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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97화 (97/470)

제97화

97화

고성을 지르려던 북리의천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산본의가를 같이 공격해서 없애 버리려고 하고 있고요. 참. 천문관 이름이 악진혁인데 천응문주와 같은 가문 사람이래요. 아. 그리고 그 사람을 소은 누님이 구했었습니다. 황도에 시험 치르러 간다고 하면서 객잔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던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천문관이 됐다고 합니다.”

“…….”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적막감.

북리의천조차 할 말을 잃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절대로 이렇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눈물이 쏙 나오게 혼을 내서 앞으로는 자주 좀 찾아오게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천문관이 왜…… 왜 자기를 구해 준 소은이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이냐. 내 그놈을 그냥! 우리 소은이 덕에 목숨을 구했으면 시험이 끝나고 당장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당연하거늘 그때 입을 닦을 때부터 싹수가 노랗다고는 생각을 했다만. 뭐? 소은이를 노려? 그놈을 내가 당장!”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자 북리의천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뭔데 그러느냐. 말만 하여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지만 지금은 앞뒤를 따질 생각도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질녀를 감히. 감히……!

북리의천은 지금이라도 당장 가서 자기가 스스로 천문관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천문관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황상에게 대항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분했다.

“아니. 아진아. 대체 왜 소은이를 노린다는 건지 말이나 좀 듣자!”

“그보다 먼저 스승님이 아시는 분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제가 폐하를 알현할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아진은 자기가 준비했던 말을 모두 했고 북리의천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한 듯 경공이 특출난 세가의 무인들을 몇 사람에게 보냈다.

그러고 있을 때 독고소영과 가주가 다른 장로들과 함께 나왔다.

“기다리고 있으면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냐, 아진이 네 이놈. 여기까지 와서도 너를 기다리다 진이 빠지게 만들 참이더냐!”

가주가 소리치자 아진이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주와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북리의천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고 긴장한 듯 다가왔다.

“형님은 또 왜 그러고 계십니까? 아진이가 어디 일부러 형님을 모른 척하고 지금까지 안 찾아온 것이겠습니까? 아진이에게도 사정이 있었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진이가 보고 싶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정색을 하고 화를 내시면 아진이가 얼마나 놀라고 면목이 없겠습니까. 얼마나 대견합니까. 구음절맥에 걸린 린린을 고쳤는데 말입니다.”

가주는 자기도 아진에게 한 마디 따끔하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진이 너무 심하게 혼난 건 아닌가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아 부지런히 아진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러자 북리의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아니다. 천문관이 감히 소은이를 노린다지 않느냐!”

그러다가 북리의천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황급히 존대로 바꿨다.

다른 이들도 있는데 가주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민망했던 듯 사과까지 했지만 가주는 그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아진아.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설명을 해 보아라.”

아진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북리세가의 사람들은 부들부들 떨며 당장이라도 천문관을 찾아가 찢어 죽여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천문관은 계략에 능하고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천문관을 공격하면 북리세가는 존폐 위기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그 찢어 죽일 놈이 우리 소은이의 목숨을 노린다는데 황상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장로 몇 사람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인내를 가지고 아진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진이 천문관과 대결을 할 거라는 말을 듣고 나서 한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진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구나. 과연 아진이다. 과연 아진이야. 아진이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복수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가주는 그 일이 이미 다 이루어진 듯 말했고 장로들은 조금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진아. 정말 네가 그것을 할 수 있긴 한 것이냐? 비를 내리게 하고, 오던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냐? 벼락을 불러오는 것은 가능할 것도 같기는 하다만…… 그리고 폭풍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천문관이 일으키는 기사는…….”

북리의천도 세부적인 사항에 이르러서는 승부를 내는 것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진이 말하자 북리세가의 사람들은 이번에도 아진에게만 그 어려운 일을 맡겨야 하는가 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자가 왜 우리 소은이에게 그런다는 말이냐.”

한참이 지난 후에 누군가 물었고 북리의천이 노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미친놈이 우리 소은이가 천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답니다. 그런 개백정 같은 놈의 주둥아리를 그대로 붙여놓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북리의천은 다시 화가 나는 듯 소리쳤고 북리세가의 모든 사람도 한목소리로 천문관을 성토했다.

그러는 동안 오직 린린만이 속으로 혼자서 수긍을 하고 있었다.

‘소은 언니가 아니라 오라버니였던 거네. 그리고 사실 천살성도 아니었을 거야. 어설프게 아는 인간들이 제일 위험한 법인데.’

“아진아. 언제 갈 생각이니? 천문관과 대항할 때 어떤 술법을 쓰는 게 좋을지 같이 의논을 해 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만.”

독고소영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지만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천문관이 황제 폐하에게 산본의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난 후면 제가 가서 뭐라고 말을 해도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기 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두르려고 하고 있어요. 사고님.”

“그건 그렇다만…… 그런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그러나 그들은 걱정하는 것 말고 아진에게 특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고 아진과 린린이 떠날 때 그들은 안타까워서 눈시울을 붉혔다.

가는 동안 아진은 말이 없었다.

그런 아진을 보며 린린이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내가 구결 좀 알려줘?”

“됐거든? 오라버니 바쁘니까 혼자 놀고 있어.”

“그래도 일단은 해 봐. 내가 그동안 안 좋은 거 가르쳐 준 적 없잖아.”

어째 듣고 보니 자기가 하던 말과 비슷했다.

“린린. 일단은 일을 끝낸 다음에 놀자. 그때까지는 집중할 수 있게 해 줘.”

그러자 린린이 그의 손을 잡아 세웠다.

“속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해 봐. 한 번만 해 봐. 해 보고 안 되면 나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게. 일각도 안 걸려.”

아진은 린린이 일단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와. 이노무 자식! 너를 이렇게 만든 게 나라서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나를 욕해야지 누구를 욕하겠냐.”

아진이 한숨을 길게 쉬고 노려보자 린린이 피식 웃었다.

“그 대신 네가 알려준 구결대로 했는데 별 것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 경공으로 가는 거다. 업어 주는 것도 없고 말도 없어.”

“와. 못됐네. 알았어.”

“……알았어?”

아진은 린린이 순순히 말하는 것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가서 뭐라고 말을 할 생각이기에 이렇게 호락호락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일단 린린에게 말은 해 두었기에 그때부터는 린린이 하라는 대로 구결을 따라 했다.

구결이라는 것이 그렇게 몇 번 듣는다고 바로 외워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아진에게는 어려움이 없었다.

무림 세계로 이동하면서 얻은 특별한 오성 때문이었다.

린린도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구결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아진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린린이 가르쳐주는 것은 천마신공이었다.

린린은 이번에 자신의 비밀을 아진에게 알려주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그냥 해 봐.”

“그래…….”

아진은 구결을 외우고 린린이 알려 주는 대로 내공을 움직였다.

린린은 아진의 동작도 세세하게 교정을 해 주었다.

“거기에서 발을 바깥쪽으로 조금 돌려. 아니. 너무 많이 돌렸어. 다시 안쪽으로. 어. 그래. 딱 그만큼.”

린린은 아진의 팔과 손 모양 하나까지도 잡아주고 그 상태에서 내공을 움직이며 구결을 외게 했다.

아진은 어떤 믿음이나 기대감도 없이 린린이 시키는 것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둥 번개가 몰려왔을 때 그는 깜짝 놀라서 그대로 내공의 흐름을 멈춰버릴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갈 길을 잃은 내공이 안으로 돌아오면서 내기가 진탕됐을 것이다.

“이건 마기로 하는 무공인데 오라버니는 왜 이게 되는 거야?”

“그러게. 희한하기는 하네. 그런데 지금 사용하는 건 두 개가 합해졌어. 내공도 움직이고 있는데 잘 안 되는 부분에서는 마나가 움직여.”

아진은 구결을 외우고 다시 초식을 펼치며 말했다.

아진은 린린이 알려준 무공이 마기를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한 상승무공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무공을 펼치면서 태연하게 대답까지 하는 자신을 보고 린린이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이번에는 될 것 같아. 그런데 네가 이걸 어떻게 알아? 아니. 아직 대답하지 마. 조용히 해 봐.”

린린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아진 혼자 시끄러웠다.

아진은 몇 번 반복하다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린린에게 물었다.

“여기가 잘 안 돼. 네가 해 봐.”

린린은 아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해서 교정해 주었다.

이제는 아진이 린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단순히 구결을 알고 있다가 그 구결을 알려 주는 것도 아니고 이건 그 무공에 완전히 숙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린린. 너. 이거 할 수 있어?”

린린은 가만히 아진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앞으로 아주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린린.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 봐.”

“괜찮으니까 오라버니가 해 봐. 오라버니도 할 수 있어.”

아진은 린린을 힐끔거리다가 우선은 자기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린린이 말한 대로 내공을 움직인 순간, 요란한 뇌성벽력과 함께 빗줄기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놀랐고 그 후에는 그보다 더 세찬 빗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진은 기뻐할 틈도 없이 마나를 반복해 움직였다.

“오라버니. 연습하는 동안 힘을 전부 써 버리고 막상 황궁에 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버릴 수도 있어.”

“아직 절반도 안 썼는데?”

아진의 말에 린린은 기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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