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07)
  • 눈가를 누르며 걷던 펠릭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쯤 엘리아가 후작저에 도착했을 텐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오전 일찍 출발해 후작저에서 하룻밤 머문 후 황실에 방문한다고 했으니 지금 가도 그리 늦지 않을 터였다.

    본궁을 나와 마차에 오르려던 순간, 익숙한 사륜마차가 황성 정문을 통해 들어섰다.

    ‘뭐지……?’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말에서 내려선 루카스가 보였다.

    “무슨 일이지?”

    빠르게 걸어가 묻자 루카스가 재빨리 펠릭스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를 따라 내려선 나머지 기사들 역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후작저에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이곳까지 대공비 전하를 모셔왔습니다.”

    “…….”

    불미스러운 일이라. 미간을 찌푸린 펠릭스가 직접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엘리아가 눈을 감은 채 하녀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하녀가 펠릭스의 따가운 시선에 어깨를 달싹였다.

    엘리아의 뺨이 새빨갛게 부풀어 있고 입가에 피가 굳어 있었다.

    “……누가, 대공비를 건드렸지?”

    펠릭스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 선 기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 * *

    엘리아가 눈을 떴다. 탁하고 어두운 시야 사이로 언뜻 펠릭스가 보였다. 그는 루카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엘리아는 어느샌가 널따란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니 붉은색의 캐노피가 보였다.

    “그래서? 감히 내 아내에게 손찌검한 것도 모자라 북부 기사단을 향해 검을 들이댔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희 또한 대공께 반기를 드는 행위라 생각하여 맞서려 했으나, 비 전하께서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렇겠지. 괜한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 일단 밖에서 대기하도록.”

    “……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엘리아는 루카스가 나가자 뒤돌아서는 펠릭스를 보고는 눈을 감았다.

    ‘후작저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겠지……. 내 얼굴에 난 상처도 봤을 테고.’

    몹시 민망하고, 또 서글펐다.

    이전과 달라지기로 했는데. 여전히 무력한 모습을 펠릭스가 한심하게 여길까 두렵기도 했다.

    침대 한쪽이 기울어졌다. 펠릭스가 침대맡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이었다.

    부푼 엘리아의 뺨으로 따스한 온기가 닿았다. 마치 나비가 사뿐히 내려앉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이상하게 울컥, 숨이 찼다.

    달아오른 눈시울을 들킬까 살짝 몸을 움츠렸다.

    “……나야, 당신 남편.”

    미미한 움직임을 거부로 받아들였는지,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알아요.”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제 것 같지 않고 낯설었다. 그래서 곧장 입을 다물었다.

    “깨어났나?”

    눈을 뜨자 침대 위에 손을 짚은 채 내려다보는 펠릭스의 얼굴이 보였다. 엘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밤이 깊었어. 가볼 테니, 더 자는 게 좋겠군.”

    그는 침대에서 곧장 몸을 일으켰다.

    “……어디, 어디 가세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엘리아는 조급한 손길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행동에 펠릭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엘리아가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잡았던 손이 부끄러워 눈을 꼭 감아버렸다.

    “……?”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다가, 곧 침대맡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

    펠릭스는 엘리아를 꽁꽁 싸매듯 이불을 덮어주더니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리둥절한 기분에 감았던 눈을 떠 이불 속에 파묻힌 얼굴을 들려던 순간이었다.

    “엘리아. 그냥 자, 이렇게.”

    나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그냥 자나요? 그냥…… 자요?”

    “……!”

    놀란 듯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엘리아는 흐릿한 시야에도 줄곧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린, 우린 부부잖…….”

    펠릭스의 입술이 닿은 건 순식간이었다. 입술을 삼킬 듯 머금던 그가 자세를 바꿔 엘리아의 위로 올라갔다.

    그는 잠시 입술을 떼고 뜨겁게 숨을 내뱉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린 부부니까. 당신은, 나의 아내고. 그렇지?”

    그의 목소리가 흥분에 갈라진 채 귓속을 긁듯이 파고들었다. 엘리아는 대답 대신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마주 그녀를 안아주던 그가 목에 둘러진 팔을 떼어내더니 다시 입술을 비벼 왔다.

    내부를 헤집는 열기와 함께 서로의 숨소리가 방 안 공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궜다.

    곧이어 예민하게 달아오른 목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그가 잔뜩 흐트러진 이불을 마저 걷어내고 드레스의 후크를 내렸다. 순식간에 슬립만 남겨졌다.

    엘리아가 그의 넓은 어깨 위로 두 손을 짚었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빨갛게 익어버린 여린 몸에 천천히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가 닿아 올 때마다 불에 덴 것처럼 온몸이 후끈거렸다.

    “펠, 나는, 나는 당신이 좋아요.”

    그를 만난 처음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제라도 전할 수 있어 기뻤다.

    달아오른 뺨 위로 커다란 손이 닿았다. 모든 행위를 멈춘 그는 흐릿하게 비추는 촛불의 불빛 속에서 말없이 엘리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뜻 입꼬리가 올라간 듯도 했다.

    “……처음에 당신을 조금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랬나요……?”

    엘리아는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몽롱해서 그런지 그의 웃는 얼굴이 유독 꿈처럼 다가왔다.

    “그래. 우린 그날 처음 보는 사이였는데, 당신 눈빛엔 이미 애정이 담겨 있더군. ……이상했지.”

    한참 엘리아의 뺨을 쓸던 그가 이마와 볼 위로 입술을 맞추었다.

    “이상했어. 이상했는데, 그게 싫지 않았어.”

    “…….”

    “이상해. 이상하게 점점 더 당신이 욕심이 나.”

    엘리아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당신이 좋아. 그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깨닫는 순간 이미 난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더군.”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엘리아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 위로 입술을 내렸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그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엘리아에게 입을 맞췄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번이고 타액이 뒤섞이고, 숨 가쁜 신음이 서로의 간격을 좁혀 왔다.

    뜨거운 눈빛과 맞닿는 입술, 그가 주는 사랑에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몸을 비틀었다.

    어느새 슬립마저 벗겨졌다.

    “하아……!”

    그의 입술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여린 살결 위로 진득하게 달라붙는 혀 때문에 아랫배가 찌릿하고 몽글거려서 손발이 저릿저릿했다.

    “읏, 하아…….”

    엘리아의 반응을 살피던 펠릭스가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 엘리아는 촛불에 비친 벽면 위로 펠릭스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옷을 다 벗은 그가 고요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그만 봐요…….”

    그녀의 말에 짓궂은 표정의 펠릭스가 몸을 낮추었다. 서서히 두 그림자가 겹쳐지며 그의 숨결이 목덜미 부근을 덮쳤다.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엘리아의 새하얀 살결 위로 울긋불긋한 꽃잎이 그득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잠, 잠깐…… 아!”

    엘리아는 곧이어 덮쳐 오는 고통과 아릿한 쾌락의 물결 속에 허둥거리다가도 온몸을 그에게 내맡겼다.

    바르르 떨리는 가녀린 다리를 살짝 밀어 올리던 그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장난기 어린 미소를 흘리더니 발목 언저리를 핥았다.

    “흐윽, 페, 펠…….”

    펠릭스는 엘리아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연신 허리를 놀렸다.

    “펠!”

    급기야 엘리아가 소리쳤다. 새빨간 눈꼬리에 눈물을 가득 달고는 두 팔을 벌렸다.

    몰아치다가도 장난치듯 느릿한 그의 움직임에 엘리아는 애가 닳았다.

    펠릭스가 이내 엘리아의 다리를 놓고 가녀린 두 팔을 붙잡아 끌어안듯이 허리를 깊숙하게 파묻었다.

    “헉!”

    “……그거 아나? 당신 참 예뻐.”

    펠릭스는 부풀어 오른 입술과 울긋불긋한 피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엘리아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몸 어디 하나 빈 곳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입술을 비벼댔고, 엘리아는 가늘고 긴 신음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몸을 겹친 열기는 밤새도록 식지 않았고, 어느새 희끄무레한 푸른빛이 스며드는 새벽이 밝아 왔다.

    자지러질 듯한 교성도 계속되고 있었다.

    엘리아의 몸은 펠릭스의 허벅지 위에 앉혀져 있었다.

    “하아, 히, 힘들어요…….”

    물기 어린 목소리에 펠릭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이곳저곳에 입술을 맞추더니 만족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 이만 자는 게 좋겠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엘리아의 허리를 움켜쥔 손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친 엘리아가 실신하듯 눈을 감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꼭 안은 채 등을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이 느껴졌다.

    “잘 자, 엘리아.”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침대 옆에 난 커다란 창에서 환한 빛이 새어 들어와 엘리아의 얼굴을 비췄다.

    “으음…….”

    누군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묘한 감각에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커다랗고 굵직한 손이었고,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올려보니 시퍼런 핏줄이 돋아난 팔뚝과 오랜 시간 단련된 탄탄한 흉부가 보였다.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엘리아는 곧 그가 펠릭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펠릭스는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론 엘리아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가려주고, 다른 손으론 제 턱을 받친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그를 보고 있자,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펠릭스가 엘리아의 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치워주었다.

    “일어났나?”

    “……!”

    순식간에 두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일이 새삼스럽게도 부끄러워져 엘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스륵.

    이불이 내려가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울긋불긋하게 물든 몸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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