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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25화 (125/470)

제125화

125화

“소인은 사실 음양인이옵니다. 폐하. 음양인이란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입니다만 그중에서도 하나의 성이 더 두드러집니다. 소인은 그중에서도 남자의 성향이 있는 음양인입니다. 구음절맥에 걸렸을 때 다른 것도 다른 거였지만 음양인이라는 소인의 특성 때문에 더욱 치료가 어려웠습니다.”

아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이 자식이! 그렇게 말할 거였으면 나한테 미리 언질이라도 줬어야지!’

아진의 눈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흠…… 음양인이라. 이곳에 있으면서 온갖 신기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듣기도 했고 직접 보기도 했다만 음양인을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그러면 너는…… 사내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황제는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면에 그걸 좀 볼 수 있겠냐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만약 상대가 산본의가의 셋째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가문의 둘째가 정신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제멋대로인 인간이 아니었다면 황제는 그것마저 보여 달라고 청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것이 제 본 모습이고 평소에는 역용술을 하고 있습니다. 산본의가에 있는 사람들도 제 본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황제는 깊은 고뇌에 빠지는 것 같았다.

서이린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바가 있었고 몰래 사람을 산본의가에 보내 서이린의 용모파기를 그려오게 하기도 했다.

용모파기가 퍽 마음에 들어 궁에 있는 화공을 보내 린린의 모습을 더 자세히 그려오게 했고 그렇게 해서 얻은 그림이 여러 장이었다.

그에게는 여러 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아진과의 관계를 고려해 린린에게도 높은 품계를 내려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른 것인데 눈앞에 있는 사내를 보자 마음이 한순간에 식은 것은 물론이고 구역질까지 치밀었다.

그동안 밤마다 그림을 꺼내놓고 애를 태웠던 것이 떠오르며 저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으으으…….”

소름이 끼친다는 듯 그가 덜덜 떨기까지 하자 린린이 사내다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시옵니까, 폐하!”

“되었다. 신경 쓰지 말 거라. 이러다 말 것이다!”

황제는 버럭 호통을 쳤다.

음양인이라는 말을 듣자, 다리 사이에 사내의 그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오만 정이 다 떨어졌던 것이다.

“음양인은 재주가 많사옵니다. 폐하. 저를 곁에 두시면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린린은 재미가 붙었는지 그렇게까지 말했고 황제는 린린이 자꾸만 저에게 들러붙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여긴 듯 소스라치며 자꾸만 옆으로 물러났다.

“아, 아진은 왜 그 이야기를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냐!”

황제의 분풀이는 이제 아진에게 향했다.

아진은 이럴 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가 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누이라고 하지 말고 남동생이라고 하면 되지 않았느냐. 집에서는 왜 딸로 키운 것이냐.”

“구음절맥을 앓는 동안은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때는 여자의 특징이 조금 더 강하게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음절맥이 나으면서 남자의 특징이 그때부터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음양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기에 그냥 여자로 살았습니다. 폐하.”

린린이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황제가 얼굴을 찡그렸다.

린린을 보면 같이 하려고 마음먹었던 온갖 것들이 다 떠오르는 바람에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 짐이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잊었구나. 참. 아진은 어제 말했던 것을 받아 가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 그래. 살펴들 가거라.”

황제가 떠나고 태감이 와서 아진에게 패를 건넸다.

본 패를 가지고 온 자에게 은자 쉰 냥을 내주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 황제의 인장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위소에서 금의위사를 다섯 명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시가 되어 있었다.

황금패의 앞면에는 용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용 모양을 새긴다고 깎아낸 황금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다 보고를 해야 하고 재가가 나지 않는 것은 다 물어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껏 들떴던 아진의 마음은 태감의 설명을 듣고 푸시식 꺼졌다.

“전장에서 받은 은자도 그렇고 위소에서 동원한 금의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의위사는 한 시진에 은자 두 냥씩으로 계산하라 하셨습니다.”

“…….”

통이 큰 줄 알았더니 이래서야 마음 놓고 쓸 수 있겠나 싶었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꼭 돈을 빌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자기가 황제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황도에 온 일은 그로써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하며 아진과 린린은 그곳을 떠났다.

“이제 북리세가로 가?”

린린이 묻자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북리세가의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됐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사도련주를 비롯한 사파를 응징하는 일은 황상의 인가가 나와서 한층 더 힘이 실릴 참이었다.

“얼마나 스승님 뜻에 따랐을까? 무림맹이 분열되면 당분간은 정파에 위기가 올 수도 있는데.”

그동안 사파는 그렇다 해도 정파와 천마신교는 서로 거의 대등하게 힘을 유지하며 서로를 견제해 오고 있었기에 정파가 갈라지는 것에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천마신교에서 칠 것 같으면 네가 나서서 처리할 수 있어?”

“없지.”

린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고 두 사람은 북리세가로 가는 길을 더욱 서둘렀다.

“오라버니. 기분이 어때? 맹주님의 수제자가 되면 오라버니는 강호에서 정말 유명해질 텐데.”

“지금도 유명한데.”

“그러게 말이야.”

아진은 별 생각 없이 말을 했다가 린린을 바라보았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개인의 문제에서 끝날 수 있는 것이 조직 간의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아진은 그냥 북궁마영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북궁마영을 건드린 일이 북궁세가와 구문제독부를 건드린 것과 같이 인식되었고 산본의가가 구문제독부에 반항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아진이 일찍 황제에게 그 상황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면 황제는 귀에 들어오는 대로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아진이 강호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사도련주를 찾고 사파를 괴멸하는 과정에서 그이 역할이 커진다면 자칫 북리세가와 북궁세가의 대결로, 그리고 무림의 명문무가와 황실 무가의 대립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아…… 여러모로 귀찮아지겠는데? 그냥 하지 마시라고 할까?”

아진이 중얼거리자 린린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제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한 그대로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오라버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앞으로는 오라버니에게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이 몰리게 될 테고 더 많은 사람이 오라버니의 눈에 들기 위해서 애쓸 거야.”

“그렇겠지. 그때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모두 진심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닐 테고.”

유명하지 않아서 좋은 것은, 그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혈천방과 비룡채, 북리세가와 독고세가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지겠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우리 오라버니. 긴장했네. 긴장했어.”

린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고 아진은 그런 린린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다를 것은 없는 거라고.

“북리세가까지 누가 더 빨리 가는지 시합할까?”

“싫은데?”

“네가 이기면 폐하가 주신 황금패 너 줄게.”

린린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제 폐하가 주신 패를 그렇게 마음대로 넘겨도 되냐는 말 같은 건 없었다.

순간적으로 돌풍이 일었다 사라진 곳에 다시 한번 돌풍이 일었다.

그 자리에 있던 두 개의 신형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거센 두 개의 바람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 *

북리세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위사들만 해도 전에는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끼어 있는 북리세가의 무인들은 아진과 린린을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안녕하셨어요?”

아진과 린린은 그들 각자와 인사를 나눴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안의 상황이 어떤지 그들에게서 먼저 설명을 들으려고 한 것이다.

“사도련의 일이 알려지고 가주님과 검신 장로님께서는 곧바로 뜻을 정하고 공표를 하셨습니다. 무가와 문파마다 각자가 다스리는 지역에 무인들을 파견해 순찰을 강화하고 아이들이 납치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요.”

“어떻던가요?”

역시 스승은 행동이 빠르다고 생각하며 아진이 물었다.

그러나 위사의 표정은 시원치 않았다.

“무림맹에서는 미지근하게 나왔고 여러 소리를 하면서 핑계를 대더군요. 진상파악을 하는 게 먼저라고 하면서요. 그게 사도련의 소행이라고 하는 것은 아진 의원님의 말뿐이지 않냐고 하면서 아진 의원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일을 북리세가에서 나서서 해결하면 이번에야말로 힘의 균형이 북리세가로 넘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견제를 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아진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한 자들의 실태를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저희 가주님과 장로님이 어떤 분들입니까? 그 자리에서 무림맹을 탈퇴하겠다고 하시고 나오셨습니다. 독고세가도 무림맹을 탈퇴했고 사천당문이 그 뒤를 따랐죠. 황보세가도 그랬고요. 소림과 무당, 아미파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지금은 그곳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잘됐군요. 련주를 쫓는 작업은 어느 정도나 진행이 됐습니까?”

“각 정보각을 모두 운용하고 있는데 어디로 숨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 개방은 중립적인 태도입니다. 무림맹을 탈퇴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정보는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방이 무림맹에 붙었다면 련주를 찾는 일이 어려웠을 텐데 그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소청이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의원님. 어디에서 그런 아이를 찾아내셨는지. 소청이 때문에 요즘 연무장마다 빈틈이 없습니다. 다들 소청이를 보고 자극받아서 수련을 하느라고 말입니다.”

소청이에 대한 칭찬을 듣자 아진은 저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본 위사들은 그 모습이 꼭 검신 대협 같다고 생각했다.

아진의 칭찬을 들으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던 검신 대협처럼 이제는 아진이 자신의 제자를 맞아들이고 그렇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요. 어서 가십시오. 검신 장로님도 그러시지만 소청이가 아마 제일 반가워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리세가로 향하는 아진은 이제 어떤 반가움이 더 큰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승님을 다시 보게 됐다는 반가움인지.

제자를 보게 됐다는 반가움인지.

그렇게 하나둘 그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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