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07)

“엘리아, 잘 들어. 지금부터 아주 빠르게 달릴 거니까, 따라올 수 있지?”

“물론이죠!”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펠릭스가 맹렬한 속도로 말을 몰았다.

북부 기사단들은 빠르게 제국민을 밀어내며 황성으로 향했다.

* * *

기사단과 함께 도착한 제국 수도는 이상하리만치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고요했다.

황궁 앞을 수호하는 기사단 역시 보이지 않았다.

“영 느낌이 좋지 않아…….”

펠릭스가 주변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지브릴과 함께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펠릭스가 기사 몇몇을 향해 지시를 내렸고,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황궁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나머지 기사들도 묵묵히 펠릭스의 뒤를 따랐다.

히이잉-.

펠릭스가 타고 온 명마는 아까부터 연신 투레질 소리를 내더니 이내 발을 멈췄다.

“……겁에 질렸군.”

“말이 움직이질 않는다.”

지브릴의 말 역시 걸음을 멈춘 채 몸을 벌벌 떨었다.

“내려서 가지.”

펠릭스는 망설임 없이 말에서 내려선 후, 엘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깐, 저 앞에……!”

엘리아가 말에서 내리는 사이, 먼저 앞장섰던 지브릴과 기사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궁으로 향하는 길에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

펠릭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시체는 누가 뜯어먹기라도 한 듯 팔, 다리가 없거나 신체 일부만 남은 채로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마물의 짓이야.”

“마물이 수도까지 들어왔다구요?”

심각한 표정을 짓던 펠릭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 풀어준 거겠지. 내가 황실의 요청으로 잡아들인 마물을.”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연구용 마물을 황성에 풀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

황제밖에 없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백성을 해하고,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이유가.

“마물, 안에 있다.”

지브릴이 손가락 끝으로 황궁을 가리켰다. 펠릭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엘리아. 당신은 먼저 감옥으로 가서 대주교를 풀어줘. 마물이 정리되는 대로 내가 찾아갈게. 여기는 내가 처리할 수 있어.”

카아아악-!

그와 동시에 마물의 끔찍한 포효가 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전황이었다. 지브릴이 뒤에 선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쿠우웅.

위압적인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타고 올라왔다.

고개를 한껏 위로 올려야 마물의 모습을 한눈에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아아, 그때 그 이그니스로군.”

“……펠. 이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어요?”

“……예전엔 이것보단 좀 작았던 것 같은데, 컸나 보네.”

“마물도 커?”

모두가 굳은 얼굴로 위용을 자랑하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날개는 한번 휘젓기만 해도 큰 강풍이 불어닥칠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험상궂게 위로 치켜뜬 드래곤의 붉은 눈동자가 펠릭스와 엘리아, 그리고 지브릴에게 향했다.

쿵, 쿵, 쿵!

드래곤은 고작 세 발자국 만에 이들 앞에 도달했다. 그리곤 블랙홀처럼 검고, 거대한 입을 벌렸다.

키아아악!!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큰 소음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쳤다. 모두의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흩날리며 휘청거렸다.

드래곤의 거대한 금빛 뿔은 금방이라도 몸을 꿰뚫을 듯 솟구쳐 있었다.

캬아악!

드래곤이 흥분한 듯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아, 아는 드래곤이에요?”

“화염의 드래곤, 이그니스. 죽이지 않고 황성에 데리고 오느라 애 좀 먹었지.”

“역시, 함께 처리하고 가는 게 좋겠어요.”

“……오래 걸릴 거야. 대주교를 구하는 게 먼저이기도 하고.”

펠릭스는 뒤에 선 지브릴을 향해 눈짓했다. 어서 엘리아를 데리고 가보라는 뜻이었다.

“가자. 엘리아.”

“…….”

이그니스 앞에 선 펠릭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마지못해 뒤돌아섰다.

쿠구구궁-!!

몇 명의 기사들과 함께 감옥으로 향하는 황궁에 들어서자마자,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성내를 뒤흔들었다.

“펠…….”

근심 가득한 엘리아의 목소리에 지브릴이 뒤로 돌았다.

“엘리아. 로이드 대공, 괴물보다 더하다. 걱정하지 마라.”

지브릴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확실히 그는 강한 사람이니 문제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하듯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곧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찜찜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일행은 서둘러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두툼한 철문이 보였다. 황실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끼이익-.

지브릴이 거침없이 철문을 열었다.

습한 내부의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터벅, 터벅.

지하라 그런지 발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벽에 달린 횃불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일렁거렸다. 계단을 조금 더 내려가자, 쇠창살 너머 벽에 기대앉은 대주교가 보였다.

“이런…….”

엘리아의 탄식 소리에 대주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온갖 고문을 다 당한 건지, 퉁퉁 부은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하얀 사제복 또한 핏물에 절여져 붉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내부를 울렸다.

“괜찮은 거예요?”

“저는, 괜찮습니다.”

철컹, 철컹!

엘리아는 쇠창살에 칭칭 감긴 쇠사슬과 굳게 잠긴 자물쇠를 연신 잡아당겼다.

“여, 열쇠가 필요해요!”

엘리아의 외침에 지브릴이 고개를 저으며 옷 안주머니에서 연화를 꺼내 들었다.

“물러서라, 모두.”

그의 말에 따라 모두 멀찍이 걸음을 물렸다.

콰광! 끼이익-.

폭발음과 함께 쇠사슬이 떨어져 나가며 문이 열렸다. 엘리아는 안으로 들어가 서둘러 대주교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엘리아 일행은 서둘러 이동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기사들을 먼저 올려 보내 탈출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뒤를 따라 엘리아와 지브릴이 대주교를 부축하며 이동했다.

한데 올라와 보니 기사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탁, 타다닥-!

황실 기사단이었다.

“반역자 무리와 탈옥수를 저지하라!”

황실 기사단 가장 앞에 선 사람이 소리쳤다. 명령을 내리는 기사단장은 늘 황태자 곁을 지키던 이였다.

그의 호령에 우르르,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홀은 난전에 휩싸였다.

챙, 챙, 끼기긱-.

여러 차례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점차 밀리게 되자 대주교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 질렀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신성력이 깃든 외침에 모두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만! 그만하십시오! 우리를 해치는 순간 신께서 크게 진노하실 겁니다!”

막시밀리안 대주교가 절뚝이는 걸음으로 기사들 앞에 섰다.

“크하하하! 웃기는군. ……신께서 크게 노하신다고 하셨소? 신전은 부패하고 신은 이미 돌아섰소.”

“부패라니, 신전은 부패하지 않았다. 부패한 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전쟁을 일으키던 황제다!”

“……흐음. 말이 많군.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다. 대공비를 제외하고 모두 죽여라!”

***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기사단장이 멈춰 선 기사들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콰과과광!!

그때, 번쩍이는 빛과 함께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기사들이 멈칫, 잠시 몸을 굳혔다.

정적이 흐르는 그들 사이로 엘리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대들이 원하는 사람은, 제가 아닌가요?”

“……비 전하! 안 됩니다! 제 뒤에 서 계십시오!”

막시밀리안 대주교가 엘리아의 팔목을 붙잡았다. 부드러운 손짓으로 팔목을 빼낸 그녀는 슬쩍 뒤로 돌아 괜찮다고 미소 지어주었다.

‘이대로 있다간 모두 죽어. 따라간다고 해도, 이들이 나는 쉽게 해칠 수 없을 거야. 펠릭스와 합류하게 해야 해. 기사단이 돌아올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그래, 버틸 수 있을 거야. 내게도 힘이 있잖아.’

수많은 연습 끝에 마나를 조절하여 이능을 사용하고, 그 이능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제로석 포션으로 인해 마나 또한 충분했다.

엘리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당당히 기사단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엘리아!”

지브릴이 말리려 하였지만, 엘리아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는 대주교도 지브릴도 위험했다.

이윽고 그녀가 한 발자국씩 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