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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19화 (119/470)

제119화

119화

“그래도 관까지 나서서 압박하면 앞으로 설 자리를 잃기는 하겠지. 겉으로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지는 못해도 다른 곳으로 숨어 들어서 이런 짓을 계속할 수는 있어도.”

소청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 아이들을 보며 소청은 자기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진과 린린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 역시 그런 사람으로 자라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진의 보살핌 속에서 치료를 마쳤고 흥분 상태도 가라앉았다.

그 사이에 린린과 소청이 장원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끌어내고 격렬히 반항하는 자들은 해치웠다.

아진이 황제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으로도 사파는 관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오라버니. 천문관이라는 직위를 사용해서 사태를 해결한 걸 알면 황제 폐하가 오라버니를 재촉하시지 않을까?”

린린의 말을 들으며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는데 아예 이 기회에 확실하게 말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는 천문관은 원하지 않고 황제의 도움을 받고는 싶으니 적당하게 구색을 갖춘 자리를 주면 어떻겠냐고 말을 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황제를 알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루기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시한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황제가 계속해서 참아 주기만 할 것 같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기다리는 동안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돌아왔다.

표정으로 보아 련주는 놓친 듯했다.

“미안하구나. 잡지 못했다.”

북리의천은 그 일을 실패해 기분이 몹시 상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독고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제자가 부탁한 일이었는데 그것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진은 웃으면서 그럴만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스승님. 저는 황제 폐하를 뵈려고 해요.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 관계라고 하더라도 사도련이 한 일은 무림의 영역이라고 해서 그냥 봐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에요.”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도 관을 도와서 사파를 괴멸시키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무림맹 전체의 뜻인가요. 스승님?”

아진이 묻자 북리의천이 고개를 저었다.

“나와 북리세가의 뜻이다.”

“본가도 뜻을 같이한다. 아진아.”

독고소영까지 나서서 말하자 아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림맹과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 것은 어차피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림맹에는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스승이 맹주가 된다고 해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자기들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기득권 세력들은 그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아진은 그냥 처음부터 완전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렇게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

“그래. 아진이 네가 그렇게 말을 해 주니 훨씬 좋구나. 소림사는 나와 뜻을 함께할 거다. 그리고 몇몇 문파와 무가도 그럴 거고. 사천당문과 현무단도 나를 따를지 모른다.”

“예. 스승님. 어차피 사도련을 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시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생길 테고 그때 자연스럽게 무림맹을 탈퇴하시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드시면 될 것 같아요. 조직을 만드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사도련 토벌에 나서시는 것도 좋을 거고요.”

“그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우선 가닥을 잡아 봐야겠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구나.”

북리의천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많이 되는 것 같았다.

“어떠냐. 소청아. 어차피 네 스승은 너를 잘 가르쳐 줄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이 사조의 곁에서 도와주면 어떻겠느냐.”

북리의천은 일찌감치 소청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소청은 깜짝 놀라며 아진을 힐끔거렸다.

웬만해서는 아진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어떠냐. 아진아. 소청이는 나에게 양보를 하거라. 너도 양심이 있다면 소청이는 나에게 양보를 해 줘야 한다.”

북리의천이 말하자 아진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소청에게 직접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많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소청에게는 앞으로도 한동안 배움이 필요했기에 스승의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소청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소청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 제자가 이렇게 둔하다. 그걸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 보다니. 게다가 내 앞에서 말이다. 그래서 소청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청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더니 북리의천까지 그렇게 말을 하자 독고소영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소청아. 아무래도 네 스승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구나. 우리와 함께 가자.”

“……네?”

소청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북리의천이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손이라니. 정말 귀엽구나. 나는 아직 내 아이를 가져 보지는 못했다만 자식 같은 제자에 그 자식의 자식 같은 사손까지 두어서 정말 기쁘다.”

그러고는 소청의 손을 꼭 잡는 것이 앞으로 소청은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린린도 아진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하는 게 소청을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린린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린린이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아진도 확신이 생겼다.

“그래. 소청아. 그럼 그렇게 하자. 너는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게 많고 특히나…….”

그러다가 아진이 북리의천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 소청이의 무공 중에 마공이 있더구나. 그것은 내가 손을 봐 주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소청이는 내가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는 아직 소청이를 지켜 줄 힘이 없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상대가 북리의천이라면 누구도 감히 소청이 익힌 무공이 마공이라고 해도 트집을 잡지 못할 거였다.

그리고 북리의천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소청이 익힌 무공의 방향을 잘 잡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마공이라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무공이 있다면 그것을 가르칠 수도 있었다.

심법의 문제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청에게 전수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독고소영도 소청을 가늠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 줄 것인지 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아진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이 감돌았다.

북리의천을 찾아가지 못하는 동안 아진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과 부담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내려놔도 될 것 같아서였다.

북리의천에게도, 독고소영에게도, 그리고 소청에게도.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소청은 아진의 표정을 보았고 아진이 후련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소청도 주저할 것이 없었다.

소청이 북리의천을 바라보고 그가 내민 손을 꼭 잡았다.

“스승님. 천문관이 되실 건 아니죠?”

“응. 아무리 폐하라고 해도 나를 거기에 잡아 가두시지는 못해. 그래도 그동안 뺀질거리고 돌아다녔으니 확실히 말씀은 드려야지. 미련 가지시지 않게. 그리고 폐하가 나한테 힘을 주실 수도 있을 것 같고.”

“다시는 저런 일 당하는 아이들이 없게요?”

소청의 목소리는 제법 간절했다.

자기 역시 아이라서.

그리고 힘없는 아이가 당하는 일이 얼마나 험한지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려고.”

“저도 스승님께 힘이 돼 드릴 거예요. 나중에는 스승님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 폐하보다 저를 더 먼저 떠올리시게 해 드릴게요.”

그 말에 아진이 웃었다.

“그런 거라면 애쓰지 않아도 돼. 너는 항상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니까. 눈 뜨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그게 너일 테니까. 소청아.”

설마하니 그 말에 북리의천이 발끈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독고소영까지 그러고 나섰다.

“고얀 놈. 눈을 뜨면 제 스승이 가장 먼저 생각나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 맞아. 나는 지금까지 네가 그 정도 미안한 마음은 갖고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냐, 아진아?”

“아니에요. 스승님. 사고님. 동시에 떠올라요. 동시에요.”

북리의천은 툴툴거리면서 소청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청이 너도 괜히 네 스승에게 정 붙일 것 없다. 저 녀석이 원래 저렇게 무정한 놈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끼리 오순도순 정답게 살자.”

“예. 사조님.”

소청도 제 스승을 두둔해 주지는 않고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함께 잡은 두 손이 아무 거리낌 없이 다정해 보였다.

“혹시 소청이에게 당부할 말이 있으면 데려가서 해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으면 미리 주의를 시키고.”

북리의천이 아진을 위해 말했지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 못 드릴 말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지만 스승님께는 전부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진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알았지. 소청아? 사조님께는 뭐든 다 말씀드려도 된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게 생기면 여쭤봐. 함께 길을 찾아 주실 거다.”

“네. 스승님.”

소청은 이제 이별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지 울먹였고 아진이 소청에게 다가가 소청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한동안 그렇게 울 일이 없었던 소청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아진은 소청의 머리를 오래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 * *

린린은 이번에도 아진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생각할 게 많은지 아진에게 말을 많이 거는 건 아니었다.

아진이 말을 걸어야 그때에나 간간이 대답만 하는 정도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내가 황궁에 가서 관직을 덜컥 수락하게 될까 봐 걱정돼?”

아진이 말하자 린린이 그럴 생각이냐는 듯 아진을 보았다.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하나 해서.”

“아니. 련주 생각했어. 어떻게 그런 것들을 하는지. 련주가 스스로 해낸 일인지 아니면 특이한 술법을 훔친 건지. 그런 비슷한 일을 해내던 인간을 알고 있는데 그 인간을 한 번 만날 때가 된 건지.”

“그래? 그런 사람이 있어? 어디에? 천마신교에?”

“응.”

“너하고 친했어?”

“친하긴? 감히. 누가 천마랑 친해? 내 말이면 껌뻑 죽었지.”

“아아.”

그림이 단번에 확 그려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도 네 말에 껌뻑 죽을까. 아니. 그보다. 너를 알아보기는 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성도 있을걸?”

아진은 린린의 생각이 왜 그렇게 깊어지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게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일 터였다.

자기를 알아볼 거라는 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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