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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화 (2/470)

제2화

2화

서도진이 SSS급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보다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헌터 협회와 연구소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SSS급으로 레벨이 오르고 치른 레이드에서 그의 공격력과 치유력이 각각 2,000으로 측정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서도진이 해냈다면서 수석 연구관은 서도진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해했다.

“와. 진짜 나한테 훈장 줘야 해. 헌터 협회에서도 다들 서도진 같은 게 무슨 헌터냐고 그랬거든.”

“팀장님도 그 말 엄청 자주 하셨잖아요. 솔직히 다들 그랬잖아요. 뭐. 저도 그랬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잖아요. 소름 끼치는 돌연변이가 재수 좋게 잭팟을 터뜨린 거죠. 돌연변이 덕분에 앞으로 엄청 바빠지겠네요? 인터뷰 요청도 들어올 거고요.”

“그러게. 정말 그렇겠네. 정장 먼저 한 벌 맞춰야겠다. 나 카메라 잘 안 받는데 어떻게 하지?”

그것이 연구소의 분위기였다.

연구소는 물론이고 헌터 협회와 청와대까지 들썩거렸다.

인류 최초의 SSS급 헌터가 한국에서 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껏 나타난 적 없던 무시무시한 스탯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서도진 한 사람으로 대재앙 시대가 빠르게 종식될지도 모른다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헌터 협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던 SSS급 헌터의 출현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방송사에 부지런히 연락을 취하고 수많은 취재진을 대동한 채 던전으로 향했다.

서도진과 함께 레이드를 한 사람들은 던전 밖으로 나오다 수많은 인파의 환호성을 들었다.

어리둥절한 헌터들 뒤에서 서도진이 나오자 헌터 협회장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도진에게 다가갔다.

“서도진 헌터. 우리는 서도진 헌터가 해낼 것으로 생각했네.”

서도진은 표정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마디만 해 달라는 취재진을 무시하고 그들 곁을 지나갔다.

레이드 도중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자 그동안 알람 용도 외로는 울릴 일이 없던 핸드폰이 쉴 틈 없이 울렸다.

서도진 모르게 이사를 해 버리고 어디로 이사했는지 알려 주지도 않은 가족들이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사람들이 서도진의 가족이냐고 묻는 게 너무 쪽팔린다면서 개명까지 해 버렸다.

거기에 온갖 친척과 친구들까지.

가족들이 그러는 동안 다른 이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서도진은 희한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보다가 전화기를 꺼버렸다.

그날 이후 미디어는 연일 서도진에 대한 방송을 쏟아 냈다.

방송만 보자면 그런 인간 승리가 없었고 헌터 협회는 선구자적인 안목으로 지금까지 묵묵히 영웅을 키워온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서도진을 향한 자신들의 조롱은 완벽하게 편집한 채, 아무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서도진을 끝까지 믿고 지원하면서 지금까지 이끌어 준 것처럼 공적을 치장했다.

방송을 보는 동안 서도진에게서는 냉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헌터로 각성했다며 좋아하고 신나 하던 서도진은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 * *

SSS급이 된 후 서도진은 던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공격력과 치유력이 모두 2000.

서도진은 그 효과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공격대를 이루어 던전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서도진에게 선택됐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그와 한 번이라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서도진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람들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괜한 일에 신경 쓰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던전에 나타나는 괴수의 힘도 강해졌는데 그로 인해 레이드 도중 부상을 당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치유력이 2000이라는 거지.’

서도진은 거의 즉사할 정도로 나가떨어져 널브러진 헌터를 향해 걸어가 그의 상처 부위에 손을 얹고 마나를 밀어 넣었다.

“으으으으……!”

고통에 차서 신음을 흘리고 있던 헌터는 서서히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출혈이 멈추고 상처가 아물었다.

부러진 뼈가 이어져 붙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놀라서 정신을 빼놓고 있다가 괴수의 공격을 당해 다치는 헌터가 속출했다.

서도진은 그들 모두를 치료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치유력에 대해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공격력 2000의 효과도 놀라웠다.

괴수는 서도진이 헌터들을 치료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노리고 집중적으로 몸을 날려왔는데 서도진은 특별할 것도 없는 기본 무구만 장착한 채 검을 휘둘렀다.

집채만 한 크기의 괴수가 덤벼드는 것을 보면 아무리 숙련된 상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저절로 움츠러들기 마련이었지만 서도진은 괴수를 향해 마주 달려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난폭하게 휘두른 주먹에 괴수의 두개골이 박살이 나 버리고 하얀빛을 쏟아 내며 허공에 궤적을 그린 검은 순식간에 사지를 절단 냈다.

커다란 괴수에게서 쏟아지는 피는 그야말로 폭포 같았다.

서도진이 자신의 스탯을 확인하기 위해 미친 듯이 레이드를 하면서 헌터 협회와 국민은 환호했지만 그것은 서도진의 가슴에 어떤 감동도 일으키지 못했다.

천외천(天外天).

누구도 서도진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함께 설 자가 없는 그곳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 * *

“으아악!”

비명을 지른 헌터가 서도진의 눈앞에서 몸이 양단된 채 쓰러졌다.

서도진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괴수의 발톱이 검처럼 휘둘려 헌터의 목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헌터들은 싸울 의지도 잃은 채 다리에서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지만 서도진은 귀찮게 한다는 듯이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설마…….”

헌터들은 아무리 서도진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까지 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미 치료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서도진은 절단면을 대충 이어붙이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괴수는 서도진이 모든 걸 망친다는 것을 깨달은 듯 그에게 몸을 날렸다.

서도진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몸에서 광폭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를 향해 쇄도하던 괴수는 피부를 찌르는 거친 감각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며 다른 헌터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서도진은 몸이 양단된 헌터를 고치고 그다음에는 머리가 잘린 헌터를 돌아보았다.

계속해서 서도진을 보고 있던 다른 헌터가 재빨리 머리를 주워다 주었다.

서도진이라면 머리를 가지러 가는 게 귀찮아서 치료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도진은 거칠게 잘려나간 목에 머리를 이어붙였다.

그리고 마나를 밀어 넣자 잘린 혈관이 스스로 움직여 이어지고 상처가 봉합되며 움직임을 멈췄던 장기가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세…… 세상에. 살았어. 살아났어……!”

목이 잘려나간 사람이 목을 더듬으며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보다가 일어서자 그 모습을 보던 헌터들이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서도진 헌터님. 정말 대단하세요.”

“아직 레이드 안 끝났어. 정신 차려.”

그러면서 서도진은 그 뒤로 달려오는 괴수를 향해 검을 던졌다.

허공에서 몇 바퀴를 돌다가 날아가 꽂힌 검은 괴수의 목에 박혔고 다른 헌터들이 끝을 보기 위해 일제히 덤볐다.

괴수는 죽었고 헌터들은 어느 때보다 들뜬 채 환호성을 질렀다.

던전을 나서면서 서도진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치유력.

그가 가진 힘은 그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다른 사람들은 괴수를 죽이기 위해 레이드를 했지만 그는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치유력의 끝이 궁금해서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어 매번 다시 던전에 들어오는 것뿐이었다.

이곳만큼 죽음이 빈번한 곳이 없으니까.

‘이걸 얻기 위해서 모든 걸 잃어야 했던 건가?’

SSS급이 된 후 레이드를 하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남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됐지만 그의 마음에 남은 것은 공허함 뿐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없었고 모두가 그를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뿐이었다.

‘다시 살 수 있으면 이렇게는 안 살아.’

웃는 법을 잃은 얼굴로 그는 생각했다.

외로웠다.

하다못해 친구라도 한 사람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술 한잔 같이 하자고 부를 친구가 없었다.

그냥 잊자고 생각해도, 자신의 스탯이 공표될 때마다 그들이 짓던 표정과 사람들 앞에서 자기에 대해 조롱하던 말들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뿌리 깊은 불신으로, 관계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서도진의 눈앞에 상태 창이 나타났다.

[무림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서도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엉뚱해서였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도 그게 보이나 해서 두리번거렸지만 모두 던전을 나가느라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상태 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 가고 싶어.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 헌터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다시 시작하고 싶어.’

서도진은 간절하게 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레이드를 한 헌터들은 한동안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 세계 유일무이 SSS급 헌터 서도진의 실종.

서른여덟 살.

서도진은 그렇게 사라졌다.

* * *

“아진아.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봐. 아진아. 죽은 거야? 정말 죽은 거야? 어?”

앵앵거리는 소리에 서도진은 결국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눈앞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조그만 아이가 보였다.

“아진아! 살았어? 산 거야? 다행이다. 이 형님은 아진이가 죽은 줄 알고. 으허어엉!”

아이의 코에서 콧물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대롱거리다가 서도진의 얼굴로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되려는 찰나, 아이가 순발력 있게 소매로 콧물을 쓰윽 닦았다.

‘가만. 저건 분명히 중국말인데 내가 알아듣네?’

서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한한 일이었다.

‘설마. 정말 내가 무림 세계에 온 건가?’

서도진은 던전에서 나올 때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상태 창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자신이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서도진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진아. 혹시 형님이 밀어서 넘어졌다고 이를 거야?”

형님?

서도진은 이 아이가 자기의 형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눈앞의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어른들에게 혼날 것이 걱정되고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아진아. 나는 그냥 장난하려고 그런 건데 거기에 돌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못 일어나겠으면 형님이 업어 줄까?”

이제 일곱 살 정도 돼 보이는 녀석이 매번 자기를 형님이라고 말하는 게 웃겼다.

던전에서 상태 창을 보고 이곳으로 올 때 서도진의 나이는 삼십 대 후반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남들처럼 결혼했으면 이만한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녀석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칭하면 자기는 얼마나 더 어린 걸까 생각하면서 서도진은 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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