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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외전 After 8화
서울에 위치한 한 구치소.
그곳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최장석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자.
쾅―!
그가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뭐, 뭐라고…?”
최장석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나는 천천히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최미래 씨, 살릴 방법이 있습니다.”
“그, 그게 무슨… 대체 어떻게? 의사가 치유 스킬로도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치유 스킬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지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순 없으니까요. 의학적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최미래 씨의 능력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그의 심정이 퍽 이해가 갔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대략적으로는 폭주 상태를 통해 다른 스킬들을 간섭시킬 예정입니다.”
“다른 스킬이라면…?”
“자가 치유가 가능한 스킬들이죠. 자신의 신체 상태를 이전으로 되돌리는 스킬, 실시간으로 신체를 회복하는 스킬 등,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볼 겁니다.”
그가 대답을 아꼈다.
뭐, 이렇게 말해도 일반인인 그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테니 당연하겠지.
“뭐, 당장은 내용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서류로 보내드리죠.”
그렇게 덧붙였지만, 최장석은 그런 것 따윈 관심 없다는 듯 물었다.
“미래는… 괜찮은 건가?”
“괜찮냐고 하심은……?”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미래가 더 고통받아야 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네.”
나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미래 씨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구는 충분히 해봤지만, 임상은 저희로서도 처음이니까요.”
“…뭐. 뭐?! 처음이라니! 그 말은 미래를 실험체로 쓰겠다는 거 아닌가?!”
“실험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나 쓰는 말이죠.”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그의 두 눈을 마주 봤다.
“물론 100%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최소 75%… 최대 88% 이상의 결과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남은 12퍼센트는…….”
“변수입니다.”
내가 즉답했다.
“아니… 미래 씨의 의지라고 보는 편이 맞겠군요. 폭주 상태를 견뎌내는 건 순전히 시전자의 강한 정신력이니.”
“…….”
“물론 저는 통보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엄연히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하러 온 거죠.”
나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그에게 내밀었다.
개인정보 활용을 비롯한 수술 동의서, 능력간섭 동의서 등, 필요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서류였다.
“잘 읽어보시고 내용에 동의해주시면 그 즉시 진행할 것입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으셔도 상관없고요. 순전히 최장석 씨의 선택입니다.”
“…….”
그는 말을 아낀 채 가만히 서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내가… 내가 뭘 해주면 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해준다는 건, 나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장석 씨한테 얻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그럼 왜…?”
“저희 쪽에서 이번 일에 맞춰 새로운 사업 하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래 씨의 일은 그 시작 단계고요.”
“알아듣게 말해주게.”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업 내용을 외부인에게 전부 털어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아영이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테고.
하지만……
‘쯧, 나도 모르겠다…….’
그래.
최소한 이 남자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WDSO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가 50년간 지속되어온 이능차원 현상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최장석이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아직 어려움이 많습니다. 당장 토벌 산업이 사라지면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지는 곳도 있고요. 최소 5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죠. 사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시민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는 겁니다.”
나는 두 손을 가볍게 포개며 말했다.
“시민들은 늘 불안해합니다. 뱅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어느 날 갑자기 과거 국제협회처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럼 요즘 시민 단체랑 비영리기구에서 계속 시위하는 이유도…….”
“맞습니다. 사실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또한 우리가 언제든 토벌 산업을 빌미로 외교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크게 숨을 골랐다.
“이 상태로는 아무 문제 없이 해방을 기다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불안이 계속 이어지면 반대 세력이 만들어질 거고, 국가는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기구 설립을 시도하겠죠.”
“…….”
“만약 국제사회가 또다시 갈라지게 되면… 이 현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끝내며 최장석을 바라봤다.
잠자코 듣던 그가 나를 슬쩍 흘기길 한 차례.
“그러니까 자네 말은…… 결국 이 현상을 끝내기 위해서 WDSO에 대한 국제사회와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건가?”
“예.”
“그걸 위한 방법이 자네가 말한 새로운 사업이고?”
“그렇습니다. 사업 내용은 말씀드렸다시피 현대 의학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질병을 이능력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
“그리고 최장석 씨의 따님, 최미래 씨가 이번 사업의 첫 번째 대상자로 선정된 겁니다.”
“…그렇군.”
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맙네. 진심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감사는 됐습니다. 공식적으로 저는 최장석 씨를 도와드린 게 아니니까요. 아시겠지만 최장석 씨는 이번 우리 사업과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죗값 치르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아무렴!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평생도 있을 수 있네.”
“…그건 좀 곤란합니다.”
나는 실소를 지었다.
“미래 씨가 작전팀에 취직하면 축하해줄 사람은 있어야죠.”
“…….”
최장석 또한 나를 따라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재판 잘 받으시고… 뭐, 좋은 결과는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면회실을 나서려던 그때.
“그런데 그 사업 말일세.”
최장석이 내 등을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명칭이 뭔가?”
“…….”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대로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
“WDSO 대한민국 협회와 한별그룹이 또 한번 손을 잡았습니다.”
기석대학병원 입구.
“한별그룹 산하 금빛재단을 통해 그들이 선보인 이능력 의료사업은 희귀질환 및 극복하기 어려운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대상자로 선정된 최미래 씨가 입원 중인 기석대학병원에는 현재 수많은 취재진과 시민, 그리고 수술 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의료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조현민 대통령과 김준우 WDSO 사무총장, 이아영 한국 협회장을 비롯한 각계 관련 최고 책임자들이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30분 후면 수술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는 대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수십 명의 취재진과 리포터들이 각자 카메라 앞에서 이 뜨거운 이슈를 앞다퉈 전하는 중이었다.
“어휴…….”
덕분에 무수한 마이크 세례를 뚫느라 진이 다 빠졌다.
인터뷰 요청은 전부 수술 이후로 미루고 나서야 겨우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있던 이들이 나를 반겼다.
그 명단으로는…….
“늘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이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충분히 준비될 때까진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하, 현명한 판단입니다.”
조현민 대통령.
“하여간, 이전부터 알아봤어. 일 벌이는 건 세계 최고라니까. 클클클.”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지요?”
“아무렴.”
하덕수 한별그룹 명예회장.
그리고.
“사무총장님! 오셨습니까.”
“일찍 오셨군요.”
“네 시간 전에 왔습니다. 저 인파를 뚫을 자신이 없어서.”
하성일 한별그룹 회장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사업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뭐, 돈은 안 되겠지만 기업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리 나쁘진 않겠죠.”
“꼭 그런 거 아니어도 했을 겁니다. 거절했으면 할아버님이 가만히 안 뒀을 거거든요.”
“하하하. 성격은 여전하시군요.”
그렇게 말하며 하덕수 명예회장을 바라보자 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 외에도 수술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인사들과 한 명씩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왔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초대해줘서 고맙긴 한데… 내가 와도 되는 자리긴 한가?”
“뭐, 안 될 거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름 협회장님의 최측근이신데.”
“하!”
이아영 협회장의 아버지.
이두식 전 이사.
물론 최근 1년 동안 사적으로 만날 일은 많았지만, 이렇게 보니 또 어색한 기분이었다.
이두식 이사 또한 마찬가지인지 서로 데면데면 있던 그때였다.
“왔어요?”
이아영 협회장이 타이밍 맞춰 나타났다.
“그래도 용케 들어왔네요. 입구에서 한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뚫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많기도 하군요.”
“최대한 크게 벌이라고 한 게 누군데요.”
“그래야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말하자 이아영 협회장이 씨익 웃었다.
“최장석 씨한테서 관심을 돌리려는 게 아니라요?”
“뭐… 겸사겸사죠.”
나 또한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연애질은 끝나고 하고, 이제 슬슬 시작할 거니까 빨리 따라와요.”
클로이 소장이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큼큼,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능석 증폭기도 설치 완료됐고, 지금은 파장 조절기 확인 중인데…….”
“그 뭐냐,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만 알면 됩니다.”
“말해줘도 모를 거면 왜 물어봤어요?”
“…….”
참자.
보는 눈이 많다.
“뭐, 지금 의료진이랑 기술진 전부 브리핑 준비 끝났으니까, 자세한 내용은 회의실 가서 들어요. 수술 시작까지 10분밖에 안 남아서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나와 이아영은 그렇게 클로이를 따라 급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회의실.
그곳에는 수술 직전까지 계속해서 시뮬레이션해보던 의료진과 지원팀 기술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하지만 그만큼 모두가 진심으로 모인 그곳에서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먼저 한마디를 뱉었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뱅크 아이템을 활용한 난치, 불치성 질병 극복 프로젝트.
미래드림 의료사업의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
“제가 말입니까?”
WDSO 본부, 사무총장실.
신수지 비서가 꽤나 생뚱맞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예.”
“지금 당장요?”
“예. 민희숙 과장님께서 꼭 부탁드린다고…….”
“왜, 왜 갑자기……. 아니 그것보다 제가 가도 되는 겁니까? 엄연히 따지고 보면 전 한국 협회 소속도 아닌데.”
“물론이죠.”
신수지 비서는 두 번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반응.
도저히 저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또다시 딴지를 걸었다.
“다 둘째치고 스케줄이 됩니까? 오늘 오후에 국제 토벌 컨퍼런스 준비로 본부 회의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미뤄졌습니다.”
“……?”
그건 또 뭔 소리인가.
“그걸 누가 미뤘다는 겁니까? 회의 소집 권한이 저한테 있는데.”
“…….”
따지듯 물었지만, 어째선지 신수지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무튼, 오늘 딱히 특별한 일정은 없습니다.”
“…….”
본인 할 말만 우직하게 내뱉었다.
“……뭐, 알겠습니다.”
나로서도 갑작스러운 상황이 굉장히 께름칙했지만, 저렇게까지 나오면 뭘 어쩌겠는가.
결국, 그녀의 요청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을 나와 곧바로 작전 본부로 이동했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에는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모두 하나 같이 긴장한 표정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먼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 오셨습니까.”
“여기 앉으십시오.”
민희숙 과장을 비롯한 각 부서 인사들이 자리한 그곳.
그리고 그 가운데…….
“딱 맞춰 왔네요. 먼저 시작해야 하나 싶었는데.”
“넌 또 여기 왜 있어.”
이아영 협회장이 앉아 있었다.
퍽 당황스러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말.
그러자 이아영 협회장이 나를 찌릿 흘겨보며 말했다.
“저도 몰라요. 급하게 불려 나온 거라서.”
“…….”
협회장도 모자라 사무총장까지 부른다고?
대체 뭐 얼마나 중요한 자리길래?
그런 의문이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그렇다고 도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민희숙 과장이 앞에 있던 직원에게 손짓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지원자들 호명해주세요.”
“네.”
이내 직원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1번부터 3번 지원자,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세 명의 사람이 면접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지원자들이 순서대로 착석하는 순간.
“…….”
“…….”
나와 이아영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할 말을 잃었다.
민희숙 과장이 그런 우리 모습을 슬쩍 흘기길 한 차례.
“순서대로 간단히 자기소개해 주세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서울 본부 작전팀 상반기 공채에 지원한…….”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