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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98화 (98/470)

제98화

98화

아진에게 가르쳐준 무공은 린린 자신에게 하라고 해도 두 번이나 세 번을 연달아서 하기는 힘이 들었다.

세 번을 연달아서 한다면 세 번째는 앞의 두 번 만한 위력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적어도 한 달 동안 마기를 회복해야 할 텐데 아진은 그것을 반복하고도 아직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펼친 것이 아직 위력이 미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놀랄만했다.

게다가 네 번째에는 린린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만한 위력이 나왔다.

보이지도 않던 먹구름이 어디서 몰려온 건지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채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두터워졌다.

구름의 안쪽에서는 뇌기가 일렁였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사방의 나뭇가지를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어떻게……?’

린린은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도 못했다.

아진은 눈을 감은 채 웃고 있었다.

린린은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아진에 대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면, 그것도 정말 아끼고 아끼던 소중한 무공을 가르쳐 주면 아진은 그것을 몇 번 해 보다가 도륙을 내서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무공으로 만든다는 거였다.

린린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의 무공이라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었다.

고치고 손댈 부분이 많은, 불완전하고 흠결 많은 무공이기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무공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아진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거 정말 굉장하다. 린린. 본가에 돌아갈 때 오라버니가 업고가 줄게.”

이런 무공을 전수해 준 대가가 고작 그런 거라니.

그러나 린린도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 집안에서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린린의 머리 위로 폭포 같은 비가 쏟아졌다.

“으으윽!”

린린이 뒤늦게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지만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진은 이제 감을 잡았다는 듯이 구름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구결을 떠올리는 듯했다.

린린은 무공이 그의 손에서 다시 한번 변하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라버니. 지금은 오라버니도 조금 힘들지?”

“아니? 왜? 그렇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어?”

“응.”

“그래. 힘들어.”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인간.

아진은 그래 놓고 씩 웃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야, 오라버니?”

“절반 조금 넘게 썼나 보다.”

“그럼 이걸 앞으로 몇 번이나 할 수 있겠어?”

“모르지. 말 시키지 말아봐. 나무 밑으로 숨어 있던가. 아. 안 되겠다. 벼락 맞고 부러지면 안 되니까 그냥 비 맞아라.”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안 되는 말을 하고 그가 두 팔을 뻗어 올렸다.

저기에서 두 팔은 도대체 왜 뻗는 걸까.

린린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무공을 펼치고 하늘에서 양동이로 들이붓는 것 같은 비가 내려 지표면이 깎여나갔을 때 린린은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알려준 그 무공과 어떤 동일성조차 남지 않았다고.

그리고 아진이 펼친 그 무공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그가 일으킨 광풍에 빗줄기가 수평으로 날았고 빗줄기에 쓸데없이 강기가 맺혔다.

린린은 이제 놀라는 것도 지겨웠는데 아진을 말릴 수도 없었다.

‘설마 저렇게 해서 빗방울로 공격을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지?’

그러나 날아간 빗줄기에 수십 그루의 나무가 움푹 파이다가 쓰러지는 것을 봤을 때는 할 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와. 이거. 정말 대단하다. 린린.”

“오라버니. 적당히만 해. 적당히만. 천문관에게 필요한 것만. 그냥 비만 내리게 하라고. 얌전하게.”

“아. 맞다. 그런 거지?”

아진이 그렇게 모자란 모습을 보이면 린린은 괜히 힘이 빠졌다.

이런 사람에게 내가 진 건가 하는 생각에 한없이 좌절감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객잔에 들어갔다.

이제 린린은 더 이상 구음절맥으로 고생하지 않고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아진은 린린의 입술에 푸른 기가 도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서 객잔으로 데려온 것이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따뜻한 물을 준비하게 하고 린린을 그 물에 목욕하게 한 후에야 아진은 마음을 놓았다.

“어우. 또 큰일 나는 줄 알았네.”

아진은 린린의 혈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안심하며 말했다.

“힘을 너무 많이 썼나 봐. 배고프다.”

두 사람은 둘이서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시켰는데 방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말에 따라 점소이가 음식을 방으로 날라주었다.

아진은 경이로운 속도로 그릇을 비워 나갔다.

“그런데 황궁을 통과할 수는 있을까? 할 수 있겠지?”

“있겠지.”

린린은 심드렁하게 말했고 아진은 설레는 듯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 황궁에 처음 가 보는 거야, 린린.”

“나도. 황궁은 안 가 봤어.”

“네가 황궁에 안 가 본 걸 내가 모르냐?”

“응. 오라버니는 나에 대해 많은 걸 몰라.”

린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지만 아진은 그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린린의 주위에 있던 물건들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도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지 못한 것은, 그가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린린이 알려주었던 무공을 다시 떠올리고 있어서였다.

그러다 아진이 정신을 차렸을 때 린린은 힘이 들어서 물건을 제자리에 다시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 인간에게는 극적인 연출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짓고 린린이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그게 한두 개겠냐?”

“이건 중요한 얘기야. 오라버니가 그랬잖아? 오라버니는 여기에 오기 전에 헌터였다고. 괴수를 사냥했다고.”

아진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지금껏 본 적도 없던 마공을 가르쳐준 것도 그렇고 어쩌면 흑주가 복종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 걸까?

아진은 린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 채로 분주하게 머리를 굴렸다.

“나한테도 그런 삶이 있었어. 내 전생. 나는 천마신교의 교주야.”

“…….”

아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린린을 바라보았다.

“들었어?”

“응.”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너무. 멋있어서. 역시 내 동생이구나 싶고. 와……! 그런데 왜 이제 말해?”

자기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였을까?

아진은 쉽게 받아들였고 린린은 아진이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말을 할 걸 그랬나보다고 생각했다.

“안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이런 말 하면 안 믿을 것 같기도 했고…….”

“네가 나를 속일 이유가 없는데 내가 왜 안 믿겠어?”

아진이 말하고 린린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러다가 린린의 나이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손을 뗐다.

“혹시…… 죽을 때 몇 살이었어?”

“그렇게 안 많았어.”

“응. 그래. 그럼 됐어.”

아진은 성급히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안 많은 게 사실은 구십 살이 넘고 그러면 동생으로 대하는 게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린린이 천마였다는 말을 듣고 아진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SSS급 헌터 오라버니에 천마 여동생이라니.

“진짜 대단하다.”

아진은 신기해하며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고 린린도 흐뭇해했다.

“그러면 내일 오라버니가 제대로 못 해도 네가 하면 되겠다.”

“나는 아마 안 될 거야. 아까도 그랬잖아. 오라버니는 내 무공을 완전히 다른 거로 만들어서 압살해 버렸어. 내공도 나보다 훨씬 더 많고.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해.”

아진도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더 서두른 사람은 린린이었다.

린린은 오히려 아진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나 자기도 모르게 내공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오늘은 내공이 모자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린린은 아진을 준비시켰다.

“오라버니. 만약에 오라버니가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황궁에 가면 사람들을 죽이면 안 되지?”

“안 되지. 황군을 전부 적으로 돌릴 수는 없잖아.”

아진은 린린을 다독이면서 황도로 향했고 그곳에서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북리세가 검신 대협의 제자 서도진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력은 아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미리 북리의천을 통해서 황도의 실세들에게 얘기가 전해졌고 그들을 통해 곳곳을 지키는 자들이 미리 언질을 받은 탓이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아진은 긴장감이 훨씬 누그러졌다.

린린도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진을 뒤따랐다.

황궁에 이르렀을 때도 그 말이 통할까 하며 그래도 우선 소심하게 시도는 해 봤는데 이번에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동각대학사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미리 그렇게까지 말이 되어 있었나보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은 곧 위사를 따라갔다.

혹시 아진만 들어가게 해 주고 린린은 기다리거나 돌아가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것도 괜한 기우였다.

동각대학사에게 안내되는 것도, 그를 만난 후의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동각대학사는 후덕한 인상의 남자였는데 눈매만큼은 얇은 것이 계산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그에게 바라는 것은 황제를 알현하게 해 주는 것 정도였기에 아진은 그에게 예를 갖췄고 동각대학사는 아진의 차림에 흠잡을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쪽이 동생인 것 같은데 동생은 여기에서 기다리게 해도 되겠지?”

그의 말에 아진이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동생도 함께 갔으면 합니다. 대인.”

“구음절맥을 앓았다가 완치가 되었다고 했지? 폐하께서도 관심을 가지실지 모르겠군. 그런데 폐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네. 검신 대협의 제자에게 쓸데없는 근심거리를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아서.”

그 말을 들은 아진은 역겨워서 잠시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가 알기에 황제의 나이는 쉰이 넘었는데 동각대학사가 한 말을 미루어 보건대 황제가 린린을 탐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또 달라지지. 황제라고 못 죽이라는 법도 없고.’

황군을 대적하려고 하면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그 엄청난 수 때문에 승산이 없다는 거였지 목숨을 걸고 싸울 일이 생긴다면 황군이건 황제건 가릴 것이 아니었다.

동각대학사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기분이 더럽더니 내내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여기에 있어라. 린린. 흑주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린린도 괜한 일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흑주까지 갈 것도 없어. 어제 한 말 벌써 잊었어?”

린린이 말하자 아진도 겨우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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