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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13화 (113/470)
  • 제113화

    113화

    “요즘에는 좋은 일만 일어나.”

    “맞아. 매일 꿈같아.”

    아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을 알고 아진도 더욱 서둘렀다.

    여러 대의 마차가 산본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즉각 호기심을 갖고 모여들었다.

    그러다가 맨 앞에서 달리는 마차의 마부석에 아진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많은 사람이 모였다.

    “산본의가 작은 공자님이시네? 그런데 가실 때도 마차가 이렇게 많았던가? 그때는 마차가 한 대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표행이라고는 했지만 네 분만 가셨고 말이야.”

    산본의가의 일을 자기들 일처럼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그러나 아진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일이 풀어 주지 못한 채 산본의가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어른들에게도 그만한 여정은 지치는 일인데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어서 빨리 아이들을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령에 이르고 본격적으로 산본의가의 영역에 이르자 그때부터는 여기저기서 익숙한 얼굴들이 나와서 반겼다.

    “의원님. 벌써 돌아오는 길이세요?”

    “약은 다 파셨습니까?”

    “무사하신 거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마차가 늘었네요?”

    그들은 자기들의 가족이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하며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예. 덕분에요. 약은 다 팔고 왔습니다.”

    아진도 그때는 편안히 웃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마을을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진이 마차를 멈추고 아이들을 내려 주자 뒤따라오던 마차에서도 아이들이 내렸다.

    여러 대의 마차에서 수많은 아이가 우르르 내리자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며 모여들었다.

    “의원님. 이 아이들은 다 누군가요?”

    사람들이 묻자 아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산본의가의 제자들입니다.”

    “네에?”

    믿기지 않는 말에 알쏭달쏭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아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금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아이가 산본의가에 다 머물 수 있을까요? 저희 집에서 다섯 명 정도는 재울 수 있는데 혹시 자리가 부족하면 말씀하십시오. 의원님. 지금 산본의가는 의방에도 자리가 없을 거예요. 멀리서 온 환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천하에 있는 환자들이 전부 여기로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의방을 믿고 온 건데 의방에 자리가 없다면 정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자기들도 몇 명 정도는 맡아줄 수 있다며 지원자가 속출했다.

    “그럼 일단 본가에 가서 그곳 상황을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부탁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들어가서 미리 방을 치워놔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결정이 나지는 않았어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장원 같다고 생각하며 신기해했다.

    아진은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으며 마을 곳곳을 설명해 주었다.

    린린과 소청, 벽예월도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벽예월이 처음 그 마을에 왔던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약방과 의가를 보면서 신기해했고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소식을 듣고 먼저 나온 도종이 아이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진이 한 번씩 산본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놀랄만한 짓을 벌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한 바였다.

    “아진아…….”

    도종은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해서 그저 고개를 저어대기만 했다.

    그러자 아진보다 먼저 린린이 다가가 상황을 아주 간단히 설명했다.

    “사파 놈들한테 갇혀 있던 애들이야. 오라버니. 몇 명은 혀가 뽑혀 있었는데 작은 오라버니가 고쳐줬어.”

    그러면서 린린이 도종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도종의 눈이 커지며 욕설이 튀어나왔다.

    화도 나고 아이들이 불쌍하기도 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향해 동정심이 생긴 듯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안으로 향하며 말했다.

    “나는 산본의가 가주님의 첫째 아들이란다. 아진의 형님이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와아……!”

    아이들은 의원복까지 입은 대단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 주는 것에 감격했다.

    아진도 멋있었지만 의원복을 입은 사람은 처음 봐서 뭔가 색다르고, 또 다른 존경심이 싹텄던 것이다.

    아이들이 누군지, 그리고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산본의가 사람들은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아들였다.

    진료실에 있던 가주도, 집무실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가모도 아진과 린린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왔다가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울컥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러다 그 많은 수의 아이들을 어디에 들일지 잠시 고심을 했다.

    그러나 만약 방법이 없다면 자기들이 머무는 내원에라도 들어오게 해서 머물게 할 생각이라 고민이 그리 깊지는 않았다.

    닥친 문제가 아무리 커도 아이들보다는 자기들이 해결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오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맡아 주시겠다고 했어요. 의방에도 자리가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아진이 말을 하자 가주와 가모도 안심을 했다.

    “잘됐구나. 그런데 아이들이 겁을 먹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런 일을 겪은 아이들이라면 뿔뿔이 흩어지는 게 무서울 텐데.”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어르신들의 진심을 느낀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우선 아이들을 먼저 쉬게 하고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산본의가로 찾아왔다.

    “어떻습니까. 의원님? 의가에는 자리가 없지요?”

    마을에서 마주쳤을 때만 해도 일과를 끝마치며 얼굴과 옷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끔하게 씻고 그사이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어린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것 같아 아진의 얼굴에는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서로 알고 지내며 그들의 인품에 대해서도 믿을 수 있었기에 아진은 안심하며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야말로 이 마을에 살면서 늘 도움을 받는데요.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지요.”

    아이들은 그 분위기를 보면서 자기들이 환영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에 기대감이 서리는 것을 보며 어른들도 곧 그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아이들의 생명력은 위대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활기가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다른 애들이랑 같이 있어야 마음이 놓일 테니 서너 명씩 한 집에 같이 가는 게 좋겠습니다.”

    사십 호가 넘는 집에서 아이들을 맡겠다고 왔는데 그들 중 태반은 그냥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 아진은 몇 번이나 인사를 했고 아이들은 각자 정해진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을 데려와 준 이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내일 여기에 와도 돼요?”

    “그래. 그러려무나. 내일 보자. 잘 자라. 모두.”

    마을 사람들이 나서준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아진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모여 앉았다.

    그곳에 모였을 때 사람들은 이미 화선에서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는 상태였다.

    모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냐며 분개했고 천이재는 이 일을 그냥 둘 수 없다며 북리세가에 소식을 전해 화선의 일을 알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건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의원님. 관부에서 손을 놓고 있어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 같습니다. 화선에 정파의 세력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였을 것 같고 말입니다.”

    아진도 그를 막을 생각이 없었고 천이재는 북리세가 무인 중 경공이 뛰어난 사람들을 추려 그 길로 북리세가와 독고세가에 사람을 보냈다.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그건 지난 일인 것 같고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상처를 잊고 잘 자라 줬으면 좋겠구나.”

    가주의 말에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밝아요. 그런 일을 겪고 다시 웃을 수 있을까 했는데 웃더라고요. 아이들은. 정말 강한 것 같아요.”

    린린이 말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이도 많이 놀랐겠구나. 그런 모습을 직접 봐야 했으니. 나는 말만 듣고도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말이다.”

    가주가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소청이 배시시 웃었다.

    가주 자신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산본의가의 가주가 얼굴을 알고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만 해도 영광스러운데 직접 이렇게 챙겨주니 자랑스러워서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 것이다.

    소청의 어머니는 소청이 이곳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흐뭇한 얼굴로 아들을 보았다.

    “그럼 천마신교에는 가지 못하고 왔겠구나. 약은 어떻게 했니? 마차는 다 뭐고? 갈 때 마차를 살 만한 돈을 가지고 갔니, 아진아?”

    가모가 묻자 린린이 손을 들었다.

    “그건 제가 말할게요. 어머니. 예월 언니가 정말 엄청났어요. 약을 정말 잘 팔아요. 저는 예월 언니가 잘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이랑 말도 잘 못해서 여기에서 어떻게 살까 했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어요. 약을 파는 게 정말 대단했어요.”

    린린은 자기가 벽예월의 약한 부분을 후벼 파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이곳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벽 소저라고 하던 호칭이 이제는 예월 언니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가주와 가모는 린린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마음의 벽을 많이 무너뜨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월 언니가, ‘약 사세요오오.’ 하면 사람들이 그냥 다 사요. 진짜 신기했다니까요?”

    “그런데 벽 소저는 그럴만하지.”

    가모의 말에 린린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런데 제가 사라고 하면 안 사요.”

    “저런. 그랬구나. 린린.”

    그러자 도종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린린. 너도 그럴만하지. 만두가 사람 옆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냐? 사람들이 너 보고 경기는 안 일으켜?”

    “일으키더라고. 그래서 그랬나 보네. 큰 오라버니는 내가 없는 동안 살만했나 봐?”

    “응. 그러더라.”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조금 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다시 사도련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사도련이 이곳으로 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아진아.”

    가주가 아진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린린에게서 나왔다.

    “아마 여기로 직접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오라버니가 누구인지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럴 거예요. 오라버니가 그자들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거든요. 화가 난다고 해도 웬만하면 오라버니를 피해서 다니려고 할 거예요.”

    “확실히 간단한 문제는 아니구나. 본가와 독고세가에서도 곧 연락이 오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천이재가 말하자 북리소은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번에는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 불가피해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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