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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2화 (32/470)

제32화

32화

상단이나 표국 마차라도 지나다녀야 통행세를 내놓으라고 겁을 줘서 돈벌이를 하겠는데 그런 것도 거의 없었다.

한두 번은 좋았는데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상로를 옮기고 비룡채가 있는 산으로는 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어서야 입에 풀칠을 해 나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산채 생활에 대한 꿈과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던 짱돌이 말하자 채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 말에 부채주는 즉각 짱돌의 응징에 들어갔고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짱돌은 함께 지내는 사람의 응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폭행에 바닥에 계속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짱돌의 몸에서 쉬지 않고 피가 쏟아지자 나중에는 조금씩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짱돌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댔던 부채주가 옆에 있던 부하를 시켜 짱돌의 상처를 치료해 주라고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짱돌의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형님……, 짱돌 이 새끼 이대로 죽는 것 아닐까요?”

그래도 지금까지 큰 잡음 없이 서로 의지가 되어 주면서 지내오던 이들에게 그것은 커다란 위기였다.

부채주는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짱돌을 직접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다른 놈들의 손놀림이 워낙 답답해 보여서 짱돌에게 다가갔다.

“야, 인마! 정신 차려. 왜 이렇게 피를 쏟아?!”

그러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짱돌의 몸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가 쏟아졌다.

“형님. 형님. 이놈이 정말 왜 이러는 겁니까? 피가 이렇게 멈추지도 않고 계속 흐르기도 하는 겁니까? 칼로 찌른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주먹에 맞아서 터진 게 단데 왜 이러냐고요!”

급기야 부채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업어라. 산본의가로 가자.”

채주가 일어나며 말하자 부채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안 되겠습니다. 형님. 거기까지 가다가 이놈이 죽을 것 같아요. 제가 가서 의원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면 가서 돌아오느라고 시간이 두 배로 걸리는 걸 몰라? 이런 멍청한 놈! 그러니까 평소에 성질 죽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을 했는데 이 멍청한 놈이 기어이 이 사달을 내다니!!”

채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부채주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부채주는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누군가 자기를 걷어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흑, 흑흑……!!”

부채주가 꺽꺽 울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최대한 짱돌이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들것을 만들어 거기에 싣고 가자고 의견을 모았고 들것을 만드느라 갑자기 분주해졌다.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되니까.”

사람들은 짱돌을 보면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이제 바닥에는 작은 계곡처럼 많은 피가 고여 있었다.

짱돌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핏기가 사라져갔고 부채주는 짱돌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려고 그를 흔들어댔다.

밖에 있던 몇 사람이 달려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형님. 손님입니다. 산을 지나려는 사람이 있어요. 어서 가시죠. 오랜만에…….”

그러다가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짱돌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형님?”

“말…… 혹시 말을 타고 오더냐? 말이 있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말을 뺏자. 가서 말을 뺏어!”

부채주가 말하며 먼저 칼을 챙겨 들고 달려나가자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채주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따라나섰다.

이미 짱돌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는데 부채주가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그 정도가 됐으면 이제 포기를 할 만도 한데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친놈!”

채주는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바닥에 침을 뱉어 버렸다.

침이 하필, 넓게 퍼진 핏물 위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자 괜히 몸이 떨리며 기분이 더 나빴다.

“우이씨!”

채주가 작게 뇌까리고 나갔을 때 부하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채주가 일행을 따라잡았을 때 그곳에는 말에 탄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비단 장포를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멋들어진 장식이 달린 검집을 차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인이었다.

채주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사람을 볼 줄 몰라도 그렇지 이런 사람을 봤으면 그냥 보내줘야 하는 것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인의 앞쪽에는 조그만 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세상이 온통 신기하기만 한 듯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

채주가 잠시 그 상황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부채주가 다급히 칼을 빼 들었다.

“우리가 급한 사정이 있다. 지금 당장 그 말을 내놓는다면 다른 것은 뺏지 않고 보내 주겠다. 말을 내놓아라!”

그러나 부채주가 말을 해도 무인은 코웃음을 칠 뿐 말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아이의 키가 작고 말이 높아서 그 상태로 혼자 뛰어내리는 게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았는데도 가볍게 뛰어내리더니 그대로 산채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아이와 함께 있던 무인도 놀란 듯 아이를 뒤따라갔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말을 내놓으라고 했다가 말을 얻게 되기는 했는데 말을 놔두고 그들의 산채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도둑들인가? 아니. 산적의 산채를 터는 도둑이 다 있어?’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서 있다가 채주를 바라보았다.

“어쩌지요. 형님?”

“어쩌긴 뭘 어쩌느냐. 한 놈이 짱돌을 말에 태우고 산본의가로 가라. 그리고 다른 놈들은 나를 따라라.”

그는 말에서 내린 무인이 신경 쓰였다.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오히려 무공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부로 산채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부하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동안 숨겨둔 돈도 꽤 있었다.

그들이 우르르 달려갔을 때 아진은 피 냄새를 맡고 산채로 달려가 짱돌을 발견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이런 증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아진은 의학적인 상식으로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진이 짱돌의 상처 부위에 두 손을 대자 북리의천이 그 모습을 보다가 다가왔다.

지혈을 하려고 환부 주위를 꾹 누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에게 비상약이 조금 있다만 그걸 쓰는 게 좋겠느냐, 아진아?”

북리의천의 말에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스승님. 이건 제가 할 수 있어요.”

북리의천은 아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어린 제자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러면서 아진이 치료를 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진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환자의 몸에 손을 댄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기요상을 하는 건가? 설마 이 어린아이가?’

북리의천은 아진이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런 추측까지 했다.

아진이 짱돌의 몸에 마나를 불어넣는 동안 그 뒤로 산적들이 들어왔고 북리의천은 이 상태에서 아진이 공격을 당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진이 지금 어떤 식으로 치료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주 운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사지가 마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북리의천은 칼을 빼 들고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다가가 자신의 몸으로 아진을 막았다.

“아이가 내공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으니 다가오지 마라.”

북리의천의 말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작 네다섯 살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는 꼬마였다.

그런 아이가 무슨 내공을 가지고 있어서 그 내공으로 치료를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에게는 산적의 목숨이 노리개로 보이는지 모르겠소만 우리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생이오. 당장 비키시오!”

부채주가 고함을 질렀지만 북리의천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산본의가의 둘째다. 아직 의원은 아니지만 의원 못지않은 실력으로 나를 고친 적도 있다. 아이가 치료를 마치도록 놔두어라. 내 말을 듣고도 아이를 방해하려는 놈이 있다면 그놈의 목은 내가 베어 버리겠다.”

“……고인은 누구시오.”

채주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자 북리의천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나를 무영검이라고 부른다. 나는 북리세가의 북리의천이다.”

자신의 신분까지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아진을 지키기 위해서 그게 방법이 될 수 있다면 그냥 말을 하자고 생각했다.

산적 중 몇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북리의천의 고명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북리의천이 왜 이런 곳에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것이 북리의천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꿈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그곳에서 기다려라.”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려서 빨리 의원에게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 이대로 두면 죽을 거라는 말입니다.”

부채주가 말하자 북리의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 자를 어디로 데려가려 했느냐.”

“산본의가 입니…….”

부채주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눈앞의 아이가 산본의가의 아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아직 의원은 아니지만 의원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아이.

그들도 산본의가의 아이들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했을 때 산적의 신분을 숨기고 내려가서 치료를 받고 온 사람도 있었기에 도종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고 도종의 동생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기다려보시지요. 형님. 정말 산본의가의 공자가 맞다면 짱돌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짱돌을 말에 태우고 가는 것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산적들을 보며 북리의천은 그들이 그래도 의리는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북리의천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진의 앞을 지켰고 무거운 침묵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진이 평범한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면 그가 움직이는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두 손을 몸에 댄 채 마나를 밀어 넣는 것이 전부라 그 소리도 나지 않았다.

완벽한 적막감.

그렇게 일각이 지나고 이 각이 지났다.

아진은 마나가 꾸준히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짱돌의 특이체질 때문이었는데 아진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통해서 짱돌의 몸을 관찰했고 자기가 알게 된 것을 나중에 아버지와 도종에게 알려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윽고 치료가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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