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 부인의 뒤를 따라 삼 층 복도 한쪽에 자리한 벽장 앞에 다다랐다.
처벌의 방. 그건 엘리아가 스물하나가 다 되어도 이어져 왔던 학대의 장소였다.
방도 아닌 낡고 좁은, 한 줌의 빛만 허용하던 벽장 안이었다.
엘리아는 항상 그 방에 들어갈까 봐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곳에서는, 밥을 먹지도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했다. 후작 부인이 나오는 걸 허용할 때까지 그저 갇혀 있기만 했다.
“허락할 때까지 나오지 말거라.”
벽장 앞에 선 후작 부인이 엘리아를 쏘아보았지만, 엘리아는 이제 그 눈빛을 담담히 마주 응시하였다.
‘당신과 세레나가 내게 한 짓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그 눈빛이 너무도 낯설어 후작 부인의 어깨가 살짝 떨렸지만, 이내 본인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짜증을 냈다.
철컥.
후작 부인이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결혼식만 아니라면 회초리를 들어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하는데, 건방진 년 어디서 눈을 치켜떠.”
후작 부인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는 성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 * *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벽장 문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었다. 이곳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들었어? 엘리아 아가씨, 대공님께 시집간다더라?”
“어머, 정말? 팔자 피셨네. 여기서 사생아라고 그렇게 모진 구박을 다 받으시더니.”
“팔려 가는 거지, 뭐. 알잖아. 북부가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거기만 가면 사람이 미쳐 버린다잖아.”
하녀들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아는 벽장 안, 문에 머리를 기대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겪는 일이 웃기기도 하고,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아 맞다. 대공님 결혼하시는 거, 이번이 세 번째지?”
“세 번째지. 한 사람은 요절하고 또 한 사람은 제국으로 도망치듯 나와서 이혼했으니. 우리 아가씨는 어떻게 되려나?”
‘이 소문 때문에 처음엔 나도 가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발버둥을 쳤었는데…….’
펠릭스는 전쟁 영웅이자, 주목받는 차기 황제였다. 비슈누 신전의 예언가 카산드라가 신탁을 발표하기 전까지.
카산드라는 황제의 핏줄을 이은 첫 아이가 제국을 파멸시킨다는 신탁을 발표했다.
그 신탁 이후, 황제는 펠릭스 로이드를 제국과 거리가 먼 북부로 유배시키듯 보내 버렸다.
신탁은 저주처럼 제국 내에 퍼져 나갔다. 그를 전쟁 영웅이라며 떠받들던 제국 사람 모두 하나둘씩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공님이 그렇게 무정한 사내라며? 뺨에 있는 그 흉터도 좀 징그럽잖아.”
“얘! 너 그 소리 지금 누가 들었으면 완전 큰일 나!”
“아, 아무도 없으니까 하는 소리지. 설마 누가 듣겠…….”
하녀의 말이 도중에 멈추었다. 하녀들 또한 후작 부인이 종종 이곳 벽장에 엘리아를 가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공이 방문하는 날이라, 엘리아가 벽장에 갇혀 있을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설마…….”
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달칵,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벽장 문이 열렸다.
*** “아, 아가씨!”
“여, 여기 계셨구나…….”
엘리아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털었다.
“어머니껜 내가 벽장에서 쓰러지는 소릴 듣고 방으로 옮겼다고 전해줄래? 그리고 먹을 것 좀 방으로 올려줘.”
“……네, 네.”
하녀가 엘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였다.
암암리에 엘리아가 사생아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작가에선 모두가 엘리아를 무시했다.
비록 신분의 차이로 대놓고 막 대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후작가 사람들이 먹다가 남긴 것들을 엘리아의 식사로 내왔다.
오늘 일만 아니었다면, 벽장에 갇힌 엘리아를 언제나처럼 외면했을 것이었다.
엘리아가 북부의 사용인들에게 쉬이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도 이곳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북부의 사용인들은 이들과는 달리 엘리아를 진심으로 위했으나, 그 마음을 받아들인 건 아주 오랜 후의 일이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하녀들은 불편한지 슬금슬금 자리를 뜨려고 했다. 엘리아는 하녀들을 보며 입을 뗐다.
“대공님의 그 흉터 우리를 지켜주다가 생긴 거야. 영광스러운 흉터인 거지.”
“그, 그렇죠.”
“마, 맞아요!”
엘리아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하녀들에게 씩 웃어주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하녀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엘리아의 입가에 작게 경련이 일었다.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 * *
똑똑.
“아가씨, 식사하세요.”
“들어와.”
아까 펠릭스의 흉터를 지적하던 하녀가 들어와 엘리아의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아,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엘리아는 갑작스럽게 허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하녀를 바라보았다.
16년 전 엘리아였다면, 다 괜찮다고 말하며 너그럽게 용서해 줬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더 만만하게 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네 이름이 제니였니?”
“네, 아가씨.”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겠어?”
엘리아의 말에 제니가 짙은 갈색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어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곧 북부로 갈 거야.”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한데 말이야. 몸이 약한 내가 그곳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구나.”
“그렇죠. 아가씨께서는 몸이 약하시다 못해 불임…… 아니, 그게 아니라 매달 감기에도 쉽게 걸리시니까요.”
제니는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래. 그래서 네가 약초 보관실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약초들을 좀 받아 와야겠구나.”
“네?”
“못 알아들었니? 그럼 다시 한번 이야기하마. 가서 약초를 받아 오렴.”
“……하지만 어떻게?”
그녀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운 듯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간단하잖아. 세레나가 아프다고 하면 쉽게 내주겠지. 너는 세레나의 전속 하녀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하,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세레나가 준 내 목걸이, 네가 가져갔지.”
엘리아가 다소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침대에서 일어나 제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전부 알고 있었어. 그냥 모른 척해줬을 뿐이지.”
당황한 제니가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외에도, 세레나가 내게 준 물건들을 대부분 다른 하녀들과 나눠 가졌더구나. 이 사실을 안다면 후작께서 집안에 좀도둑이 많다고 얼마나 한탄하실까.”
물론 후작은 그녀가 이야기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어, 그, 그게…….”
엘리아의 얼굴이 바로 그녀의 앞까지 다다르자 제니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 할게요! 저, 전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엘리아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조금만 용기 내면 이리 쉬운 일을, 16년 전 나는 왜 못 하고 바보처럼 당하고만 살았을까.’
그제서야 제니가 후다닥 인사를 올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엘리아는 접시 위에 놓인 샌드위치를 들었다. 한입 베어 무니, 아삭한 식감과 함께 두툼한 햄에서 육즙이 흘렀다.
엘리아가 이전에는 후작가에서 결코 맛보지 못했던 온기 있는 음식이었다.
후작과 저택 내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 난 하녀의 밀회로 태어난 아이. 후작의 단 하나의 오점. 그게 바로 엘리아였다.
후작 부인은 귀족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엘리아를 받아들였으나, 하녀는 어딘가로 보내 버렸다고 했다.
엘리아는 이 아르네스 후작가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기에 따뜻한 애정이 그립고,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했다.
엘리아는 어릴 적 사생아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인 헤럴드 아르네스 후작의 집무실로 찾아가기도 했다.
“아버지!”
하지만 후작은 엘리아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기보다는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을 남길 뿐이었다.
“사실을 알았다면, 나대지 말고 조용하게 살아라.”
엘리아는 후작이 내뱉은 그 말을 내내 잊지 못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듯, 내려놓았다.
후작가의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일만 하며 오랜 세월 마음을 비워 나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북부를 간다고 해서 천성이 변할 리가 없었겠지.’
엘리아는 자조하다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북부로 가면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특히, 어린 제레미가 있잖아. 이젠 내가 달라져야 해…….’
이전 삶과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제레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가, 21살이었던가.’
잘 챙겨주지도 못한 것 같은데, 당시 제레미는 홀로 무럭무럭 커서 엘리아를 지켜줬었다.
지금의 엘리아와 똑같은 나이.
한참을 생각해 봐도, 스물하나였던 시절 막 마주했던 5살의 제레미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굉장히 작았던 건 분명한데…….’
벌컥!
“언니! 여기 있었구나!”
그때, 누군가 허락 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세레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배려의 노크 소리 하나 없었다.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내가 몰래 벽장에서 꺼내주려고 했는데!”
“…….”
‘그래, 네가 꺼내주고 나면, 나는 항상 나중에 더 큰 벌을 받았었지.’
세레나는 문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아무 말 없는 엘리아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찾아다니기라도 했는지, 두 뺨이 상기되어 있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평소랑 분위기가 다르지? 아까 좀 놀랐잖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그보다 무슨 일이야?”
“으응? 무슨 일? 우리 오늘 함께 차 마시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나?”
“……아.”
풀어졌던 입매가 다시 굳게 닫혔다. 엘리아는 입안의 여린 볼살을 깨물었다.
‘그 차구나. 멜라네시아…….’
잠시 어지러운 기분에 엘리아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