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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37화 (137/470)

제137화

137화

누구든 하월이 양자라는 사실을 발설하는 자가 있으면 하월은 어떻게든 그자를 색출해서 모진 고신을 가해 죽여 버렸고 세가의 사람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는 대가가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갔다.

북궁세가주는 밖에서 들여온 아들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결국 제 새끼를 물어 죽였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북궁마영이 워낙 흠 많은 자식이라 애정을 줄 개재가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요즘 무엇을 하고 지내느냐.”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기대되는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을 하도록 하여라.”

“예. 아버님. 아버님도 그래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저에게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법이구나. 기특한 것.”

북궁세가주는 웃음을 지었다.

하월에게는 여간해서 보여 준 적이 없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월의 생각이었을 뿐 그는 다른 자식들에게도 웃음을 지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러모로 사정이 특별했다.

사람을 시켜 알아봐서 북궁세가주도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흠을 잡을 수 없이 모든 것이 착실하게 진행이 된 느낌이었다.

표사들이 표물을 훔쳐갔다고 했을 때는 속이 짰는데 그 표물조차도 가짜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소름이 끼쳤을 정도였다.

북궁세가에서는 결국 어떤 손해도 없이 황금 이백 관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표물의 운반을 의뢰한 비용마저도 다른 자들이 부담하겠다고 해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었다.

황금 이백 관을 안겨주는 아들이라니.

북궁세가주는 자신의 통찰력에 연일 감탄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런 것을 어떻게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그 돈이면 만전을 천하제일의 전장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세가의 상단 역시 그런 규모로 키울 수 있을 듯했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지면 더 많은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구문제독부의 힘을 더욱 키울 수도 있었다.

구문제독부는 2대에 걸쳐 그들의 것이었다.

다음번의 구문제독도 북궁세가에서 나올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월이 이렇게만 해 준다면 가문은 앞으로 더욱 영화로울 터였다.

“하월아.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무엇을 하건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건 수치스러워 할 것이 없다. 너는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예. 아버님.”

그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내포되었을 터였다.

하월은 아버지가 산본의가를 상대로 벌인 일뿐 아니라 북궁마영에게 한 일도 알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 이상 이제는 산본의가의 일은 반드시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왕 하는 거라면 훨씬 더 이문을 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자면 산본의가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야 하겠지만 그에게는 그저 즐거운 일일 뿐이었다.

* * *

산본의가의 소식은 정의맹과 무림맹에도 퍼져 나갔고 소식을 들은 북리의천이 소청을 데리고 독고소영과 함께 산본의가로 찾아왔다.

그는 산본표국이 지게 된 막대한 빚 이야기를 듣고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나타났다.

아진의 표정이 그동안 자신이 알던 것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그는 산본의가에 정말 큰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아진아…….”

“스승님.”

아진은 침통한 표정으로 북리의천을 맞았다.

그것은 자기가 혈천방과 비룡채 사람들을 비롯해 표행에 나선 표사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지만 북리의천은 그의 표정을 오해했다.

아진이 표행의 실패로 인해 떠안게 된 막대한 빚 때문에 걱정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아진이 별로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가주와 가모를 찾아갔다.

“종욱 아우. 그리고 제수씨. 너무 크게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도 방법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북리세가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땅이 많아 황금 오십 관 정도는 융통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가주님이 그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오려고 했는데 그것이 결정되기를 기다리느라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독고세가에서는 황금 이십 관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땅과 전각을 내놨는데 곧 팔릴 듯합니다. 그래도 패물을 팔면서 돈을 좀 더 모아보겠다고 하고 있어서 황금 다섯 관 정도까지는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럴 때 전장에서 돈을 빌렸다가는 이자 때문에 원금은 갚지도 못하고 계속 불어날 수가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독고소영이 북리의천의 말을 이으며 가모의 손을 잡았다.

반쪽이 되어 버린 가모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표물 운반을 의뢰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만나서 시간 유예를 얻어 내겠습니다. 석 달 정도만 유예를 받는다고 해도 그사이에 돈을 좀 더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맹에도 말을 해서 돈을 빌려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정파 무림이 이렇게 강해진 데에는 나와 아진이의 공이 적다고 할 수 없을 테니 내 청을 야멸차게 거절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들은 반드시 자기들의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의지가 대단했다.

가주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시 제선문이 곳곳에 지부를 내고 환자들을 빼가는 상황에서, 아진이 만들어 낸 헛소문을 듣고 이렇게 한달음에 와 준 그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감정이 북받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세가의 운영은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땅과 전각을 팔면 세가의 무인들은 어디에서 지내라고요? 게다가 무인들에게 급여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형님.”

“그것은 이미 다 얘기가 되었네. 산본의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본가가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네. 본가의 무인들은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기로 했네. 나부터도 그러기로 했고 가주님과 원로회, 장로회 모두 그러기로 뜻을 모았네. 상부에서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니 마음 쓰지 않아도 되네.”

“우리 독고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가의 사람들은 아진에게 모두 목숨을 빚졌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전부 아진 때문인데 고작 그 정도 돈을 아끼겠나요? 그동안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지금 마련할 수 있는 돈이 겨우 그 정도인 것이 원통할 뿐이죠.”

가주는 말만 들어도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결국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것은 아진의 일입니다. 형님, 형수님. 아진이 저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 일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일인가. 아우.”

“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소문과 다릅니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북리의천은 아진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상심해 있는지 뒤늦게 깨닫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표행은 실패하지 않았고 표물도 갖고 있으며 그 표물이 가짜라는 것까지 전부 밝혀졌는데 아진은 표행을 의뢰한 자들이 하는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겉으로는 위약금을 준비하는 것처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만 봐도 무서운 아이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아진은 지금껏 언제나 그랬기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돈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이라고 하던가. 종욱 아우.”

“생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저에게도 말을 해 주지 않아서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기간을 유예하는 것이 좋기는 할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필요하다면 아진이 말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늦어져서 이자를 물게 되는 건 오히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면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돈을 좀 더 마련해 보도록 하겠네. 그건 아진이도 막을 수 없을 거네. 아진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어. 누가 내 청을 거절하는지, 누가 나에게 도움을 주는지.”

“그러십시오. 형님. 아진이는 강한 아이이지만 지금껏 이런 일을 거의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아진이가 미리 알고 해결을 해 왔었지요.”

“그래. 아진이를 잘 달래 주게.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건지. 북궁세가는 그대로 놔둘 수가 없겠군.”

북리의천이 화를 참지 못하며 말하자 서종욱이 웃었다.

“이미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진이가 저런 모습을 한 건 처음 봅니다. 북궁세가는 하지 않는 게 좋았을 일을 한 것입니다.”

북리의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진을 찾아갔지만 아진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진이 다른 것에 생각이 팔려 있는 듯, 북리의천이 하는 말에 집중하지 못해서였다.

그는 아진이 그저 막연히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아진의 옆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자기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아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

그것은 소청과 독고소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돌아간 후 아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바라본 곳에는 린린이 있었다.

린린은 깊이 상심한 아진에게 여러 말을 하는 대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찾을 수 있도록 그의 반경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린린은 아진이 저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그가 장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린린이 다가가자 아진이 입을 열었다.

“약초제서. 너도 본 적 있지?”

“응.”

“그중에 가장 뒤에 있는 것들. 영초라고 불리는 것들 있잖아? 그걸 캐야겠어.”

“그래. 좋아. 그리고 오라버니가 원하면 천마신교에 가서 내 비고를 털어올 수도 있어. 다른 곳에도 돈을 조금씩 숨겨두기는 했는데 다른 곳에서 찾는 것보다 처음부터 거기로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정말 그래도 된다고?”

“당연하지. 내 돈인데. 다 내 돈은 아니고 그 전부터 전대의 천마들이 모아 놓은 보물들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영초랑 영약도 있지?”

“응. 영수도 있고 황금이랑 보물이랑 비단도 썩어 나가고.”

“그래?”

처음에는 영초를 캐서 돈을 마련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린린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나와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오라버니?”

“북궁세가를 무너뜨리는 거로는 성에 안 차. 구문제독이 있는 한 북궁세가는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거야. 북궁세가의 사업체 하나가 무너진다고 해도 구문제독부를 통해서 지원이 들어가면 그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그렇기는 하지.”

린린은 그가 혹시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 걸까 하면서 아진을 바라보았다.

“구문제독부의 역할을 조금씩 줄여나가면 어떨까? 황성 수비의 역할 중에 일부를 구문제독부가 아닌 다른 조직으로 넘기는 거야.”

“이를테면?”

“동창이나 금의위. 동창보다는 금의위가 나한테는 좀 더 편할 것 같고.”

“금의위 도독이라도 되려고?”

린린은 아진에게 말을 했다가 안 될 건 또 뭐일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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