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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17화 (117/470)

제117화

117화

“좋아. 들어봐.”

그러면서 소월검수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는 것 같던 무상도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뭐지?”

“련주님이 좋아하시겠잖아. 련주님의 사파 천하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야. 게다가 북리의천이 자기 손으로 독고소영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 봐. 두 사람이 얼마나 애달픈 사랑을 했는지 모르나? 얼마나 큰 충격에 빠질지 상상해 봐. 절대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고 해도 싸울 의지를 사라지게 하면 그자는 산 송장이나 다름없게 돼.”

그래도 무상도는 별로 동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월검수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했다.

“십여 년 전에 강호를 호령하던 자가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원수의 손에 다 죽어 버린 후에 스스로 자기 단전을 부수고 자결한 걸 모르나? 독고소영을 죽이면 북리의천도 그럴지 몰라. 자기만 아니었으면 그 여자가 죽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련주님은 정말 좋아하실 거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정적인 한 마디였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라는 말이 무상도에게는 그를 자극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려울 것도 없겠는데? 내가 하지. 황금 두 관은 일을 마치고 주도록 하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게 나를 위해서 해 주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 말이야.”

무상도의 말이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영 바보는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소월검수는 쓴 입맛을 다셨다.

“으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배가…… 배가 찢어질 것 같아요!!”

한 아이가 울부짖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아이들도 비명을 질렀다.

듣고 있기가 처참할 정도로 안타까운 소리였지만 무상도와 소월검수는 마냥 평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북리의천은 검 한 자루를 들고 자기가 맡은 곳으로 들어갔다.

허공에서부터 뛰어내리는 그는 처음부터 검풍을 날렸고, 사파의 무리는 그게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사도련주는 어디에 있느냐!”

북리의천의 말에 그곳에 있던 이들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보며 북리의천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곳에 있는 놈들을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사도련주를 찾는 것이 더 시급했다.

“다시 왔을 때 너희가 거짓말을 한 게 밝혀진다면 너희는 물론이고 너희의 일가친척까지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북리의천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독고소영이 간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폭음을 일으키며 사파의 무인들을 겁박했고 사도련주의 행방을 찾았다.

무서운 기세에 무릎을 꿇고 손이 닳아 없어지도록 비벼댄 자들은 련주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평소에 지내는 곳은 알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하며 련주가 지내곤 하던 곳을 줄줄이 읊는데 독고소영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곳들이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그곳을 떠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린린과 소청 역시 비슷한 행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린린은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가는 곳에 련주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사고님.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채영각에 있을 거라는 거요.”

“모르겠어. 직관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딱 보니까 그 글자들만 벌벌 떨고 있는 것 같던데?”

“네에?”

소청은 그런 말을 믿고 지금 스승님이 그곳으로 간 건가 했지만 린린은 확신을 품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유난히 그 장소만 눈에 들어왔다면 분명히 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 아진은 마침내 채영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린린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구출해 나가다가 만났던 자들의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사도련주는 어디에 있느냐!”

아진은 처음부터 고함을 지르며 공력을 담아 전각을 무너뜨렸다.

지금 어딘가에서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가하게 움직일 틈이 없었던 것이다.

“련주는 대답하라!!”

쿠콰콰쾅, 하는 소리를 내며 전각이 연달아 무너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뛰어나왔다.

아진은 련주를 불렀지만 기감을 넓게 펼치고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려 했다.

성주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아이들을 데려와서 하려고 한 일이 명백했다.

아이들의 몸속에서 벌레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아진은 자신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흑주의 기운이 자신의 마나와 이질적으로 놀지 않고 함께 어우러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특이한 기운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진은 계속 검을 휘둘렀고 그의 검에 이곳저곳이 폭발해 나갔다.

“웬 놈이냐!”

먼저 나온 사람은 무상도였다.

그는 지금 련주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높았기에 이 문제를 자기가 스스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상도가 나온 전각으로 향하고 있던 아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전각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무상도가 순순히 길을 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웬 놈이냐고 물었다!”

무상도가 다시 물었지만 아진은 그와 한가하게 이야기나 나눌 생각이 없었다.

아진은 이미 한 차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 무상도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강기의 폭풍이 무상도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는 훌쩍 뒤로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처음부터 무상도를 죽일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길을 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날린 것이기는 했지만 무상도가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고 피한 것을 보며 아진은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무상도가 그 사이에 뇌혈검의 충독을 먹고 힘이 더 강해진 상태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무인의 무위가 점진적으로 강해질 수는 있어도 이렇게 며칠 사이에 급진적으로 변하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아진이 당황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무상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모든 일을 너무 쉽게만 해 온 것 같은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오늘 알게 해 주마.”

무상도가 주제 넘는 소리를 하고 칼에 공략을 담았다.

그때 아진에게 그 기운이 느껴졌다.

한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고 기운의 강도가 비슷했다.

흑주의 기운과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고 그것보다는 조금 미약했는데 아직은 완성된 단계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진은 잠시 망설였다.

무상도를 죽이려면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련주도 지금 이곳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때가 지나면 아이들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놈들은 나중에 잡아도 돼.’

아진은 결국 마음을 정하고 몸을 날렸다.

“어딜 도망치는 것이냐!”

무상도는 아진이 자신의 힘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도강(刀剛)을 줄기줄기 날렸다.

아진은 그것을 보며 대충 피하기만 하면서 전각으로 향했는데 무상도가 회심의 공격을 가했을 때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맞았다.

도강에 부딪치며 폭음이 일고 아진의 몸이 떠밀렸는데 그 순간 등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소름 끼치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은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아진은 계속해서 전력으로 달렸다.

그의 악문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상도는 신이 난 듯 몇 번이나 연달아 공격을 감행했고 아진은 한 번을 더 맞았다.

이번에는 충격이 더욱 커서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내던져졌다.

그대로 날아가다가는 벽에 처박히겠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몸을 가누고 다시 달리는데 무상도의 칼이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대기를 갈랐다.

도강이 수십 줄기로 갈라지며 촉수처럼 아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쿠콰콰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이 떨어져 나갔다.

아진은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아이들이 있는 층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나는 의원이다. 너희를 고쳐 줄 수 있으니까. 조금만 같이 참아보자.”

의원은 등과 입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평상시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은 복부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고통과 싸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감은 채 비명을 지르느라, 아진의 모습을 제대로 본 아이도 없었다.

아진은 침상으로 다가가 한 아이의 손과 발을 묶은 쇠사슬을 부쉈다.

그러고는 손에 마나를 끌어 올려 아이의 복부에 댔다.

“으으으윽!”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려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진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비슷한 상황이 아이들이 거의 열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 모두에게 가서 쇠사슬을 부수고 복부에 마나를 불어넣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곳에는 아이들 외에 다른 이는 없었다.

소월검수가 밖에서의 소란을 알아차리고 먼저 몸을 피한 탓이었다.

소월검수는 특별히 도망칠 필요가 없었지만 이 기회에 무상도의 무력을 조금 약화시켜 놓으면 자기가 싸울 때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아진에게는 조금의 시간이 생겼고 나란히 붙어 있는 침상 위의 아이들을 보고 자신의 마나를 줄기줄기 날렸다.

언젠가 뇌기를 그런 식으로 사용한 것이 떠올라 제발 이것도 통하기를 바라면서 마나를 운용한 거였는데 다행히 아이들의 몸에 이어졌다.

제발 그것이 아이들의 몸속에서 아이들을 괴롭게 하는 벌레에만 작용하고 아이들의 몸은 상하지 않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진은 마나를 통제했고 짐승처럼 울부짖던 아이들에게서 조금씩 소리가 잦아들었다.

아직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쇠사슬은 풀어 주지 못해서 일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이제 통증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괜찮아?”

아진의 물음에 몇몇 아이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무상도가 안으로 들어왔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는 이미 몇 번이나 아진을 당황하게 한 도기를 이번에도 날리려 했다.

공격이 먹힌다는 것을 아는데 일부러 다른 초식으로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느라 공격을 도외시하는 것 같던 아진이 갑자기 돌아서며 검을 빼 들더니 그를 향해 달려드는 도기를 베어냈다.

“으윽!”

앞선 공격들이 저항도 받지 않고 연달아 성공하자 이번에도 막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무상도는 갑작스러운 반격에 깜짝 놀라며 도기를 거두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갑자기 공력의 흐름이 막히고 그것이 돌아오면서 내기가 진탕되며 입에서 울컥 짙은 선혈이 토해졌다.

“으윽!”

그 대가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컸다.

잘려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칼을 들고 있던 무상도의 팔에 끔찍한 여운이 느껴졌다.

“적당히 하고 찌그러져 있어. 이 멍청아! 귀여워서 봐주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진은 아이들이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고 일단 그렇게 되자 무상도를 더 이상 봐주고만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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