재미있겠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나는 너희가 무령독화를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옆 방에서 죽어간 자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무령독화도 없는데 그것 때문에 죽은 거라면 말이다.”
자기들이 죽인 거라는 것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말하는 그들이었다.
아진은 검을 들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그냥 공격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무령독화를 노리고 문도를 객잔의 주인으로 위장까지 시킬 정도라면 단순히 무령독화를 돈으로 환산하려고 한 사람들이 아닐 거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독문.
무령독화를 이용해 독공을 대성하기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될 듯했다.
살을 가르고 뼈를 바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했다가 그것이 무언가에 불을 댕기는 격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