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122화
“산본의가에서 온 자들이냐.”
“그렇습니다.”
“산본의가가 쓰레기 같은 것들을 배출해서 아니, 배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값싼 약초를 처방해서 환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오. 그렇게 해서 약제비가 줄면 그 돈으로 좋은 음식을 사서 먹으며 회복을 앞당길 수도 있소.”
린린이 쓰는 말투가 아까부터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북궁마영은 어느새 거기에 적응이 돼 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너희가 하는 말이겠지. 우리는 직접 피해를 보고 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오.”
“말로 해서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매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다.”
“경고해 줘서 고맙소. 그러면 나도 경고를 하겠소.”
린린이 북궁마영을 보고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검신 대협의 수제자요.”
“…….”
북궁마영도 혹시나 하면서 그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래도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내 형님이 구문제독이시다.”
“우리 아버지는 산본신의시오.”
“내 아버지는 북궁세가주시다.”
싸움이 혈연 자랑 대결로 번지는 듯하더니 린린이 먼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이 일은 아진이 끝마무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진은 대화가 이대로 끝났나 하는 듯이 린린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내일 너도 함께 보겠다고 하셨는데 옷은 뭘 입고 갈 거냐?”
북궁마영은 아진이 그런 식으로 딴소리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방금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면서 깜짝 놀랐다.
황상이 왜 이 자를 부르셨다는 건가 하면서 이마에 땀이 맺혔던 것이다.
밖에서는 실컷 아버지와 형님을 팔고 다녔지만 실제로 집안에서 그의 힘은 정말 미약했다.
어려서부터 쉬지 않고 사고를 쳐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텐데 다른 건 어지간하면 참고 지나가 주어도 북궁마영이 황상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하면 그때는 가문의 누구도 북궁마영을 위해 나서 주지 않았다.
북궁마영은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할 얘기가 더 남은 게 아니라면 나는 이제 방으로 올라가고 싶습니다만. 피곤해서 좀 쉬었으면 합니다. 누이와 할 말이 있으면 계속 얘기를 나눠도 됩니다. 누이가 성질이 급해서 못 알아듣는 얘기가 나오면 주먹부터 휘두릅니다만 내가 의원이니 다치면 나를 찾아오십시오. 싸게 치료해 주겠습니다.”
북궁마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냥 서 있었다.
동생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자들을 그냥 놔줄 수도 없었는데 황상을 알현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여러 가지로 제약되는 게 많았던 것이다.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먼저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직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우리 사문을 건드리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산본의가 의원을 건드릴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하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조직 관리 잘하시고 말입니다.”
아진이 말하자 북궁마영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인 것이냐! 감히 누구에게!”
“당신에게 한 말입니다. 저자들이 당신을 불렀고 당신이 여기에 나타났으면 당신도 이 일에 연관이 된 것 같은데. 나는 지금도 많이 갈등하는 중이어서 말이오. 내일 황상 폐하를 뵈어야 한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나는 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자들의 팔을 다 뽑아놨을 것이오.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오. 나는 그 일을 오늘 할까, 내일 할까 생각 중이오.”
아진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야말로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러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리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북궁마영이 누구인가.
그들은 아진 일행이 북궁마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북궁마영과 한패가 아닌 사람치고 북궁마영을 싫어하지 않는 자가 없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볼 때는 아진이 괜한 치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처음부터 린린을 응원하고 있었고 린린의 오라버니라는 자가 나타났을 때는 두 사람을 같이 응원했는데, 이렇게 꺼져 가는 불길에 다시 기름을 끼얹는 것 같은 형국을 보고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북궁마영은 화를 가라앉혀야 하는 건가 하다가 어느덧 아진의 앞으로 나갔다.
보법을 밟은 것도 아니고 모든 게 어설펐다.
그래서 아진도 조금 고민이 됐다.
이런 자를 상대로 자기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건가 했던 것이다.
“이놈. 건방진 놈이 잘도 지껄여 대는구나.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지금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앞으로 산본의가 놈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약방마다 소식을 전해서 산본의가에는 풀뿌리 하나 팔지 말라고 할 것이고 산본의가 앞에 깃발을 꽂아 놓고 내 아이들을 풀어서 그리로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북궁마영은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러댔다.
아진은 그런 북궁마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소. 그리고 당신을 보니 당신은 당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킬 것 같아 더더욱 어쩔 수가 없겠소.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생긴 일이니 너무 크게 나를 원망하지는 마시오.”
아진은 말을 하더니 일어섰다.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북궁마영도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아진을 바라보았다.
언제 아진의 몸이 자신의 눈앞으로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에는 린린이 싸우는 것을 본 자들도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었는데 아진의 움직임을 보고는 린린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세상에 사람이 어찌……! 말은 들었지만 저것은 초고수가 아니면 펼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소리쳤고 다른 이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진이 한 것은 북궁마영 앞으로 다가간 것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결과가 다 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북궁마영 역시 하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멍청한 놈들. 적당히들 할 것이지. 왜 하필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북궁마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한다고 자기를 용서해 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본가에 얘기가 돌아가면?’
북궁마영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당하는 치욕은 비단 자신이 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형님과 아버지가 사납게 화를 내는 모습이 떠오르자 북궁마영은 그럴 수도 없었다.
“더, 더…… 덤벼!”
북궁마영이 소리친 것과 거의 동시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한쪽 팔이 아래로 쳐졌다.
본래대로라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손이 닿고 있었다.
북궁마영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채 아진을 바라보았다.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냐고 하면 산본의가의 둘째 공자가 그랬다고 해라. 왜 그랬냐고 하면 네 놈이 산본의가의 의원들을 겁박하려고 해서 그런 거라고 해라. 앞으로 산본의가 사람들을 겁박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네놈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할 거라고 말을 해라. 알았나?”
아진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세…… 상에.”
사람들은 놀라서 중얼거리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아진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천하의 북궁마영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북궁마영을 두려워하는 것은 북궁마영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세력들 때문이었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생각하며 참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자신의 힘이 북궁마영의 배경보다 더 거대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작금의 구문제독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아진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북궁마영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 멈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팔을 뽑혀보고 나니 그 위험이 제대로 감지되었던 것이다.
아진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는데도 북궁마영의 팔을 하나 뽑은 것으로 멈춘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진이 북궁세가에 대우를 해 준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북궁마영은 아진이 사라질 때까지 침도 삼키지 않았다.
그 소리가 아진의 기분을 잡치게 해서 갑자기 그가 돌아오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앞에서 그런 꼴을 당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웠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객잔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한다면 북궁마영은 팔이 뽑혔다고 말하는 대신 목숨을 간신히 건졌다고 말할 것이다.
린린과 함께 나가던 아진이 갑자기 멈췄을 때 북궁마영은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왜 그러시는지…….”
북궁마영이 말하자 아진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어디에 있느냐. 산본의가 의원 말이다.”
“그것은!”
북궁마영은 깎듯이 존대를 해 가며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 주었다.
“고맙다. 앞으로는 마주치지 말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아진이 먼저 객잔 밖으로 나가자 린린이 그의 팔을 잡았다.
“계산해야지.”
북궁마영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었다.
음식값을 받아야 하기는 했지만 돈을 달라고 하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어 객잔 주인은 이미 마음을 접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그 말을 했고 아진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점소이에게 한달음에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그냥 가려고 한 게 아니고 잊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돈을 꺼내주었다.
점소이는 돈을 받고 더 놀라서 아진에게 연거푸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고 아진은 잔돈을 기다렸다.
“잔돈은 그냥 가지시라고 하고 싶지만 제 동생이 워낙 겁 없이 먹어대서……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점소이는 겁이 나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철전을 건넸고 아진은 몇 번이나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도 희한하다면 희한한 경험이었다.
객잔에서 있었던 일은 금방 소문이 났다.
산본의가의 둘째와 셋째가 북궁마영의 팔을 뽑아 버리고 음식값을 지불하고 잔돈을 받아 갔다.
첫 번째 말만큼이나 두 번째와 세 번째 말도 다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이 음식값을 지불했다는 것도 신기했고 잔돈을 챙겼다는 것도 그랬던 것이다.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자들은 잔돈은 신경도 쓰지 않고 호기를 부렸는데 그 이야기가 왠지 자꾸 뇌리에 남아 사람들은 산본의가에 더 살가운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