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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10화 (110/470)

제110화

110화

“……?”

린린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음질해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이 새벽에 길을 나설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잘 차려입은 공자들이었다.

노숙한 것도 아닐 테고 어디에 있다가 온 걸까 하는데 그들에게서 술 냄새가 훅 끼쳤다.

‘와. 지금까지 기루에 처박혀 있다가 나온 건가? 엄청나다. 엄청나.’

린린은 혀를 쯧 차며 고개를 확 돌려버렸다.

누구는 어린 애들을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데 이 인간들은 이렇게 빈둥거리다니.

술을 먹었으면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여기로 오는 건가 하면서 린린이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때였다.

“소저. 소저는 선녀가 분명하오. 소저와 같은 선녀가 왜 이런 곳에 있다는 말이오. 저자요? 저자가 소저를 핍박하여 여기로 끌고 왔어?”

“별!”

린린은 코가 빨갛게 익은 공자가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혀서 발끈했다.

그러자 벽예월이 참으라며 린린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가 놓더니 그들에게 말했다.

“공자님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요. 지금은 이런 시간과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아서 이렇게 허비해도 될 것 같겠지만 나중에는 후회하게 될 때가 온답니다.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이 약을 드셔 보세요.”

얘기가 잘 나간다 했는데 왜 이 약을 드셔 보라는 말로 이어지는지 린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그 말이 먹혔다.

인과관계라고는 전혀 없는 그 말에 공자들은 전낭을 꺼내서 은자 꾸러미를 내놓았다.

“공자님. 마차에 있는 걸 다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가 없어서 새벽같이 밥도 못 먹고 나왔는데 공자님 덕분에 조금이라도 일찍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은자 스무 냥 어치 약을 산 공자가 칭찬을 받자 옆에 있던 자가 전낭에서 꾸러미 하나를 더 꺼내며 호기롭게 외쳤다.

“나는 서른 냥치를 사겠소. 어서 약을 팔고 돌아가서 쉬시오. 소저. 소저가 길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프오.”

벽예월은 소청을 깨워서 약을 꺼내오도록 했고 소청은 그 시간에 벌써 개시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가 신이 나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린린도 나서서 약을 진열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며 다가오게 마련이었다.

“산본의가에서 만든 약이에요.”

벽예월이 청아한 목소리로 말하자 산본의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던 사람들이 걸음을 빨리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여기에서만 다 팔 수는 없어서 이제 곧 가야 해요. 좋은 약이라서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벽예월의 말에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마차가 떠날 것 같았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돈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이를 어쩌나.”

그러면서 조금씩이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런 식으로 약이 팔려 나갔다.

“아가씨. 이런 건 약방으로 직접 가져오지 그러십니까. 저는 양시성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거기로 같이 가시면 물건을 확인하고 상태만 좋으면 많이 사겠습니다.”

“양시성이 어디인가요?”

“여기에서 반 시진만 가면 됩니다.”

벽예월은 린린을 바라보았고 린린은 턱을 문지르다가 말했다.

“그냥 여기서 사세요. 무게도 얼마 안 나가요. 사서 가지고 가면 되죠. 반 시진이나 날릴 수가 없어서 그래요.”

이제 린린도 어느 정도 벽예월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동안에도 벽예월의 미모가 곳곳에서 빛을 발했는데 가만 보니 사람들이 벽예월을 보려고 더 열심히 모여드는 것 같았던 것이다.

린린이 그렇게 나가자 약방의 주인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듯했다.

그사이에도 약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조금씩 물량이 줄어드는 게 눈으로도 가늠이 되었던 것이다.

소청과 린린은 마차에 약이 한가득 쌓여있다는 것을 숨기고 소량만 진열해서 사람들의 조급증을 일으키는 방법을 썼는데 그게 적중했다.

사람들은 많이 몰려 있는데 빨리 사지 않으면 자기만 못 사고 다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해서 점점 더 성급하게 구매를 결정했던 것이다.

떨어질 때가 돼도 물량이 계속 채워졌지만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심 좀 해 볼라치면 벽예월이 상냥한 소리로 약효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어느 때 먹으면 좋은지 말을 해 주는데 그 말을 한마디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정말 선녀 같으세요.”

“저는 선녀가 아니지만 이 약은 선녀처럼 치료해 줄 거예요.”

벽예월은 그렇게 받아치면서 점점 자신감을 키워나갔다.

“사고님. 벌써 십 분지 일이나 팔았어요. 약을 판지 반 시진도 안 지난 것 같은데요.”

소청이 린린에게 말하자 그녀도 놀라며 벽예월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그럼 이제 다른 곳으로 가 볼까요?”

“여기에서 팔아도 될 것 같아요. 소문 듣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여기에서만 계속 팔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벽예월이 걱정을 했지만 인근의 약방 주인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금전을 내밀며 약을 달라고 성화였다.

정말 산본의가에서 나온 게 맞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린린은 헛웃음을 쳤다.

“산본의가에서 만든 약이라고 사칭하면서 약을 파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본가에서 그냥 놔두지 않을 건데 그렇게 간 큰 사람이 있겠어요? 돈 몇 푼 벌려다가 팔다리를 못 쓰게 돼도 상관없다면 그렇게 해도 되기는 하겠지만요.”

사람들은 정말 그렇기는 하겠다며 그 말에 더욱 믿음을 가졌다.

시간이 갈수록 벽예월의 화술은 더 좋아졌고 특히나 약방 주인들이 대량으로 구입을 하자 물량이 휙휙 줄어들었다.

거기에 벽예월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며 금자를 내밀면서 약을 사는 사람들 몇 명이 가세하자 물량은 빠르게 소진이 돼 갔다.

린린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벽예월을 바라보았다.

“약 사세요오오오. 산본의가에서 만든 약이에요오오오.”

벽예월의 가냘픈 목소리가 다시 한번 널리 퍼져나갔고 인파는 더욱 빠르게 모여들었다.

* * *

아이들에게 먹일 걸 준비 하려고 시장에 다녀올까 하다가 아진은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급한 대로 사냥을 했다.

사냥한 고기로 고깃국을 끓여 주자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쉬고 있었다.

아진은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몸이 많이 허약해진 아이들에게 마나를 불어 넣어 주었다.

몇 명은 생명이 위중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아진이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 준 덕에 이제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세 사람에게만 그 일을 맡기는 건 무리였나? 천마신교에 가서 팔려고 했던 양을 다 팔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일주일은 잡아야 했으려나?’

아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커다란 짐 마차 세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진이 있는 곳은 길의 폭이 넓지도 않아서 마차가 지나가지 못할 텐데 어쩌자고 이런 곳에 마차가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응?’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아진이 마차를 향해 마주 나갔을 때 아진은 마차를 모는 린린을 발견했다.

“린린?”

“오라버니. 다 팔았어. 다 팔고 그 돈으로 마차 사 온 거야. 그러고도 돈이 남았어. 벽 소저가 정말 잘 팔아.”

린린은 신이 나서 소리쳤고 아진은 그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뒤로 가자 가운데에 있는 마차를 벽예월이 몰고 있었고 그 뒤의 마차는 소청이 몰고 왔다.

“정말 그걸 다 팔고 마차를 사 온 거라고?”

어느새 린린과 벽예월이 마차에서 내려 아진에게로 왔다.

그들은 약을 어떻게 팔았는지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었고 아이들도 그들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산본으로 돌아가자.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는 게 낫겠어.”

웬만해서는 겁내는 일이 없는 아진이었지만 이 많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저절로 긴장이 돼서 먼저 서둘렀다.

마차를 돌릴만한 곳을 찾는 것도 일이었는데 간신히 마차를 돌리고 세 대의 마차에 아이들을 나눠 태웠다.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드디어 악몽 같은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저희도 산본의가로 가는 거예요?”

“그래. 그렇단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을 잊어도 된다.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생길 거야.”

아진이 말하자 아이들은 그 말을 간직하려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꿈꾸는 듯한 표정이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에 지어졌다.

대열을 이루어 마차를 달리고 있을 때 아진은 평화로운 여정이 금세 막을 내리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차의 대열 앞으로, 오십여 인마의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봤을 때는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다가오는 이들의 눈빛이 왜 붉게 보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기가 잘못 본 건가 해서 아진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때 그들의 눈은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눈에서는 흉흉한 기운이 쏟아져나왔지만 그렇다고 눈이 다시 붉어지지는 않았다.

‘희한한 일이군.’

어쨌거나 아진은 그들이 순순히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나온다면 아진도 그들이 자신을 지나쳐서 가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사도련의 수뇌부들인 모양이군.’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상대의 내공을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고 그것은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일갑자의 내공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이 결코 평범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있는 남자에게서는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내공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그가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상당한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차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봐라.”

선두에 서 있던 자가 말하자 옆에 있던 이가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말에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날아올랐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공격을 감행하는 이들에게 아진은 고마움을 느꼈다.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은 심적인 부담을 주게 마련인데 싸움에 정당성을 주어서였다.

아진은 누구도 마부석을 지나가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마차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악몽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꿈꾸는 것 같던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선한데 다시 그 아이들에게 절망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겁내지 마라.”

아진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말로 소리쳤다.

그래도 마차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맞아. 우리 오라버니가 쓰러져도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뒤에 있던 린린까지 소리쳤다.

마차 안에 있는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더 혼란이 가중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진은 린린의 말을 듣고 웃었다.

린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쓰러지는 일을 상상하기는 어렵겠지만 쓰러진다면 그때는 린린이 나설 테니까.

아진은 마부석에서 몸을 세웠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진이 몰고 있던 마차를 노리고 달려온 자는 순식간에 아진의 몸이 사라진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형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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