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40화
“그런데 의천. 아진에게 내 무공도 전수해도 돼? 무공은 의천보다 내가 더 낫잖아. 그건 의천도 인정하지?”
“허!”
북리의천은 기막히다는 듯이 독고소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독고소영이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북리의천을 보았다.
“어머. 의천. 혹시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소영. 나는 소영의 무공을 인정한다. 하지만 무공이 나보다 낫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
아진은 다시 흥미진진해진 두 사람을 구경했다.
객잔에서 산 육포를 종종 씹곤 했는데 시원한 캔 맥주가 있었으면 딱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그게 아쉬울 뿐이었다.
아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이 점점 극에 달했다.
북리의천도 웬만하면 그럴 때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편이었는데 아진의 앞이라서 그랬는지 그때만큼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비무를 해야 인정하겠다는 거야?”
독고소영이 말하자 북리의천이 피식 웃었다.
“소영. 아진의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 이해한다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검을 뽑아. 북리의천.”
독고소영이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는 듯이 먼저 검을 빼며 말했다.
북리의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아진의 견식을 높여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 잘 봐 두어라. 아진아. 아마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네. 스승님.”
이기는 게 우리 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아진은 짧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손뼉까지 치면서 응원을 했다.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북리의천은 기세를 풀풀 풍겼고 독고소영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 북리의천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쳤던 아진은 독고소영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검강을 만들어 낸 사람은 독고소영이었다.
북리의천은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독고소영이 진심으로 대하고 있음을 깨달은 듯 그 자신도 강기를 덧씌웠다.
어디서 마두가 나타나 생사투라도 벌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숨에 서로에게 짓쳐들어갔다.
두 개의 검이 파공성을 낼 때는 푸른 불꽃이 튀며 대기가 휘말렸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펄럭이며 주변의 흙먼지들이 몇 장이나 솟구쳤다.
두 사람은 일시에 뒤로 물러나 간격을 벌리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어떤 초식으로 치고 들어갈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독고소영이었다.
그녀의 검이 쏘아지면서 독고소영의 몸이 검과 하나가 된 듯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허!”
북리의천은 독고소영이 신검합일의 수법까지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재빨리 검을 막아 냈다.
허공에서 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독고소영의 모습은 그녀가 어떻게 검후의 이름을 얻은 건지 예측하게 해 주었다.
북리의천은 빠르게 검을 휘둘러 그녀의 검로를 막고 독고소영의 어깨를 향해 장을 날렸다.
“윽!”
독고소영이 바닥으로 내려서며 북리의천을 노려보았다.
아진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의 20년 만에 만난, 어쩌면 20년도 훨씬 지나서 만난 두 사람이 아진의 앞에서 서로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북리의천. 아무리 그래도 너는 나를 당하지 못해. 네가 나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
북리의천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독고소영은 짜증이 제대로 치민 듯 검을 휘두르며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주위로 수십 개의 검영이 만들어졌는데 아진은 그것이 북리의천이 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허공에 새겨진 검영을 모아 검파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을 떠난 검영이 실초(實招)가 되어 북리의천을 향해 날아갔다.
각각 속도를 달리하며 그것들이 날아가자 그 반경 내에 있다가는 피할 수가 없겠다고 생각한 듯 북리의천이 풀쩍 뛰어올랐다.
“그쯤 해라. 북리의천.”
“내가 할 말이다. 소영. 네가 그런다고 내 제자가 너를 따르지는 않아.”
은연중에 북리의천의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가 왜 이렇게 비무 하나에 사활을 걸었는지.
그들의 비무가 왜 생사투로 번지고 있는지 그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아진은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손을 들고 허공을 찔러 보기도 하고 두 사람이 펼친 초식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나가 저절로 내공으로 바뀌어 움직였다.
북리의천이 옆에 있었다면 내공의 경로를 알려 줬겠지만 지금은 그의 도움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북리의천이 아니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북리의천은 아진의 견식을 높여 주겠다던 처음의 생각은 잊어버리고 어느덧 독고소영과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진에게는 아주 유익했다.
북리의천이 아진을 의식했다면 아진이 보고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초식들을 구성해서 펼쳤겠지만 지금은 독고소영보다 더 고강한 절기를 펼치겠다는 것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비무를 시작한 장소에서 몇 리를 이동하며 싸웠고 어느새 폭포 앞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검이 날카로운 굉음과 불꽃을 튀며 부딪치는 동안 압도적인 내공이 폭발하며 폭포가 중력을 거슬러 솟구쳤다.
그 뒤에 서 있던 견고한 바위마저도 터져 나가는데 두 사람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럴 때는 한 사람이라도 이성을 차리고 말려 줘야 할 텐데 아진은 그들 못지않게 심취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되네.”
그는 두 사람의 비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값진 경험이었는지 알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지치지 않고 날을 지새워가며 계속 비무를 펼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아진은 주위를 둘러보고 나무 막대기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검처럼 휘둘렀다.
곁눈질로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을 보며 그들이 어떻게 검에 강기를 드리우는지 보았다.
“아아…….”
내공이 한 길로 달음질치다가 그의 손에서 떨쳐나가 검으로 이어졌다.
아진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북리의천을 따라 할지 독고소영을 따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익숙한 것은 북리의천의 몸짓이었지만 그는 가 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격전 중인 무인의 몸에서 내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그게 말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셋 중에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북리의천이었고 그는 처음의 비무 장소에서 멀리 왔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아진아!”
그는 아진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고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리의천이 아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독고소영도 혼몽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아진아.”
그녀 역시 아진을 찾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아진이 무아지경에 빠진 듯이 움직였고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흘러나와 아진을 감싸고 있었다.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의천…… 아진은 누구야?”
독고소영이 소리를 죽여 물었다.
행여 자신이 내는 소음이 아진을 방해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내 제자. 내 애제자.”
그렇게 말하는 북리의천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깃들었다.
아진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진은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승님, 사고님. 앞으로도 비무를 자주 해 주세요.”
천진하게 웃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아진은 반로환동한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뿌리 깊게 그들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북리의천은 내친김에 아진에게 그것을 물었다.
“아진아. 이리 와 보련?”
아진은 북리의천에게 다가갔고 북리의천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도 이미 알 것 같았다.
다른 세계에서 괴수와 싸우다가 어느 날 나타난 상태 창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북리의천이 생각하는 대로 반로환동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까 생각도 했지만 반로환동했다고 말을 한다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질 텐데 그때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도종에게 도움을 이만저만 받은 게 아니었다.
도종이 아니었다면 갑자기 떠맡은 아진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내지 못했을 거였다.
“아진아. 내공이 없이는 그런 것들을 할 수가 없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단다. 내가 알기로 아진이 너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심법을 알지도 못했고 따로 축기를 한 것도 아니었지. 그런데 너에게는 이미 내공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이 사부에게 할 말이 없느냐?”
“저도 잘 몰라요. 스승님. 제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건지요.”
아진은 가장 편한 답을 말했다.
모른다고 하면 어쩔 텐가.
그래도 진실의 조각을 조금은 보여 주기로 했다.
“사실은 어느 날 쓰러졌다가 일어났는데 그때 잠깐 기억이 사라졌었어요. 그때부터 제가 조금씩 달라졌고요. 약초 이름도 술술 외워지고 그랬거든요. 몸도 좀 강해진 것 같고요.”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구슬처럼 맑은 눈을 하고 아진이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진이 너는 아직 어리니까 수신호위는 꼭 필요해. 너는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직 충분히 강하지는 않으니까. 알았지?”
독고소영은 너무 강한 아진을 보고 긴장한 듯했고 북리의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이 사부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진아. 이 사부가 아직 보여 주지 않은 게 많아.”
북리의천은 눈앞의 아진이 자라 훌쩍 커서 어느 날 자기 품을 떠나버리는 게 상상이 돼서 울적해졌다.
아진은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외로운 최강자의 삶은 이미 한 번 살아 봤고 그는 그런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진아.”
독고소영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네. 사고님.”
“내가 더 잘했지?”
“……네?”
“네 사부보다 내가 더 낫지?”
아진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자기가 오래된 연인들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아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