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61)
  • * * *

    튜니아트 황성은 발칵 뒤집혔다.

    밤새 수도를 쥐 잡듯이 뒤졌으나 리즈벳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성에서는 군대를 파견해 외부로 나가는 통행로를 모두 걸어 잠갔고, 수도에 있는 저택은 하나도 빠짐없이 검문을 실시했다.

    그러나 리즈벳은 어디에도 없었다.

    황태자 에테르온은 날이 밝을 때까지도 수색에 진척이 없자 거칠게 테이블을 내려쳤다.

    “리즈벳을 찾지 못했다니요!”

    그의 표정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에테르온은 분을 참지 못하고 로이드의 탓을 하며 옷 앞섬을 잡아 당겼다.

    “대체 경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겁니까?!”

    “…….”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요!”

    “황녀님께서 다치실 수 있던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

    “그까짓 다치는 게 뭐가 중요하다는 겁니까?”

    에테르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리즈벳의 팔을 잘라내서라도 확보했어야지!”

    핏발 선 벽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로이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평소에는 리즈벳을 없는 사람 취급하던 그가 갑자기 이렇게 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벽부터 리즈벳의 소식만 기다리며 난동을 피우는 모습은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게다가, 리즈벳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무조건 그녀를 확보했어야 한다는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에테르온은 마치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할 사람처럼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로이드는 고개를 숙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국에서 제일가는 실력자라더니! 그것도 말뿐이었나 봅니다. 눈앞에서 놓치다니요?”

    “……그만 진정하거라, 에테르온.”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고 있던 황후 아틀레아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나 에테르온은 그러지 못했다.

    “진정이라고요? 지금 진정하라 하셨습니까?”

    “에테르온.”

    “아버지가…… 아버지가 저를 버리실 거라고요.”

    에테르온의 손이 덜덜 떨렸다.

    황제가 그를 버린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로이드는 미간을 좁혔다.

    리즈벳이 납치되었는데 어째서 카로스가 그를 내친다는 것일까.

    신성력을 타고난 에테르온은 황위에 오른 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곧 리즈벳의 생일입니다……. 반드시 그 전에 찾아내야 합니다.”

    에테르온이 횡설수설하며 얼굴을 감쌌다.

    로이드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튜니아트에 그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짐작하건대 아주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그리고 그 중심에 리즈벳이 있었다.

    * * *

    나는 이안의 뒤를 따랐다.

    그가 내어 준 거처는 북쪽 호숫가 근처에 위치한 고궁이었다.

    라히트리안의 거처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이안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피곤해 보이는 내 모습에 애써 참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이 시간에 안내해 줘서 고마워요, 이안.”

    “시중들 사람은 아침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 행색을 살폈다.

    이리저리 쓸려 더러워진 흰 슬립에 통이 넓어 계속 흘러내리는 후드, 그 아래 보이는 맨발에 슬리퍼까지.

    누가 봐도 사연이 있다고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럼 쉬십시오.”

    “네, 잘 가요.”

    나는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바로 소파에 후드를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평생 오를 계단을 하루 만에 전부 올랐으니 아마 내일쯤이면 끔찍한 근육통에 시달릴지도 몰랐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노곤한 몸을 옆으로 뉘여 웅크렸다.

    “앞으로 어떡하지.”

    하필이면 원작의 주요 인물과 엮이고 말았다. 그것도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흑막과 말이지.

    왜 라히트리안은 나를 바로 죽이지 않은 걸까. 손쉽게 심장을 회수할 수 있었을 텐데.

    튜니아트 황녀라는 신분은 라히트리안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썼더라면 원작에서 튜니아트를 대적해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튜니아 여신을 아주 싫어했으니 나와는 엮이기도 싫은 게 정상일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데려온 걸까.

    나는 무겁게 감기는 눈을 깜빡이다 이윽고 잠에 들었다.

    * * *

    점심이 훌쩍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을 끌어안고 숙면의 여운을 만끽하는데 흐릿한 시야로 자줏빛 옷자락이 보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옷자락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 옷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기자 처음 보는 적갈색의 단발머리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신기한 생물을 구경하듯이 제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날 보고 있었다.

    “어……, 누구세요?”

    “이안 님께서 부족함 없이 모시라 하셨습니다. 아니카라고 부르세요.”

    ……묘한 화법이었다.

    존댓말이지만 끝은 명령조로 끝나는 해괴한 어투에 잠시 사고가 멈췄다.

    ‘잠깐, 아니카라면……?’

    튜니아트 신성 제국의 몰락에 앞장서서 군대를 이끌던 총 군단장이었다.

    파괴적인 능력으로 황성을 무너뜨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

    그녀는 튜니아트 신성 제국의 신성력을 손에 얻고 싶어 했었다.

    조연이었기에 자세한 사연은 나오지 않았지만 정보는 그걸로 충분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깨닫자마자 나는 찬물이 끼얹어진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로 했다.

    ‘이런 사람을 시중인으로 보내다니, 이거 무슨 뜻이지?’

    알아서 잘, 조용히 지내라는 뜻인 건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 잘 부탁드려요.”

    나는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아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남과 신체 접촉은 하지 않습니다.”

    ……어색하게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렸다.

    그래, 여기가 이카르센 제도였다는 것을 깜빡했다.

    저마다 다양한 사정을 갖고 있으며, 라히트리안에게 비정상적일 만큼 충성하는 마법사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자라면 그게 누구이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 상관하지 않고 받아 주는 곳이었다.

    무엇이든 상상 이상이 펼쳐지는 곳인 만큼, 제국에서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대로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윽.”

    “어디 불편하십니까.”

    “……어제 달밤에 계단을 올랐던 게 뒤늦게 몰려오나 봐요.”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런데 아니카는 언제부터 와 있던 거예요?”

    “아침에 왔습니다.”

    ……설마 그때부터 내가 자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완전히 기상하자 아니카가 창문의 커튼을 모두 젖혔다. 방 안에 환한 빛이 들이찼다.

    “식사 하시겠습니까?”

    “우선 씻고 싶어요.”

    어젯밤, 그냥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온통 찝찝한 상태였다.

    내 상태를 보던 아니카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우선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다음 일을 도모해 봐야지.

    ‘라히트리안이 왜 나를 데려온 건지 알아야 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데려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 입을 어떻게 열게 만들지?

    “……일단 저지르고 보자.”

    라히트리안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 * *

    나는 준비를 마치고 아니카의 안내를 받아 남쪽 성에 도착했다.

    꽃 덩굴이 성을 감싸고 있는 무척 예쁜 곳이었다.

    “라히트리안 님은 이곳에 계십니다.”

    “흐읍. 후우.”

    “그럼 들어가…….”

    “으어, 잠깐만요. 아니카,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요.”

    나는 집무실 문을 열려는 아니카의 옷깃을 서둘러 잡아 당겼다.

    역시 다음에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굳게 닫힌 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던 손을 거두었다.

    “음,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겠어요.”

    “…….”

    “오늘은 성 구경부터 할까요……?”

    “…….”

    “무, 무섭단 말이에요!”

    말없이 가늘게 내려다보는 은회색빛 눈동자에 본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라히트리안을 만나는 게 너무 무서웠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제어구를 하고 있는 그를 마주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괜히 대화를 시도했다가 기분이 상했다며 심장을 도로 내놓으라 하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적어도 육신이 부스러기가 되어서 사라지는 것만큼은 막아야지.

    ‘빼앗긴 신성력을 다시 찾는 방법도 알아내야 해.’

    오는 내내 생각해 봤는데 살짝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이카르센 제도에 남는 건 생각보다 꽤 이득이었다.

    원하는 정보를 훨씬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컸다.

    그러려면 일단…….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카. 저 마음의 준비 다 했어요.”

    “라히트리안 님, 아니카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아니카는 망설임 없이 노크했다.

    그 후로 몇 번 더 짧은 대화가 오간 것 같았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곧 문이 열렸다.

    “그럼 들어가시죠.”

    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마주치고 말았다. 살벌한 자안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