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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3화 (33/470)

제33화

33화

짱돌의 특이한 육체가 부채주의 강한 타격에 내장까지 출혈을 일으켜서 치료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마침내 짱돌이 정신을 차렸다.

짱돌은 의식을 찾자마자 정신없이 기침을 해 댔다.

누워있는 동안 뭐가 잘못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집고 기침을 하다가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으어!”

엉덩이로 기어 뒤로 물러나던 그는 아진의 몸과 닿자 더욱 놀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짱돌. 짱돌, 인마! 정신이 드냐? 깨어난 거야? 산 거냐고. 인마! 으허허허헝!!!”

부채주가 짱돌에게 다가가 바닥에 앉아 그를 와락 껴안자 짱돌은 아직 응징이 안 끝났나보다고 생각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형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놈아. 내가 너를 잡냐? 내가 너를 죽여? 이 자식이. 어디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짱돌은 부채주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만해라. 무영검 대협. 오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대협께서는 저희의 은공이십니다.”

채주가 나서서 그들을 나무라고 북리의천에게 인사를 했다.

채주는 북리의천에게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그와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었다.

북리의천과 친분이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산채를 운영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북리의천이 채주의 뻔한 수작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잘됐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내 말을 들어 주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협을 추구하는 정파 무림세가의 사람이다. 산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몸을 상하게 하고 돈을 뺏는 일은 결코 좌시할 수가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가.”

“…….”

채주는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인 격이 되었다.

북리의천은 한눈에 봐도 자기가 한 말을 쉽게 되돌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채주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아진이 말했다.

“아저씨는 한 번 출혈이 일어나면 그게 여간해서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걸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용하네요. 더군다나 산적이면서 말이에요.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아저씨는 죽어요. 다음에도 이번처럼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아진의 말에 짱돌이 정신이 번쩍 든 듯 아진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럼 이게…… 다 나한테서 나온 피라는 거냐?”

짱돌이 아진에게 물었지만 다른 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마. 우리는 다들 네가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산본의가의 서 공자가 마침 여기를 지나다가 너를 살려준 거야.”

부채주의 말에 짱돌이 겁먹은 얼굴을 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우리 스승님이 이 자리에서 검을 빼시기만 하면 이 산채는 사라져요. 사람이 꼭 먹어 봐야 맛을 아는 건 아니잖아요? 혈겁을 당하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지 않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숨 건진 걸 다행으로 여기고 모두 여기를 떠나세요. 아니면…….”

아진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산적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그냥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북리의천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 죽어 가던 짱돌을 살려낸 아이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약초꾼들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힘들 테니까 약초를 캐서 산본의가에 대 주시는 건 어떠세요? 요즘 이쪽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서 산적 질로는 벌어먹기 힘들지 않으세요? 다행히 산본의가에 환자가 끊이지 않고 와서 약초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여기를 떠나라는 말 뒤에 나올 말이 설마하니 약초꾼으로 전업을 하라는 충고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동안 북리의천이 혼자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그러자 채주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건 약초꾼들에게 사면 되지 않습니까?”

“채운산은 영험한 산이에요. 영험한 산에서 자라는 약초는 약효가 뛰어나죠. 그리고 약초를 사용하는 방법 중에는 마르기 전에 으깨 즙을 내서 상처에 바로 붙이는 게 있는데 멀리서 가져온 약초는 그런 식으로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약초를 캐는 게 좋아요. 여러분은 어쨌건 산을 잘 탈 거고 여러모로 유리할 거예요.”

그러나 누구 하나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산적의 자존심이 있지.

약초꾼이라니.

약초꾼이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자 아진이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아저씨는 일단 산적을 계속하면 안 돼요. 산적을 그만두고도 크고 작은 일로 다치면 그때마다 위중해질 거고요. 아저씨는 마을에 내려가서 사는 게 좋아요. 의가 가까이에서 사는 게 제일 좋을 거예요. 아저씨가 약방을 차리고 다른 분들이 약초를 캐서 이 아저씨한테 가져다주면 되겠네요.”

그럴 생각 없다는데 아진은 자꾸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싫으면 대안이 없지 않아요. 우리 스승님이 이 자리에서 아저씨들을 공평하게 죽여 주실 수도 있거든요.”

모두의 시선이 북리의천에게 향했다.

“그래. 맞다. 나는 내 제자가 부탁하는 건 다 들어 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산적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북리의천은 이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구경했다.

“한 가지만 더 말을 하자면 아저씨의 병은 아주 특이하고 그게 다시 발병했을 때 고칠 방법이 희귀해서 제가 없으면 고치기가 어려울 거예요. 저는 지금 미령을 떠나는데 나중에 그 일이 생기면 약이라도 있어야 해요. 만약 아저씨들이 산본의가에 약초를 대주겠다고 약속한다면 내가 그 약초로 약을 만들어 줄 수는 있어요.”

아진의 말에 부채주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협박에 못 이겨 산적 일을 청산해야 한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되면 동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처럼 명분이 생긴 것이다.

“형님. 우리가 여기에 올 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고 하면서 오지 않았습니까? 짱돌이 죽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까짓 산적 생활. 돈이 얼마나 된다고 계속 여기에만 있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공자의 말이 꽤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여기에 산채가 있으니까 다른 약초꾼들보다 더 유리하지 않습니까?”

부채주는 이제 채주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약초꾼들이 다니는 곳은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산속이었고 그들도 약초를 캐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할 터였다.

그것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들은 어느 정도 뜻이 굳은 상태였다.

아진은 특별히 인심을 썼다는 듯이 품에서 약초제서 사본을 꺼내주었다.

그리고 그중에 특이하게 생긴 약초들이 그려진 곳을 펼쳐 보였다.

“여기에 있는 이것들을 모아두면 다음에 와서 이걸로 환단을 만들어서 드릴게요. 그걸 가지고 다니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사실 짱돌은 이미 체질이 개선돼 있어서 앞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병을 얻지 않는 한 지금의 증상이 다시 나타나게 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진뿐이었기에 산적들은 짱돌이 또 그런 일을 당해서 피 웅덩이 위에 혼자 동동 떠서 죽게 되지는 않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디어 채주의 입에서 결단이 내려졌다.

“여기에 있는 약초들을 집중적으로 모으세요. 그렇다고 다른 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더 자주 쓰이는 건 이런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짱돌의 병을 낫게 하는 건 이것들이라는 거지요?”

모두 주의 깊게 약초제서를 보면서 말했다.

수백 가지 종류의 약초가 그려져 있고 깨알 같은 글씨로 효능이 설명된 약초제서는 아무리 공부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래 보기를 어려워하는 책이지만 그들은 한 가지 목표를 명확히 가지고 있어서 책에 그려진 약초의 모양을 그대로 머릿속에 각인했다.

“형님. 그런데 우리 이걸 본 적이 있지 않수? 전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말이우. 여기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 왜. 그 계곡에서 꺾여서 올라와야 하는데 올라오는 길을 잘못 찾아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지 않았소? 그때 우거진 숲속에 들어간 적이 있었잖우.”

“그건 얼핏 기억이 나기는 한다만 거기에 이게 있었다는 말이냐? 나는 살다 살다 그렇게 나무가 빽빽한 곳은 처음 봤었다. 한낮이었는데도 빛이 들어올 틈도 없던데 너는 그때 본 풀이 기억이 난다는 말이냐?”

“아아. 기억이 안 나시는구나.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때 분명히 본 것 같소. 이따가 한 번 가 보기는 해야겠소.”

“나는 이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산적들은 아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유용했다.

그것은 산적들이 유용하다기보다 그 산이 터가 좋아서 그런 거였는데 아진은 그냥 산적들을 이용할 생각으로 산이 영험하다고 대충 아무 말이나 질러 버렸던 거였지만 그 산은 실제로 영험한 기운을 갖고 있었다.

그게 우연히 얻어걸린 거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북리의천은 과연 의가의 아이라 산의 기운까지 읽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신기해했다.

“일단 우리는 먼 길을 가야 하니 약초를 캐면 그건 전부 산본의가로 가져다주도록 하세요. 우리가 지나가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가주님이 제값을 쳐 주실 것입니다.”

아진이 정리를 하며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너희가 가진 힘을 좋은 곳에 사용하거라.”

북리의천이 말하자 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협.”

마침내 북리의천은 아진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 * *

산본에서 북리세가로 가는 길에는 평성이라는 곳이 있었다.

철광석이 나오는 광산이 발견된 후에 갑자기 커진 도시였는데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각종 이권 개입과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가까운 곳에 이렇다 할 무림세력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여러 군소 방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러다 중간 정도 규모의 정파 무림이 평성으로 와서 장원을 얻고 천가장이라 걸린 현판을 걸었다.

그것을 시초로 사파에서도 들어오고 그곳에 돈이 돌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며 더 많은 무림인이 속속 평성으로 향했다.

북리의천은 그렇지 않아도 평성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은 산본에 급히 가야 한다는 생각에 평성에 들를 틈이 없었다가, 돌아갈 때는 여유가 생겨 그곳을 지나기로 한 것이다.

“평성이라는 곳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아진아.”

북리의천이 묻자 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진은 북리의천이 알려준 심법대로 내공을 쌓는 중이었다.

북리의천은 아진의 활약을 보면서 아진에게 알려줄 심법을 조금씩 개선했는데 지금의 심법은 거의 아진에게 특화된 심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운기조식을 할 때 다른 이의 방해를 받으면 크게 해를 입을 수 있는 심법이 많았지만 북리의천이 알려준 심법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싸움을 하는 동안 동시에 축기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 움직임이 과격하지 않으면 축기가 가능한 심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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