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 당신 울어요?”
화가 나 몸을 떠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엘리아의 배 언저리에 툭, 툭, 두어 방울 물기가 맺혔다가 떨어졌다.
“……머저리같이, 일찍이 당신을 찾아내지 못한 나한테 더 화가 나. 그게 날 더 미치게 만들어.”
그가 운다.
펠릭스 로이드가, 매사에 냉철하던 남편이 울고 있었다.
엘리아의 상처 위로 조금씩 물기가 스며들었다.
“그래도, 전 기뻤어요. 당신이 와줬잖아요. 이런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았는데, 나를 위해 울어주는 펠릭스의 모습에 그녀의 가슴도 일렁였다.
“쉬! 당신이 안아줘서, 그래서 이렇게 안심이 되는걸요. 울지 마요. 펠릭스.”
엘리아의 눈가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듯 두 사람의 눈물이 엉컸다.
‘분명 괜찮았는데.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울다가 눈을 떠 내려다본 시야에 새빨개진 그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낸 엘리아는 몸을 낮춰 그의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울다가도 미소가 샜다. 엘리아는 천천히 그의 목을 감싸 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마치 아이처럼 느껴졌다.
“……아마 난, 당신이 홀연히 사라진 그날을 평생토록 잊지 못하겠지. 지금, 당신의 흉터를 보게 된 이 순간조차도 말이야.”
“…….”
엘리아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은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엘리아는 그 말 대신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날 밤, 커다랗고 너른 창 아래 놓인 침대에서 두 사람은 밤새 서로를 품에 안았다.
무더운 카타미아의 열기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단단히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북부와는 달리 얇디얇은 새하얀 커튼이 열기를 머금은 바람에 잠시 펄럭거렸다.
재회의 첫날 밤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 * *
“현재 교황은?”
펠릭스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그날 대성당으로 숨었습니다. 문을 열지 않고 현재 버티고 있는 상태입니다.”
“내일 새벽 대성당을 지워 버린다. 교황은 내가 손을 봐줘야겠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얼마나 불행한 선택이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줘야겠어.”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루카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짙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네!”
“귀족들의 처벌은 카타미아 왕에게 맡기고 우리는 지원만 해줘라. 교황의 처벌에 대한 건은 우리에게 완전히 넘기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마무리하고 돌아가도록 하지.”
펠릭스의 시선이 잠시 침대 위 엘리아에게 머물렀다 돌아갔다.
“네.”
엘리아는 펠릭스와 루카스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곧, 온몸이 이불에 휘감겨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더워…….’
이불을 걷으려 꼼지락거리다가 문득 어젯밤 옷을 입지 않고 잠들었단 사실을 떠올렸다.
밤새 펠릭스를 품에 안은 채 토닥이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지.
엘리아는 삐질삐질 땀이 새는 데도 불구하고 몸을 웅크린 채 이불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루카스가 나가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이불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빼꼼, 이불을 치워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펠릭스의 두 팔에 몸이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해? 안 덥나?”
“……더워요. 옷 좀…….”
잔뜩 얼굴을 붉힌 엘리아가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펠릭스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싫어.”
“네? 왜, 왜요?”
“이대로 더 있고 싶거든.”
그러더니 그가 이불 속으로 손을 뻗었다.
“아앗! 펠!”
순식간에 그가 이불 속으로 들어와 엘리아를 끌어안았다.
“해가 중천에 떴어요. 그만 일어나야죠.”
“알아.”
“펠……. 당신 괜찮은 거죠?”
펠릭스는 그녀를 꼭 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불 속이 더울 텐데. 아니, 그의 몸이 더 뜨거웠다. 더위에 약했음에도 그는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엘리아.”
“네.”
“우리 오늘 딱 하루만 단둘이서 놀까?”
“네……?”
이곳을 대강 수습하기는 하였지만, 뜻밖의 제안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당신과 같이한 시간이 너무 없어 미안했거든.”
“펠……!”
“후회했어. 당신과 더 많이 사랑하고, 여행도 하고 그럴걸.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해준 게 없더라고.”
“…….”
“이번만 해도 내가 같이 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엘리아가 펠릭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 듬었다.
침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의 마음이 너무 아파 보여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짧은 한숨을 내쉬며 엘리아는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는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
“간지러워요. 그만 그 속에서 나와요.”
“놀러 간다고 하면 놔줄게.”
“음, 글~쎄요.”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당신 남편이 이 속에서 더워 죽을지도 몰라.”
이어서 들리는 그의 투정 섞인 어투에 엘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논다니, 생각해 보니 결혼한 직후 단둘이서 따로 어딜 간 게 설산뿐이긴 했다.
그것도 목적이 있었으니, 순수하게 그와 단둘이 놀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신사분께서 에스코트해 주시는 거죠?”
한참 웃다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 그제야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펠릭스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엘리아의 이마 위로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얼마든지요, 부인.”
* * *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펠릭스와 엘리나는 왕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펠릭스는 지브릴이 내어준, 호토르가 끄는 마차를 보곤 질린 눈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흉측하군.”
엘리아는 호토르를 처음 본 당시 느꼈던 감상을 엇비슷하게 말하는 그를 보곤 웃음이 터졌다.
흥-!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호토르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그리고 검고 큰 동공으로 펠릭스를 노려보는 듯 바라보았다.
펠릭스는 요것 봐라, 싶은 눈빛으로 호토르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차, 착하지? 아이고 예뻐라.”
곧 거대한 덩치로 달려들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엘리아가 얼른 호토르를 칭찬했다.
그러자 심술궂어 보이던 호토르가 꼬리를 살랑살랑 부드럽게 흔들었다.
“와, 신기해. 말을 알아듣나 봐요. 똑똑하다, 너.”
엘리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연신 호토르의 두툼한 허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시원한 살갗에 기분이 좋았다. 호토르의 꼬리가 더 경쾌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호토르가 엘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커다란 입을 벌렸다.
“어어?”
기다랗고 분홍빛의 거친 혀가 눈에 들어왔다.
“잠, 엘리……!”
펠릭스가 엘리아의 손을 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 탓에 엘리아를 향하던 호토르의 거대한 혀는 펠릭스의 오른쪽 팔과 손을 진득하게 핥고 지나갔다. 그의 옷에서 점액이 뚝뚝 떨어졌다.
“……?”
“……!”
두 사람 모두 한동안 말을 잃었다.
“푸흡.”
그러다 고개를 숙인 펠릭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곤, 엘리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흐큼, ……얼른 옷 갈아입고 오세요.”
엘리아는 노려보는 그의 시선에 애써 웃음을 갈무리하며 흠흠, 괜스레 헛기침했다.
카타미아 왕국 의복으로 갈아입은 펠릭스는 가슴 근육이 훤히 드러나는, 흰 천으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고 나왔다.
“여기 의복은 대체 왜 다 이 모양인 거지? 차라리 벗고 다니고 말지.”
엘리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펠릭스를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이미 볼 건 다 본 사인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영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엘리아, 손.”
허둥지둥하던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와 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마차 앞에 선 그는 어느샌가 웃고 있었다. 정말 처음 놀러 가는 소년처럼 천진하게.
“……제레미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요.”
기쁠 때마다 여지없이 떠오르는 아이를 입에 담았다.
“다음엔 함께 오면 되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음을 기약하는 그의 말에 마음이 벅찼다.
엘리아는 어느 때보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버겁도록 뜨거운 이곳의 태양이 왠지 포근하게 느껴졌다.
*** 호토르와 그를 이끄는 마부가 내려준 곳은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더웠다!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뒤편으로는 카타미아 왕국의 도심지가 보이고 앞에는 끝이 없는 사막이 넓디넓게 펼쳐진 곳.
“하, 일부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