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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39화 (139/470)
  • 제139화

    139화

    “아 참. 그 섬에 그 너구리들이 떼거리로 모여서 살고 있다고 내가 공자님한테 말씀드렸나?”

    아진과 린린이 떠나고 한참이 지나 송효원이 주위에 있던 혈천방 패거리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송효원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어차피 그 얘기도 다 거짓말일 텐데…… 모르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공자님이랑 아가씨가 그 섬으로 가실 것 같지도 않고요.”

    “맞아요. 저라고 해도 다른 데로 가지 그 섬에 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워낙 뜬구름 잡는 소리잖아요. 다른 얘기들은 다 근거가 있는 얘기들인데 그건 그 미치광이 혼자만 하는 말이고요.”

    “그렇지? 그렇겠지? 공자님을 믿어도 되겠지?”

    “그럼요. 아진 공자님이 원래…….”

    뭔가 안심이 될만한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송효원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 정말 괜찮으시겠지? 그리고 그런 너구리가 그 섬에 떼거리로 살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리고 육지에서 백 리가 넘게 떨어져 있고 바닷길이 험해서 배도 안 다닌다고 했으니까 그 섬에 가지도 못하실 거야. 그렇지?”

    “…….”

    송효원은 마음을 놓고 싶어서 자꾸 물었는데 누구 하나 그 말에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왠지 아진 공자님이라면 그런 섬에도 너끈히 갈 수 있을 것 같고, 아진 공자님이 가는 곳에는 그런 너구리가 떼로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에이. 아가씨도 같이 가셨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있자고.”

    그리고 그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손을 가만히 놔두고 있으면 스멀스멀 걱정이 밀려와서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린린과 함께 가는 길은 재미있었다.

    다른 때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말을 하려고 애쓰는 쪽은 대부분 아진이었지만 이번에는 린린이 특별히 아진을 신경 쓰고 있어서 자기가 천마였을 때의 일도 종종 들려주었던 것이다.

    “천마신교에도 유명한 의원이 있는데 그쪽은 오라버니나 아버지처럼 하는 건 아니고 어. 당문이랑 비슷하려나? 그런데 당문이 어떤 식인지도 잘은 모르겠네. 어쨌든 그래. 오라버니도 역천마의라고 들어 봤어?”

    “역천마의? 뭔가 이름이 세다? 하늘을 거스른다는 뜻인가? 하늘이 죽이기로 한 사람도 살려낸다는 의미이려나? 뭔가 멋지기는 하다.”

    “그렇지? 정말 대단했어. 역천마의는.”

    린린은 말을 하려다가 아진의 눈치를 보았다.

    뭔가 비윤리적인 실험을 자행했다는 말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뭔데 그래? 별로 기대치가 안 높아서 놀라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린린은 천마신교와 이제 상관이 없는 것처럼 굴면서도 막상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좋아하지 않았다.

    아진도 린린의 표정이 안 좋은 걸 알고 바로 사과했다.

    “미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야.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린린은 생각에 잠기는 얼굴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역천마의는 죽어 가는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는 신교의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대법을 연구하는 데 중점을 뒀어. 특별한 무재를 가진 사람을. 나도 역천마의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역천마의가 아니었으면 그 많은 마가의 소가주들을 젖히지도 못했을 거고.”

    “대법이 위험하지는 않았어?”

    “위험했지. 매번 목숨을 걸어야 했고. 몇 번은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죽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너는 왜 그런 짓을 했어? 그렇게 강해져서 뭘 하고 싶었던 건데?”

    “하고 싶은 게 없어도 강해져야 했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를까 나는 일찍부터 눈에 띄었고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어. 그건 설명 안 해 줘도 알겠다. 딱 보면 그렇게 생겼잖아.”

    린린은 아진을 한 번 흘겨보고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정파에 명문세가가 있는 것처럼 신교에는 사대마가가 있었어. 각각의 마가는 전대 교주의 아들인 소지존들을 지지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자기들이 지지하는 소지존이 소교주가 되고 교주가 되기를 바랐어.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너무 특출나기만 했고 신분이 좋지는 않았어.”

    아진은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정말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아예 재능이 없으면 모르는데 재능은 있고 그걸 뒷바라지해 줄 배후가 없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게 없다.

    그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데 역천마의가 너를 도와준 거야?”

    “응. 그게 교주님의 방침이었어. 재능이 보이는 사람은 키우고 강하게 만들라는 거. 강한 전사를 보유하는 건 신교에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건 위험 부담이 정말 많이 따랐고 나는 나 같은 운명을 가진 다른 전사들이 어떻게 되는지 다 봤어.”

    “죽었어?”

    “응.”

    린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린린에게도 전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 안타까웠다.

    “너라도 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지 그랬냐.”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야.”

    린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아진은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지금의 순간을 더 행복하게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내 동생은 매번 살아난 거구나?”

    “응. 대단하지?”

    “그러게. 정말 그래. 그럼 그 사람은 지금도 살아 있을까? 실망이 컸겠다. 자기가 밀던 네가 결국 교주가 돼서 인생이 펼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역천마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실 내가 교주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을걸? 신교를 위해서 강한 전사를 키운다는 거. 아니. 어쩌면 신교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알고 있는 기술을 이용해서 강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았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없어도 잘살고 있을걸?”

    “그 사람은 지금쯤 많이 늙었겠네? 할아버지가 됐겠다.”

    “여자야.”

    “여자?”

    아진은 당연히 남자일 줄만 알았기에 그 말에 더 놀랐다.

    그러면서 독고소영이 늙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모습과 비슷할 것 같다고 여겼다.

    “신기하다. 교주도 여자고 신교 최고의 마의도 여자라는 게.”

    “역천마의가 신교 최고라고 내가 말 했었나?”

    “응. 아마 했을걸?”

    린린에게 그 정도 찬사를 듣는 사람이 신교 최고가 아닐 리가 없을 것 같았다.

    린린도 부정은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마의는 정말 최고였어. 오라버니하고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극을 받을 수도 있을 거고.”

    그래도 할머니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아진은 그 만남을 사양하고 싶었다.

    어차피 역천마의를 만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잘 지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입은 다물고 있었다.

    “어디에 먼저 갈까?”

    “가까운 곳 먼저지.”

    린린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했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뻔한 질문을 했던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너는.”

    한참을 가다가 아진이 말했다.

    “한 사람은 있는 거네.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야.”

    “왜? 역천마의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은 걸로 치자면 꽤 많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꽤 될걸? 그래도 나 거기에서 인기 좋았어. 신교의 전사들은 강한 교주를 좋아하거든. 나는 역대급으로 강한 천마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고. 그래서 전사들이 다 나를 잘 따랐어.”

    그건 린린과 잘 어울렸다.

    아진은 린린이 태사의에 앉아 사람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마부석에 앉아 구겨진 쓰레기처럼 널브러져서 가는 것과 별로 다름없는 동작으로 앉아 있었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도 고생이 많았다.”

    “그건 그래.”

    린린은 빠르게 시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역천마의는 예뻤고?”

    “예뻤지. 죽여줬지. 얼굴은 정말 대단했거든.”

    “혹시 대법으로 그렇게 된 거야?”

    “아니? 대법으로 내 얼굴을 고쳐 주기는 했었어. 천마였을 때 내가 너무 미인이라 귀찮은 일이 정말 많았거든. 그래서 역용술도 자주 했는데 매번 구결을 외우는 것도 귀찮고 해서 아예 얼굴을 바꿔 달라고 했어.”

    아진은 린린이 하는 말을 순진하게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은 맞을 것 같기도 했다.

    “역천마의는 결혼 안 했어? 역천마의가 결혼해서 딸을 낳았으면 딱이겠다. 응?”

    “아아. 역천마의한테 관심 있어? 관심은 있는데 나이가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싫은 거구나?”

    린린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이 만나는 거 찬성이야. 역천마의는 내가 그곳에서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이거든. 나를 여러 번 구해 주기도 했고 신의도 있고.”

    “린린. 너를 구해준 건 고맙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싫어. 그러니까 역천마의한테 딸이 있기를 바라보자.”

    린린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다 보니 어느덧 그들은 정해진 장소에 도착했다.

    * * *

    연정산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숲이 의례 다 그렇지만 그곳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밖은 아직 햇빛이 쨍한데 연정산의 초입에 들어서자 그때부터 빛이 모두 빨려든 것처럼 사라졌다.

    린린은 흑주를 꺼냈고 흑주는 야명주처럼 빛을 냈다.

    ‘아. 야명주? 이걸 야명주라고 하고 사기 쳐서 팔아볼까? 북궁마영이나 하월한테?’

    조그만 크기의 야명주 하나로 성을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 조그맣다는 게 어느 정도 크기인지는 몰라도 흑주라면 그보다 훨씬 더 비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린린. 흑주 말이야. 야명주는 아닐까?”

    “야명주? 빛이 나기는 하지만 야명주랑은 다르잖아.”

    “그래도 야명주라고 하면 속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

    린린은 아진이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듯했고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기는 하겠네.”

    그러다가 린린이 정색을 하며 아진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정말 재미있겠는데? 우리 흑주는 돌아오잖아. 상자에 넣어놔도 아마.”

    “아니야. 전에 목함에 갇혀 있던 거 기억 안 나냐? 상자에 넣어 놓으면 못 나와.”

    “아아…… 아깝네!”

    아진은 린린이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럴 때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자기랑 피를 나눈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하는 게 어떻게 자기랑 똑같을까 하면서 아진은 혀를 찼다.

    “흑주가 저번보다 더 커진 것 같지?”

    “응. 전에는 오라버니 머리보다 작았는데.”

    “이만한 야명주면 얼마나 나갈까?”

    그런 얘기를 하느라고 그들은 산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 알지 못했다.

    흑주는 크기만 커진 게 아니고 전보다 훨씬 더 밝아진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주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그때부터 빠르게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속에서 자신의 빛을 의지해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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