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140화 (140/470)
  • 제140화

    140화

    “흑주가 갑자기 왜 저러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린린과 아진은 흑주를 쫓아갔다.

    흑주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두 사람이 흑주를 쫓아가는 게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린린은 한참을 가다가 아진이 잘 따라오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그가 옆을 지나 오히려 자기보다 앞서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흑주가 느낀 모양이야. 영초가 있는 곳을 알아챘나 봐.”

    “오라버니. 나 좀 챙기고 다녀.”

    “응. 조금 이따가.”

    아진의 목소리는 이미 저만치 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린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기가 천마라는 걸 차라리 말하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걸 말하고 난 후부터는 한없이 방치를 하는 것 같아서였다.

    흑주는 희한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 앞에 있는 게 영초라면 짐승을 쫓는 것처럼 그렇게 동작이 정신 사납지 않을 텐데 목표가 이동하는 것처럼 흑주의 이동 경로도 계속해서 변했던 것이다.

    ‘정말 영초가 움직이나? 신기하네. 아니. 영초가 왜 움직여? 영수라면 모를까.’

    아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흑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갔다.

    흑주는 정말로 빨랐고 이윽고 어느 지점에 가서 영초를 발견한 듯 그 주위를 맴돌았다.

    여기에 있으니까 빨리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아진이 다가갔을 때 그곳에는 땅 위로 올라온 무 같은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걸 본 순간 아진은 그게 언젠가 짱돌이 가져왔던 무와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기는 비슷한데 굵기라거나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냈는데 따지고 보면 미인과 못생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위별로 크기나 높이의 차이가 그렇게 극적인 건 아닌데 그렇게 생겨난 차이가 모이고 보면 눈을 둘 곳이 없기도 하고 눈을 뗄 수가 없게 되기도 하지 않던가.

    아진은 뒤집힌 무 같은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영초라는 것을 확신했다.

    흑주는 살금살금 뒤로 물러섰다.

    자기 때문에 영초가 놀라서 도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아진 역시 초조함을 숨긴 채 살며시 다가갔다.

    “오라버니! 찾았어? 정말 있어?”

    그때 장군 같은 목소리로 린린이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흑주와 아진의 합동작전은 성공을 거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린린이 워낙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영초는 놀라서 도망쳐버렸다.

    분명히 땅에 뿌리를 내린 식물인데 도망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진은 그대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렸고 린린도 아진이 놓친 영초를 향해 과감히 몸을 던졌다.

    영초를 원래 이런 식으로 캐는 건 아닐 텐데 미친 듯이 도망 다니는 바람에 방법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검풍이라도 날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다가 영초가 상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계속 몸을 날리기만 하고 있었다.

    “잡았다!”

    린린이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린린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 가버렸다.

    “어디? 지금 네가 가지고 있어?”

    아진이 기대하며 다가갔지만 린린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땅속으로 도망쳤어.”

    “와아…… 못 됐네. 땅속으로 가는 게 어딨어?”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의 사정이지 영초에게는 그들에게 붙잡혀 줄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마령독화.

    독공으로 대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영초.

    ‘저건 꼭 있어야 하는데.’

    아진은 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잠깐만. 마령독화? 그런 영초는 놔두고 다른 걸 먼저 찾자고 했던 거 아니었나? 그런데 여기에 있는 게 마령독화인가?’

    얘기를 들었던 것 중에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불평하기보다 일단은 손에 넣는 게 급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가기는 너무 아까웠다.

    더군다나 아진과 린린의 성격에, 자기들을 그렇게 농락한 녀석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비켜봐. 내가 땅을 팔게.”

    아진이 말하자 린린은 좋은 생각이라며 뒤로 물러났다.

    “너무 세게 하지는 마. 그냥 지표의 흙을 걷어낸다는 느낌으로 해.”

    “응.”

    흑주도 적절히 그들을 도왔다.

    영초가 있는 곳에 집중하고 있다가 그곳에 빛을 밝혔던 것이다.

    아진이 강하게 진각을 밟자 지표가 위로 튀어 올랐다.

    영초가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고 어디쯤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기에 한 번에 크게 힘을 주지는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서 나눠야 했는데 그 중간 지점을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저기 있다! 린린. 잡아!”

    “응!”

    린린이 몸을 날렸지만 영초는 린린을 놀리는 것처럼 이번에도 더 깊이 들어가려 했고 보다 못한 흑주가 몸을 던져 영초를 때렸다.

    영초는 흑주가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고 흑주가 날아와 부딪치는 바람에 그 충격에 잠시 멍해진 듯 멈춰 있었다.

    아진은 검을 내려놓은 채 영초에 몸을 날려 두 손으로 몸통을 꽉 붙잡았다.

    손에 땀이 맺혀서 놓칠 것 같았지만 아예 두 팔로 꽉 끌어안고 두 다리로도 몸통을 조였다.

    린린도 어느새 가세해서 영초의 아랫부분을 파냈다.

    그러자 영초의 긴 뿌리가 아래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 보였다.

    “오라버니. 영초를 잡고 위로 올라가 봐.”

    “알았어. 기다려.”

    그는 바닥을 박차고 이형환위를 펼쳤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무 꼭대기까지 이른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면서 린린을 내려다보았다.

    린린이 티끌만 하게 보였으니 얼마나 높이 올라온 건지 알 수 있었다.

    4층짜리 전각의 높이는 족히 되고도 남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린린이 손에 뭔가를 들더니 아진이 그랬던 것처럼 바닥을 차고 뛰어올랐다.

    ‘설마. 아직도 뿌리가 남은 거라고?’

    저 정도라면 정말 영초가 아니라 괴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뿌리가 아니라 몸의 특수한 기관일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진은 제 품에 안겨있는 몸통을 보았다.

    아직도 기분이 나쁜 듯 바르작거리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아진은 시험 삼아 사람의 혈과 비슷한 곳을 눌러 보았다.

    그때까지도 활어처럼 튀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던 녀석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어어어?”

    린린이 괴상한 소리를 내서 보자 린린의 손에 잡혀 있던 것이 사라져 버렸고 그녀는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린린?”

    아진이 확신하는 어조로 묻자 린린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게 린린을 구하려고 몸을 날리는 것도 없이 나무 꼭대기에서 무 같은 영초 몸뚱이만 안은 채 말로만 그렇게 묻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아직 안 놓쳤어, 오라버니?”

    “응. 내가 점혈했어.”

    “점혈?”

    린린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아진은 영초를 안은 채 바닥으로 내려섰다.

    “뿌리가 줄어들었네? 그거 내가 점혈해서 그런 것 같아.”

    “영초한테 혈이 있다고?”

    린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면서 마령독화를 구경했다.

    “그럼 영초가 아닌가 보지. 영수던가.”

    “역천마의라면 알지 모르는데. 역천마의는 이런 쪽으로 모르는 게 없거든.”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겠다.”

    “그런데 그거. 다시 또 깨어나면 도망치려고 하지 않을까? 산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녀석이 이 산을 너무 잘 알아서 잘 숨는 것 같아. 또 도망치면 다시 잡기 힘들 것 같으니까 이것도 목함 같은 데에 넣어 놓자, 오라버니.”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흑주도 목함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했던 게 생각나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린린과 흑주는 마령독화에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나 흑주는 마령독화에 딱 붙어서 가고 있었다.

    좀 적당히 위로 떠 줘야 어두운 앞이 보일 텐데 그래서야 오히려 거치적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정말 무에도 혈 자리가 있어?”

    “그러니까 무가 아닌 거지.”

    산에서 내려간 두 사람은 급한 대로 객잔에 들어가 목함을 얻을 수 있겠냐고 물었고 투박하기는 하지만 효과는 확실해 보이는 목함을 구할 수 있었다.

    먼저 흑주를 넣어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마령독화를 집어넣었는데 그 일까지 마치자 한꺼번에 피로가 느껴졌다.

    “와…… 꼴이 정말…….”

    아진은 뒤늦게 린린을 봤다가 땅속에서 튀어나온 강시 같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차림도 살폈다.

    다를 것이 거의 없었다.

    “마령독화가 맞으면 좋겠다. 그런데 맞는 것 같지?”

    아진은 품을 뒤져 약초제서를 꺼내 마령독화를 찾았고 비슷한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렸다.

    뿌리가 그렇게 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건 너무 오래 자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씻을 물을 부탁하러 밖으로 나가자 객잔 주인은 마침 손님이 없고 무료해서 그랬는지 아진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산에서 무령독화라도 보신 것 같습니다.”

    “예?”

    영초나 영약을 손에 넣은 것이 알려지면 그때부터는 온갖 위험이 따라붙게 되어 있기에 아진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 객잔 주인이 먼저 말을 걸어오자 괜히 눈치가 보였다.

    “이 산에는 무령독화가 산다고 합니다. 아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런 걸 아는 사람은 웬만하면 혼자만 정보를 가지고 자기가 찾으려고 할 텐데 무령독화는 잡을 수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래서 여럿이 힘을 모아서 무령독화를 잡으려고 산에 오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왜 무령독화를 잡는다고 말씀하시지요? 캔다고 하지 않고요?”

    “아아. 그 녀석이 반은 식물이지만 반은 동물이라서 그렇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사람이 다가가면 움직이기도 하고 뿌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오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뿌리도 효험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손가락 길이의 뿌리를 쪄서 먹으면 삼십 년 치의 공력이 증가한다고 하던데요?”

    “손가락…… 길이요?”

    아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령독화의 뿌리가 얼마나 길었는지 생각이 나서였다.

    뿌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오기도 한다는 말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 그걸 손가락 길이로 자르면 몇 개가 나올까?’

    무림에 온 이후 한동안 안 쓰던 말이 생각날 정도로 흥분이 됐다.

    “더 대단한 게 뭐냐면 그게 두 번까지는 효과가 중복해서 나타난다지 뭡니까? 아직 무령독화를 직접 잡아서 먹어 봤다는 사람은 없어서 확실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고서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다고 해요.”

    “아…….”

    두 번까지 효과가 중복해서 나타난다면 무령독화를 이용해 일갑자까지 내공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일갑자까지 내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영약은 많지 않았고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진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거라는 생각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기 표정이 객잔 주인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잡기만 하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겠네요.”

    “그렇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헛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이 산에 오르는 거고요. 그것 때문에 객잔이 유지가 됩니다. 그게 아니면 사람이 지나갈 일이 없거든요.”

    “그렇군요.”

    객잔 주인은 아진을 주의 깊게 보더니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