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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93화 (93/470)
  • 제93화

    93화

    “공자님. 그런 거라면 저희야 좋지요. 이런 말을 해서 그렇지만 여기 의원이나 약방에서 보름치 약을 먹고도 안 낫던 게 산본의가에 가서 처방받은 약 먹고 이틀 만에 바로 나았거든요. 이곳 약들이 전부 그런 식이에요. 그나마 밖에 나가서 사 먹는 약이 그 정도고 보급되는 것들은…….”

    관군들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듣기에 따라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였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로만 말씀해 주셔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더 진지한 얘기는 성주님이랑 나눠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만나주신다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아. 그거라면……!”

    그러더니 그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고 각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다.

    서로가 가진 인맥을 동원해서 사돈의 팔촌의 팔촌의 사돈까지 끌어모아 성주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 같았다.

    “공자님이라면 소개장이 없이도 들어가실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또 모르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이 일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고요.”

    그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지 깨달은 아진은 자기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여기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산본의가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아예 납품하는 곳이 바뀌면 더 좋겠네요. 그렇게 해서 산본의가에도 도움이 돼야 저희도 당당하게 이용하지요.”

    소박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진은 그 일만큼은 꼭 성사가 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갈등이었다.

    산본의가도 산본의가지만 비룡채 약방이 계속 성장하면서 약방들의 견제가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이다.

    그들은 비룡채 약방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세를 확장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영업을 하던 곳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같은 약초를 캐서 파는 건데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냐는 거였는데 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말리는 과정에서도 변질이 되기도 하고 약효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비룡채에서는 일단 그 일에 뛰어든 후에 환자들에게도 얘기를 들어보고 산본의가에서도 많이 배우며 가장 좋은 보관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써 왔다.

    희귀한 약초를 구하기 위한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고 같은 효과를 내는 값싼 재료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 기존에 약방을 운영해 오던 사람들이나 약초꾼들에게는 그 행보가 달갑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은자 두 냥짜리 약초와 철전 열 문짜리 약초의 효능이 같다면 그들은 은자 두 냥짜리를 팔고 싶은데 비룡채 사람들이 자꾸만 철전 열 문짜리 약초도 은자 두 냥짜리 약초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소문을 내는 실정이니 예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약효의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약초를 함께 처방할 수도 있는 일이라 비룡채 약방의 약은 효과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약초가 보관상태 때문에 효과가 차이가 나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랬다.

    아진은 악진혁이 의개의 성주를 만나 산본의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을 때 성주가 스스로 산본의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해 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순식간에 커지는 것을 깨달았다.

    아진은 이각도 되지 않아 의개성의 성주를 직접 만날 수 있었고 그는 그 유명한 산본의가의 공자이자 북리의천의 제자를 직접 보게 됐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서 의원이라고 부르면 되겠소?”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성주님.”

    “그러면 서 의원이라고 부르겠소. 서 의원에 대해서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젊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소. 서 의원의 나이가 어리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얘기를 듣다 보면 나이에 맞지 않는 얘기가 워낙 많아서 저절로 더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소.”

    성주는 수더분해 보였고 나이 든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 자신의 건강에 관심과 걱정이 많았다.

    아진은 성문을 지키던 사람들과 했던 얘기를 다시 했고 그는 그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정말 그렇게 해 줄 수 있다면 크게 고마운 일이오.”

    아진은 그렇게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미리 말을 했다.

    시장을 미리 점유하고 있는 곳들이 반발할 수 있을 거라고 하자 성주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자들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약한 자는 도태하고 강한 자는 살아남는 것이오. 강자존의 법칙이 무림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품질 좋은 약초를 제공할 생각이 없는 곳은 영업을 중단해야 하오.”

    성주는 급진적이었고 아진과 말이 잘 통했다.

    “그것들을 사들이는데 돈을 먼저 지불했을 텐데 우리만 공짜로 받겠다고 할 수는 없소. 약방에서 사는 것과 같은 값으로 산다고 해도 손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오. 이미 그곳의 약효에 대해서는 나도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가 많으니 시간을 지체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감사합니다. 성주님.”

    “서 의원이 동생의 구음절맥을 고쳤다는 말은 나도 들었소. 그래서 언제 한 번 얼굴을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찾아와줘서 고맙소. 사실 부끄럽기도 하구려. 성의 백성들을 생각했다면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찾아갔어야 하는 거였는데 말이오.”

    아진은 성주가 그렇게까지 말해 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속에 있던 말을 전부 털어놓았다.

    “사실은…… 제가 성주님을 속였습니다.”

    아진의 말에 성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서 의원? 약을 공급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오? 아니면 약초를 구입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오?”

    “그것은 성주님께 말씀드린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책임지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러면서 그는 악진혁이 산본의가에 찾아왔던 이야기를 전했다.

    천문관이라는 말이 나오자 성주조차도 놀란 듯 아진을 바라보았다.

    “천문관은 황제 폐하의 신임을 깊이 받는 사람이오. 그런 천문관과도 연이 닿아 있었다니 산본의가는 일이 잘될 수밖에 없는 곳인 것 같으오.”

    그러자 아진이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악 대인이 본가를 떠나고 조금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어 그 뒤를 조용히 따랐습니다. 그리고 악 대인이 금의위에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의개의 관군을 동원해 산본의가를 칠 거라는 말을 말입니다.”

    성주는 그때에야말로 놀란 표정이 되어 동그래진 눈으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게…… 도대체…… 왜 그런다는 말이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소만.”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산본의가는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악 대인이 산본성은 놔두고 이곳에 와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산본 성주님과 성주님을 이간질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고 저는 성주님이 이 일을 미리 아신다면 저를 도와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주는 생각이 많아지는 얼굴이었다.

    천문관이 아무리 황상의 총애를 받는다고는 하나 관군을 동원하라고 말할 권한까지는 없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을 보면 이미 황제와의 사이에서도 어떤 말이 오고 간 후인 듯했다.

    “흠…….”

    성주의 고민이 깊어졌다.

    성주는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몇 번 정도 본 적이 있었다.

    정치는 정말 희한해서 어떤 때는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고 자연재해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황상의 재가가 난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완전한 면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에서는 어쩐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왜 하려는 건지 황제 폐하께 정확히 고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속인 채로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런 일에 얽히면 나만 곤란해지지.’

    그는 노련했고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굼뜨고 어리숙하게 보여서 능히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은 의개성주의 본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문관이 우리 병력을 요구한다…….”

    성주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러면 나로서는 그것을 거부할 수가 없을 텐데. 천문관이 그 말을 할 때는 이미 내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조건을 먼저 내밀 테니 말이오.”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거군. 군사를 움직이는 일은 성주가 아니면 내 권한 대행이라고 해도 인가할 수 없으니 내가 며칠만 자리를 비우면 될 것이오.”

    “예?”

    “그러려면. 음. 아파야겠군.”

    아진은 그가 자기에게 협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보다 확실하고 강력하게, 성내에 전염병이 돈다고 소문을 내면 어떻겠습니까. 성주님? 그러면 천문관은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전염병이라. 그것도 괜찮군. 역시 머리가 비상하오. 산본의가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더니 명불허전이오. 그렇게 합시다. 어떤 전염병이 좋겠소?”

    “갑자기 퍼져서 사망자가 나오는 것으로 해야 하니 제가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그러면 나는 사람들을 불러서 소문을 내게 하고 성문을 폐쇄하게 하겠소. 그래도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마침 산본의가에서 의원들이 와 있어서 약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같이 내면 좋겠는데 그건 어떻소?”

    “그렇게 하면 완벽하겠습니다. 성주님.”

    “좋소. 그러면 나는 내 일을 하고 오겠소.”

    성주는 신이 난 듯 밖으로 나갔고 한참 만에 돌아왔다.

    얼굴 가득 흐뭇한 표정이 넘쳐나는 것을 보니 일이 수월하게 잘 된 것 같았다.

    “그럼 어떤 병으로 하겠소?”

    “그건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직 원인이나 병명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하지요. 그 정도로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의개성은 상당히 큰 성인데 의개성에서 전염병이 돈다고 하면 천문관도 자기가 하려는 일에 명분을 잃을 겁니다. 전염병이 창궐했는데 이 시국에 산본의가를 치기 위해 병사를 동원한다면 누가 봐도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좋은 말이오. 정말 좋은 말이오. 나를 믿고 사실을 전부 말해 줘서 고맙소. 서 의원. 앞으로 서 의원을 친구로 여기고 오래 이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소.”

    “저야말로 성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명백히 성주님을 기만했는데 죄를 묻지도 않으시고 이야기를 다 들어 주셔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산본의가와 의개성의 관군들을 살렸으니 그거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럼 나는 나가서 이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얘기를 해 두고 오겠소. 성안에 간자들이 있으니 몇 사람은 진짜 환자인 것처럼 위장하는 게 좋을 것 같소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역할을 맡을 사람도 열 명 안팎으로 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람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해 주십시오.”

    “알았소. 나만 믿으시오.”

    성주는 신이 나는 듯 거의 날아다니는 것처럼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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