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131화
하다 하다 나중에는 아진이 흙을 한 줌 움켜쥐고 눈에 뿌리는 짓까지 서슴지 않자 문하생들이 난감해하며 그를 보았다.
“공자님. 그래도 이건…….”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합니다. 고고한 시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면 뭐든 해서 살아남고 공격을 성공시키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쓰러뜨리십시오. 그러셔야 합니다.”
아진은 그냥 겁만 주고 끝내지 않았고 끝까지 휘둘렀다.
그의 검에 맞은 문하생들의 옆구리가 갈라지고 팔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사람들은 이게 절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잘려나갔고 내장이 보이도록 배가 갈라진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내장을 밀어 넣으면서 싸우는 이까지 생겼을 때는 이것을 단순한 대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생명을 위협받으면서, 살아남을 방법을 급히 깨우쳐 나갔다.
아진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 중 어느 정도는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듯 그들은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아진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주기로 했다.
“결국에는 공자님도 지친다! 우리가 공자님을 이길 수 있다!”
“이겨 보자. 공자님을 이기면 우리도 별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 외친 말에 다른 이가 화답했다.
아진은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모두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의방으로 가는 게 좋았을 터였다.
아무리 산본의가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고는 해도 시시각각 느껴지는 통증을 참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그런 모든 감각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가자! 포기하지 마라! 이번만큼은 이겨 보자!”
“맞아. 이번만 이겨보자! 다 함께!!”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이긴다고 해도 아진과의 싸움에서만큼은 승산이 없었을 텐데 누군가 외친 말이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같은 목표를 굳건하게 세워 올린 것 같았다.
“우리가 훨씬 많아!”
“대가리도 우리가 더 커! 팔뚝도 굵고.”
되는대로 소리치며 무관의 문하생들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말이라는 게 그랬다.
개소리여도 신경이 쓰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것을 알아들으려고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도 어느새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것에 반응하는 것이 조금씩 늦어졌다.
그리고 문하생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저마다 아무 소리나 질러댔다.
아진은 기가 막혀서 실소를 흘렸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하고 스스로 다짐까지 했는데도 그게 쉽지 않았다.
‘뭐지?’
그러다가 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옷자락이 베인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공자님의 옷자락을 벴다! 다음에는 어깨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옷자락 하나를 베고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아진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흉흉한 눈빛으로 그들을 향해 다시 달려나갔다.
점차 숨이 가빠오기는 했다.
생각해 보니 전력을 다해 두 시진 정도 싸운 듯했다.
문하생들이 자신의 공격에 일, 이각이나 버틸까 했는데 언제 이렇게 된 건지 몰랐다.
그러다가 아진은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 무관의 문하생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핏 천이재의 얼굴도 보이는 것 같더니 린린도 보였다.
‘뭐야? 이 사람들이? 대련이 뭔지 모르나?’
그러면서 아진도 더욱 힘을 냈다.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다면 절대 이기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심보가 발동해서 상승무공을 시작했다.
아진이 허공을 밟고 올라가자 몇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곳에서 아진은 검강을 흩뿌렸다.
그러는 동안 천이재가 순식간에 수십 차례나 검을 휘둘러서 검막을 만들어 사람들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아진의 검강이 그것을 간단히 부쉈다.
검막이 천이재가 만든 것뿐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항복을 외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린린이 진각을 밟고 흙먼지를 솟구치게 했고 그것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그 흙벽 속에서 검을 든 사람들이 달려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진은 기겁하며 뒤로 풀쩍 몸을 날렸다.
어깨와 옆구리의 옷자락이 베이고 잘려나가자 웃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간이 콩알만 해졌다.
“와아아! 우리가 공자님의 옷을 벴다아아아!!”
아진은 잠시 고민했다.
문하생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인가.
아니면 근신하게 할 것인가.
어떤 것이건 그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진은 기쁨에 차 있을 때보다 근신할 때 자신을 더 채찍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좋습니다. 저도 갑니다.”
말을 마친 것과 동시에 새하얀 검강이 허공을 갈랐다.
“으익!!”
사람들은 저마다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섰다.
쿠콰콰콰쾅-!
매운맛을 확실히 보여 주겠다고 마음먹은 아진의 앞에서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땅이 갈라져 흙이 거꾸로 퍼붓는 폭우처럼 솟구쳤다.
몇 사람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질 뻔했고 다른 이들이 간신히 그들을 구했다.
검의 폭풍은 그 후로도 쉬지 않고 몰아쳤고 결국 아진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면서도 그들은 웃고 있었다.
아진의 판단이 조금은 틀렸던 것이다.
엉망으로 찢기고 완벽하게 패배했음에도 그들은 희열에 들떠 있었다.
미칠 듯이 좋아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으하하하하!!”
한두 사람에게서 그런 웃음소리가 나왔다.
“공자님. 다음번에도 대련해 주십시오. 그때는 누구냐고 물어 보시게 하겠습니다. 정말 굉장합니다.”
“저도요. 공자님. 다음에는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자님.”
그들은 모두 한뜻으로 외쳤고 아진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한 번의 대련으로 이렇게 달라지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하나의 무관에서 같이 배우고 같이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각자의 성향과 성격이 천차만별일 텐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같은 적을 두고 싸웠다는 것이, 그리고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는 것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그들을 휩쌌다.
“당장 표행에 데리고 나가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천이재는 언제 자기가 아진을 공격했나 하는 것처럼 다정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아진도 웃음을 거두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의 문하생들은 순진하게 웃으며 공자님의 무위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리고 산본의가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날 이후로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아진의 습격을 받았다.
무인의 삶으로 들어선 이상, 평화의 시기를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잠이 든 후에도 수시로 아진이 공격해 오는 바람에 그들 중에는 이제 침상에 누우면서도 무구를 챙기는 자들이 늘어났고 헛바람 소리에 몸을 굴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설마 지금 공격을 할까 하다가 피를 쏟고 살이 갈라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기가 막혀서 실소를 쏟으며 의방에 누워 있다가 나오면 그들은 달라져 있었다.
달라진 것은 무위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도 달라졌던 것이다.
산본의가의 무관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성장했다는 소문은 들불처럼 번졌다.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은 일단 무림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모두가 갖게 되는 소망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산본의가 무관의 문을 두드렸다.
무관의 인원이 넘쳐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표국으로 빠져나갔고 산본의가 출신 의원들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도 있었다.
무관은 그 후로 크게 흥했고 그들이 표행으로 벌어들이는 돈도 적지 않았다.
만약 북궁세가가 산본의가의 존재를 신경 쓰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북궁마영이 시작한 싸움을 하월이 이어받지만 않았다면 산본의가는 계속 그렇게 순탄한 성장을 해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북궁세가의 하월은 산본의가를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고 마침 세가에서도 산본의가를 밟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중이라 더욱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우선 본가는 숨기고 해묵은 은원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월이 만지작거린 패는 너무 오래 묵어서 아직 그 패가 유효한지도 헷갈릴 정도였지만 하월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았다.
* * *
“문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급한 걸음으로 달려온 제자를 보며 제선문주는 혀를 찼다.
“의인이 왜 그렇게 경거망동하는 것이냐. 네가 하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환자를 불안에 떨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었느냐.”
“하오나 문주님. 찾아온 분이 워낙…….”
“황상 폐하라고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
“하오나…… 구문제독부에서…….”
문주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그자는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는 자였다.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산본의가에서 지급이 도착한 것은 나흘 전이었다.
산본신의의 둘째 아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거기에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 한가롭게 이어지다가 돌연 엉뚱한 내용이 튀어나왔다.
북궁세가에서 손을 내밀 수 있을 텐데 그 손을 잡기 전에 생각할 시간을 미리 주기 위해 편지를 쓰게 됐다는 거였다.
문주는 지급을 보고 나서 놀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봉문을 하고 납작 엎드려 숨어 지내라 해서 그렇게 했다.
치욕스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거기에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궁세가에서 손을 내밀 수 있을 거라니.
제선문이 별 볼 일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은 문주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조직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지난 수년간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구성원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것까지 일일이 제어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사이에 파문시킨 제자가 몇인지 셀 수도 없었다.
이제는 신비방파라고 불리며 정말 조용히 지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도진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그 일이 계속 생각이 났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선문주는 그 일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을 했다.
사람들을 불러들여 북궁세가와 산본의가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사기 위해 은자를 쓰기는 했지만 가치가 있었다.
서도진이 황도에 머무는 동안 북궁세가의 북궁마영을 건드렸고 그로 인해 가문의 대결로 비화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산본의가를 짓이겨놓을 기회만 만들어 준다면 얼마든지 북궁세가에서 내민 손을 잡을 것이다.’
제선문주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성이 돌아오면서 그는 자기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