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21화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환영 행사가 지나가고 아진은 아주 늦은 시간에야 겨우 북리의천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북리의천은 아직도 신기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아진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있었다.
“무공은 배운 적이 없다는 말이지.”
“예. 스승님.”
“흠.”
북리의천은 자신의 턱을 문지르면서 아진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내린 무골이다.
볼수록 신기했다.
더 희한한 것은 아진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이었다.
그런 내공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내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내공이라고 하기에는 그게 또 이상했다.
북리의천은 아진의 몸에 자신의 진기를 흘려넣어 아진의 상태를 알아보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진기가 아진의 몸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뭐에 막힌 건지,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아주 대단한 위사가 문을 가로막고 통행을 거절하는 것 같은 느낌에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북리의천은 다른 방식으로 아진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질문을 하는 것으로 알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한 번 일어나 보아라.”
그러면서 그는 몇 가지 간단한 동작을 가르쳐 주고 그것을 따라 해 보게 했다.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아진의 안력이나 한번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아진이 북리의천을 보고 웃었다.
“왜 웃느냐?”
“아닙니다. 스승님.”
아진이 놀란 듯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화내지 않을 테니 말해 보아라. 아진아. 왜 웃었느냐?”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재미있어서? 뭐가?”
“저런 걸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죄송합니다.”
말을 할수록 꼬이는 느낌이었다.
서도진은 지금껏 검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헌터 아카데미에서 그 과정을 배워야 했는데 서도진은 이상한 스탯 때문에 연구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모두가 똑같은데 서도진은 연구소의 실험체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대기하고 다시 실험하는 생활이 반복되어 남들이 배우는 것을 배울 수가 없었다.
실험이 끝나고 서도진이 쓸모없는 돌연변이 헌터라는 결론이 잠정적으로 내려진 후, 연구소가 흥미를 보이지 않자 그때부터 던전에서 레이드를 하며 그는 살기 위한 검술을 터득해 나갔다.
방어력이 전무했기에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않았지만 괴수가 자신을 노리고 덤빌 때는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으려고 터득한 검술은 겉으로 보기에 영 이상하고 멋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마지막 순간까지 서도진을 살아남게 해 주고 그를 SSS급 헌터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 서도진에게 검술의 움직임은 목적성을 갖는 게 당연했다.
다른 동작을 보면 저건 어떤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거라는 것이 이해가 됐는데 북리의천의 동작에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은 자기가 생각한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해서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그런데도 북리의천이 끈기 있게 기다리자 결국 말을 했다.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춤을 추는 게 아니고 싸우는 건데 그 동작을 해서 상대에게 어떻게 위력을 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웃었어요.”
“아아…….”
북리의천은 가만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껏 그의 무공을 견식한 사람들이 보이던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북리의천이 하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에도 열광하며 견식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기에 바빴다.
북리의천은 이 제자를 가르치기가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북리의천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신의 성명절기를 내놓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지금의 아진으로서는 그것을 다 이해도 못 하겠지만 스승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깨달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구나. 수련실로 가자.”
그러면서 그는 검좌대에서 자신의 애검을 집어 들었다.
다시 잡을 일이 있을까 했던 검이지만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수련실에 가는 동안 아진이 북리의천의 손을 잡았다.
북리의천은 아진이 손을 잡을 때마다 재미있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아진아?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서 내 곁에 오지도 못하는데.”
“안 무서워요.”
아진은 간단히 말하고 옆에서 열심히 걸었다.
북리의천은 아진이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청량한 기운이 내부를 감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운기조식을 하며 일주천을 하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아진은 자신의 스승이 최상의 상태에서 무공을 전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나를 아끼지 않고 그를 계속해서 회복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병을 치료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며 체력을 증진하고 있었다.
아진을 내려다보며 북리의천은 내일 가주를 조용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주와 그 직계만 익힐 수 있는 검술이 북리의천에게도 전수되었는데 만약 가주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아진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였다.
조사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대성한 이가 나오지 않았던 검술이 아진의 손에서 끝을 드러낼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만약 가주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북리의천은 아진을 데리고 세가를 떠나는 것까지 생각했다.
어린 제자를 데리고 강호를 주유하는 것도 즐거울 듯했다.
치사하기는 하지만 가주는 원래 내 자리가 아니었냐고 따져볼 의향도 있었다.
“아진아. 너를 위해서 최고가 되어 주마. 그동안에도 최고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주마.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누구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북리의천은 어린 제자 앞에서 뻐기고 싶어져서 자랑스럽게 다짐했다.
아진은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실에 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감격스러운 얼굴을 했다.
감격한 북리세가 무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영검 장로님. 회복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무인은 거의 울먹이는 어조로 말했고 아진은 세가의 무인들이 북리의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고맙네. 계속 수고하도록.”
북리의천은 아진의 손을 잡은 채 수련실로 들어갔다.
“이 수련실은 아무나 들어오지 못한단다. 가주님의 전용 수련실인데 가주님이 나에게는 특별히 사용을 허락해 주셨지. 벽과 바닥은 강기에도 버틸 수 있도록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단다.”
북리의천이 설명을 해 주고 아진을 벽 앞에 바짝 붙어 있게 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걸 잘 보도록 해라.”
그의 검에는 처음부터 검강이 맺혔다.
그는 아진의 속도에 맞춰 일부러 초식을 천천히 펼치고 있었다.
아진은 눈도 깜빡거리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십여 장까지 뻗어 나간 검강이 검을 뒤덮었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듯 북리의천은 몇 번에 걸쳐 내공을 더 밀어 넣고 검강을 키웠다.
검강에 뒤덮인 검은 무기가 아니라 북리의천을 덮은 베일 같았다.
그는 몸의 곳곳에서 내공을 끌어다 때려 박는 듯하더니 검을 끌어당겼다가 강하게 내쳤다.
손잡이 부분을 때리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검강이 벽으로 날아가 요란한 파공성을 냈다.
콰콰콰쾅-!
잠시 우르르 진동이 느껴지더니 천장과 벽이 우지끈 소리를 냈다.
아무리 특별한 처리가 되어 있었어도 전성기를 뛰어넘은 북리의천의 검강에는 그것도 견디지를 못한 것이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돌바닥에 깊은 고랑이 깊이 새겨졌다.
고랑은 벽까지 이어졌고 벽에서 부스스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아진은 이리저리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았고 북리의천도 아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초식을 펼쳐나갔다.
검이 허공에서 휘둘러지며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수십 개로 분열하다가 어느덧 백 개를 넘어섰다.
그 환영에 전부 검강이 맺혔다.
북리의천이 벽을 향해 쏘아 내자 그대로 검을 떠나 날아간 것이 끝내 벽을 부숴버렸다.
콰콰콰쾅-!
돌덩이가 형체도 없이 폭발해 부스스 가루가 되어 내려앉았고 전각 외부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찰을 돌던 세가 무인들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달려왔다.
처음에는 습격인 줄 알고 놀란 듯했다가 그것이 북리의천의 검에서 날아온 검강인 것을 알아차린 듯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수련실을…… 다시 만들어야겠구나.”
북리의천은 민망한 듯 말을 하고 아진에게 다가가 아진의 머리 위에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털어 주었다.
“잘 봤느냐. 아진아. 어떠냐. 이 스승의 솜씨가.”
“대단해요. 스승님.”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아진의 생각은 어딘가 다른 곳을 헤매는 것 같았고 북리의천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아진의 머릿속은 무척 분주했다.
‘마나를 내공으로 바꾸면 나도 그걸 할 수 있을까? 하나하나의 환영이 전부 다 실체였는데. 그렇게 해서 하나의 검으로 백 개가 넘는 검강을 만들어서 그걸 날린 거야. 그러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한 번에 끝낼 수도 있겠는데? 던전에서도 각각의 검강이 공격으로 인정될까?’
공격력 2000의 서도진은 그 검강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딱히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전투 중에 가장 생생했던 전투가 그런 것들이라 그럴 때 어떻게 써먹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것이다.
“스승님. 저는 언제쯤 그걸 할 수 있게 될까요?”
“……응?”
북리의천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다. 우리 아진이가 이걸 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20년은 걸릴 텐데? 우선은 단전도 만들…….”
말을 하다 말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전은 이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일은 우리 아진이의 실력을 먼저 봐야겠다. 처음 생긴 제자가 너무 특별해서 뭐부터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네. 스승님.”
아진은 신이 나서 북리의천의 손을 꼭 잡았다.
북리의천은 그게 아진의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서 이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보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진과 손을 잡고 가는 동안, 상승무공을 펼치느라 소모됐던 내공이 저절로 돌아왔다.
‘……?’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어둠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두 인영이 있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안 된다. 저 아이가 진료하고 나서 바로 일이 벌어져야 저 아이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천의는 마음을 정한 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정진환은 떨림을 가누지 못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요.”
“정 의원이 말을 해 보지 그러는가. 달리 어떤 방법이 있는지.”
천의가 정진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나는 자네를 믿네. 정 의원.”
‘이 간사한 늙은이가 나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기려고 하는구나.’
정진환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발을 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