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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26화 (126/470)

제126화

126화

북리세가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곳에서 아진은 소청을 별 어려움 없이 찾아냈다.

그러나 아진이 소청을 찾아낸 것보다 소청이 아진을 찾은 게 먼저였다.

“스승니이이임!”

멀리서 들려온 소청의 목소리에 아진의 얼굴에는 웃음이 활짝 폈다.

소청의 옆에 있던 북리의천이 소청을 돌아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아. 스승이 온 것이 그리 좋으냐.”

북리의천이 웃으며 말했지만 이미 그의 곁에 있던 소청은 사라진 후였다.

“스승님.”

소청은 날쌔게 달려와서 아진에게 폭 안겼고 아진은 그런 소청을 안아 들었다.

“구박받고 있었구나? 우리 소청이.”

전혀 그런 게 아니었는데도 왜 아진을 봤다고 눈물이 나는 건지 소청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자 북리의천이 다가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 제 스승이랑 하는 짓이 어찌 이리 똑같은 것이냐. 아진이 너도 이러지 않았느냐. 산본의가에 돌아갈 때마다 너희 부모님을 보면 이랬지. 그래서 내가 그때마다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느냐?”

“다녀왔습니다. 스승님.”

아진이 소청을 내려놓고 활짝 웃으며 말하자 북리의천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아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에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훌쩍 자라버린 제자에게 그러는 것이 이제는 조금 어색했기 때문이다.

“어서 들어가자. 참. 현무단주 당채운 소협도 와 있다. 너를 본다는 생각에 아주 들뜬 것 같더구나. 현무단은 모조리 무림맹을 나왔다. 백호단과 주작단도 함께 무림맹을 나왔지. 지금은 무가와 무관과 함께 각자 지역을 맡아 순찰과 경계에 힘쓰고 있다.”

“모두 스승님의 인덕이지요.”

“이제는 그런 말도 잘 하는구나. 어서 들어가자.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의 뒤에 독고소영이 서 있다가 웃으며 반겼다.

“생각만큼 많이 모이지는 않았어. 나는 의천이 말하면 무림맹에서 열에 아홉은 우리를 따라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독고소영은 아쉬운 듯했지만 아진은 지금으로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자들은 무림맹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고 거기에 더해, 지금 움직여 봐야 크게 기대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한 이들도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무단과 백호단, 주작단이 없는 틈에 무림맹의 무력단에 생겨난 공백을 노리려는 자들도 무림맹에 머물렀을 테니 이 정도면 아진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였다.

“어차피 우리가 많은가, 무림맹이 많은가 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그런 것으로 신경 쓸 것은 아니야.”

북리의천이 말하자 독고소영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나는 많이 왔으면 했단 말이야.”

아진은 독고소영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리의천은 그런 독고소영이 귀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왜 그렇게 흐뭇한지, 아진도 덩달아 헤벌쭉 웃었다.

“아 참. 황제 폐하께서 오라버니에게 황금패를 주셨어요. 이제 사도련을 괴멸하는 일에 힘이 실린 거죠. 여기까지 오면서 제가 오라버니보다 빨리 오면 오라버니가 황금패를 저한테 준다고 했는데 도중에 제가 힘이 빠지는 바람에…… 다음에는 꼭 제가 뺏으려고요.”

린린의 말에 북리의천이 관심을 보였고 아진은 황금패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 주자 북리의천의 눈이 빛났다.

“폐하께서 재가만 해 주시면 전장에서 은자 쉰 냥을 그냥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거구나. 이거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진아. 경공을 펼쳐 간 곳에서 급히 말이나 마차를 사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느냐. 그럴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 스승님.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당채운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워낙 사적인 모임으로 보여 자기가 껴도 될지 걱정이 된 것 같았지만 늘 목표로 삼고 있던 아진이 온 것을 보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거기까지 오고도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당채운을 보며 아진이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단주님. 활약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아진이 이제 제법 입에 발린 말도 잘 한다고 생각했는지 북리의천이 웃었다.

“우리한테는 그 비슷한 말도 하지 않았다.”

당채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고 정보가 부족한 것이 지금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개방이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죠.”

당채운의 말에 아진이 웃었다.

“그게 우리한테만 다행일까요? 개방도 여기에 한 발을 걸치지 않으면 안 돼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원님?”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여기에서 얻은 정보는 무림맹에도 넘어갈 겁니다. 개방은 실리를 추구하는 곳이니까요. 개방의 수뇌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그거고요.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아…….”

당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순진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행방을 감춰 버려서 어디에서 련주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잡혀가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래도 사도련주가 움직일 수 있도록 조금은 여지를 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미끼를 풀자는 말인가 보군요. 하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누구도 미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요.”

아진이 말하자 당채운이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의원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원님이면 사건이 발생할 때 바로 그곳으로 가서 아이들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생각한 것입니다.”

아진은 그래도 확신을 할 수 없는 일에 아이들의 목숨을 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진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정작 아진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사도련주를 놓쳤던 장원에서 아진은 넉넉하게 이긴 게 아니었다.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때맞춰서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고 자기가 모든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몰라서였다.

“그건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현무단주. 우리도 이 일이 급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네. 사도련주는 사악한 자고 처음에는 벌레를 만들어 내다가 그 후에는 작은 괴물까지 만들었네. 나중에는 어떤 걸 만들어 낼지 모르지. 우리도 서두를 거네. 하지만 그 희생은 아이들보다는 우리가 지는 게 옳다고 보네.”

북리의천이 중재에 나서자 당채운도 그 말을 받아들였다.

“조급한 마음에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아니네. 잘하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을 알고 있네.”

아진도 당채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님이 그렇게 애써 주시니 곧 성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제가 놓치는 게 있으면 계속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걸 놓치고 갈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의 말에 아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저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사람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한동안 그가 누구인지 기억을 못 하다가 아진이 작게 소리쳤다.

“짱돌 아저씨?”

“예에. 공자님. 기억해 주시는군요.”

“당연히 기억하지요. 몸은 어떠세요? 그 후로 출혈이 생긴 적은 없으셨어요?”

“예. 괜찮습니다. 공자님. 그런데 이 얘기를 먼저 좀 들어 주셨으면 해서요.”

아진도 짱돌이 급한 용무로 온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가주나 다른 장로도 아직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자리에 그가 올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님. 전에 아가씨께서 약방과 약초꾼들을 모아서 정보문을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정보문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보를 모으는 모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들어온 소식이 있는데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그 말에 모두의 눈이 어둠 속의 맹수처럼 빛났다.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잘은 모르겠지만 사도련주를 발견한 게 아닌가 합니다. 사도련주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그자밖에 없을 것 같아서요. 숲속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봤다고 하는데 한 중년의 남자가 짐승들의 배를 가르고 뭔가를 집어넣더랍니다. 그자가 없을 때 가까이 가서 봤는데 짐승들이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고 상처가 꿰매져 있더랍니다.”

짱돌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는 듯 몸을 떨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일 것 같아서 다가가서 보고 왔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때부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저를 찾아와서 알려준 건데 지금 그자는 외원에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으시면…….”

“거기가 어디였다고 합니까, 아저씨?”

아진은 그의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시간을 허비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삼악산 남쪽, 섬개로 이어지는 숲이었다고 했습니다. 섬개에서 산의 초입으로 들어가서 같은 방향으로 한 시진쯤 올라갔을 때 그 장소가 나왔다고 합니다.”

“당 단주. 이 사람과 함께 가서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고 사람들을 모아 그곳으로 오게. 우리는 먼저 가겠네.”

북리의천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당채운에게 말했다.

“예, 대협.”

북리의천은 아진과 린린에게 고갯짓을 하고 먼저 경공을 펼쳤다.

독고소영이 그의 곁을 따랐고 아진은 소청을 바라보았다.

아진이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소청도 이미 경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련주다. 련주가 그곳에 나타난 거야.’

아진의 가슴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 * *

아진에게서 도망칠 때 사도련주는 충독이 위험해진 것을 알고 남은 충독을 항아리에 넣은 채 계속해서 도망쳤다.

북리의천이 뒤를 쫓아오는 바람에 나중에는 그것을 포기해야 할까 했지만 우선은 나무 아래에 숨겨두고 그의 눈을 피했다.

기적처럼 간신히 그들을 따돌리고 돌아갔을 때 충독은 다행히 항아리 속에 그대로 있었고 사도련주는 그것만 챙긴 채 도피행에 나섰다.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는 포기해야 할 일에 오래 집착하지 않았다.

그래도 충독 한 마리는 건졌기에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돼야만 했다.

새로 자리 잡은 곳은,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었다.

우선은 짐승을 잡아야 했는데 충독을 잡을 때 사용했던 독이 그때도 유용하게 쓰였다.

커다란 짐승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묶으면 일단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련주는 한 마리의 충독을 여러 부분으로 잘게 쪼개 나눠 짐승의 사체 속에 넣었다.

잘게 잘린 충독이 제발 살아 주기를 바라면서 그는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잘못하면 전부를 잃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늘의 뜻.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련주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파 천하. 그것이 하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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