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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27화 (127/470)

제127화

127화

복부가 봉합된 짐승들이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면서 련주는 웃음을 흘렸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기회는 있어.’

그러던 련주의 머릿속에서 실질적인 고민이 떠올랐다.

알이 나오면 그 알을 키워줄 아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생한 장기가 아니면 알이 나오지 못할 텐데 당장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가 짐승들을 놔두고 사라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알을 키워 줄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 * *

“저쪽에서 조금 전에 나무가 흔들렸어. 의천.”

독고소영이 말하고 먼저 몸을 날리자 북리의천이 그녀를 따라갔다.

아진과 린린은 련주가 만들어놓은 실험체를 찾기로 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그 일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감을 넓게 펼치고 아진은 방향을 잡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왜 벌레에게서 자신의 마나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지 그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다. 린린. 소청이랑 있어.”

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바닥으로 내려가자 짐승들이 보였다. 그것은 그에게 던전을 연상케 했다.

짐승들은 자기들의 몸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 같았다.

복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아진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놈들을 살리는 것은 어차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할 맹수들이었기에 아진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악감정은 없어서 단번에 목을 벴다.

“나도 도울까?”

린린이 뒤에서 물었지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몸속에 벌레가 있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것의 움직임은 이쪽에서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소청이랑 뒤에 있어. 벌레가 갑자기 튀어나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응. 가능하면 불태워. 오라버니.”

“그래.”

죽은 짐승들의 몸을 불살랐다.

이미 죽었는데도 기분 때문인지 짐승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벌레가 꿈틀거리다 불에 탈 때 갑자기 린린이 있는 곳에서 흑주가 날아왔고 불에 타던 벌레들은 흑주에게 빨려들어 가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것들이 흑주에게 달라붙은 건지, 흑주가 그것들을 빨아들인 건지 확실치 않았지만 일어난 일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흑주는 그것 때문에 몸집이 사람 머리만큼이나 커졌다.

아진은 거기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남은 짐승들의 사체를 완전히 처리했다.

흑주는 만족스러운 듯 여유만만하게 린린을 향해 날아갔다.

“정말 괜찮은 거야. 린린?”

“그런 것 같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사도련주의 잔인한 연구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린린이었다.

“이게 전부일까, 오라버니?”

“모르지. 우선은 살펴보자.”

사도련주가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은 작은 움막으로 들어가서 물건들을 뒤졌지만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스승님께 가 보자.”

아진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고 짐승들의 사체가 있던 곳에서 더 이상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북리의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격전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던 생각과 달리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고서야 아진은 그들이 독에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수가 되면 내공으로 어느 정도 해독을 할 수 있을 텐데도 아진은 두 사람이 꼼짝없이 당한 것에 놀라며 다가갔다.

“스승님. 사고님!”

아진이 서둘러 혈을 점하고 두 사람의 명문혈에 장심을 붙인 후 마나를 불어넣어 독기를 배출하게 하자 두 사람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일을 망친 것 같다. 련주를 놓쳤다. 아진아.”

“어디로 갔습니까, 스승님?”

북리의천이 련주가 사라진 곳을 가리키자 아진은 몸을 날렸다.

린린도 따라오려고 하는 것을 보며 아진은 고개를 젓고 소리쳤다.

“너는 스승님 곁에 있어. 린린.”

“그래. 오라버니. 조심해.”

아진은 사도련주의 뒤를 쫓으면서도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은 가는 데까지 가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련주에게 충독이 없다면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충독이 사라졌다면 아이들을 납치할 이유도 없겠구나. 당분간은.’

기감을 펼치고 한참을 쫓아가던 아진은 련주가 아무리 빨리 왔더라도 이보다 더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돌아갔다.

자기가 더 먼저 와 버린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샅샅이 훑고 지나가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몇 번을 다시 훑으면서도 아진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그거야말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지만 일단 일행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은 해독제의 효과로 정신을 차렸고 사도련주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상세히 말해 주었다.

“허공에 독진을 날리고 장풍으로 그걸 쏘아 보냈는데 나는 당연히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가 피했는데도 그게 우리를 따라왔다. 마치…….”

북리의천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말했다.

“이기어검 같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도련주의 뜻에 따라서 독진이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기…… 어검요?”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시전자의 손을 떠난 후에도 날아가는 검처럼 독진이 그렇게 움직였다는 말을 듣자 아진은 소름이 끼쳤다.

북리의천이 한 말은 이해할 수 있는지, 혹은 믿을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는데 그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아진은 일단 그렇게 말했지만 사도련주가 사용한 독진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웠는지 알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났다면 몸의 다른 근육까지도 마비를 일으켜 결국은 심장까지 박동을 멈췄을 것이고 아진과 린린이 도착해 해독하지 못했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맞는 해독제를 만들려면 지금부터 매달린다고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사도련주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사악하고 끔찍한 자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인지도 몰라.”

북리의천의 말은 이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으려고 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근심을 안겼다.

“충독은 저희가 전부 죽인 것 같은데 련주가 다시 또 만들어 낼 수도 있을까요. 스승님?”

아진이 물었지만 사실 그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자신도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그 일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이 났다.

사도련주의 충독을 모두 제거했고 더 이상 아이들이 실종되는 일도 없었다.

전에는 사도련과 관계없는 일로 아이들을 납치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마저 사라졌다.

괜히 사도련과의 연관성을 의심받으면 자기들이 저질러 왔던 잘못보다 훨씬 더 중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 일에서 손을 떼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이들을 잡아다 소매치기를 시키거나 구걸을 하게 하거나 썩은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제공하던 자들도 그 일로 인해 모두 움츠러들었다.

그 뒤에는 아진의 활약이 있었다.

아진은 적재적소에서 황제의 패를 사용했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흑도 방파와 사파 무리를 도려냈다.

사도련주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지만 잔당을 색출해 완전히 괴멸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정의맹이 새롭게 생겨났다.

정의맹은 무림맹과 함께 정파 무림을 양분했고 서서히 세력이 커졌다.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정의맹이 만들어진 후로, 무가가 어느 날 갑자기 멸문을 당하는 일도 사라졌고 후기지수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났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정의맹이 개방을 축출했다는 점이었다.

무림맹과 정의맹 두 곳에 발을 담그고 정의맹에 전하는 정보를 조작한 대가로 개방은 정의맹에 속한 모든 무가와 문파로부터 적대시되었고 그 자리를 향화문이 대신했다.

향화문은 짱돌을 문주로 해서 약초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보조직이었는데 향화문에 가입된 약방에서 정보가 집결되어 정의맹으로 전달되었다.

향화문이 향화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산본의가에 있는 선향화 의녀를 짱돌이 혼자 사모해서였는데 짱돌이 정보문의 이름을 향화문이라고 붙이자 그 소문이 나면서 선향화도 결국 짱돌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선향화는 산본의가가 제선문 때문에 위기에 처했을 때부터 함께 해 오던 의녀였기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아진은 특히나 더 기뻐하며 선향화를 축하해 주었다.

“린린. 신기하지 않냐?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꿈을 꾸잖아.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린린도 아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모두 사도련주의 행방을 알지 못해서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를 넉넉히 제압할 힘을 가지면 되는 거라는 생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수련에 전념해 나갔다.

* * *

아진과 린린이 산본의가로 돌아갔을 때 가주는 소청이 같이 오지 않은 것을 서운해했다.

그러나 가주가 아무리 그랬다고 해도 소청의 어머니가 안타까워한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청이 벌써 그곳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후기지수 중에 가장 촉망받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대가 커진 탓이었다.

북리세가의 무인 중에는 북리세가가 정의맹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북리세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주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며 그들 각자에게 금자 다섯 냥씩을 주었는데 그것은 그간 북리세가 무인들이 해 주었던 일에 비하면 결코 큰 금액이 아니었어도 산본의가의 재정 상황에 비추면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였다.

그래도 가주와 가모는, 다른 것은 지출을 줄이더라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줄 것은 줘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고 새로운 무인과 표사도 뽑았다.

천이재만큼은 그런 상황에서도 남았고 그 외에도 몇 명은 계속 산본의가에 남기로 했다.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아진이 도종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한참 후에야 찾아왔다.

“돌아와서 기쁘다. 그렇게 오래 떠나 있었던 것 같지 않은데 본가에도 일이 많이 생겼지.”

도종이 술을 따라주며 하는 말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례는 언제 올려. 형님?”

“그러게 말이다. 너랑 린린은 사도련주를 잡는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니는데 우리만 좋자고 혼례 얘기를 꺼내는 것도 뭣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 그런 건 형님이 나서서 해야지. 기가 막히네.”

마침 선이남의 아내도 산본의가에 와 있었고 아기가 모든 산본의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이라 북리소은도 빨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싶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길일을 잡아서 혼례를 먼저 올리자고. 아. 길일은 벽 소저한테 물으면 되지? 벽 소저는 어디에 있어? 요즘 뭐 하고 지내?”

“벽 소저야말로 정말 바빠. 어머니가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느라고. 표국도 그렇고 무관에 의학당에. 벽 소저 손이 안 닿는 일이 없다.”

“무관은 또 뭐야?”

아진은 처음 듣는 말에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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