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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66화 (66/470)
  • 제66화

    66화

    산동성주 파설운은 접객당에서 은밀한 손님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검은 죽립에 부채를 들고 문사복을 입은 남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그가 들어오면 급히 성주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그러면 성주는 매번 그를 접객당으로 모시라 했고 이런 식으로 독대를 했다.

    차를 내올 필요도 없다며 그때부터는 십 장 안 거리에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해서 다들 의문의 문사에 대한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해도 성주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을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군. 어렵게 만년화리의 내단을 구해놨는데 극양의 기운 때문에 복용하지 못하고 있다니. 복용할 방법도 없는 것을 팔았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닌가! 말을 해 보게. 공자!”

    성주가 화를 내자 대공자라 불린 이가 죽립 아래에서 웃었다.

    “복용할 방법이 없기는 왜 없습니까. 성주님. 저는 이미 그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허튼소리 하지 마시오. 그동안 내가 공자의 도움을 받아 남궁세가의 독문무공을 전수 받아 성취를 이루기는 했소만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말하며 나를 농락하는 것까지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입니까. 성주님. 제가 어찌 감히 성주님을 농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성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시비에게서 낳은 아들.

    그는 누구에게도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되는 자였다.

    가주가 미리 빼돌려 세상에서 숨기지 않았다면 여러 가모 중 한두 사람은 손을 썼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는 것을 조건으로 가문과 동떨어진 채 살았다.

    그리고 그 결과 가주의 피를 이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가주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을 호령하던 명문검가.

    그러나 이제는 멸문해 버린 세가의 공자.

    아무 미련이 없는 것처럼 굴면서 정작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그를 보며 성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성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만년화리의 내단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성주님을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팔 기회를 저 버리고 성주님께 판 것인데 이제 와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과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 말에는 성주도 할 말이 없었다.

    만년화리의 내단이 손에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궁진에게 먼저 매달린 사람은 바로 성주 자신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갈까 봐 애걸복걸하며 그때는 참 구차하게 굴었다.

    당장 그 큰돈을 마련하느라 뇌물도 받고 귀한 물건을 급히 처분하기도 했으며,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저자는 이미 내 욕심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주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서 충성해 온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남을 부릴 위치에 오르면 굳이 검술이나 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그 방면의 초고수들을 쓰면 된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신뢰 관계가 기본적으로 전제가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성주는 다른 이들을 믿지 못했고 자기가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껏 부단히 수련해 왔고 영약을 먹으며 내공을 증진해왔다.

    우연한 기회에 비급을 손에 넣은 것이 계기였는데 그것을 익히며 자신의 몸이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을 깨닫고 그는 무공에 빠져들었다.

    성주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영약을 복용할 때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남궁진은 그렇게 알게 된 이였다.

    처음에는 영약 구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 후에는 스스로 쌓은 인맥으로 무인들을 소개해 주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남궁진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키웠으면서도 언젠가 가문에 일이 생길 경우 남궁진이 자신의 소생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패를 주었는데, 결국 그때 건넨 패가 남궁진과 성주를 지금의 관계로 만들었던 것이다.

    “성주님. 저는 성주님을 위해서 성의 표시를 했습니다. 그것은 성주님도 부정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혹시 저만의 생각인지요? 제가 아니면 성주님이 뇌검십식과 섬전십삼검뢰를 익히실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알려드리지 않았다면 가주와 차기 가주 외에는 익힐 수 없다는 제왕검법을 성주님이 그 끝자락이라도 보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성주는 결국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진이 한 말 중에 틀린 것은 없었던 것이다.

    “성주님이 가능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저는 만년화리의 내단에 대해 성주님께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리가 절단된 자에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약을 구해 주면 뭘 하겠습니까. 하지만 성주님은 무재를 갖고 계시고 다만 너무 늦게 시작하셔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남궁진은 성주의 탐욕과 열등감을 적절히 자극하며 요리를 해 나가고 있었다.

    “성주님. 정말 저도 그 이야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제 가문은 사라졌고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분이 가문의 절기를 이어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주받은 제 몸이 가문의 절기를 익히지 못해 이렇게 된 것이지만 그래도 저는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습니다.”

    남궁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하자 성주도 기운이 한풀 꺾였다.

    “사라진 가문이라고 하나 저는 대 남궁세가의 공자입니다. 가문의 독문무공을 스스로 익히고 이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성주님이라면 그 일에 적격이겠다고 생각해 만년화리의 내단을 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공력을 온전히 흡수할 방법도 알아왔습니다.”

    차분한 말투로 남궁진은 성주를 조목조목 압박해 들어갔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천마신교의 역천마의와 몰래 만나고 왔다는 것을 안다면 저는 당장 무림공적으로 몰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십니까. 성주님.”

    내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건지 정말 모른다고 말하겠냐는 얼굴을 하고 남궁진이 성주를 바라보았다.

    결국 성주는 남궁진에게 사과했다.

    “미안하오. 공자. 공자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 다만 역천마의에게 알아왔다는 그 방법이 워낙 실현 가능성이 적고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만년화리의 내단을 구한 것이 아무 소용도 없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소.”

    “저라고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미리 생각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성주님을 이용해서 가문의 복수를 대신 하려고 하는 거라고도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주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남궁세가에서 받은 지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곳을 위해서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갖고 있지를 않습니다.”

    “알고 있소. 미안하오.”

    성주는 어느새 땀을 흘려가며 얘기를 했고 자리를 옮겨 편하게 얘기를 하면 어떻겠는지 물었다.

    그때 밖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분명 자신이 남궁진과 만날 때는 방해를 하지 말도록 말을 해 둔 상태였기에 성주의 노여움은 컸다.

    “지금 이것이 무슨 짓이냐. 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도 들어왔다는 것이냐!”

    네가 내 말을 어떻게 듣기에 그랬다는 거냐고 거칠게 호통을 치려고 할 때 답변이 이어졌다.

    이유를 알면 성주도 화를 내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 듯 당당한 음성이었다.

    “성주님. 북리의천 대협의 제자가 성주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남궁진의 몸이 보기 드물게 움찔했다.

    성주도 그 모습을 알아차렸다.

    북리의천의 제자라면 남궁세가를 역사에서 지워버린 그자가 아닌가.

    “설마…… 산본의가의 그 서도진이라는 자가 왔다는 말이냐.”

    “예, 성주님.”

    성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성주의 시선은 천천히 남궁진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남궁진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성주를 보았다.

    “나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금의 무림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북리의천 대협이 아닙니까. 북리의천 대협의 제자가 왔다면 성주님이라고 해도 나가서 맞이하기는 하셔야겠지요. 저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시지요.”

    “…….”

    할 말이 다 끝났으면 그냥 돌아가도 좋으련만,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니 성주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역천마의에게 알아왔다던 남궁진의 이야기가 신경 쓰여서였다.

    어떻게 딱 이럴 때 두 사람이 왔다는 말인가.

    서도진의 누이가 구음절맥에 걸렸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하필 남궁진이 만년화리의 내단을 복용할 방법으로 지목한 것이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였다.

    구음절맥이 아니라 오음절맥이나 칠음절맥에 걸린 여자도 몸에 음기가 많아 효과를 볼 수가 있겠지만 만년화리의 내단에 있는 강한 양기를 누르기 위해서는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의 몸이 더 좋다고 했다.

    일단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에게 그것을 먹여 몸에서 중화시킨 후에 복용하면 영약의 효과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남궁진의 설명이었다.

    문제는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가 만년화리 내단을 중화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만년화리의 내단을 그대로 복용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의 몸에서 중화시켜 여자가 죽은 후 몸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주는 그 말을 듣고도 방법이 너무 끔찍하다거나 반인륜적이어서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가 서도진의 누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고만 여겼다.

    구음절맥이 희귀한 병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구음절맥에 걸린 여자가 서이린 하나는 아닐 테니 찾아보자면 더 있겠지만 남궁진은 서이린을 통해 복용하는 것이 효과가 좋을 거라고 누누이 강조해 오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성주가 남궁진의 진의를 의심한 것이기도 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음에 오면 어떻겠습니까.”

    성주는 낭궁진에게 넌지시 말을 해 보았다.

    설마하니 자기가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남궁진이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괜찮습니다. 성주님. 저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시지요.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주는 남궁진이 쉽게 뜻을 굽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일어났다.

    차기 무림맹의 맹주로도 거론이 되는 북리의천이었다.

    지금 당장도 북리의천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가 맹주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어떤 자리에라도 오를 수 있는 인물.

    무림맹의 맹주라면 황제도 쉽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북리의천의 제자가 왔다고 하는데 계속해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자의 눈을 피해서 누이를 납치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성주의 머릿속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남들이라면 이미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을 터였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만년화리의 내단이 얼마나 대단한 영약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성주처럼 매달려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지도 않는다.

    성주는 그런 자였다.

    쓸데없는 집착과 탐욕이 자신을 갉아먹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라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온전하고 평화롭게 멈추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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