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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62화 (62/470)

제62화

62화

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를 향해 무한한 호기심이 생겼다.

단전과 내공이 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할 것은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서 단전호흡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있는 단전과 내공도 앞으로 고쳐나갈 것이 더 많은 미숙한 상태였지만 흥미로운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흠. 재미있겠어.’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기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그것을 배우기도 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소청에게는 기대가 생겼다.

“성이 무엇이냐.”

“은소청입니다. 의원님.”

“그렇구나. 소청아. 무공을 배우게 해 준다면 너는 그것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

“……네?”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고야 싶지만 자신의 형편으로는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하고 아주 많은 것을 돌려받을 생각이다. 그런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쥐를 잡는 일밖에 없다면 너를 어디에 써서 그 돈을 돌려받겠느냐.”

“……죄송합니다. 의원님…….”

아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고 생각할 것도 없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내가 보니 너는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좋은 몸과 정신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에게는 골칫덩어리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나 혼자서 그 아이를 지켜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 천방지축이라 호위가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네?”

소청의 시선이 곧장 린린에게 향했다.

린린은 아진이 소청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흐르겠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린린에게는 기재니, 무골이니 하는 것을 알아보는 눈은 없었다.

그러나 아진이 이유도 없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진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아이에게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린린도 기대했다.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아진이 소청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였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말이 달라질 수도 있을 듯했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으로 찾지 말고 제대로 가르치는 곳으로 찾아가거라. 아. 북리세가가 좋겠구나. 북리세가에 가서 검신 어르신의 제자인 서도진이 보냈다고 말을 하거라. 그 말만으로는 아마 너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가 편지를 써 주마.”

“……예?”

아이는 멍한 눈으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무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강호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검신 북리의천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이름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도움을 받은 사람이 북리의천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들었다면 북리의천의 제자를 사칭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소청은 조금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만약 검신에게 제자가 있다면 꼭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마침내 아이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으면서도 소청의 어머니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이 아프지 않은 것에 놀라 상태를 살피는 것에 몰두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끔찍한 통증이 온몸을 뒤덮더니 그 통증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온통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은공이 하는 말이 나중에야 서서히 귀에 들어왔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하나 같이 믿기 어려운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했다.

‘씨도둑질은 못 한다는 건가……’

그녀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약초꾼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깊은 산속에 움막을 짓고 살던 때, 하룻밤 집에 머물기를 청한 남자가 있었다.

허벅지와 옆구리에 깊은 자상을 입고 심장 옆에는 화살에 찔린 상처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들어왔을 때 그녀와 아버지는 모두 그가 혈교에서 만든다는 강시 같은 게 아닌가 하면서 기겁을 했었다.

그가 은씨세가의 대공자로 가문이 무림공적으로 몰려 멸문을 당할 때 혼자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거의 두 달이 지난 후였다.

그런 이야기는 흔했고 그녀는 그 역시 다른 사람들의 음모와 간계에 휘말려 가문을 잃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얌전하게 생긴 귀공자가 정말 무림공적이었고 정파 무림에서 금하는 마공을 익히려고 하다가 대가를 치른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죽어 가고 있었고 그녀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나에게는 아직 부부의 연을 맺은 이가 없소. 나는 곧 죽을 텐데 이대로 죽는다면 내 대에서 은씨세가는 끝이 나고 말 거요. 나와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면 소저는 천하 제일인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으면 따귀를 때리고 쫓아내는 게 옳았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천하 제일인의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때도 지금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그가 죽는다면 그에게는 뭐가 남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그가 부러웠다.

금방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그래도 꽤 버텨 냈다.

그녀가 소청을 가진 걸 알게 되자 그는 더욱 삶에 애착을 보였다.

어린 소청의 몸에 손을 얹고 몇 시진이 지나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조금씩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남는 시간 동안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소청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하면 그 책을 소청에게 주라고 했다.

-소청이 여기에 있는 구결들을 전부 외우거든 이것은 반드시 불태워야 하오. 이것 때문에 내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소청이 스물이 되기 전에는 절대 이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그 전에 소청이 이것을 익힌 게 발각된다면 소청은 죽을 것이오.

그는 소청의 곁에서 3년을 살다가 죽었다.

그렇게라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약초 덕이었다.

소청은 잘 자랐고 그녀는 소청에게 구결을 읽어 주었다.

구결을 읽어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지만 빨리 소청이 그것을 전부 외워서 책을 불태울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랐다.

땅속 깊이 책을 파묻었다가 한 장씩만 뜯어서 읽어 주는 건데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진이 소청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그 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 분이라면 자기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소청이 북리세가에 갔다가 그동안 익힌 심법을 들켜 고초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저…… 의원님.”

“예. 말씀하십시오.”

아진이 공손히 말하자 그녀는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제가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상처를 먼저 치료해야 했지만 부인의 정신이 온통 다른 것에 팔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관심이 생겼다.

* * *

이야기를 다 듣고 났을 때 아진과 린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청은 자기도 같이 있고 싶어 했는데 어머니가 극구 나가 있으라고 말을 하는 바람에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무림세가의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아진이었지만 정파 무림인들이 일단 누군가를 무림공적으로 몰면 그 사람은 끝났다고 봐야 하는 거라는 걸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청의 아버지가 더러운 음모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이야기에 반전이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해서 큼큼거렸다.

설마하니 정말 마공을 익힌 거라니.

“은씨세가에는 대대로 전해지는 가문의 절기가 있었는데 대성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 서서히 몰락해 가는 중이었다고 해요. 강호 전체는 물론이고 그 지역의 삼십 대 고수에도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면서 점점 세력이 약해진 것 같았고요. 제 생각에는 소청의 아버지가 자존심에 은씨세가라고 했을 뿐이고 세가라고 불릴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녀는 현실적이었지만 은씨세가에 대해서는 아진도 들어 본 적이 있었기에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말을 해 주었다.

“의원님이 소청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소청은 제가 알려준 구결대로 뭔가를 해 보는 것 같았는데 그런 게 그 애의 몸에 남아 있다가 다른 무인들에게 발각되지는 않을까 해서요.”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은 소청을 걱정하며 말을 하고 있었지만 아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공.

천마신교.

그곳에는 정파와 다른 방법으로 의술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여기에서는 린린을 고칠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천마신교에서는 얘기가 다를 수도 있었다.

아진은 북리의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마도들은 흉악하고 잔인해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의술의 발달은 정파보다 훨씬 더 뛰어날 거라는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막상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에 거기에 방법이 있다면 마교를 무턱대고 배척만 할 일도 아니지 않나?’

북리의천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아진에게는 정파 무림에 대한 소속감은 거의 없었다.

산본의가에서 눈을 뜬 후 무공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북리소은이 산본의가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진은 북리세가와 연을 맺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 연을 맺은 곳이 북리세가였고 북리세가가 정파 무림이었다는 것뿐이지 아진 자신이 천마신교를 좋지 않게 여길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눈앞에서 잔인무도한 짓을 저질러서 양민을 대량학살하는 것을 봤다거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소청의 어머니는 아진이 말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자기가 그 이야기를 괜히 꺼낸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했다.

소청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망친 것은 아닌가 했던 것이다.

“역시…… 소청은 보내지 않는 게 좋을까요?”

부인의 말에 아진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러나 계획을 조금 변경할 필요는 있을 듯했다.

편지 한 장만 달랑 들려 보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북리세가에 데려가서 스승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선은 여기에 누워보십시오. 아직 남은 치료가 있습니다.”

“네. 의원님.”

부인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북리세가에 가서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들떠있던 아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만약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소청이 혼자 북리세가에 갔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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