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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30화 (130/470)

제130화

130화

“그래서 서 소협과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수준이 맞는 사람으로 상대를 골라서 말입니다.”

하월은 본격적으로 린린이 들러붙으려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말했지만 린린은 단호했다.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저에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협박을 하려고 하면서 상대를 잘못 찾으셨지 않습니까. 저는 다 하월 공자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일각이나 떠들어대면서 협박을 했는데 제 오라버니가 아무 말도 못 알아듣고 그냥 멀뚱하게 서 있는 걸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겁니다.”

“…….”

하월이 아진을 바라보았고 아진은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다가 린린을 노려보았다.

“너. 나에 대한 정보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술술 말해 버리는 건 안 좋지 않냐? 어쨌든 얘기 잘해라. 가문의 비밀은 웬만하면 숨기도록 하고. 손님 접대는 정말 피곤하네. 힘내라. 린린. 오라버니는 조금 쉬어야겠다.”

“나만 믿어. 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니까.”

아진이 린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당채운에게 붙잡혔다.

“의원님. 세상에. 오늘 여기에서 제가 몇 번이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한 번 구경하는 것도 어려울 명숙들을 스무 분도 넘게 봤습니다.”

“현무단주이셨으면 웬만한 분은 가까이에서 다 본 것이 아닙니까?”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은 그렇지만 일선에서 물러나신 분들은 그렇지 않지요. 삼사십 년 전에 강호를 호령하던 강호 이십제가 모두 오신 걸 아십니까?”

당채운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산본신의와 검신 대협뿐일 거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진은 뭘 그렇게들 찾아온 건가 하면서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이 하나뿐이라서 다행이지. 이 짓을 또 하라고 했으면 못 했겠어.’

당채운은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자기가 본 사람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월은 린린이 어떻게 조리를 했는지 그 후에 아진의 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자기가 아진에게 접근하면 린린이 어디선가 보고 있다가 다시 와서 괴롭힐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우리 만두가 확실히 사람 속 뒤집어 놓는 건 잘하니까.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불어? 만두 오라버니시다.’

아진은 하월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도 태평했다.

앞으로 눈물을 찍어 내게 될 사람이 누가 될지 아무것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 그저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그날의 혼례식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만들어 냈고 그 후로도 오래오래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었다.

* * *

혼례가 끝나고 북리소은은 이제 완전히 산본의가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진이 황제의 까다로운 명령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산본의가의 사업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되며 그때부터는 벽예월과 함께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녀는 이제 산본의가의 총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는데 실제로 얼마 후에 가모는 벽예월을 총관으로 삼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것은 벽예월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 되었고 그녀는 정말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진작 총관으로 삼았어야 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벽예월은 여전히 하늘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흉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알게 돼도 그 자리에서 주춤하지 않고 거기에 대비할 방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흉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알게 되더라도 거기에 대비하면, 목숨을 잃을 일을 팔다리만 잃고 끝낼 수도 있고 작은 부상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막연히 체념하고 낙심만 할 일은 아니에요. 흉한 궤가 나오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요.”

나중에는 그렇게 말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변했고 그런 변화는 주위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가모님께서 산본무관의 사람들을 표행에 내보낼 수 있겠는지 공자님이 알아봐 주셨으면 하시던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어느 날 벽예월이 부탁을 해 왔을 때 아진은 흔쾌히 나섰다.

그 자신도 무관에 모여든 문하생들의 실력이 궁금했던 차였고 산본무관의 객관적인 전력을 알아볼 필요성도 있어서였다.

무관에는 모두 백 이십 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일 무관으로는 엄청난 규모였다.

천이재를 비롯한 북리세가의 무인들이 그들에게 북리세가의 무공을 전수했고 가끔 당채운이나 독고소영도 무공을 전수하며 지도 대련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돈이나 인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특혜였기에 먼 곳에서도 마다하지 않고 몰려들었다.

훈련이 잘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번은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벽예월의 부탁까지 받아서 기회가 좋았다.

그들의 나이는 십 대 중반에서 이십 대 중반까지로 아진과 그리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빠른 성취를 이루어 이류가 대다수였고 그중에는 일류도 적지 않았다.

일류 중 몇은 곧 절정의 초입에 들어설 거라는 말을 천이재에게 들었었는데 천이재는 표국의 국주로 표국에서 하는 일이 많으면서도 무관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기가 뿌려놓은 씨가 잘 자라고 싹이 잘 나오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잘 부탁합니다.”

아진이 무관에 가서 문하생들에게 말하며 인사를 하자, 그날의 대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검신 대협의 제자와 대련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긴장과 흥분이 넘치는 상태였다.

아진은 먼저 그들의 수준을 보고 그들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무공을 보여 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열 분씩 전력을 다해서 덤벼주십시오.”

그 말은 상대를 얕잡아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 말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진의 진짜 실력이 검신 대협의 제자라는 이름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저는 여기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생 사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생각이고 말입니다.”

아진이 말하자 무관의 사람들은 긴장한 채 기세를 끌어 올렸다.

“할 수 있는 전부를 선보이십시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진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것은 시작되었다.

벅찬 감격과 기대감, 흥분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앞에 서 있던 열 명은 동시에 검을 들고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아진이 피워올리는 기세에 호흡이 엉키는 듯했다.

내공이 진탕되어 버리는 이도 있었다.

단순히 아진의 기세만으로 그렇게 돼버렸다는 사실에 기함하는 이들이 늘어 갔다.

“포기하지 말고 최대한 버틴다는 생각으로 임하십시오. 여기에서 느끼는 것은 실전에서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여기에서 버틴다면 실전은 훨씬 쉬울 겁니다.”

아진은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자기들이 아주 못하는 건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들고 있던 검이 앞으로 올라서며 강기가 맺혔다.

그냥 보여 주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에 있는 모두가 느꼈다.

팔다리 하나씩은 잘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못했다.

‘……!’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기회.

기연(機緣).

그들의 가슴이 들끓었다.

“히이이야앗!”

기함을 토해내며 한 사람이 아진을 향해 달려갔다.

아진은 몸을 조금 움직여 그의 검을 흘려 버리고 몸을 바짝 붙인 채 같이 돌았다.

그리고 가벼운 손동작 하나로 그의 몸을 날려버렸다.

실제로 아진의 힘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아진에게 덤빈 문하생은 자신의 힘으로 인해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

아진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눈에 뻔히 보이는 단순한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 주었다.

왜 똑같은 것에 계속 당하나 하면서도 사람들은 자기들도 아진의 수에 넘어갔다.

그러면서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리고 머리로 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깨달아가고 있었다.

“문제점을 알아내기만 해도 여러분은 큰 성과를 거둔 겁니다.”

아진은 대련을 하는 중간중간 그런 것들을 알려 주었다.

한 번에 열 명을 상대하면서도 그는 호흡이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상대가 자기보다 수준이 낮다고 해서 대충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번 공력을 끝까지 끌어 올리고 진수 중의 진수라고 할 만한 초식을 펼쳐 보였다.

그 때문에 그의 상대가 된 사람들은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흥분감은 처음보다 더했다.

맞아서 떨어져 나가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맞붙고 싶었다.

몇 사람은 도저히 다시 움직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진맥진해 버렸는데 아진은 그들에게 다가가 마나를 불어넣고 그들이 다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단전이 붕붕거립니다.”

누군가 말하며 웃었다.

매 순간 전력을 다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한 채 움직였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그들은 그때에야말로 극한을 경험하고 있었다.

실전처럼 훈련한다고 해도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극한에 그렇게까지 내몰린 적이 없어서였다.

“다시 갑니다.”

경고 뒤에 준비할 시간은 따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이 언제 도로 바뀐 건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제?’

도강이 맺힌 칼이 바람을 일으켰고 그 반경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옷자락과 살을 베어냈다.

거대한 산이 우뚝 서서 그들을 노리고 다가오는 것 같은 위압감.

여기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이 순간을 버티고 남으면 이전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공존했다.

“으아아아악!”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공격을 성공시켜 보겠다는 의지가 그들을 불태웠다.

아진은 기꺼이 그들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칼을 휘둘렀다.

바닥을 박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허공으로 떠올랐고 누군가의 등을 밟고 섰으며 다음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옆구리를 베었다.

저기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혀 다른 곳에서 아진에게 당한 사람의 비명이 솟구쳤다.

피는 여러 곳에서 동시에 비산했고 비명도 끊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애가 탔다.

피가 끓어 올라서 그들도 합류하고 싶었던 것이다.

“힘이 들면 쉬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십시오. 아직 싸울 수 있으면 계속 싸워도 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로운 문하생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병장기에 각각의 기운이 맺혔다.

아진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쳤다.

한 사람의 다리를 꺾어 쓰러뜨리고 그의 몸을 날려 다른 사람들의 진로를 막기도 했다.

문하생들은 그곳에서 싸움의 방법을 습득했다.

고고한 검술만이 아닌, 개싸움을 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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