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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61화 (61/470)

제61화

61화

린린은 신나겠다는 듯이 방긋 웃었다.

2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환하게 웃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순간이었다.

그의 사제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치료비를 굳힐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는지 사형을 말리지 않았다.

“잘 봐 둬. 이건 스승님의 친구분께 배우고 잘 써먹지는 않았던 건데 너한테 맞는 것 같으면 내가 가르쳐 줄게.”

아진은 그때부터 눈앞의 무인들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린린에게 말했다.

남자는 그 말에 기가 막혀서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언제 움직인 건지 모를 아진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손은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는데 아진의 손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저 눈속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지만 바로 그 순간 수영이 허공에 붙잡힌 듯 보였다.

“소림사의 천엽수야.”

고작 일개 의원인 줄 알았던 이가 내공을 운용하면서 수공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기함할 일이었는데 그러면서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수영을 잘 봐. 원래 내가 배운 건 저렇지 않았는데 기왕 여러 개의 수영을 날리는 거면 각자 다양하게 사용해도 될 것 같아서.”

그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수십 개의 수영이 남자의 몸에 날아가 그를 벽에 처박히게 하고 내장을 터뜨리고 가슴에 움푹 파인 자국을 만들었다.

남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한 눈을 하고 사제를 살린 의원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벌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린린의 품에서 검은 구슬이 나오더니 남자를 향해 내달렸다.

진기를 흡수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 같았는데 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손댈 사람들이 아니야.”

구슬은 그냥 한 번 알아보려고 한 거였다는 듯이 냉큼 린린에게 돌아갔다.

“이걸 전부 고치려면 은자 예순 냥은 받아야겠는데. 어떻게. 치료를 받을 생각은 있고? 시간 놓치면 다시는 검을 들지도 못할 텐데? 그게 더 좋은 일이긴 할 것 같지만.”

아진이 명백한 조롱을 담아 말하는 동안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 대협…… 대협…… 제발 저희 사형을 살려주십시오……!”

남자의 사제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하자 아진이 손을 내밀었다.

“당신 치료비 은자 서른 냥에 이 자의 치료비 예순 냥을 내면 치료를 해 주지. 나는 원래 선량한 사람인데 당신들이 나를 양아치로 만드네.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

린린의 치료를 위해 비싼 영초가 계속 들어가 늘 돈이 쪼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진은 언제나 합리적인 선에서 치료비를 책정하고 그것을 받아왔다.

의료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때와 비교해 팔 할 정도만 받고 해 주는 건데 가끔 뒤에 가서 딴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처럼.

남자의 사제는 돈을 냈고 아진은 그를 내보낸 채 마나를 불어 넣어 남자를 고쳐주었다.

남자는 이미 한계를 넘은 고통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후라 눈가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가자. 린린. 한 번에 돈을 많이 벌어서 진료 안 해도 되겠다.”

객잔이나 시장에서 진료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나쁜 기억이 훨씬 많았다.

근처의 의료원에서 쫓아와 자기들의 영업을 방해한다며 행패를 부리는 건 일상사였고 일단 용하다는 소문이 나면, 놔둬도 하룻밤 자고 나면 저절로 나을 것까지 전부 가지고 와서 귀찮게 해 대는 것이다.

이 정도 아픈 건 그냥 놔둬도 나을 거라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도끼눈을 뜨곤 했다.

기껏 찾아낸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 주지 않는 것이 속상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식당으로 돌아갔을 때 음식은 이미 식어 있었지만 주인이 다시 데워서 새로 가져다주며 정성을 쏟았다.

그들이 객잔에 머물러 주면 용하다는 의원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객잔에 몰려올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아진과 린린은 식사를 마치고 식삿값과 별도로 은자 두 개를 올려놓고 그곳을 조용히 떠났다.

아무래도 벽을 부순 값을 검무문의 무인에게서 직접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옷은 못 빠네? 씻지도 못하고.”

“조금 더 가서 다른 객잔에서 하면 되지.”

린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두둑해져서 린린도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다음 객잔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어.”

린린은 지루한 듯 말했지만 가는 동안 아진이 구결을 알려주자 그것을 외우며 집중했다.

“그런데 오라버니. 스승님은 안 보고 싶어? 오라버니 스승님이 요즘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말을 듣는다던데. 나 때문에 그런 분의 곁에 머물 기회를 놓친 거 아니야?”

“왜 아니야. 맞지.”

아진의 말에 린린이 피식 웃었다.

“후회는 안 해?”

“응. 스승님에게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어. 그리고 나는 뭐가 더 중요한지 알아.”

아진이 린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린린이 씨익 웃었다.

린린은 자신이 쉽게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성격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진이 그 마음을 아주 몰라 주지는 않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 * *

객잔은 그 주변에 늘 문젯거리를 포진시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진이 가는 곳이 유독 그런 걸까?

객잔이 있다며 아진과 린린이 동시에 말을 하고 기뻐한 것도 잠시.

그 앞에서 한 중년의 부인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린아이의 몸에 의지를 한 채 걸어가고 있었다.

린린이 아진을 바라보며 부탁을 해 보려고 했지만 아진이 더 빨랐다.

순간적으로 보법을 밟아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간 아진이 부인을 보았다.

“저는 의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부인을 부축하고 있던 아이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아진에게 매달렸다.

“의원님. 제발 저희 어머니를 치료해 주세요. 저 때문에 관에 끌려가서 맞으셨어요. 어머니는 잘못 하신 게 없는데 저를 대신해서 맞으셨어요. 저도 잘못한 게 없는데 흑…… 현령님 딸이 자꾸 제가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아와서 저는 그냥 피했는데…… 말이 그런 건 저 때문이 아니었는데 제가 그랬다고…… 흑. 그래서 어머니를 데려다가 이렇게 때렸어요. 엉엉엉……!!”

아이는 간신히 말을 마치고 설움에 북받친 듯 울음을 토했다.

이제 여섯 살이나 됐을까.

억울한 일을 겪고도 말을 할 곳도 없던 도종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산본의가가 이렇게 번듯하게 섰지만 처음에 아진이 이 세계에 왔을 때만 해도 얼마나 막막했던가.

산본의가 사람들은 수시로 혈천방에 맞고 다녔고 제선문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괴롭히면 괴롭히는 대로 전부 다 참아내야 했다.

“지금은…… 제가 가진 돈이 없지만 흑. 저희가 가난해서 돈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꼭 갚을게요. 의원님. 제가 뭘 해서라도 갚을게요.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 좀 꼭 낫게 해 주세요.”

아이는 서러운 듯 계속 눈물을 훔쳐냈다.

백성을 지켜야 할 관이 평민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집으로 가자. 집이 어디지?”

“한 시진은 가야 해요.”

“그래. 가자. 어머니는 내가 업을 테니 너는 앞장을 서거라.”

“정말 감사합니다.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았으면 달려서 갈 수 있겠느냐. 너만 빨리 갈 수 있다면 좀 더 일찍 도착해서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아이는 대답을 하지도 않고 그때부터 달려가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텐데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멈추겠지 했지만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달렸다.

자기가 멈추면 아진과 린린도 멈출 거고, 그러다 보면 집에 늦게 도착하게 돼서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디쯤인지 말을 해 봐. 이러다가는 네가 먼저 쓰러지겠다.”

린린이 아이를 세워놓고 말하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길이 복잡해서 제가 가야 아실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아이는 다시 달렸고 아진은 등에 업힌 부인에게 계속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업힌 자세도 어정쩡하고 제대로 업히지도 못하던 부인이 어느 순간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의…… 의원님…… 저…… 이상한 말이기는 한데 제가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제가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인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진은 그럴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계속 아이를 쫓아갔다.

아이는 헉헉거리면서 이제 정말 한계에 이른 것 같았는데 그러고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제 천천히 가도 되겠다. 네 어머니께서 나아지신 것 같으니 말이다. 네 정신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마는 그렇게 네 몸을 생각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죽을 수도 있다. 네가 죽으면 네 어머니는 누가 돌보겠느냐.”

그때까지 어떤 말로도 아이를 멈출 수 없었는데 아진이 말을 하자 아이가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다 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움이 한층 더 커진 얼굴이었다.

“어머…… 니……!”

“소청아. 이 어미는 괜찮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상하게 힘이 나는구나. 아프지도 않다.”

“어머니…….”

소청이라 불린 아이는 그 말을 믿기가 어려운 듯했지만 자기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의원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희 어머니께서 정말 나으신 건가요?”

“네 효심이 깊어서 하늘이 도우신 것 같다.”

“……네?”

“나는 산본신의님에게서 직접 의술을 배운 제자다. 이런 나를 만났으니 하늘이 도우신 게 아니겠느냐.”

아진이 자랑스럽게 말하자, 멈췄던 아이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는 여러 감정이 교차한 듯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소청이라고 했지?”

아진이 아이의 앞에 앉아서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이가 눈물을 닦아내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은공이 물을 게 있나 해서였다.

이런 눈을 보는 건 오랜만이다.

아진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진 힘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정작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아이는 다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네가 한 말은 지킬 것이냐?”

“예? 네. 의원님. 반드시 지킬 거예요.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치료비도 갚고 의원님께 받은 도움도 전부 갚겠습니다. 아무리 갚아도 저희 어머니를 살려주신 은혜는 갚지 못하겠지만요.”

아이의 말에 아진이 흐음 하고 목소리를 흘렸다.

아이는 자기 대답이 신통치 못했나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에게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할 생각이다. 1, 2년으로는 갚지도 못할 거다.”

“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원님.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온종일 쥐를 잡아서 가져다줘 봐야 철전 두 문을 받는 게 다거든요.”

“쥐를…… 잡아서 팔아왔느냐?”

“네. 다른 일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요.”

아진은 아이의 팔을 잡아 보았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보였다.

아이는 보기 드문 기재였다. 게다가.

‘작지만 단전이 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내공도 있고. 이런 아이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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