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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7화 (37/470)

제37화

37화

미련하고 고집스럽던 사람.

왜 그의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을까.

독고소영이 원한 것은 한 가지였다.

북리의천에게 주어진 삶이 길지 않다고 해도 그 삶을 함께하고 싶었다.

네 곁의 자리 한 켠을 내달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북리의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독고소영이 다른 사람의 곁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네가 아니면 누구의 곁도 싫다고 말을 해도 그 고집스러운 남자는 끝까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녀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홧김에, 황도의 잘난 남자와 혼인을 올릴 거라고 말을 하고 독고세가와 북리세가에도 북리의천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해 두었다.

혼례식에 오라고 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혼인을 한다고 말한 날, 독고소영은 북리의천이 있는 전각 지붕에 기척을 숨긴 채 앉아서 북리의천을 지켜보았다.

후원에서 그는 바람이 쌀쌀해지는 것도 모르는 듯 두 시진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한숨조차 짓지 않는 그를 보다가 독고세가로 돌아간 그녀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곧 북리의천이 죽을 거라고 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숨어든 곳이 그곳이었다.

폐관 수련장에 있지 않았다면 독고소영 역시 혈겁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밖에서 나는 소리는 폐관 수련장에까지 들렸고 밖이 소란스럽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수로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왔을 때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수많은 사람의 시신이었다.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그녀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 싸늘한 시신이 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나왔으면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나왔기에 독고소영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흉수가 누구인지, 그놈들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시신들을 거두었다.

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정말 살 수 있을까? 정말 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생각을 하면서 달렸고 월동문을 지나 북리의천을 발견했다.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담아 둔 채 그들은 시신을 옮겼다.

“그 아이가 할아버지를 살렸어.”

한참이 지난 후에 독고소영이 말을 했는데 북리의천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우선은 시신을 옮겼다.

죽어서 나무처럼 딱딱해진 시신을 옮기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어떤 시신을 먼저 가져와야 할지 순서를 정해 주었지만 어차피 누가 먼저 죽었는지 알지도 못했다.

북리의천은 한 번에 여러 시신을 모아 경공을 펼쳤고 독고소영은 그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수레를 가져왔다.

북리의천이 돌아왔을 때 그는 시신이 높이 쌓인 수레를 보고 기함했다.

고인에 대한 모독처럼 보여서였는데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빨리 아진의 곁으로 시신을 옮겨야 그들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소영. 적당히 실어라. 이러면 나도 힘들어.”

“내가 밀어줄게.”

북리의천이 기분을 풀어 보겠답시고 한 말이라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독고소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의천의 제자는 누구야?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거지? 지금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본가의 사람들을 살려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저러다가 선천진기까지 써버리는 건 아니야? 의천이 미리 내공을 확인하고 조심하게 해야 해.”

북리의천은 독고소영의 말이 고마웠다.

이런 상황에서 가문의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을 텐데 아진을 생각해 주어서였다.

독고소영이 살려야 하는 사람 중에는 그녀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죽은 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아진의 목숨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로원으로 갔을 때 그곳에는 몇 사람이 목숨을 구한 채 누워 있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었다.

아직은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안 되는 듯 누워서 서서히 회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활력 징후가 왜 그렇게 늦게 돌아오나 하던 아진은 그들이 내공을 실은 공격에 당해서 그런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린다뿐이지 몸의 상처도 전부 나아서 이대로 지나면 회복에는 무리가 없을 터였다.

“이게 어떻게 된…….”

독고소영은 분명히 시신의 상태였던 사람들의 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면서 먼저 아진에게 다가갔다.

“아진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너 지금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이렇게 해 주는 게 정말 고맙기는 하지만 이러다가 네가 잘못되면 나는 의천을 볼 수가 없어.”

독고소영의 말에 아진이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제 상태를 봐 가면서 하고 있어요. 할 수 없는 일이면 어차피 저도 안 해요. 못 하는 거죠.”

아진이 말하며 시신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냐고 물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운반이 끝이 났다.

그만큼 북리의천과 독고소영이 쉬지 않고 움직인 결과였다.

“아진아. 정말 괜찮은 것이냐.”

북리의천이 말하자 아진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해야 할 게 있으면 알려다오.”

“온기가 돌아온 분들을 실내로 옮겨 주시고 저분들이 드실 걸 준비해 주세요. 한기를 느끼실 테니까 따뜻하게 해 주시고요.”

“그래. 그러마. 그건 내가 할 테니까 소영은 여기에 있으면서 아진이 부탁하는 것들을 해 줘.”

“그래.”

아진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북리의천이 독고소영의 집안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럽다.’

실없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진은 다시 치료에 전념했다.

“빠진 사람은 없어요?”

아진이 묻자 독고소영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자랑스러워. 도망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모두 싸웠던 것 같아. 세가의 무인들 모두에게, 그리고 고용인들에게 모두 빚을 졌어. 두고두고 갚아야지.”

“정말 그러셔야겠네요.”

아진도 그것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진은 세가에서 발견된 시신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

많으면 절반 정도나 발견되고 말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도 세가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면.

그리고 도대체 어떤 가문이면 그럴 수 있을까 해서 아진은 호기심이 생겼다.

“아진아. 나는 정말 네가 걱정되는구나. 혹시라도 힘이 들면 말을 해야 한단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내 목숨과 바꿔서 살린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네 안전과 맞바꿀 정도는 아니야.”

“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힘이 들거나 위험해지는 것 같으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그때부터 아진이 다시 집중하는 듯하자 독고소영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기다려도 아진이 시키는 것이 없자 독고소영은 북리의천에게 가서 그의 일을 묵묵히 도와주었다.

방안에는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급한 대로 화로를 모아다가 그곳에서 불을 피워 열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북리의천은 사람들의 몸이 굳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그들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고 독고소영도 그의 곁에서 여자들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나중에는 한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고도 조금 멍해 보였지만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지냈어? 여기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 소식을 전한 사람이 있었어?”

북리의천이 묻자 독고소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여기에 계신 분들도 옮겨 주세요. 추우신가 봐요.”

“이크.”

북리의천이 일어서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진이 있는 원로원과 그들이 있는 전각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저 아진이 소리를 크게 냈다고 해서 말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의천. 네 제자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야? 벌써 음성에 내공을 실을 수가 있다고?”

독고소영이야말로 놀라워하며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지금까지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봐.”

북리의천이 나가고 독고소영은 사람들 틈을 돌아다니며 살아난 사람들을 보면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건지, 자기들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것도 그녀의 몫이 되었다.

“의천이 제자를 데리고 왔어요. 의천의 제자가 할아버지를 살렸고요. 지금도 무리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있네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운기요상을 하는 건지…… 아무리 운기요상이라고 해도 이미 목숨이 떠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화타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독고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할아버지. 우리는 실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가의 무인들은, 그리고 세가의 고용인들은 아무도 도망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세가를 위해서 싸웠어요. 아진이가 묻는데 자랑스럽더라고요. 아진이도 놀라는 것 같았고요. 다른 세가라면 그러지 않았겠죠?”

태상가주의 얼굴에는 아직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다.

“의천에게 가 볼게요. 살아난 분들이 추울 거래요.”

독고소영은 그 말을 하다가 울컥해졌다.

“할아버지. 믿기세요? 추울 거래요. 다시 추위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독고소영은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웃었다.

그 일은 꼬박 한나절 동안이나 계 되었다.

그나마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다른 명문세가에 비해 적은 숫자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아진도 자기가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나가 버티지 못한다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그들을 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다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아진은 계속해서 자신의 상태를 살펴 가며 마나를 불어넣었는데 독고세가의 모든 식솔을 살려내도록 마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마나가 얼마나 있는 거야?’

아진 자신도 자기의 마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다.

공격력과 치유력이 2,000이라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떤 자료들을 근거로 비교하려고 수치화한 개념에 불과했다.

‘다행이기는 하네.’

아진은 독고소영을 처음 본 순간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혼자 특유의 느낌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북리의천이 아직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확인이나 한번 해 볼까?’

아진은 혹시 자기가 할 일이 없을까 하며 주위를 어른거리는 독고소영을 바라보았다.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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