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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5화 (15/470)
  • 제15화

    15화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회주는 서종욱에게 따지려고 했지만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함께 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천령상회 둘째 아들이 말도 못 할 천치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

    “가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회주는 어쩔 수 없이 화를 참아가며 말했고 서종욱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회주님의 아드님이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고 내원했고 우리는 지금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퇴원하지 않겠다는 혈판장을 썼으니 이번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치료를 하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이 아이는 집에서 나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단 말이오!”

    서종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에까지 자기가 대답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주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냥 수치스럽기만 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말이 나왔으니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치료비로 은자 오십 냥을 먼저 주셔야겠습니다. 계속해서 비싼 약재가 들어가는데 그걸 구하려면 미리 받아야 합니다.”

    “이…… 이……!”

    “진료를 과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 본가를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치료비만 내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치료를 받아도 되기는 합니다. 무리한 퇴원으로 생긴 일에 대해서는 본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혈판장을 써준다면 말이지요.”

    서종욱도 진화했다.

    그는 아진이 혈판장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천령상회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은 절대로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 맞다고 받아들이며 배상을 해 왔다.

    그로 인한 피해는 자신만 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기만 참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로 인한 궁핍은 의가의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갔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서종욱은 수치를 느꼈다.

    ‘나는 정말 비겁하고 무능했구나. 그래서 저 어린 아진이에게 그런 걱정까지 하게 했던 거구나……’

    계산을 빈틈없이 하는 것은 서종욱에게 늘 어려웠다.

    그리고 그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가 짐을 떠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환자에게 혈판장을 들이미는 아들.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된 녀석에게 그간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는 뜻이 아니고 뭔가 하면서 서종욱은 그때부터 계산적으로 굴기로 마음먹었다.

    서종욱 인생에 찾아온 엄청난 변화였다.

    “치료하시오!”

    화를 참지 못한 채 회주가 소리쳤다.

    그러자 서종욱이 웃었다.

    “말이 잘못되었소. 회주.”

    그동안 꼬박꼬박 존대를 하던 서종욱의 말투가 바뀌자 회주가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치료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의원님.’이라고 말하시오.”

    “……!”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그 모습이 아종과 아진의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서종욱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동안 자신의 마음만 편하자고, 아이들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마음의 짐을 떠넘겼다는 생각에 서종욱이 회주를 바라보며 버티자 회주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겨넣으며 서종욱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회주도 자식을 가진 아비였다.

    “부탁하오!”

    그것은 회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그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고 하인을 통해 치료비가 전해졌다.

    서종욱은 아진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 것을 보고 자기도 웃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진으로 인해 웃는 일이 많아졌다.

    단순히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후련해서 웃었다.

    * * *

    회복은 더뎠다.

    회주는 며칠에 한 번씩 의방을 찾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이놈아. 얼마나 세게 부러뜨린 거냐는 말이다. 정도껏 해야지! 대충만 했어도 네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면 의원이 오죽이나 뼈가 심하게 부러졌다고 생각했을 텐데 대체 어쩌자고 이렇게 미련하게 군 거냐는 말이다!”

    회주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들에게 말했다.

    류수영은 답답했지만 말을 해 봐야 다시 천치 취급이나 받을 것 같아서 말을 하지 못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여기는 괜찮냐고 하면서 만지고 나면 그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매사에 형과 누나들과 비교하면서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버지였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떤 얼굴을 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이제 다음 일을 생각하자.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예?”

    “너도 생각한 게 있으니까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이 아니냔 말이다.”

    “아버지…….”

    “석 달은 있어야 한다고 하니 그동안 여기에서 푹 쉬어라. 그리고 그다음에 생각하자. 어차피 이건 쉽게 나을 상처가 아니다. 석 달이나 강제로 의방에 있게 하고 퇴원도 못 하게 하고 고치지도 못하면 그때는 우리도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지 않으냐.”

    “…….”

    류수영은 자기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회주는 다시 한번 말할 뿐이었다.

    “다 나아갈 즈음 침상에서 한 번 굴러떨어져도 될 것 같기는 하다만. 이번처럼 너무 많이 다치지는 말고 다리 하나 정도만. 한 달 정도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을 정도로. 들어간 치료비는 회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은자로 이천 냥 정도를 달라고 해 보자.”

    “…….”

    류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껏 계속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뿌린 씨앗이었다.

    회주가 나가고 아진이 서종욱을 바라보았다.

    회주가 류수영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오늘쯤 중요한 얘기가 오고 가지 않을까 하며 서종욱을 끌고 온 건데 생각대로 되었다.

    “너는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냐. 아진아.”

    서종욱이 아진을 바라보고 물었다.

    아진은 그게 상당히 의심스럽기는 했겠다고 생각하며 정면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누가 보더라도 천령상회는 이상했고 이번이라고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요.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런 얘기가 한 번은 오갈 것 같았는데 운 좋게 오늘 그 얘기를 들은 거예요.”

    서종욱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돌아서려던 서종욱이 다시 아진을 돌아보았다.

    “한 가지만 묻자. 아진아.”

    “네. 아버지.”

    “이 일을 알려주면 이 아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아진은 이럴 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에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종욱의 입가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그래. 믿어줘서 고맙다. 내 아들이 이렇게 믿는데. 그러면 이 아비도 힘을 내야겠구나.”

    아진은 조금 멍해졌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눈이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빛나서였다.

    그리고 아진은 아버지가 무엇을 결심했는지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류수영의 뼈를 전부 붙여버리겠다는 의지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던 것이다.

    * * *

    노력파와 천재.

    그 대결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면 결과는 뒤집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노력파라면 아진은 노력하는 천재였다.

    서종욱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류수영을 치료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뼈가 붙었고 류수영은 이제 고통 없이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아직 부목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라면 완전히 나을 거라는 믿음이 차차 자리 잡았다.

    그리고 류수영은 제 아버지의 명령을 떠올렸다.

    그는 손해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류수영은 손해를 자초했고 이제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의방에 강제로 입원시킨 것이 결국 산본의가에는 자충수가 될 터였다.

    치료가 끝나갈 무렵.

    혼자 남았을 때 류수영은 부목을 떼고 침대 위에 서서 바닥을 노려보았다.

    몸에 느껴질 끔찍할 고통을 상상했다가는 끝끝내 실행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생각이 틈타기 전에 풀쩍 뛰어올라 바닥에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악!!!”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끔찍했다.

    이대로 있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문이 열렸다.

    발견됐다…….

    그러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류수영은 안도했다.

    이제 적어도 아버지의 그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아 내야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눈을 감으려 할 때 그의 시야에 조그만 발이 걸렸다.

    ‘설마……?’

    류수영의 눈이 저절로 번쩍 떠졌다.

    서도진.

    그 자리에는 의가의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위인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빨리…… 빨리 가서 의원을 불러와!”

    그러나 아진은 류수영이 풀어놓은 부목을 만지작거렸다.

    “참 이해 안 되네. 벌어 먹고살 게 몸뚱이밖에 없으면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돈도 많은 놈이. 처음에 너무 쉬워서 그랬나? 너무 쉽게 돈을 벌고 나니까 안 하는 게 바보 같았어?”

    류수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는 알고 있었다.

    아진이 손가락 두 개로 자신의 뼈 마디마디를 전부 부숴 놨다는 것을.

    “오지 마. 오지 마!!”

    소리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엉망이 된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 그렇게 함부로 굴리는 거 아니야. 세상일이 네 뜻대로 되지는 않거든. 얼마가 갖고 싶었어? 황금 열 관?”

    황금 열 관이라니.

    그의 꿈은 훨씬 소박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걸 손에 넣었는데 여기에 불이 난다고 생각해 봐. 너는 꼼짝도 못 하는데. 그러면 황금 열 관 옆에서 불에 타서 죽는 거지. 사람들이 천치라고 하는 말을 그냥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는 마. 너. 천치 맞으니까.”

    류수영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불을…….

    불을 지르겠다는 건가?

    왠지 이 녀석이라면 그런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아진이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류수영은 죽을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그 충격이 몸에 전달 돼서 끔찍하게 아팠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진은 류수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곳부터 시작해서 부러진 뼈를 전부 다 붙였다.

    다리도, 팔도, 얼굴도.

    뼈가 부러졌던 곳마다 마나가 흘러 들어가 유영했다.

    그리고 마치 한 번도 부러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바꾸어 버렸다.

    류수영은 멍한 얼굴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다 나았네.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너를 데려가라고 해. 치료비는 다 내야 해.”

    “…….”

    “그래도 잘됐잖아. 황금 열 관 옆에서 불에 타 죽는 것보다는.”

    류수영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악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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