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111화
고작 스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애송이가 극성의 이형환위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바였다.
놀라움은 그의 몫만은 아니었고 마차 앞을 막아선 자들의 얼굴에 모두 긴장이 서렸다.
사라진 아진의 모습은 마차를 노리고 달려오던 자의 앞에서 나타났다.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던 아진이 눈앞에서 나타난 것을 알아차렸지만 거기에 대응할 시간도 없이 몸이 갈라져 버렸다.
머리에서부터 내리그은 검에 피가 비산했다.
“놈을 죽여라!”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리고 말에 타고 있던 두 남자가 각자 창과 도끼를 들고 몸을 날렸다.
아진은 무기를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진의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검이나 도가 아닌 무기를 볼 때 그것의 움직임에 지레 겁을 먹고 자신감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아진이 처음 싸움을 배웠을 때 그의 상대가 되었던 괴수들은 애초에 무기를 가지고 덤비지 않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사나운 부리가, 기다란 혀와 굵은 꼬리가 어디서든 규칙을 무시한 채 날아오곤 했었다.
그런 괴수들과 싸워왔던 아진에게 무기가 바뀐다는 것은 조금도 대수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창과 도끼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뒤에서 기형도를 든 자가 가세했지만 그것 역시 아진을 곤란하게 만들지 못했다.
아진을 노리고 들어오는 창 위로 날아 올라가 도끼를 걷어차자 창을 잡고 있던 놈의 몸이 휘청였다.
그 순간조차 창을 놔버릴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진은 허공으로 떠오른 도끼를 집어 들어, 창을 여전히 쥐고 있는 놈의 목을 치며 그 힘을 그대로 이어서 기형도를 든 놈의 머리 위에서 도끼를 내리쳤다.
그러나 도끼로 내리친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도끼를 다시 뽑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진은 미련 없이 도끼를 놔버렸다.
그러자 머리에 도끼가 박힌 자가 손에서 기형도를 떨어뜨린 채 주저앉았다.
세 사람이 순식간에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졌지만 대열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무리였다면 이미 몇 사람은 오줌을 지리면서 도망을 쳤을 텐데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평상시에 훈련이 잘돼 있다는 말이거나 수장이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 모두를 넉넉히 통솔하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수적인 우세 때문에 자기들이 이길 거라고 조용히 점치고 있는 자도 있을지 몰랐다.
그들이 보기에 아진은 초반부터 이형환위까지 사용하며 강하게 나왔고 그것은 공력을 많이 소진하는 일이었다.
아진이 강렬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이제 그렇게 날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련주님!”
“나도 돕겠소. 뇌혈검!”
두 방주가 무리 속에서 달려 나왔다.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모두 말에서 내린 채 덤벼들었는데 순식간에 날아온 검이 아진의 검과 부딪치고 폭음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땅이 파이고 흙먼지가 솟아오르는 동안 아진은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뒤에 대고 따로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린린이 아진의 자리로 옮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진은 린린에게 뒤를 맡긴 채 거친 폭격에 아이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조금씩 전진했다.
싸움의 장소를 그곳에서 멀어지게 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련주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아진이 왜 그러는지 느끼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버틸 재간이 없어서 조금씩 다 같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아진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고 그 상태로 날린 검풍이 대열의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말들이 놀라 투레질을 해댔고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네 놈은 반드시 내가 죽이겠다!!”
뇌혈검이 소리치며 땅을 박차고 도약했지만 아진은 이미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왱왱거리는 모기를 놔두고 싶은 마음이야 없었지만 지금은 대충 쫓아 버리고 급한 일을 해치워야 했다.
련주의 곁에 있던 이들은 아직도 설마라는 눈으로 아진을 보고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계속 내공을 사용하면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여기며 그동안 누군가 시간을 끌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이 자는 소진된 내공을 누군가에게 계속 공급받는 것 같았다.
싸우는 동안 축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검을 들어 올린 아진이 그것을 앞세워 련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련주님!”
그때까지만 해도 급할 것 없이 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당황한 채 한꺼번에 련주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련주는 이미 없었다.
련주를 노리고 덤볐던 아진의 모습마저도 더 이상 그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련주님!”
여러 방주를 포함한 사파인들은 아진이 련주를 데려가 버린 건가 하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에 있다! 정신 차리고 저놈을 죽여라!”
련주의 음성이 공중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그가 허공에 선 채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아진이 마차의 대열에서 그들을 끌어내려고 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아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진은 저를 향해 덤벼드는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를 그대로 뚫고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아진을 죽이겠다는 각오로 덤벼들던 이들이 아진을 보고 당황한 채 흔들렸다.
혹시 저자는 시력이 아주 안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자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 아진의 검에서 수십여 개의 강기가 폭사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사람들의 몸이 튀어 올랐다가 찢겨 떨어졌다.
들리는 소리는 찢어진 살덩이가 떨어지는 소리, 허공에서 비산하던 피가 투두둑 쏟아지는 소리 정도였다.
아진은 아비규환을 만들어 놓고 그곳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무리로 다시 달려나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피 분수가 솟구치고 그의 검이 지나갈 때마다 여러 사람의 몸이 양단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를 죽이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의 고함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사방으로 검강이 폭사해 나가자 더 이상 그를 적수로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련주조차도 자기가 너무 섣부르게 나섰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였다.
련주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몸을 날렸다.
허공을 걸어 련주가 사라지자 그것을 본 이들이 자신들의 신법으로 각자 몸을 숨겼다.
아진은 마음 같아서는 뒤를 쫓아가 전부 다 죽이고 싶었지만 마차에 있는 아이들을 두고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다.
마차를 향해 돌아가는 아진의 앞으로 창 하나가 날아왔다.
린린의 손을 떠난 창은 금방이라도 아진의 머리를 뚫어 버릴 것처럼 맹렬한 속도로 다가왔다.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조금 옆으로 비꼈고 아진의 뒤에서 몸을 던져 오던 자가 창에 꽂힌 채 그 반동에 못 이겨 몇 장이나 날아갔다.
“너. 나를 죽이려고 그런 거지?”
“설마.”
아진과 린린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소청이 달려 나왔다.
“스승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자들이 사도련의 수뇌부들이었던 거 맞죠? 날아서 도망친 게 련주죠?”
소청의 목소리에 마차 밖으로 아이들의 머리가 나왔다.
아이들은 바닥에 있는 시신을 보고 놀란 듯했지만 아진과 린린이 모두 무사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
“나가도 돼요?”
아이들이 말하자 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자.”
아이들은 얌전히 마차로 돌아갔다.
“저 사람들 다시 올까?”
아진이 묻자 린린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많이 당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거야. 하나하나가 사도련에서 중요한 인물들이었을 텐데. 당장 쫓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동조하면서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야. 련주라는 자가 상황 판단이 되는 자라면 먼저 그들을 막겠지. 우리한테는 지금이 기회고.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아진은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소청과 벽예월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다시 선두의 마차에 올라 몰기 시작했다.
아진은 힐끔 고개를 돌려, 마차를 몰고 오는 벽예월을 보았다.
린린과 소청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광경을 봤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 금방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훈련이 미리부터 충분히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벽예월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장면을 봤으면 배를 끌어안고 구토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벽예월은 이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처럼 묵묵히 움직였다.
자기도 겁이 나겠지만 자신이 모는 마차에 탄 아이들에게 두려움이 전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억지로 용기를 내는 듯했다.
아진은 그렇게 억지로 웃는 웃음이 마침내 실제로 그 사람을 웃게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점점 변하게 되는 것이고 나중에는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할 곳에 우뚝 서게 되는 법일 거라고 아진은 생각했다.
* * *
련주가 모처에 도착했을 때 가까스로 그를 따라온 이들이 있었다.
신법을 펼칠 수 없어 말을 타고 달려온 뇌혈검은 말과 사람이 모두 피 칠갑이 되어 있었고 그가 내리자 말은 얼마 못 가 그대로 쓰러져 죽음을 맞았다.
달리는 내내 말에게 채찍질을 얼마나 해댔는지 채찍에 맞은 곳의 살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곳까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이 용했다.
“련주님! 살아계십니까!”
뇌혈검이 달려와 하는 말에 소월검수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 말 마시오.”
“소월검수.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거늘 왜 나에게 이러시오!”
큰소리를 치는 뇌혈검을 향해 련주의 눈이 붉게 빛났다.
처음 아진이 보았던 그 안광이었다.
“다가오라, 뇌혈검.”
련주가 작게 말하자 뇌혈검은 머릿속에서 피가 말라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설마…… 아닐 것이다.’
뇌혈검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고 그런 그를 향해 련주가 손을 뻗었다.
다시 명령을 내리는 대신 그대로 손을 쓴 것이다.
그러자 뇌혈검의 몸이 련주를 향해 저절로 움직였고 허공에서 몸이 기울며 머리가 앞으로 향한 채 빠르게 날았다.
그리고 마침내 련주의 손에 뇌혈검의 머리가 공처럼 말려들어 갔다.
련주는 손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한 채 뇌혈검의 머리를 더욱 움켜쥐었고 마침내 뇌혈검은 산 채로 머리가 터져 버렸다.
곁에 있던 자들이 눈을 찌푸리며 그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동안 련주가 검으로 뇌혈검의 몸을 갈랐다.
한 번에 머리를 터뜨렸을 때는 그대로 몸을 양단할 정도로 깊이 찌를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장기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갗만 갈라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안에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것이 꿈틀거리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주위에 서 있던 자 중 그것을 보고 눈을 찌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혐오보다는 경이로움과 강한 탐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